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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마르 리뷰 및 후기

2,761 조회

2024.03.04 23:47

최근 정말 오랜만에 친구와 하게 된 게임이 있어 후기 남깁니다.

원래 블로그에만 후기 글을 남기는 사람이라 문체가 험악스럽고, 제 기억을 기록하는 형식의 글이라 잘 읽히지 않으실지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오랜만에 추억을 살려 블로그의 후기 글을 옮기니 너그러이 양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들어가기 앞서

블로그에 리뷰 글이 멈춘지 햇수로 6년차. 실제로 아무 보드게임도 하지 않았느냐 묻는다면, 꼭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그 경험이 기억에 남지 않는다거나 리뷰를 쓸만큼 찐득하지 못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보드게임은 틈틈이 조금씩 사모으고 있었지만, 정말 말 그대로 보드게임을 즐기지 못한 나날이 지속되었다. 1년, 2년 지나니 시간이 넘쳐남아돌아도 보드게임을 할 생각보다는 다른 활동을 하기 일쑤. 가끔 책장에 고스란히 꽂힌 보드게임을 스윽 훑어보다 먼지를 훌훌 털어내었지만, 감히 뚜껑조차 열 엄두가 나지 않아 그대로 봉인한지 몇 년. 아, 쌓이기만 하는 보드게임을 볼 면목이 없다. 팔아버리자.

보드게임 처분 글들을 올릴까 말까 보름 정도 고민했다. 그 사이 나의 보드게임 친구 주녕의 연락이 왔다. 오랜만에 보드게임 한 번 하자고. 그래서 별 고민 없이 보드게임을 하자고 했다. 보드게임 세포가 사멸하기 전에.

2. 보드게임이 (조금) 달라졌어요

최근 비대칭 전략게임은 보드게임 시장에서 핫한 주제 중 하나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둑까지 갈 것도 없다. 워게임이나 역사적 사실을 다룬 게임, 혹은 기타 테마 게임들을 제외한 오랜 보드게임은 대개 공통된 승리조건과 더불어 어떻게 하면 똑같은 조건을 만드느냐를 디자인하는 데 고민을 겪었다. 그래서 어떤 게임은 누가 선이냐, 누가 후턴이냐를 가지고 각기 다른 자원을 갖기도 했다. 혹은 AOS처럼 턴을 잡기 위해 자원을 소모하기도 하는 한편, 어떤 게임은 현재 등수에 따라 턴을 바꾸기도 했다.

어찌 턴 뿐이랴. 가지고 있는 개인보드의 몰개성성은 기본이었다. 또한 모두 가지고 있는 자원은 동일해야 하며, 자원획득 방법 또한 동일해야 했다. 일꾼놓기 매커니즘은 동일한 조건 하에서 선턴을 이용하여 타인보다 더 큰 이득을 이끌어내는 재미가 게임의 근본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유로스타일 게임의 개인보드가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테라 미스티카의 종족값이라든지, 특정한 시작캐릭터의 변화로 약간의 변주를 주기 시작한 보드게임의 향연은 좀 더 특수한 환경과 매번 다른 게임 양상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심지어 코인 시리즈나 루트의 경우에는 대놓고 액션 또한 각각 달라 게임을 하는 양상이 플레이어마다 달라지게도 만들어두었다(물론 해당 게임을 유로 게임으로 볼 수는 없지만).

