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 게이머 키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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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11 11:35

저는 여섯살, 세살짜리 미래 보드게이머를 키우고 있습니다.

밑에 선교에 관한 글도 있지만 보드게임을 전파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점은 특히나 나이를 들어갈 수록 더해지는 것 같습니다.

보드 '게임'이라는 어감과 부루마불, 뱀주사위 놀이 등에 대한 선입견 때문인지 어른들이 하기에는 유치한 놀이라는 인식이 있지요... 차라리 포커나 고스톱을 하자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가족들, 특히 아이들을 보드게이머로 만드는 일에 관심이 가게 됩니다. 보드게이머의 유전자도 물려받았으니 취향도 비슷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면서요. 모태신앙이라 할까요.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보드 게임을 하는 것을 보면서 자연스레 호기심을 가지게 되고, 그들 스스로가 먼저 자기도 같이 하게 해달라고 합니다. 감격적이지 않습니까? 전도하지 않아도 스스로 기꺼이 하겠다고 합니다. 그것도 가끔은 눈물 및 땡깡으로 호소해가면서!

그러나 이 의욕 넘치는 귀여운 외모의 신입 성도들을 보드게이머로 만드는 일에는 다른 난관이 있습니다.

일단 게임 수행 능력이 부족하지요. 최근 저희 첫째와 주로 하는 게임은 러브레터입니다만 사실 게임을 즐기고 있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룰은 잘 압니다. 어떤 카드가 어떤 기능이 있는지 알고 룰에 맞게 사용하지요. 하지만 '이기는 방법'은 모릅니다. 상대방이 어떤 카드를 가지고 있는지, 지금 가지고 있는 카드 중에서 어떤 액션을 하는 것이 승률이 높은지에 대해서는 거의 모릅니다. Guessing을 하고, 카드를 바꾸게 하는 등의 행동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더군요.

또 다른 문제는 흥미를 쉽게 잃는다는 것입니다. 몇 번 지거나 하면 '재미 없다' '안할래' 하는 말이 금방 나오지요. 때로는 눈물을 글썽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기는 경우가 더 많게 컨트롤을 잘 해줘야 하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경우도 많고, 이미 부모 입장에서는 즐기는 게임은 아니게 된 것이지요. 처음 몇 번은 같이 게임을 하는 것 만으로도 뿌듯함을 느끼고 이만큼이나 키웠구나 하며 감동하기도 하지만 반복적으로 같이 즐기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이 점은 아내를 비롯한 성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래도 적극적으로 게임을 즐기는 보드게이머와는 이해도 및 적극성에서 차이가 나고, 룰 습득이 어렵거나 승리하지 못하는 경우 쉽게 흥미를 잃게 되지요. 밑에 글에서 '초보 게이머와 즐기기 위해서 일부러 게임을 잘 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너무나도 와닿습니다. 저도 아그리콜라, 도미니언을 하면서 커뮤니티에서 봤던 전략도 쓰고 견제도 하고 싶지만 그렇게 하면 어렵게 전도한 한 명의 게이머를 잃게 되겠죠?

이러한 어려움이 있지만 아이들과 보드게임을 계속 하려고 합니다. 아이들이 나름의 머리를 굴리는 것을 보면 귀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미래에 같이 아그리콜라, 푸에르토리코, 황투 등의 게임을 같이 할 것을 생각하면 설레이기까지 합니다. 아들과 게임을 하는 것은 모든 보드게이머 아빠들의 로망이겠지요.

갑자기 시간이 뜨게 되어 주저리주저리 길게 적었습니다만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보라 회원 여러분! 빨리 결혼하시고 미래의 보드게이머를 키우세요!'라고 할 수 있겠네요.

p.s. 다른 아빠 보드게이머 분들은 아이들과 어떻게 게임을 즐기시나요? 언제쯤 되면 러브레터, 카탄 정도의 게임을 전략적으로 플레이할 수 있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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