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자 지침서 영상에 관한 영상을 보고
별밤님 영상을 보고 글을 씁니다.
전에 '2. 보드게임 플레이는 어떨 때 재미없을 수 있는가.'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 보시면 좋겠습니다. 내용 대부분이 '설명을 어떻게 하는 게 좋은가'거든요.
영상 내용을 정리해봤고, 1번, 4번을 붙였습니다. 이어지는 내용이라고 생각돼서요.
1. 즉석에서 하지 말고 미리 규칙 익히고 가라. 혼자 더미 게임(테플)하는 게 좋다. 규칙서 읽으면서 이해 안 된 부분은 커뮤니티 가서 물어봐라.
4. 설명은 퍼포먼스다. 구조, 자연스러운 설명 순서를 생각해보라.
별밤님: 완벽하지 않더라도, 설명을 유창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설명이 막히면 듣는 이의 몰입이 떨어지기 때문)
멜로대디님: 단순 나열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가 필요한 부분을 이해시켜주는 것이 좋다.
물론 설명자는 규칙을 미리 익혀야 합니다. 커뮤니티에 가끔 규칙 설명을 미리 준비하지 않고 현장에서 같이 규칙서 보면서 하려고 하시는 분들이 보이는데, 말리고 싶습니다.
누구나 완벽하지 않죠. 그런데 특히 보드게임에 대해서는 '철저히 준비하시라'고 말씀 드리고 싶은 이유는
보드게임은 비용(번거로움, 시간)이 커, 처음 해봤을 때 그 경험이 좋지 않으면 다시는 안 하게 되곤 하기 때문입니다.
논리적 오류를 없애기 위해, 설명이 너무 길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그리고 이해가 잘 되게 하기 위해 설명 순서를 잘 짤 필요가 있습니다.
2. 구성물을 만지게 하라.
별밤님께서는 '뭔가 같이 하고 있다는 느낌, 일치감을 준다'는 점에 주목하셨는데요.
제 생각엔 구성물의 명칭을 익히게 하는 기능 면에서, 구성물을 만져보게 하는 게 필요합니다. 각 게임에서 쓰이는 명칭은 그 게임에서 쓰이는 명칭이지, 일반적인 단어가 아니기에 게임을 배우는 것은 외국어를 배우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리고 게임에서 느끼는 즐거움 중에는 촉각적 즐거움도 있는데, 그걸 참으라고 하는 건 좋지 않은 통제라고 생각합니다.
3. 우리는 누구인가(어떤 역할을 맡는가), 승리 조건, 즐거움 포인트를 설명하라.(Who, How, Why를 말하라.)
저는 '이 게임은 무엇을 하는 게임인가'를 말하는 게 좋다고 했는데 Who, How를 말하라는 건 그와 같은 맥락으로 보이네요.
단순히 '롤플레잉 하면 더 재미있으니까', '분위기 살리면 더 좋으니까'에 불과한 게 아닙니다.
이건 게임 승리조건, 종료조건을 이해시키는 데에 연관이 되고, 승리로 가는 길을 모색하는 데에 길잡이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와 관련이 없는 내용까지 테마 관련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즐거움 포인트까지 미리 말하는 건 게임에 따라 어려울 수 있습니다. 풀어서 말하면 "저는 이 게임이 이러이러한 점에서 좋아요."라고 말한다는 건데, 그 '이러이러해서'가 무슨 말인지,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하려면 결국 긴 설명이 필요한 경우가 보통이거든요.
5. 상대 이름을 넣어서 설명하다.
저도, "(제가) 이걸 구매하려고 하면 여기에서 어쩌고 저쩌고..." 이렇게보다 "빨강님이 이걸 구매하려고 하면 여기에서 어쩌고 저쩌고..." 이렇게 설명합니다.
특히 개인 매트가 있는 게임들이 많이 있는데, 각자 자기 보기 좋은 방향으로 놓으니 제 개인 매트 기준으로 설명하면
상대편에 계신 분은 거꾸로 보이기 때문에 어려울 겁니다.
그래서 상대편 분 개인 매트를 가지고 설명을 합니다.
아니면 거리가 멀면 제 개인 매트를 180도 돌려서 테이블 가운데로 옮기고 설명을 합니다.
6. 질문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라.
모 연구 결과, 보드게임 배우기를 꺼리는 이유 중 '룰을 몰라 바보처럼 보일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가 가장 많다고 한다.
