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의 풍뎅이와 엘더리치 호러 확장
몇년 전, 나는 아파트 복도를 오가다(꼭대기 층이다),
뒤집혀 꼬물꼬물 발버둥 치는 풍뎅이를 발견하였다.
유년기를 외딴 시골에서 보내 각종 곤충들이 낯설지 않은 나지만,
그런 시골을 떠나온지도 아주 오래라 난 그 풍뎅이가 처음에 조금 징그럽고 무서웠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런 풍뎅이를 그대로 내버려둔다면
복도를 오가는 누군가에게 밟혀 그대로 터져 죽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그래서 나는 집에서 이젠 누구인지조차 모르는 명함을 가져와
그 뒤집어진 풍뎅이의 꼼틀거리는 다리에 갖다대어,풍뎅이가 명함에 매달리게 하였다.
(풍뎅이는 손가락 위에 올려놓을 수 있지만, 그 얇은 다리에 나름 갈귀들이 있어 따끔하다)
난 승강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 조심스럽게, 골목길 어딘가에
조금이지만 흙이 있고, 녹음이 있는 곳에 내려다 주었다.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래도 조금 뿌듯한 마음에 기분이 좋았다.
가끔 어떤 풍뎅이는 이동 중에 날아가버리기도 했다.
그런데 그 후, 그런 일이 매우 잦아졌다.
약 3년 전에는 그해 난 50마리의 풍뎅이를 그런 식으로 도움을 주었다.
도대체 어디서 이 풍뎅이들이 아파트 복도를 기어다니거나, 뒤집혀 발버둥치는지 생각해보았다.
아마도 옥상에 소소한 나무가 있고, 화단이 있는데 아무래도 거기에
풍뎅이가 알을 낳고, 초여름 새끼가 태어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매년 5-8월이면, 나는 아파트 복도를 오가며 풍뎅이를 만날 때면,
그런 조치를 취해주었다.
나중에는 1층까지 내려가지 않고,, 복도에 화분을 잔뜩 갖다놓는 집이 이사와
그곳에 데려두 주었다. 골목보다는 그곳이 풍뎅이가 적당히 쉬다가 다시 날아가기 좋다고 생각했다.
사실 골목의 협소한 그곳 쪽에 데려가봤자, 그들은 갈 곳이 별로 없다.
주변은 키높은 건물들이 즐비해, 풍뎅이가 살아갈만한 장소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운 좋으면 그나마 나무 몇 그루가 우거진 놀이터에 닿을 수 있겠지.
집 근처 가장 숲이 우거진 곳이라고 하면, 약 2km 거리에 있는 나즈막한 산이 있다.
과연 풍뎅이들이 산의 존재를 자각하고, 그곳까지 쉬지 않고 찾아갈 수 있을까?
무엇보다 우리 아파트는 그 구조가 매우 독특해, 가운데가 텅 비어진 ㅁ 형태의 복도를 가졌는데,
그 중앙으로 빠져들면, 다시 수직으로 날아올라 이 아파트 높이를 넘어 외부로 빠져 나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보인다.
아마 아파트 중앙으로 빠져들어 처절한 죽음을 맞이한 풍뎅이들이 상당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느 주민이 복도에 꾸며놓은 갖갖이 화초의 화분에 이 풍뎅이를 올려둔다.
거기서 쉬다가, 스스로 다시 힘을 축적하고, 의지가 생기면 다시 날아갈 것이다.
아까는 한 풍뎅이가 아파트의 마지막 층을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그 안을 맴도는 모습을 관찰하였다.
풍뎅이가 조금만 힘을 냈다면 이 아파트를 벗어났을텐데, 하지만 풍뎅이는 몇 번을 시멘트 벽에 툭-툭- 소리가 날 정도로 부딪치고
도무지 빠져나가질 못했다.
저렇게 맴돌다 지쳐 복도에 떨어지고, 뒤집혀지는 것이겠지.
다행히 풍뎅이는 어딘가 매달려 잠시 숨을 골랐다.
가끔 명함을 들이대도, 전혀 다리를 움직이지 않는 풍뎅이도 있다. 죽은 것이다.
나는 그대로 명함으로 풍뎅이 밑으로 받쳐들어, 역시 화분의 흙 위에 데려다준다.
한 번은 결국 사람 발에 밝혀 터져 죽은 풍뎅이도 본 적이 있다
어째서인지 복도에서 만나는 풍뎅이는 매해 줄어들고 있다.
한편으론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풍뎅이들이 줄어든다는 사실이 아쉽기도 하지만,
자연이 아닌 시멘트 위에서 먹을 것도 없이 비참한 짧은 생을 마감하는
풍뎅이들이 별로 없다는 사실에 안심이 되기도 한다.
풍뎅이들 중에는 운이 좋게도, 산까지 날아가 도달하는 녀석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곳에서 주어진 생을 온전히 다 할 수 있겠지.
가득한 나무에서 뿜어져나오는 기분좋은 산 공기를 마시며
본연의 본성 그대로, 운명 그대로. 행복하게.
그건 그렇고.. 엘더리치 호러 확장이 나왔던데, 카드해석 오류가 있나봐요.
지금 그냥 사도 될까요? 아니면 나중에 수정판이 나올까요?
아직 엘더리치 호러 본판도 사놓고 한번도 못해봤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