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전쟁 배경의 워게임 Brotherhood & Unity

예테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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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30 오전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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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개봉기

오랫동안 기다리다가 8월에 게임을 했고, 10월에 잠깐 여유가 나서 게임을 구입했습니다. 여름에 9만원 거의 아래까지 우주패스에 올라온 걸 봤는데 돈이 없어서 참다가 결국 10월쯤에 환율을 무시하고 질렀는데.. (마침 할인하더라고요) 이것저것 해서 도합 10만원 들었습니다만 만족합니다.

보드게임 박스의 표지는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의 '그르바비차' 지역의 황폐화된 도로입니다.

이런 식으로 토큰이 있습니다. 파란색이 크로아티아, 초록색이 보스니아, 노란색이 세르비아인데 좌하단에 하나 없어진 거 보고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요. 걍 상자 밑에 박혀있는 거였습니다.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3세력의 덱이 따로따로 있고, 전쟁 초기(Early War)와 전쟁 후기(Late War)로 나눠서 카드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두 시기 모두에 쓸 수 있는 카드들도 물론 있습니다.

요약표입니다. 각 세력이 어느 지역을 점령해야 승리와 직결되는 SW(Strategic Will) 점수를 얻을 수 있는지 표시하고 있습니다. 좌측 중단의 턴 정보는 각 턴마다 보스니아군이 전투에서 얼마나 손해를 보는지, 또 각 세력은 어떻게 카드를 나눠서 받고 병력을 보충하는지 표시합니다. 1,2턴에는 세르비아가 선이고, 3,4턴에는 보스니아가 선입니다.

게임판은 22x34인치인데, 특이하게 사라예보 지역의 지도가 좌하단에 따로 있습니다. 처음 하는 사람에게 그렇게 친절한 지도는 아닙니다. 보스니아 국외에도 Point가 있는데, 이것은 거기로 이동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보급이나 외국 지원군 등과 연관이 있습니다.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는 보급선을 공유합니다.

게임판 좌측에는 Foreign Attitude (외국 여론 악화 정도)를 표시하는 트랙과, 직접적으로 승리점수라고 할 수 있는 SW Track이 있습니다.

사실 이 글을 써놓은 건 되게 오래 전인데, 그 동안 여유가 나지 않아 차마 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5~8월쯤에 한참 보드게임 많이 하러 다녔는데 그 후로는 통 시간이 안 나더군요. 이 게임도 8월에 회기에서 피유님, 몽칼름님하고 플레이한 이후로 더 손을 못 대고 있다가 이번에 구입만 했는데, 좀 교육적인 용도로도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망상을 해봤지만 쉽지 않을 거 같네요 ㅎㅎ

1. 개요

'Brotherhood & Unity'는 (이하 '유니티'로 호칭)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해체 과정에서 일어났던 일련의 전쟁 중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전쟁(1992~1995)의 상황을 중점적으로 다룬 3인 워게임입니다. 디자이너인 Tomislav Čipčić는 크로아티아 시베니크에서 태어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청년 시기 전쟁을 겪으면서 군사사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하더군요.

게임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영토를 배경으로 세 세력으로 나뉘어서 1992~1995년 4년간 CDG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가장 강한 세력인 세르비아, 이에 맞서서 독립을 쟁취하려는 보스니아, 그리고 중간에서 간을 보는 크로아티아의 구도입니다. 세르비아는 처음에 가장 많은 카드를 할당받고 가장 많은 병력을 증원받으며 선턴을 가져가는 대신, 전쟁 후기(1994/1995년)가 되면 후턴으로 밀려나고 증원없이 싸워야 합니다. 반면 보스니아는 초반에는 주사위 판정에서도 손해를 보고 세르비아에 비해 증원 규모가 현저하게 작지만, 세르비아가 2라운드(1993년)부터 증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후반이 될수록 힘이 강해지게 됩니다.