물론 어떤 질문에도 답할 준비가 돼있어야 한다.
별밤님께서도 말씀하셨는데, '왜 이해 못하냐'고 타박하는 분들이 실제 있습니다. 듣는 이는 '이거 설명 안 했잖아' 하고 모나게 말하기보다 '설명 안 한 것 같은데요?' 하고 부드럽게 말하는 게 좋습니다.
듣는 이들이 이해 못하는 건 대개 설명자, 그 게임을 하자고 한 사람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설명을 어떻게 하는가 이전에, 어떤 이와 할지 대상을 고르는 것부터 생각해봐야 합니다.
제가 지인에게 "영화 보자." 해서 지인은 2시간쯤 하는 걸 생각하고 "그래." 하고 나왔는데, 제가 고른 영화가 50시간짜리여서 지인이 힘들어했다면 그 지인을 타박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거 50시간짜리인데 괜찮아?' 하고 먼저 말하고, 괜찮다는 사람이랑 봤어야 하죠. 아니면 같이 보는 걸 포기하든가요.
보드게임이 취미라고 하는 사람들이 하는 게임들 중에는 2시간짜리가 많습니다. 긴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으니 설명 포함 2시간 이상 걸리는 게임을 하려고 할 때에는 '이 게임은 두 시간 이상 걸릴 수 있어요. 괜찮으신가요?' 하고 먼저 물어봐야 합니다.
양이 많아서 내용 까먹을 가능성이 높은 건 참조자료를 준비하는 게 좋습니다. 참조 자료를 놓고 설명하면 누락을 예방하기도 하고, 누락 주장에 누락하지 않았다고 대응할 수 있게 만드는 증거물이 되기도 합니다.
7. 설명은 한 명만 하고(누가 끼어들어서 싸우면 안 좋다.), 다른 한 사람이 컴포를 보여주는 등 도우미가 되게 하라.
이건 설명자 혼자 이렇게 생각해서는 소용 없습니다. 설명자를 위한 지침서라면 '누군가 끼어들려고 할 때 "죄송하지만 설명은 구조가 있어서 일단 한 사람이 끝까지 해야 한다. 끝나고 나서 보충할 게 있으면 말씀해주시라"며 제지하라'라고 하는 게 좋겠습니다. 도우미를 두는 건 정말 현실적으로 어려울 거라고 생각됩니다. 누군가를 도우미 역할로 미리 정해둬야 하고, 도우미는 이미 그 게임을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합을 맞춰봐야하기도 하겠습니다.
8. 게임 하는 법, 즐기는 법을 알게끔 해주는 데에 집중하라.
(당신이 물고기를 잡으면 당장 저녁을 즐거울 수 있다. 친구로 하여금 물고기를 잡게 하면 평생 게임을 함께 할 수 있다.)
그렇습니다. 선택이 아닌 처리는 대신 해주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신데요, 자기 건 스스로 할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한 번 이런 적이 있습니다. 테포마를 했는데 저와 다른 한 분은 경험자, 두 분은 초심자였습니다.
경험자분이, 패스를 한 초심자 분께 미리 4장을 뽑고 고르게 하시고(연구 단계), 초심자분이 그 카드를 보고 있는 동안 경험자분이 생산 단계 처리를 다 해주셨습니다. 아직 행동단계에 패스를 안 한 인원들이 있었는데요!
게임을 이해하는 데에는 진행 구조 파악이 기본적으로 가장 중요한데, 그 초심자분들의 머릿속은 엉망진창이었을 겁니다. 초심자분께서 게임 후반에 갈 때까지 '생산 단계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계속 물어보셨습니다.
진행 구조를 다 이해한 다음부터는 빨리 빨리 하기 위해 대신 생산 처리를 해주더라도, 그 전에는, 최소한 첫 세대만큼은 스스로 생산을 하도록 해줬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날에 대해서는 할 말이 진짜 많은데... 다 하면 제 하소연이 되니 줄이겠습니다.
9. 필요하다면 더미(테스트) 라운드를 하라.
게임에 따라 필요한 게임들이 있습니다. 그게 필요 없는 게임들도 있어서 원 저자도 '필요하다면'이라는 말을 붙인 거겠죠. 모든 게임에 더미 플레이를 할 필요는 없죠. 오래 걸려서 초심자들을 지루하게 만들 수 있어요.
대표적으로 트릭테이킹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트릭이라는 것 자체가, 안 해본 사람들에게는 낯선 개념이에요.