그러면서 필연적으로 밸런스의 문제가 대두되었다. 저 종족 사기야. 초보자는 일단 이 종족을 추천합니다, 밸런스 망겜의 조소 속에서 어떤 유저는 경매로 종족을 선택하는 밸런스 조정 까지 하였고, 실제로 많은 게임에서는 그러한 밸런스 조정을 실제 게이머가 경매로 선택할 수 있도록 일임하는 매커니즘도 생겨났다. 이런 경향으로 볼 때 어찌보면 동일한 조건으로 순수한 대결을 추구하는 유로스타일 보드게임에서 밸런스의 파괴는 금기된 사항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보면 당연지사 아닌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어떠한 일을 한들 그게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하지만 위의 전제는 정확한 대칭을 가진 게임이라 생각되는 무언가(?)를 즐길 때에 느끼는 문제일 것이다. 대부분의 비대칭게임이나 워게임을 즐기는 사람들, 혹은 여타 테마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어찌보면 밸런스 따위 사소하다 생각하지 않을까? 라고 느낀다. 개인적으로 비대칭 게임을 즐길 때의 내 마음가짐은 유로스타일 게임을 즐길 때와는 조금 다른 것 같다. 곱씹어보면 비대칭 테마 게임을 즐기며 나오는 승점 혹은 결과나 순수한 등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물론 그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게임을 즐기는 방법이겠지만,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 해당 게임에서 일어나는 상황의 즐거움이 더욱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테마게임을 더욱 좋아하는 나에게는 최근 유행하는 유로게임에 테마가 깊숙하게 전해지는 게임들이 등장하는 것은 꽤 괄목할만하다고 할 수 있다.

3. 바이마르, 뭔가 닮았다

얼마 전 헤게모니 판매 글을 올렸다. 올렸을 때는 별 생각 없었지만, 팔리는 속도를 보니 예사롭지 않다. 어? 팔고 보니 최근에 핫한 게임이라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재판 여부도 불투명하고 독특한 게임성이 게이머들을 자극하고 있다는 말. 비대칭 전력의 옥신각신 헤게모니 쟁탈전이라. 살때는 별 생각 없이, 팔때는 이거 팔리기는 할까 싶었는데 말도 안돼. 보드게임 세계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주녕은 23년 헤게모니와 바이마르를 꽤 즐겼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번에 기회가 닿으면 바이마르 한 판 하자는 말과 함께. 사실 보드게임과 연은 꽤 끊고 살았을 지언정 어느 정도 소식은 알고 있었는데, 그 중에 내 구미를 당기는 게임이 바로 바이마르였다.

독일이 1차대전에서 패망하고 나치가 집권하여 난리치기 전까지 독일지역은 바이마르공화국이 자리잡고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꽤 생소한 나라일지도 모른다. 한 20여년 존속했던 국가이기 때문에 어? 그런게 있었어? 라고 느끼는 게 당연지사.

그래서 나도 자세한 것 까지는 모른다. 1차 대전 후 여러 조약으로 나라가 존망의 기로에 있었고, 대공황 및 하이퍼 인플레이션으로 경제는 박살이 난 나라의 약점을 히틀러가 파고들었다는 정도 밖에.

1) 개요

이 게임은 각 플레이어가 바이마르 공화국 내의 정당을 맡아 플레이한다. 이후 플레이는 각자의 바람대로 나라를 이끌어가며 승점을 얻거나, 특정 정당의 경우 국가를 전복하는 것이 목표이다.

굳이 따지자면 SPD(사민당), Z(중앙당)은 정치스펙트럼의 좌우를 형성하고 있고, kpd(공산당)은 극좌, uvnp(국가인민당)은 극우 정당으로 각각의 플레이어가 하나의 정당을 맡아 플레이한다. 이외의 uspd, ddp, dvp는 np정당으로 플레이어의 네 정당에 붙어 연립하며 이익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이 게임은 바이마르 공화국 내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에 더불어 각각의 이익을 취하는 것이 목표이다. spd와 z는 그나마 정상적인 정당의 움직임을 갖는다. 수권을 목표로 하며 국가를 풍요롭게 이끌어 주어진 라운드인 6라운드 동안 최대한 승점을 얻는 것이 최고의 목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kpd와 uvnp는 각각 공산혁명과 전체주의 노선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6라운드까지 진행되기 전에 국가를 폭파(?)시키는 것이 목표이다. 사실 게임 자체는 모두 각자 무난하게 승점을 얻는 것이 가능은 하지만 극좌, 극우 정당은 이런 정상적인 흐름으로는 절대로 게임을 승리할 수 없다. 일단 수권정당이 되는 것이 상당히 어렵고, 연립정부의 구성원으로 참여한다 하더라도 다수정당의 승점보다 항상 적게 받기 때문에 이런 방법으로는 답이 안나온다.