승리 조건은 Strategic Will Track (SW)에서 특정 점수에 도달하면서 모든 중요 지역(Key Regions)을 점령하는 것이고, 만약 이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국가별 세력 점수(Initial Factor)와 SW의 점수를 합산한 것에 점령하지 못한 키 지역 및 외국의 개입 정도(IntLevel)를 빼서 결정합니다. 게임판에는 수도 사라예보의 지도가 좌하단에 따로 표시되어있습니다. 사라예보의 보스니아군은 세르비아군에 의해 포위당해있기 때문에, 보스니아와 세르비아 중 이 지역을 누가 차지하게 되느냐가 승부에 중요한 갈림길로 작용합니다. (다른 중요 지역은 점령시 4~7점을 주지만, 사라예보는 16점을 주기 때문에 판세에 영향이 큽니다. 다만 사라예보는 보스니아의 단독 Key Region입니다.)

2. 배경 (역사적 배경에 별로 관심없으신 분은 패스하셔도 상관없는 부분입니다)

유고슬라비아가 위치한 발칸 지역은 카톨릭-정교회-이슬람 세 종교가 얽히면서 아주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민족적 차이는 별로 없지만, 대체로 믿고 있던 종교에 따라서 세르비아-몬테네그로(정교회), 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카톨릭), 보스니아(이슬람)로 각자 정체성을 형성하게 됩니다. 이 지역에서 꾸준히 영향력을 미치던 오스만투르크 제국과, 바로 북쪽에 위치한 중부 유럽의 강자 오스트리아, 그리고 슬라브인의 맹주 러시아가 손을 뻗으면서 이 지역의 역사는 정말 복잡하게 흘러갑니다. 19세기 후반 러시아의 남하와 함께 시작된 범슬라브주의의 물결은 발칸 반도를 휩쓸었고, 마침내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암살당하는 사건이 터지면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계기가 되었지요.

이후 전승국인 세르비아가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몬테네그로를 차례로 합병하면서 유고슬라비아 왕국을 형성하고,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독일의 침입을 받아 멸망합니다만 다시 요시프 브로즈 티토가 이끄는 공산 게릴라가 유고슬라비아 지역을 장악하면서 사회주의 연방으로 독립하게 됩니다. 티토는 소련과의 갈등을 겪으며 자주적인 비동맹 노선을 타면서 당시 냉전 시기 어느 쪽에도 휩쓸리고 싶지 않았던 국가들의 지도자 역할로 유고슬라비아를 발돋움시킵니다. 그러나 티토의 강력한 리더십 아래 묶여있던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문제들은 티토가 사망하면서 스멀스멀 고개를 들고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연방의 주요 권력을 세르비아계가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는데요, 이 문제는 유고슬라비아의 통치 체제가 티토 사후 각 국가의 대통령이 연방 수장 역할을 1년간 번갈아가며 수행하게 되는 집단지도체제로 개편되면서 더더욱 불거지게 됩니다.

현대전에서 가장 피비린내나는 전쟁 중 하나인 유고슬라비아 전쟁은 1991년 슬로베니아 및 크로아티아가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탈퇴 후 독립을 선언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원래 유고슬라비아 연방은 6개의 공화국과 2개의 자치주로 이루어진 연방국가였는데(위 지도 참조) 세르비아 공산당의 밀로셰비치가 알바니아계가 다수 거주하고 있던 코소보에서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부추기는 발언을 하면서 그 동안의 갈등이 폭발하기 시작합니다. 밀로셰비치가 정권을 잡은 후 헌법 개정으로 세르비아계에 힘이 실리고, 이에 위협을 느낀 각 공화국에서 민족주의를 주창하는 세력들이 대거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갈등은 더더욱 커집니다. 이들은 연방군 몰래 각 공화국의 방위대를 무장시켜 세르비아의 영향력 확대에 맞서려 하고, 마침내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독립을 선언합니다. 슬로베니아는 국제적인 언론플레이를 동원해가며 비교적 순조롭게(?) 사상자 수십 명 수준에서 독립했습니다만 문제는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에 거주하고 있던 세르비아계였습니다.