에볼루션은 일부 특성을 빼고, 단계적으로 하는 걸 생각해봤습니다. 그런데 그 단계를 너무 많이 나누면 또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에볼루션만 한참 동안 해야 하니까요.
지금 생각은, 일부 특성 빼고 더미 플레이(진행 구조가 충분히 이해될 때까지), 그 후 모든 특성을 넣어서 더미 플레이(육식을 비롯해 대부분의 특성이 등장할 때까지), 그 후 모든 특성들 빠르게 설명, 그 후 본 게임. 이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10. 부담스러워 보일 수 있는 게임을 하기 전에, 공통점이 있는 보다 간단한 게임들을 먼저 하게 해주어라.
보드라이프에서도 이렇게 하면 좋다는 글을 꽤 봤는데, 저의 경우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보통, 같은 인원으로 여러 게임을 할 수 있는가도 확정적이지 않고, 그 설명자가 하자는 게임을 그 인원들 모두가 하고 싶어 해야 합니다.
원 저자는 팬데믹의 선제 기초 게임으로 스타트업(셋콜렉션), 레지스탕스 아발론(다양한 플레이어 능력), 젝스님트(손패 관리), 더 마인드(협력), Pit(플레이어 간 교환)를 들고 있는데요.
모임의 어떤 사람은 스타트업, 젝스님트, Pit, 팬데믹은 할 의사가 있는데 레지스탕스 아발론, 더 마인드는 안 하고 싶어할 수 있고
다른 어떤 사람은 레지스탕스 아발론, 젝스님트, 더 마인드는 할 의사가 있는데 팬데믹, 스타트업, Pit는 안 하겠다고 할 수 있고
또 다른 어떤 사람은 팬데믹, 다른 게임 A, 다른 게임B는 하고 싶어 하는데 그 외 다른 게임들은 안 하고 싶어 할 수도 있죠.
그 밖에.
별밤님께서는 게임 끝나고 감상 나누기 하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근데 그럴 시간을 따로 미리 배정해본 적은 없네요. 앞으로 제가 모임을 만들어 운영한다면 그 시간을 두고 싶습니다.
별밤님께서는 "이 게임은 진짜 쉬워요. ~하고, ~하면 끝이에요. 쉽죠?" 한다고 하셨는데, 저는 일면 공감하는 부분은 있으나(어렵게만 생각하면 보다 어렵게 느껴지고, 너무 겁 먹지 않고 좀 여유롭게 생각하면 보다 쉽게 느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 멘트를 지지하지는 않습니다.
너무 다 그렇게 말하니까, 진짜 쉬운 게임에 대해 쉽다고 말해도 사람들이 믿지 못하게 되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양치기 소년이 되어버리는 것이죠.
그밖에 저는 이런 것들을 신경 씁니다.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것에만 '행동'이라는 말을 쓰고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은 '처리'라고 합니다, 행동이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아그리콜라에서 라운드 시작 시마다 누적 칸에 자원을 추가하는 것은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게 아니어서, 저는 그런 걸 처리라고 합니다.
게임에서 보통 플레이어가 중요하게 신경 쓸 것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를 안에서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입니다.
저는 "자신의 차례가 되면" 이 말을 중요하게 활용합니다.
그리고 설명자는 보통 "어떤 행동을 할 수 있냐면~" 이렇게 설명을 합니다.
모든 차례 시작 시 카드를 한 장 뽑는 게임의 경우, 저는 '카드를 한 장 뽑는다'고만 하지, '카드를 한 장 뽑는 행동을 한다'고는 절대 말하지 않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에도 '행동'이라는 말을 쓰고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것에도 '행동'이라는 말을 쓰면, 헷갈리거든요.
인간은 똑똑하긴 하지만 한계가 있죠.
한 번에 세 가지가 넘는 걸 한꺼번에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떤 것들이 같은 클래스인데 종류 수가 셋을 넘어가면 그룹화를 합니다. 경우에 따라 참조 자료를 만들기도 하고요.
예를 들어 아그리콜라의 경우 행동 종류가 20가지가 넘습니다.
그래서 행등들을 '동물 키우기 관련', '밭 농사 관련'... 이렇게 그룹화하여 설명합니다.
오랜만에 아콜 규칙서를 다시 봤는데, 규칙서에도 그렇게 그룹화되어 설명된 부분이 있었다는 걸 발견하고 놀랐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