듄: 아라키스 전쟁 찍먹 후기 (vs 반지전쟁)
듄: 가문의 비밀에 이어 또 듄 보드게임의 후기를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게임도 가문의 비밀과 마찬가지로 기존에 있는 게임 시스템에 듄 IP를 적용한 게임이죠. 요즘 듄으로 리테마로 한 게임이 많이 나오는 걸 보면 확실히 잘 먹히긴 하나 봅니다.
참고로 저는 반지의 제왕과 반지전쟁 보드게임 팬이고 최근에 나온 듄 영화를 시작으로 듄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반지전쟁을 리메이크한 듄 보드게임이 킥스를 한다길래 못참고 테이블탑 시뮬레이터에서 한판 플레이 해보았습니다.
@ 반지전쟁이 뭔데? 씹덕아
듄: 아라키스 전쟁(앞으로 아라키스 전쟁으로 줄이겠습니다)은 반지전쟁을 리테마한 게임이니 우선 반지전쟁에 대해 알아야겠죠? 반지전쟁은 이름 그대로 반지의 제왕 테마의 워게임입니다. 요즘에는 워게임이 생소한 분들이 많을 듯한데 옛날에는 A&A나 리스크같은 워게임이 대중적이었던 때가 있었죠. 간단히 말하면 지도에 유닛들을 놓고 전투를 해서 땅을 점령하는 게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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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워게임(전쟁게임) Axis & Allies
반지전쟁은 반지전쟁: 주사위게임이라 할만큼 주사위가 주된 매커니즘입니다. 각자 행동 주사위를 모두 굴린 후 나온 행동들 중에서 하나씩을 번갈아가며 수행하게 됩니다. 행동으로는 캐릭터 이동, 징집, 군대 이동(공격), 이벤트카드 사용 등등이 있죠. 전투도 유닛 수만큼 주사위를 굴려 5이상 나오면 공격이 성공하는 방식입니다. 물론 행동 주사위나 전투 주사위 모두 보정 방법이 있어서 어느정도 운빨망겜을 막아주긴 합니다.
반지전쟁에서는 한명이 선, 한명이 악을 맡아서 플레이하게 되는데 각자 두가지의 승리방법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상대방의 도시나 거점을 몇개 이상 점령하는 군사승리입니다. 이 승리방법은 전형적인 워게임의 방식이죠. 주로 악 세력이 군사력이 강하다보니 이 승리방법을 노립니다. 군사승리와 달리 반지의 제왕 테마가 물씬 드러나는 부분이 바로 두번째 반지승리 방법입니다. 선은 프로도(절대반지 케이스)를 운명의 산까지 보내 절대반지를 파괴해야 하며 악은 프로도를 타락시켜 반지를 되찾아야 합니다.
따라서 반지전쟁의 주된 양상은 선 세력이 병력으로 거점 수비를 하며 원정대를 최대한 전진시킬 때 악 세력은 추적으로 원정대의 전진을 방해하며 빠르게 도시들을 점령하게 됩니다. 이러한 비대칭 전쟁게임을 웅장한 컴포들로 하고 있으면 내가 진짜 중간계로 간듯한 몰입감을 주어서 반지전쟁은 좋은 평가를 받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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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장한 테마에 걸맞는 웅장한 보드판
@ 그래서 듄: 아라키스 전쟁은요?
왜 이렇게 반지전쟁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하냐구요? 위의 반지전쟁에 대한 설명이 전반적으로 아라키스 전쟁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아라키스 전쟁은 듄 스킨을 씌우고 이에 맞춰 규칙이 몇가지 바뀐 반지전쟁입니다. 액션 수행 방식이나 전투 방식은 반지전쟁과 거의 비슷하고 반지 운반같은 테마적인 요소만 듄에 맞춰 바뀌었습니다. 따라서 반지전쟁을 해본 분들은 익숙한 느낌이 들며 배우기도 쉬울것 입니다.
@ 그럼 달라진 점을 살펴볼까요?
승리 목표
선 세력의 메인 퀘스트가 반지원정에서 예지 실현으로 바뀌었으며 이 과정에서 각 세력의 승리 방법이 1가지로 고정되었습니다. 아트레이데스 가문은 예지 카드에 주어지는 퀘스트를 깨며 세 가지의 예지 수치를 올려야 합니다. 이 세 가지의 예지 수치를 아트레이데스만 알고 있는 최종 목표에 맞추면 승리합니다. 하코넨 가문은 반지전쟁 악세력과 같이 프레맨의 시에치(거점)을 점령하여 일정 점수를 모으면 승리합니다.