그래서 극좌나 극우정당의 입장에서는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고 군중의 불만을 이끌어내어 바이마르 공화국의 몰락을 이끄는 것이 제일 목표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각 극단 두 플레이어가 분탕을 치면 나머지 수권정당이 정상적인 국가가 되도록 수습하는 그림의 반복이 대략적인 게임의 흐름이다.

물론 작정하고 두 플레이어가 분탕을 치면 배겨낼 수 없기 때문에, 역사의 흐름대로(?) 각 극단 플레이어는 서로 적대적인 포지션을 잡고 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2:1:1의 구도가 이어진다.

여기까지 설명을 듣고 어? 하는 포인트가 몇 개 있을 것이다. 첫번째로 떠오르는 의문. 그 정당(!)은 나오지 않는 것인가? 물론 바이마르에 그 정당이 등장하지 않을리가 있겠는가. 당연히 나치당은 등장한다. 하지만 약간 플레이어블 정당과는 결이 다른, 악의 세력처럼 묘사되는 것이 재미있다. 나치와 정당이 손을 잡고 뭔가 플레이할 수록 강력한 효과를 주는 대신 나라의 존망이 점차 위태로워지더니, 임계점을 넘어서면 그냥 전부 패배라는 엄청난 패널티가 주어진다. 여기서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이어진다. '지금 나치의 손을 잡고 뭔가 하면 내가 이득을 볼 수 있는데, 그러면 나라가 망할지도 몰라.' 라는 악마의 유혹. 그리고 임계점이 아슬아슬하게 오를 수록 쌓이는 의회의 나치당원들. 이후 수 틀린 누군가는 외치기 시작한다.

"여기서 나 건들면 다 죽는거야!"

이러한 벼랑 끝 전술까지 고려하며 진행되는 흐름은, 역사의 흐름과의 그 오묘한 접점을 형성하고, 그리하여 더욱 이 게임의 테마에 몰입하게 만든다.

그리고 여기까지 게임을 살펴보며 느낀 점은, 예전 마틴월레스의 신의 놀이터나 로마 공화국 등등과 궤를 함께하는 재미요소가 산재해 있다는 것이다. 공동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이득을 추구하는 개인 간의 고리는 마치 공유지의 비극을 떠올리게도 한다. 케이크를 예쁘게 4등분하는 방법 따위는 없다. 선점하는 사람이 임자이다. 하지만 여기서 이 게임의 독특한 점은 비교적 온건한 두 정당은 이 국가를 유지하는 것이 이득이고, 극단의 두 정당은 파괴하는 것이 이득이기 때문에 그 힘의 줄다리기가 팽팽하게 유지된다는 것이다.

이 게임은 이외에도 여러가지 재미있는 요소가 많다. 당장 내치도 난리가 났는데, 외치에서도 서방세계와 소련의 외교를 잘 이끌어야 한다. 하지만 만일 외교적인 성과가 일어나면 극단주의자들에게 큰 이익이 돌아간다. 그 이유인 즉슨 마치 극우주의자들이 표현하는 외교적 굴종을 바라보는 반감과 더불어 극단적 민족주의 전개운동이 벌어지는 사태와도 맥락이 비슷하다 볼 수 있다. 저 영국이 하라는대로 해줘? 이 나라의 약해빠진 근성을 뒤엎고 우리들이 실력을 다시 키워야 해! 와 같은 느낌을 느꼈다고 할까? 어찌보면 나치가 점점 세력을 불려가는 요인과도 닮았다고 볼 수도 있다.