이들은 2차 대전 당시 크로아티아 파시스트 세력인 '우스타샤'의 학살을 겪었고, 따라서 두 국가가 연방에서 탈퇴해 독립하는 것을 굉장한 위협으로 여겼습니다.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가 연방에서 독립된 공화국으로 있을 수 있다면, 크로아티아 크라이나 지역에 살고 있는 세르비아계와 보스니아에 살고 있는 세르비아계 역시 공화국을 따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논리였습니다. 전혀 근거없는 주장은 아니었지요. 이 과정에서 가장 크게 피를 흘리게 된 것이 연방에서 가장 이질적인 국가였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입니다. 보스니아는 국민투표를 통해 보스니아계와 크로아티아계의 99%가 독립을 지지한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이게 건국을 선포하자 보스니아의 세르비아계 정치인인 라도반 카라지치가 세르비아계가 절대 다수인 스릅스카 공화국의 건국을 선포하면서 맞섭니다.

처음에는 세르비아에 맞서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 두 세력이 연합하는 듯 하다가, 연방군에 의해 수세에 처해있던 크로아티아의 투지만 대통령이 밀로셰비치-카라지치와 함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나눠먹을 것을 결의하고 헤르체그보스니아 크로아티아 공화국이라는 괴뢰국을 크로아티아계가 많이 거주하는 남서부에 세워 맞서면서 전쟁은 보스니아 vs 크라이나+스릅스카 (세르비아 지원) vs 헤르체그보스니아 (크로아티아 지원) 이라는 삼파전 양상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1994년 나토가 개입하고 미국이 크로아티아를 압박하면서 헤르체그보스니아는 해체되고, 이후 세르비아가 지원을 포기하면서 스릅스카의 세르비아계 민병대는 동부 전선 수비에 집중하면서 보스니아인들을 대거 학살하는데요. 이들이 마침내 사라예보까지 폭격하자 나토는 그 동안의 물렁한 태도를 바꿔 전면 공습으로 스릅스카를 박살냅니다. 1995년 8월에는 크로아티아군이 '폭풍 작전'으로 크라이나 세르비아 공화국을 멸망시키면서 세르비아계 민병대가 완전히 코너에 몰리게 되고, 결국 1995년 12월 '데이턴 협정'이 체결되었습니다. 이 협정에서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독립은 인정하되 국가 구성은 보스니아계가 다수 거주하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연방과 세르비아계가 다수 거주하는 스릅스카 공화국이 참여하는 식으로 애매하게 타결이 되었고, 현재까지 그 정세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데이턴 협정 이전 제안되었던 보스니아 분할안Vance-Owen Plan인데, 이 게임의 지도 상황과 거의 일치합니다.)

유고슬라비아는 한국에 친숙한 국가는 아니었습니다만, 관련해서 접할 수 있는 컨텐츠가 상당히 많습니다. 보드게임으로도 나온 생존게임 'This War of Mine'도 가상의 도시 포고렌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 모티브가 사라예보임을 대부분 짐작하셨을 겁니다. '사라예보의 첼리스트'에서는 빵을 사려고 기다리다가 세르비아의 폭격으로 숨진 민간인 22명을 위해 첼리스트 한 명이 그 장소에서 22일간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G단조'를 연주한 실화를 모티브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갑니다. 초대 주유고 한국 대사이자 마지막 대사이기도 했던 외교관 신두병씨의 '발칸의 음모'에서는 당시 유고 내전을 둘러싸고 국내 및 국제 정세가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생생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으로 더 유명한 만화가 조 사코의 '안전지대 고라즈데'에서는 당시 UN 안전지대(Safe Zone)으로 설정되었던 동부 도시 고라즈데의 풍경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고라즈데의 보스니아 시민들은 전쟁 전 함께 어울려 살았던 세르비아인들이 전쟁 시작 후 자신의 가족과 이웃들을 대량으로 학살한 데 분노를 표하면서, 대부분 '결코 세르비아 사람들을 믿지 못할 것(설령 이웃으로 다시 어울리게 되더라도)'이라고 대답합니다.

3. 게임 시스템 및 감상

제가 게임을 하기 전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Foreign Attitude' 였는데요, 쉽게 얘기하면 중요 지역을 점령할수록 국제적으로 어그로를 끄는 수치가 높아져 나토에 의해 제재당하게 됩니다. 실제 전쟁도 세르비아와 보스니아의 언론플레이가 전황에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중요한 시스템입니다. 1단계에서는 이동력이 감소한다거나 점령 후 추가적인 진군을 하지 못한다는 가벼운 페널티지만, 2단계에 들어서면 나토에 의해 자신의 병력이 직접적으로 폭격당하게 되고, 3단계에 도달하면 패배하면서 게임이 즉시 종료됩니다.