승리 목표 트랙
반지전쟁에서 전투는 지도 위에서 일어나고 원정은 원정 트랙에서 나아갑니다. 추격이나 원정대 이탈과 같이 원정이 지도와 간섭하는 요소가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두가지 트랙에서 독립적으로 공수가 이루어지게 되죠. 마치 양손에 두개의 줄을 쥐고 동시에 줄다리기를 하는 느낌입니다. 내가 이길 것 같은 밧줄에 힘을 더 줄 것이냐, 내가 질 것 같은 밧줄을 버틸 것이냐라는 간단한 고민부터 '이쪽 줄에 힘을 주는 척 했다가 다른쪽에 힘을 빡 줘야지!'라는 고급(?) 전략도 가능합니다. 어쨌든 상대와 줄로 이어져있기에 상대의 행동이 나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죠.
이와 달리 아라키스 전쟁에서는 두 세력의 여정이 모두 지도에서 이루어집니다. 하코넨 가문은 지도 위의 시에치를 점령하러 다니고 아트레이데스는 지도를 돌아다니며 여러가지 퀘스트를 수행합니다. 반지전쟁이 줄다리기라면 아라키스 전쟁은 보물찾기와 비슷합니다. 서로의 목표를 향해 돌아다니다가 경로가 겹치거나 내주기 싫은게 있으면 눈치싸움과 교전이 발생하게 되죠. 그래서 서로 마주치기 전까지는 각자의 일을 하는 느낌이 듭니다. 요즘 유행하는 멀티 솔리테어 게임의 맛이 조금 나죠.
낮은 웨이트
아라키스 전쟁은 여러 요소 덕분에 반지전쟁보다 웨이트가 낮아졌습니다.
우선 지도가 좁아졌습니다. 여기에 더해 오니솝터나 모래벌레 같은 추가 이동수단을 제공해서 이동력이 더욱 올라갔죠. 지도 가운데에서 5칸 정도 이동하면 지도 끝에 다다를 수 있기 때문에 게임 템포가 훨씬 빠릅니다. 또 반지전쟁에서는 카드들을 이벤트 뿐만 아니라 전투 카드로 사용이 가능했습니다. 다양한 효과가 있어서 전투에 다양성을 더해주지만 카드에 읽어야 될 글이 늘고 언제 쓸지 생각해야되는 부담이 생기죠. 하지만 아라키스 전쟁에서는 전투에서 카드 사용법이 간단히 바뀌었습니다. 전투단계에서 카드를 쓰면 카드의 효과와는 상관없이 주사위 1개 추가가 끝입니다. 생각할 거리를 조금 단순하게 해주죠. 앞에 언급 되었던 승리 목표가 2트랙에서 1트랙으로 바뀐것도 직관성을 더해주고 그밖에 반지전쟁에서 강력한 방어력을 가져 게임이 늘어지는 거점이나 기타 다양한 효과들을 쳐냈습니다.
위와 같이 아라키스 전쟁은 웨이트를 낮춰 좀 더 대중화를 위해 힘쓴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 부분에서 호불호가 있을 듯 한데 저는 반지전쟁이 워낙 헤비한 게임이었기에 합리적인 수준으로 잘 쳐낸 느낌입니다.
운 최소화
아라키스 전쟁은 여러 방면에서 운 요소를 줄이려고 한 노력이 보입니다. 우선은 전투입니다. 반지전쟁의 전투는 순전히 주사위 운싸움입니다. 6면체 주사위를 굴려 5이상(공성전이면 6이상)이 나오면 1킬을 하게 됩니다. 물론 리롤이나 전투카드와 같은 추가적인 요소가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6만 나오는 사람을 이길 순 없습니다. 하지만 아라키스 전쟁의 전투주사위는 1~6 대신 공격, 수비, 특수능력으로 바뀌었습니다. 따라서 공격에 실패해도 수비가 나와서 내 유닛을 살릴수가 있죠.
전투보다 더 변화가 느껴지는 부분이 바로 최종 목표입니다. 반지전쟁은 마지막 운명의 산에서 주머니에서 타일을 뽑아 성공/실패를 결정하기에 승패가 운의 영향을 받습니다. 덕분에 승리가 좀 더 극적이게 되고 불리한 상황에서 짜릿한 역전을 할수도 있죠. 하지만 반지전쟁이 두세시간의 게임임을 생각하면 운으로 결정되는 것이 항상 즐겁지만은 않을 겁니다.