2) 게임의 전개

각 정당은 개인판과 덱을 가지고 시작한다. 개인판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소모되는 액션의 포인트들이 적혀있다. 각 정당마다 할 수 있는 일은 다소 차이가 있고, 소모되는 액션의 포인트들도 다르다. 가령 극단주의자들은 쿠데타에 소모되는 포인트가 상대적으로 적고, z는 치안경찰을 이용할 수 있는 등. 카드에는 상단에 포인트와 하단에는 이벤트가 적혀 있는데 그 용법은 마치 황혼의 투쟁에서 사용하는 카드의 용법과 거의 비슷하다. 이벤트로 사용하면 포인트를 사용할 수 없다든지, 하지만 공통으로 주어지는 시대 카드는 포인트를 사용해도 이벤트는 반드시 일어난다든지 하는. 그래서 나에게 불리한 이벤트 공통 이벤트도 반드시 일어나며, 그러다보니 나치의 궐기가 조금씩 등장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런 면에서는 다른 게임의 시스템적 요소를 재치있게 차용했다고 볼 수 있다.

공용보드 좌측 상단에는 바이마르의 각 지방이 대략적으로 나타나있다. 각 지방의 정당지지나 사회불안, 빈곤마커 등이 놓이며, 마치 서북청년단(?)과 같은 사조직이나 경찰들과 같은 치안조직이 각 지방에서 활약한다. 그래서 지방마다 쿠데타가 일어나고 이를 막기 위한 사투가 벌어지기도 한다. 한편 우측 상단에는 독일의회의 구성원이 대략적으로 나타나는데 독일은 전통적인 다당제 국가이므로 과반정부를 수립하려면 타 정당과 연립하여 정부를 구성해야 한다. 게임 종료조건 중 하나가 극단주의정당의 과반 단독정부 수립이고, 단독정부를 수립한 극단주의정부는 승리하기 때문에 의석을 조정하는 일도 상당히 중요하다. 더불어 앞서 언급한 나치당의 경우에도 점차 단독과반의석을 차지하려는 듯 세력을 넓히는 모습이 꽤나 압박으로 다가온다.

우측 하단은 이슈트랙이다. 각 정당은 아젠다카드를 펼치고 한 라운드씩 플레이 하게 되는데, 그 카드에 맞게 놓여지는 몇가지 이슈가 있다. 그래서 그에 맞는 경제, 산업, 빈곤, 언론 등 각자의 이슈 토큰이 저 자리에 놓이게 되고 각각 좌표계를 떠돌게 된다. 각 플레이어는 토론 액션을 통해 각각의 주제를 자신들쪽으로 끌고 와야 한다. 만일 자신들의 방향으로 해당 이슈를 끌고 왔다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얻게 되는데, 그게 게임 내 의석 조정이나 여러 중요한 이점을 제공하니, 이슈를 소홀할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좌측하단은 라운드가 끝나고(각자 5장의 핸드카드를 모두 플레이 한 이후) 실행되어야 할 기계적 순서인데, 이슈나 여론 등의 행위를 마치고 각각 어느 정도의 승점을 얻는지 계산하게 된다. 특히 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플레이어의 경우 각 지역의 상황에 따라 얻는 승점이 상당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방법으로 바이마르를 이끌고 싶은 정당인 경우에는 반드시 수권정당이 되어 해당 승점을 챙길 수 있도록 해야한다.

게임은 총 6라운드이며 각자 5장의 카드(본인 정당카드 3장과 시대카드 2장)를 손에 쥔 채, 자신의 턴에 한 번씩 돌아가며 카드를 내고 행동을 종료한다. 특수한 경우가 아닌 이상 한 라운드에 총 5번의 행동을 수행한다고 보면 좋다.

4. 게임의 진행 양상

초반에는 극단주의 두 정당의 의석도 그렇고, 세력도 그다지 크지 않다. 그래서 스물스물 아 그런놈들이 있구나 정도에 그치지만, 그들이 하는 분탕에 국가는 점점 흔들리기 시작한다. 나는 극우정당 dnvp를 맡아 플레이 하였는데, 각 지방을 숨어다니며 쿠데타를 터뜨리는 행동으로 국가를 점점 구렁텅이에 몰아놓고 있었다. 정당의 특성 상 나치와도 약간 결이 비슷하기 때문에(실제로 해당 정당은 훗날 나치에 흡수통합되었다) 국가가 혼란스러울 수록 세력을 늘려가기가 쉽다.

