비게이머들의 모임에 게임을 가져가기전 묻는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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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7 04:03

약간 특이할지 모르겠는데... 개인적으로 전 주변 사람들에게 같이 게임 하자는 말을 절대 안합니다.

아동들에겐 스마트폰 말고 재미난 놀거리가 있음을 알려주기 위해 열심히 전파하고 노력하지만 [성인들에겐 어떠한 경우에도 "게임 하나 해보실래요?" 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가 일종의 철칙(?)이죠. 비게이머 친구들 사이에선 보드게이머로 나름 유명하지만 절대로 모임을 주최하거나 먼저 제안을 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길 꺼려하는 성격도 있지만, 내 취미를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고 싶지 않거든요.

이러다보니 친구들은 제가 열중하면서도 단 한번도 언급을 안하는걸 보고, 되려 "야, 어떤걸 하는데?" 하고 호기심을 가지고 다가옵니다. 물론 이래도 "아, OOO 이라고 최근 진짜 열심히 하는 보드게임이 있어." 정도로 끝나죠. 절대 "해볼래?" 라고 묻지 않습니다. 이러면 대부분 "그래? 재밌어?" 정도에서 끝나지만, 종종 "뭔데 그래? 나도 한번 시켜주라" 이렇게 반응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에게만 보드게임을 살짝 시켜주죠. 그리고 또 다시 별말없이 무심하게 취미생활 하며 지냅니다. 이러다보면 되려 호기심 때문에 보드게임계에 입문하는 친구도 조금 생기더군요(;;)

이렇게 묵묵히 취미생활 하는게 어느정도냐면.... 심지어 여자친구에게도 게임을 먼저 들이밀지 않습니다. 제 여자친구가 너무 좋아하는 로스트시티도 [오빠는 왜 나한테 게임 하자는 말을 안해? 나도 할 수 있거든? 나도 하나 가르쳐줘 봐.] 하고 먼저 부탁한게 계기였습니다 -_-; 당연한거겠지만... 로스트 시티를 잘한다고 해서, "다른 게임 해볼래?" 따윈 절대 말하지 않습니다. 여자친구가 다른 게임에 흥미를 보여야만, 그때 조금 더 알려주죠. 여자친구도 첨엔 이해를 못했는데 지금은 서로 다른 취미를 존중해준다는 느낌을 받는다며, 부담을 안줘서 참 편하다고 하더군요 ㅎㅎ

쓸데없는 잡담이 길었네요.

이렇게 폐쇄적인(?) 저지만, 보드게임을 하고 싶어하는 다른 모임에서 협력 요청이 오거나, 여자와 잘 되고 싶어하는 친구(...)에 의해 게임들을 들고 강제소환 당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물론 보통은 No!! 하지만, 종종 게임을 하고 싶을때만 Yes 하고 게임들을 준비하죠. 이때 반드시 물어보는 질문 몇가지가 있습니다.

1. 인원 수 및 남녀의 비율

2. 사람들의 직업 / 전공

3. 이미 서로를 알고 지냈는가?

4. 게이밍 경험

5. 예상 소요시간

6. 보통 만나서 무엇을 하는가?

7. 목소리 크고 리더쉽 강한 사람의 유무

8. 자극적인 언어의 사용 유무

크게는 이렇게 8개를 물어보는 편인데요. 언뜻 보면 그냥 모임에 대해 궁금한 사람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전 어떤 게임을 선택할지 참고하기 위한 정보로 이용합니다.

1. 인원 수 및 남녀의 비율

인원 수는 게이밍에 있어 중요한거니 당연히 물어봐야 하고....

특히 전 남자와 여자의 비율에 초점을 맞춥니다. 남자가 많다면 시타델 같은 공격적인 게임 위주로 준비합니다(여자가 한 둘 껴있어도, 남자들은 여자들을 잘 공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자분들이 마음놓고 남자들을 까며 놉니다;;;). 여자가 많다면 티켓투라이드나 딕싯 같은 아이캔디 게임들을 준비하죠. 서로 초면인데 남녀의 수가 엇비슷하다면, 모임 자체의 목적이 뻔하기에 서로 마음을 맞춰야 하는 협력 게임 위주로 고릅니다. 물론 이땐 지적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게임들은 가져가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Wits & Wagers 같은거요. 상대방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앉아있는건데, 괜히 게임 때문에 무식함을 뽐내면 누가 좋아하겠어요.

2. 사람들의 직업 / 전공

기본적으로 사람은 자기가 알고 있는 것에 가장 큰 흥미와 몰입감을 느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직업의 장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게임을 생각하죠. 회계사가 많은 팀에 파워그리드를 가져갔을 때 대박을 쳤기도 했고, 부동산 중개인 업을 하는 친구들이 많았던 날은 경매/투자/재판매 같은게 많이 들어간 게임들을 준비했죠. 가장 좋아하던건 포세일이더군요. 스타벅스 바리스타들이 많다면 비바자바 다이스 게임이나 뭔가를 섞어서 만드는 블렌딩이 필요한 게임을, 입담과 논리로 먹고 사는 직업/전공이 많다면 협상 게임 위주로 준비하는 편입니다. 예술/디자인 쪽에 관련된 사람들이 많다면 눈이 즐거운 콤포넌트 위주의 게임이나 예술적인 감각들이 가득한 게임들을 준비하죠(딕싯/텔레스트레이션 등) . 직업/전공군이 고루고루 분포가 되어있을 땐, 두루두루 커버할 수 있는 무난한 게임들을 선정하는 편입니다.

