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보드게임 - 엘더베일의 거처 (Dwellings of Eldervale) 리뷰
--- 진주 보드게임 모임
먼 지방까지 내려오게 되었지만, 어디든 보드게이머는 존재합니다. 다행히 좋은 분들을 만나 가끔씩이라도 게임을 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전국 여러 곳에서 장똘뱅이 생활을 해온 경험에 비추어봐도 다른 곳에 못지않게 진주에도 역시 헤비한 전략게임을 돌릴 정도의 실력자분들이 많습니다. 우리 모임은 보통 3인 또는 4인 플레이를 주로 하며 딱 좋은 숫자라고 생각합니다.
이 게임은 플레이어가 일꾼을 사용하여 자원을 얻고, 모험 카드를 구입하고, 궁극적으로 점수를 내는 정령 트랙을 올리며 거처를 건설하는, 일꾼 놓기와 엔진 빌딩의 혼합 게임입니다. 단순히 들으면 매우 전형적인 유로게임처럼 느껴지죠. 여기에 재미를 더해주는 비대칭 요소와 약간의 지역 컨트롤, 그리고 주사위 전투가 있습니다. 아니 이거 느낌이 사이쓰 아니 사이드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잘 알고 있는 맛도 잘 비비면 정말 훌륭한 요리가 될 수 있죠.
--- 일꾼 놓기? 또꾼 놓기라고?
일꾼 놓기 한 요소만으로도 재미있는 점들이 많습니다. 네 종류의 서로 다른 기능을 가진 일꾼 뿐만 아니라, 비대칭 게임으로서 각 종족의 일꾼들은 또한 고유한 능력을 가집니다. 이 일꾼들이 다른 일꾼 소환, 거처 건설, 자원 거래, 모험 카드 획득 등과 같은 게임의 핵심적인 요소들을 수행합니다. 그리고 사실 가장 많이 하는 행동 중 하나는, 자원을 바로 주거나 또는 다양한 목적(비용, 혜택, 최종 게임 점수)을 위해 모험 카드에 넣어서 사용할 수 있는 '자원 타일'을 가져가는 행동입니다. 마지막으로 일꾼의 역할 중 하나로... 몬스터 또는 다른 플레이어와의 전투가 있죠.
강한 비대칭적 디자인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각 종족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점들을 가지고 있고 그에 맞는 플레이를 어느 정도 권장합니다. 하지만 여타 다른 비대칭 게임들처럼 만약 자신의 종족에 맞는 플레이를 하지 않는 경우 큰 페널티를 받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게임은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실제로 비대칭 게임의 문제점 중 하나가 밸런스적 부분이 큰데, 아직 많은 게임을 해보지는 못했지만 크게 유리하거나 불리한 점을 발견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렇다면 종족의 역할은 무엇인가? 에 대해 생각해보자면, 처음 시작할 때 플레이의 방향성을 제시해 주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령 트랙을 올리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그에 따른 '거처 짓기 vs 모험 카드 얻기' 의 균형을 추구하는 과정이 플레이의 핵심이라 생각이 됩니다 (이것은 꼴지를 하고 난 후 소감입니다 저는 거처만 짓다가 망했습니다).
결국 여타의 일꾼놓기 게임처럼 게임 플레이에서 중요한 것은 타이밍과 페이스 조절인데, 이 게임은 일꾼을 놓으면서 액션을 하고 나중에 한꺼번에 회수하며 그 일꾼들로 모험 카드 액션을 수행하게 됩니다. 하지만 모든 일꾼을 놓아야만 회수가 가능하다 같은 조건은 없고, 다른 플레이어의 플레이를 지켜보며 언제 일꾼을 회수해야 하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것이 꽤나 즐거웠습니다.
--- 게임 트레이즈는 신이야!
GameTrayz가 기본적으로 갖추어져 있다는 것은 정리뿐만 아니라 플레이도 굉장히 편리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요소가 담길 곳이 정해져 있고 바로 플레이가 가능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트레이들의 존재 자체가 시각적인 즐거움입니다. 독특한 모양의 일꾼들, 육각형 타일, 토큰, 그리고 다양한 테마틱한 아트워크로 눈이 즐겁습니다.