공산당의 경우도 결은 비슷하다. 극우정당과 대립하는 구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부딪히는 면은 있지만, 초반에는 서로 사리면서 분위기를 보는 느낌이 강하다. 굳이 서로 싸울 필요는 없지않나? 너는 뮌헨에서 쿠데타 해, 나는 에센에서 할게 와 같은 느낌으로 알면서 모른 척하는 느낌? 그런 느낌은 극우플레이어였던 나와도 일맥상통했다.

반면 빈곤과 불안 마커가 있는 지역은 쿠데타 주사위굴림에서 유리한 요소를 더욱 얹어주기 때문에 나라를 안정시켜야 하는 두 연립정당은 각각의 불안마커와 빈곤을 퇴치하고 정권을 유지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게임의 즉시 종료 조건 중 4 지역에 한 극단주의 정당의 쿠데타가 성공하거나, 베를린을 포함했을 경우 3지역의 쿠데타가 성공했을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기 또 불났네 불꺼야지! 아이고 저기 공산당이 너무 많아! 저기로 치안유지 해야겠네! 라는 느낌?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각 두 정당이 조금이라도 손해를 덜 보기 위해 액션을 아끼는 그 오묘한 줄다리기는 이어진다. 나는 여기까지밖에 못 도와줘, 너가 나머지 해줘~ 라든지. 아니 저기까지는 해줄 수 있잖아 등의 볼멘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뮌헨에서 대규모 극좌 소요사태를 막 진압한 바이마르 공화국의 치안대의 모습)

이 게임의 특징 중 하나는 카운터 카드가 꽤 많다는 점이다. A라는 플레이어가 어떤 특정 행동을 할 때, 잠깐! 을 외치며 그 행동을 바꾸는 카드가 꽤 존재하는데, 실제로 이번 플레이 중에는 극우정당의 병력 증원을 초반에 막아낸 spd의 활약이 있어 극우정당이 활개치는 시간이 더 늦춰지게 되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다시 말하지만 이 게임은 극단주의 정당을 막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극단주의 정당을 막아내면서 자기의 승점을 올리는 게임이기 때문에, 누군가의 소요사태가 진압되면 필연적으로 다른 정당은 자신의 승점을 올리는 데 많은 포인트를 소진하게 된다. 그러면 극단주의 정당은 숨어서 또 스물스물 세력을 키울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된다. 한편 이런 일련의 과정이 반복되는 것을 지켜보는 극단주의 정당의 입장에서는 커다란 진리를 깨닫게 된다. 아, 이 게임은 내가 승점으로 절대 이길 수 없는 게임이구나.

각 극단주의 정당은 잠깐의 소강기에 조금씩 의회의 의석도 늘리고 각 지역마다 지지자들도 늘려가면서 힘을 키우게 된다. 하지만 해당 게임 와중에는 약간 두더지잡기처럼 극좌가 활개치면 극우는 세력을 키우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많아서 2:1로 두들겨 맞는 그림이 조금 더 자주 나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맡은 극우정당의 경우 주사위빨의 힘이 좀 크게 작용해서 쿠데타 성공 시도가 꽤 자주 있었다는 점 정도가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2라운드 쯤에 극우정당에 의해 게임 자체가 터질뻔한 위기가 있기도 했지만, 어찌어찌 잘 막아내서 게임은 5라운드까지 흘러가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5라운드. 게임은 1시에 설명을 시작하여 약 7시 무렵이 되었을 때였다. 극우정당은 본격적으로 덱에 쿠데타 관련 카드를 포함하여 섞기 시작했다. 전라운드 극좌인 주녕이가 히틀러와 손을 잡으려던 것을 수권정당에서 막아내었고, 각 소요사태를 효과적으로 진압해갈 무렵, 솔직히 내 입장에서는 그랬다. 이거 나는 두들겨맞다가 끝나겠는데?