이 외에도 당시 역사를 반영한 여러 시스템과 카드들이 있습니다. 가령 보스니아 플레이어는 도시 4곳 중 2곳을 선택하여 'UN 안전지대'를 선포할 수 있는데, 이 안전지대는 점령하는 순간 FA 수치에 엄청난 페널티를 줍니다. 저는 주로 스레브레니차를 포함하여 주게 되던데, 스레브레니차는 세르비아에 맞서는 최전방 도시이면서 동시에 세르비아계 민병대에 의한 보스니아계 학살이 실제로 일어났던 도시이기도 합니다.

정규군 외에도 추가적으로 지원군이 주어지는데 예를 들면 세르비아는 크라이나 세르비아의 군대고, 보스니아는 무자헤딘 지원군인 식입니다. 외국 지원군을 잘 활용하면 승리에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지만, 당연히 남용할 수 없게 하는 견제장치들도 마련되어있습니다.

아직 다 읽어보지 못했지만 규칙서 말미에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간략한 역사 및 게임에서 쓰이는 카드에 대한 설명을 모두 실어놓은 것도 좋았습니다. 가령 크로아티아의 18번째 카드인 '비하치 포위' 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덧붙여져있습니다. '비하치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북서쪽 차진스카 크라이나 지역에 있는 마을이었다. 비하치는 세르비아 영토에 의해 둘러싸인 보스니아의 월경지였으며, 전쟁 중 3년 이상 포위되었다. 스르프스카와 세르비아 군대의 공격에 항상 시달리고 있던 비하치의 포위는 크로아티아의 '폭풍' 작전이 실행된 이후 풀렸다.

8월에 했던 첫 게임에서는 제가 세르비아를 잡았는데, 자꾸 0이 나와서 어이가 없어서 남겨놓은 사진입니다... 저는 주사위가 들어간 게임을 좋아하는 편인데, 주사위는 별로 저를 좋아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그냥 첫 인상으로 봤을 때는 세르비아를 초보가-보스니아를 고수가 잡아야 할 거 같았는데, 실제 게임을 해보니까 세르비아는 손속에 자비가 없이 초반에 쉴틈없는 공세를 퍼부어야 하더군요. 그러면서도 외국 여론을 잘 관리해서 나토에게 두들겨맞지 않게 주의해야 하고요. 안전주의에다가 초보인 저한테 세르비아 플레이는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게임에서는 제가 보스니아를 잡았는데, 사라예보를 해방시키고 (더러운 세르비아 학살자들아! 수도를 우리가 수복했다!) 기념으로 찍어봤습니다. 물론 게임을 이기지는 못했습니다 -_-ㅋ 보스니아의 경우에는 적절한 UN 안전지대 설정과 세르비아의 공세 저지가 주가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초반에 최대한 존버를 타다가, 보급을 많이 받게 되는 전쟁 후반으로 넘어가는 순간 세르비아군을 사라예보에서 몰아내고 주변 격전지를 차지하면 됩니다. 제가 플레이해본 건 아니지만, 크로아티아는 이 게임에서 가장 애매한 포지션입니다. (이것도 실제 역사와 일치하죠...) 세르비아와 보스니아를 모두 적당히 견제하다가, 어느 쪽도 결정적인 승기를 잡지 못했을 때 치고 나가야 하는데 절대 쉬워보이지 않았습니다. 보스니아와는 주로 남부 강변을 두고 툭탁툭탁거리게 됩니다.

현대사에 관심이 많으면서도 3명이 함께 할 수 있는 워게임을 찾으신다면 아주 적합한 선택이 될 수 있는 게임입니다. 게임 자체의 재미로만 따지면 더 좋은 게임도 많겠지만, 저는 얼마 지나지 않은 현대 역사의 아픔을 경험한 디자이너가 직접 게임을 제작했다는 것이 의미가 깊다고 느껴서 계속 소장할 예정입니다.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한번 플레이해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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