3. 서로 알고 지내는 사람들인가?

서로 모르는 사이라면 부끄러운 행동을 해야하는 게임은 피하는 편입니다.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라면, 적극적으로 서로를 놀려도 기분이 상하지 않거든요. 재미난 벌칙을 부여할 수 있는 달무티류가 대표적이겠네요. 순한 게임과 공격적인 게임의 정도를 결정하는 질문입니다.

4. 게이밍 경험

어느 정도로 게임에 대한 경험이 있는지 알고 싶을때 묻습니다. 게임 경험이 전무하다면 난해/복잡한 시스템이 없는 직관적인 게임으로 선별하죠. 노땡스, 달무티, 블로커스 이런거요.

5. 예상 소요시간

얼마나 오래 같이 있을건진 꼭 물어봐야 하죠. 적정 길이의 게임을 골라야 하니까요.

6. 보통 만나서 무엇을 하는가?

사람들이 만나서 무엇을 하는지를 보면 그 그룹의 성향을 어느정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참가자들이 평소에도 자주 만나거나, 또는 몇번 모임을 가진 경험이 있다면 평소에 무엇을 하는지 물어봅니다. 클럽/노래방/술자리를 자주 가진다면, 핏처럼 소란스럽고 짧고 강한 임팩트를 주는 그런 게임들 위주로 준비하구요. 커피샵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던가 차분한 분위기의 시간을 가지는 편이라면 게임도 그에 따라 차분하고 이야기할 거리가 많은 게임들을 준비합니다.

만약 초면이라 이런 정보가 없다면, 공격적인 게임보단 차근차근 서로를 알아갈 수 있는 게임들을 합니다. 그러나 직접적인 개인 성향을 노출시키지 않는 게임이어야 합니다. What"s it to ya 라는 게임이 있는데... 이건 서로의 취향을 순위를 매겨 맞춰가는 건데요. 이건 너무 노골적으로 그 사람의 성향/취미/지향점 같은게 드러나죠. 이런건 이미 친한 사람들끼리 해야 더 효과가 좋으니 그런 점도 고려하죠.

비슷한 예로... 서로 지식을 공유하길 좋아한다면 Wits & Wagers 를. 간단한 트럼프 카드게임을 했다면 티츄/달무티/보틀임프 같은 유명 시스템을 조금 변형시킨 카드류의 게임을. 딱히 목적 없이 멍하니 있으며 시간을 죽인다면, 이런저런 잡담을 하며 부담이 적고 느슨하게 할 수 있는 게임을 가져가는 등 분위기에 맞춥니다.

7. 목소리 크고 리더쉽 강한 사람의 유무

이런 사람이 한명이라도 있다면 가능한 협력게임은 가져가지 않습니다. 목소리가 크다보니 협의를 할 때 다른 멤버들의 비중이 크게 줄어들기도 하고... 순식간에 리더 한사람과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이 되더군요. 당연히 내색하진 않지만 불만이 쌓이구요. 차라리 이럴 땐 각개전투용 게임을 준비합니다. 만약 이런 사람이 둘 이상 있는데 팀 게임을 하게 되었다면, 그 사람들은 절대로 한팀이 되지 않도록 조정합니다. 서로 목소리가 크니, 게임 중후반엔 [니가 못했네 내 말을 따라야 하네~] 이러쿵저러쿵 둘이 치고박고 하더군요. 분위기 보호를 위해 사전방지 합니다.

신기한건... 이런 사람들과 각개전투 게임을 하게 되면, 모든 플레이어들이 이런 사람들을 먼저 죽이더군요 -_-;;

8. 자극적인 언어 사용의 유무

저는 욕설을 대단히 싫어합니다. 아무리 친한 사람이더라도 욕은 절대 해선 안된다고 생각하는 편이죠. 그래서 이런 사람들이 많다면 자리를 피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상황이 어쩔 수가 없다면... 그냥 플레이어들끼리 신나게 욕을 할 수 있는, 극단적으로 공격성향을 띄우는 게임들을 챙겨갑니다. 평소에 서로 욕을 한다는건, 그만큼 친밀하다는 얘기이자 그런 소릴 들어도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는다는 뜻이거든요. 이런 모임엔 서로 쉴새없이 때려부수고 뻐큐(...)를 날려댈 수 있는 극단적인 게임을 준비합니다. 게임이 끝나고나면 속이 시원하다는 표정으로 만족해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더군요(;;;). 물론 저는 날아다니는 욕설에 정신적으로 지쳐버려 한동안 게임을 안하곤 합니다 ㅋㅋ

뭐... 이렇게 8가지 질문을 통해 게임을 선별하긴 하지만... 늘 맞는건 아닙니다. 가끔 독특한 성향의 그룹(겉으론 온화한데 겜 던져주니까 흉폭하게 돌변하는;;;;)도 있었고, 파트너에게 마음이 상해서 제게 하소연을 하는 그런 돌발 상황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대체로 먹히는 편이라 나름의 노하우가 쌓인것 같아요. 솔직히 이 수고를 하고 앉아있느니, 그냥 게이머들하고 앉아서 하는게 제일 속편하긴 하지만요.

여러분들은 모임이 있는 자리에 가게 될때, 가져갈 게임들을 어떻게 정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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