도저히 베를린 포함 3 도시에서 동시에 쿠데타를 낼 자신이 없었다. 좀 일으킬만하면 진압되고, 진압되고.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의 난장에 수권연립정당 둘이서 막아내는 그림이 자주 벌어지곤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 행동 하나에 두 사람의 턴이 소비되니 어찌보면 나쁘지는 않은 그림? 또한 그 전라운드에 우연히 연립정당이 되었기 때문에 힘을 조금이나마 온존할 수 있었다. 허나 이대로 가면 무난하게 6라운드 끝나고 승점 승부에 가면 바로 패배 확정이구나. 이번 라운드에 승부를 걸자.

극우정당인 나는 두 도시에서 계속 쿠데타를 시도했다. 수권정당들은 극우정당을 막아야 한다며 머리를 싸매고 내 동선을 막기 시작했다. 어찌보면 이 게임의 트러블메이커는 게임에서 주어지는 랜덤 카드가 아니라 나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지만. 쿠데타가 진압되고 다시 시도하는 반복과, 공화국군을 포섭하고 포섭당하는 끊임없는 공방 이후에 결국 두 도시에서의 쿠데타를 성공시켰다. 판은 깔렸다. 상대도 베를린이 위험하다 직감하고 수비병력을 꽤 두었지만 마지막 내 턴이 오자 베를린으로 전 병력 집결. 그리고 쿠데타를 시도했다.

상대의 카운터액션이 실패로 돌아가고 나의 영끌 주사위는 쿠데타 성공에서 멈추게 되었다. 5라운드 마지막턴에 있었던 일이다.

(베를린 함락)

설명시간 1시간 30분, 그리고 게임 시간은 약 4시간에서 4시간 반 사이에 벌어진 바이마르 공화국의 말로는 그렇게 끝났다.

(게임은 극우정당의 즉시승리요건에 의거하여 극우정당이 승리하였다)

5. 게임 후기

꽤 재미있는 역할극이었다. 잠깐 언급하였지만 이 게임은 spd와 z 정당의 국가 운영에 괴상한 변수(극단주의정당 2명)가 끼어들어 존망을 흔드는 형국이었다. 내가 마치 고질라가 되어 바이마르 공화국을 무너뜨리려는 느낌? 진짜 몇 라운드 쯤에 문득 느낀 생각이 있다면 저 두 정당은 나라를 풍요롭게 하려고 하는데 나는 왜 굳이 이 나라를 부수려고 안달인 것일까? 라는 지극히 정상적인 사고가 돌아왔다고 고백한다.

이 게임은 유로게임 같은 보드판에 테마를 적절히 얹었으며, 카드를 이용한 드리븐 게임 등이 주는 생동감을 적절하게 버무려두었다. 라운드가 지속될수록 시대 덱이 바뀌거나 쌓이며 해당 연도에 발생한 이벤트가 터지기도 하고, 골치아픈 외교사안은 쏟아져 이걸 해결하면 극단주의 정당에게 너무 유리한데 어쩌지 하는 고뇌도 적절히 들어가 있다.

플레이타임이 저렇게 오래 되었어도, 기다림이나 지루함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게임에 짐짓 느껴지는 손가락 빨고 기다리는 그런 느낌은 별로 없다. 카운터 카드의 존재는 나의 타이밍을 항상 재어야 하며, 시시각각 변화하는 보드의 상황을 지켜보며 플랜을 즉각 수정하기도 해야한다. 또한 반대편의 수권정당 입장에서는 시시각각 몰려오는 극단주의자들의 횡포에 국가를 수습해야 하고 인플레이션이나 봉쇄와 같은 대내외적 불안요소를 진화하기도 해야한다. 경제도 부흥시켜 쿠데타의 위협으로부터 각 지방을 안정시켜야 할 막중한 책무도 쥐고 있다.

그래서 각 정당을 플레이 하는 사람들은 뭔가 다른 게임을 하는 느낌도 들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spd와 z입장에서는 아컴호러에서 등장하는 괴물들을 막아내는 주인공처럼 동분서주하며 각각의 위협을 제거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주사위로 움직이는 게임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이다? 분명 그 상황이 주는 엄청난 재미가 있을 것이다. 정말 정의를 수호하고 바이마르 공화국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정당의 모습으로 빙의가 될런지도 모른다.