이 게임에는 16개의 종족이 있습니다. 각각의 종족은 자신 만의 개인판 아트웍을 가지고 있고 거기에 맞는 156장의 모험 카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 취향에 맞지 않는 종족을 제외하고 몇몇 아트워크는 정말 훌륭합니다. 게임 컴포넌트에 대해 정말 특별하지 않는 한 강조하고 싶지 않은데, 엘더베일은 정말 칭찬할만한 퀄리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 가지 취향에 따라 호불호 영역이라 생각될 수 있는건 배경의 훌륭한 아트워크에 비해 아이콘들이 너무 만화같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게는 직관적으로 여겨져서 오히려 게임 플레이에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 전투에서는 져도, 게임에서는 이긴다 (뼈를 주고 살을 깎는다... 아닌가?)
이 게임의 독특한 점은, 게임 점수의 대부분이 종료 점수에 숨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 전투가 쉴새없이 벌어집니다. 전투에 참여할지 말지를 항상 결정해야 하고, 멋진 마법 카드들을 숨겨두었다가 뒤통수를 후려갈겨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누가 선두인가? 에 대한 것은 플레이 내내 추측의 영역에 있습니다. 전투에서 계속 이기는 사람도 없고 계속 지기만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한판 한판의 전투에서는 불공평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최소한 한두번은 운 좋은 순간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전략에 따라서 유닛들을 저승으로 보내는 것도 유리할 때가 있습니다 (주로 마법 카드와 연계가 됩니다). 마치 예전의 블러드 레이지를 연상하실 수 있겠지만, 그 게임에서는 져서 이긴다는게 납득이 안되는 수준이었다면, 이 게임은 그 정도는 아니고 약간의 전략적인 상황을 연출할 수 있다는 것이 차이점입니다.
--- 적용해본 추가 컨텐츠
한글판에는 제공되지 않은 신탁 타일을 개인적으로 인쇄해서 적용해 보았고, 용의 둥지도 포함시켜서 게임을 해보았습니다. 신탁 타일은 추가 타일을 깔지 않고 모험 카드를 획득할 수 있는 유적 타일인데, 룰북에도 나와 있듯이 기본적으로 게임시간을 늘리고, 엔진 빌딩(모험 카드 획득)을 할 시간을 더 제공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리뷰에서 게임이 갑자기 끝난다는 평가가 있던데, 신탁 타일을 적용해서 한 게임에서는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고 제 생각에 적절한 타이밍에 게임이 종료되었습니다. 그리고 용의 둥지는 다양한 재미있는 상황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아마 이 두가지 요소는 항상 적용해서 게임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다음에 엘더베일이 한국에 들어온다면 신탁 타일은 꼭 가져왔으면 좋겠습니다.
--- 아쉬운 점, 엔진 빌딩은 거들 뿐
모험 카드는 점수를 주면서도 게임 플레이 동안에는 일종의 자원 또는 점수 엔진으로 작동합니다. 하지만 엔진 빌딩을 주력 전략으로 삼기는 힘듭니다. 모험 카드는 보통 랜덤으로 제공되고, 내가 원하는 카드를 원하는 타이밍에 얻는 전략은 무리입니다. 모험 카드도 직관적이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처음 플레이할 때는 이게 무슨 소리인지 어떻게 써먹는지 알기가 힘들 때가 있습니다. 물론 제가 모험 카드를 잘못 가져와서 게임을 말아먹어서 하는 소리는 아닙니다.
--- 결론
이 게임은 짧은 게임이 아닙니다. 대략 2.5~3시간의 플레이 타임을 예상해야 하고, 이런 면에서 모두에게 추천하긴 힘듭니다. 마법 카드를 통한 플레이어간 상호작용과 주사위에 따르는 필연적인 운적인 요소는 충분히 호불호 영역이며, 이것을 긴 시간동안 참아내야 합니다.
그렇지만 놀라운 컴포넌트의 퀄리티, 굉장히 부드럽게 진행되는 게임 플레이, 잘 만들어진 게임 메커니즘에 있어서 이 게임을 일단 모두에게 추천합니다. 초보 전략 게이머에게도 시작하기에는 약간 압도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몇번 전투에 참여하여 주사위를 던지다보면 나도 모르게 몰입하는 나 자신을 보게될 것입니다.
Andromeda's Edge 라는 리테마 후속작이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쉬웠던 엔진 빌딩적인 요소를 좀 더 보강해주었으면,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글판이 꼭 나왔으면 좋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