이에 비해 아라키스 전쟁에서는 예지 카드가 공개되기 때문에 어느정도 예측을 하거나 노골적으로 방해를 할 수 있어서 운의 요소가 적고 더 전략적입니다. 반지전쟁의 테마성을 줄이고 조금 더 유로게임쪽으로 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운의 부재로 인한 부작용으로 '내 차례 때 이거이거하면 끝!'하면서 대서사시가 약간은 김빠진 엔딩을 맞을 수 있습니다. 이건 저도 게임에서 느꼈었고 긱에서도 단점으로 지적되는 부분이죠.
테마적 요소 변경
아라키스 전쟁에는 듄 원작을 알면 반가워할 요소들을 많이 넣어 놓았습니다. 듄 행성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저는 사막과 거기에 사는 신비롭고 무서운 모래벌레들이 먼저 떠오릅니다. 이들 역시 아라키스 전쟁에 등장하며 더 설레는 사실은 아트레이데스 가문이 이를 다룰 수 있다는 겁니다. 모래벌레로 하코넨 군대를 공격하거나 모래벌레를 타고 먼곳으로 한번에 이동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막에는 모래 폭풍이 불기 때문에 하코넨 가문이 사막으로 원정을 떠날때는 피해를 감수하고 가야하죠.
두번째는 스파이스 다툼입니다. 하코넨 가문은 스파이스를 채취해 길드들에게 공급하여 평판을 관리해야 행동 주사위들을 더 사용할 수 있습니다. 공급이 불충분하면 '다른일 할 틈이 있어? 스파이스 채취나 열심히 해!'하면서 행동 주사위를 뺏어가고 대신 오니솝터나 하베스터를 더 제공해주죠. 따라서 평판이 내려갈수록 점점 스파이스의 노예가 되며, 평판이 바닥을 찍으면 특정 행동을 할 수 없는 패널티를 받습니다. 아트레이데스 가문은 이걸 노리고 스파이스 채취를 방해하겠죠.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군대와 시에치가 비공개라는 것입니다. 군대의 병력 구성이나 시에치의 방어력(점수)는 아트레이데스 가문만 볼 수 있어서 어느정도 심리전을 가져갈 수 있고 따라서 하코넨 가문은 정찰을 통한 정보전이 필수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원작의 프레멘 게릴라 부대 느낌을 잘 살려놓았습니다.
실제 게임에서 먹방이 가능합니다!
@ 게임에 대한 느낌은 어떤가요?
솔직히 날로먹었다?
"원 퍼블리셔나 디자이너분들이 이 글을 볼일이 없을테니 솔직히 말하자면 어느정도 날로 먹었습니다. 기존 규칙을 그대로 가져와서 스킨이나 갈아낀 수준입니다."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듄: 가문의 비밀을 하고 다시보니 아라키스 전쟁은 선녀더군요. 반지전쟁과 비슷한 부분이 많았지만 그래도 듄 테마에 잘 맞추려고 노력했을 뿐더러 바뀐 부분들이 신선하고 원작의 느낌을 충분히 줍니다. 확장에서 어떤 요소가 추가될 지 모르기 때문에 좀 더 특색있는 시스템이 나올 수도 있겠죠.
일러스트 및 카드 이름
듄 영화 입문자 입장에서는 듄: 임페리움 같이 영화 일러스트를 사용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또 카드 효과나 이름중에 영화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은데 저도 뒷 이야기는 몰라서 확실히 말씀드릴 수 없네요.
그래서 재미있냐?
기본 규칙을 반지 전쟁에서 가져왔기 때문에 최소한의 재미는 보장합니다. 이에 더해 아트레이다스 가문은 쉬운 퀘스트를 받아 깨러 다니는 RPG의 맛과 포켓몬처럼 모래벌레를 다루는 맛이 있습니다. 하코넨 가문은 남의집 쳐들어가서 부시는 맛과 숨어있는 높은 점수의 시에치를 까뒤집는 뽑기의 맛이 있습니다.
살거냐 말거냐?
가장 중요한 구매 조언으로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게임성은 반지전쟁과 비슷하다 보기에 저는 둘 중에 더 좋아하는 IP의 게임 하나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반지전쟁을 가지고 있고 이런 게임은 일년에 한번정도 플레이해서 가슴이 웅장해지는 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서 구매하진 않을 듯 합니다.
(사진은 보드게임긱과 킥스타터 페이지에서 가져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