반대로 극좌나 극우정당을 맡은 플레이어는 각각의 국가건설을 위해 기존의 국가를 무너뜨리는 한편, 상대 극단주의 정당이 더욱 활개치지 못하도록 견제도 해주어야 하는 일종의 캐스팅보트 역할도 겸임한다. 국가가 이기는 꼴을 못봐주겠어, 하지만 상대 극단주의 정당이 이기는 꼴도 못봐! 이런 전개양상이 게임의 밸런스를 오묘하게 맞추고 있다.

하지만 이 게임의 단점이 전혀 없느냐 하면 그런 건 아니다. 물론 처음 마주할 게임 자체의 문제. 게임 볼륨이 워낙 커서 공간이 넓어야 하고, 게임 설명시간이 한참 걸린다는 뭐 그런 최근 에픽 게임들이 겪고있는 신종 유행병을 이 친구도 앓고 있다. 그래서 진입장벽이 조금은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이 게임이 가지고 있는 단점을 하나 더 언급하자면 쿠데타와 재조정 같은 주요 이벤트는 대부분 주사위 결과값으로 해결해야 한다. 물론 불안과 빈곤마커가 놓이면 주사위를 추가한다거나 주사위 결과값에 보정이 들어간다거나 하며 뭔가 여러 보완적 장치가 들어가는 있지만, 솔직히 그마저도 주사위 안나오면 손놓고 기도해야하고, 주사위 잘 나오면 뭘 해도 잘되는 그런 상황이 이어진다. 주사위 한방에 게임이 끝나는 상황을 좋아하지 않는 유저라면 이 게임의 끝이 허무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예전 블로그에 진인사대천명이라는 글을 남기기도 한 만큼, 주사위에 큰 거부감이 없다. 특히 주사위를 사용할만한 이유가 있는 게임에서의 희비는 용납이 된다고 해야할까?

솔직히 말하자. 한참을 고민한 베를린 쿠데타 시도. 솔직히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막판 베를린 대공세 때 쿠데타에 성공하자 나도 모르게 박수가 나왔다. 아마 게임하면서 처음으로 박수를 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 나도 놀란 나의 리액션이었다. 초반 게임을 끝낼 뻔 했던 나의 쿠데타는 성공할 법도 했는데 실패해서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면 말이다. 이런 주사위 굴림이 나에게는 희열로 왔지만, 분명 상대에게는 허무로 다가왔으리라.

6. 마무리

정말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햇수로 6년, 꽤 오랜 세월이 지나 머리가 녹슬었음에도 휴면하였던 뇌세포가 실로 오랜만에 일어나는 느낌이었다. 아, 맞아 2008년 어느 날 주녕이와 카페에 앉아서 황혼의 투쟁을 할 때의 기분이 이랬었지 하며 몇년 전을 회상할 수 있었던, 그만한 임팩트를 주는 게임이었다. 물론 정말 오랜만에 즐긴 보드게임이라 더욱 감상에 젖었을지도 모른다만은.

잘 만들었다. 주녕이가 느끼는 23년 인상깊은 게임에 이 게임이 왜 들어갔는지 느낄 수 있었다. 오랜만에 듣는 룰 설명에도 멍하지 않고 집중해서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이 게임이 주는 몰입감이 훌륭했기 때문이다. 아마 흥미가 없었다면 이만한 울림으로도 다가오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모르는 사이 수많은 게임이 쏟아지고 사라져간다. 아마 이와 같은 느낌을 주거나 더 재미있는 게임은 참 많겠지만, 그럼에도 이 시간만큼을 투자해서 이만한 재미를 주었던 게임은 흔치 않으리라 예상한다.

투박한 모양과 살벌한 볼륨을 가진 워게임은 부담스러워 접하지 못한, 허나 그 로망만은 마음에 간직한 누군가가 있다면 권할만한 게임. 세련된 룰에 버무려진 예쁜 시대 정치상황극을 하고 싶다면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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