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트 웨스턴 트레일 - 인생 게임
여느 보드게임과 마찬가지로 그레이트 웨스턴 트레일(이하 그웨트)을 오래전에 구매했지만 최근에서야 많이 즐기게 되어 리뷰를 작성합니다.
이미 개선된 2판이 나와버린 게임이지만 1판으로도 충분히 재밌더군요. 너무 만족한 게임이라 2판이 한글판으로 나오면 즉시 구매할 예정입니다.
잡설은 이만하고 미국 서부로 출발하시죠!
게임 요약
- 배경
플레이어들은 카우보이가 되어 텍사스부터 소떼를 이끌고 철도가 있는 캔자스시티로가서 다른 도시들에 소떼를 팔게 됩니다.
- 세팅
플레이어들은 카드덱으로 이루어진 소떼를 가지고 시작합니다. 처음 캔자스 시티로 가는 길은 5개의 중립 건물과 몇몇 재난 타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플레이
각자의 차례에 자신의 이동력 만큼 이동 후 멈춘 건물의 효과를 사용합니다.
일꾼을 고용하여 행동의 효율을 높이고, 좋은 효과를 가진 건물을 짓고, 가치가 높은 소를 사게 됩니다. 재난 타일을 제거하여 길을 뚫기도 하고 인디언과 협상하여 돈을 벌기도 하죠. 그렇게 길 끝에 있는 캔자스시티에 도착하면 손에 든 소떼를 팔아 돈을 받고 도시에 디스크를 놓으며 내 행동을 강화합니다.
소떼를 팔고 나면 다시 텍사스부터의 여정을 반복하게 됩니다.
- 종료
각 플레이어가 캔자스시티에 도착할 때마다 인력시장이 보충되며 인력시장이 모두 차게 되면 게임이 종료됩니다.
배송한 도시, 소 점수, 건물점수, 열차가 들린 정거장 점수 등을 합산하여 점수가 제일 높은 사람이 승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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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감
- 찰떡 테마 -
노래를 만들 때 가사를 먼저 쓰고 멜로디를 만드는 작곡가와 멜로디를 먼저 만들고 가사를 쓰는 작곡가로 나뉜다고 합니다.
보드게임도 테마를 먼저 정하고 시스템을 고안하는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궁금한 게임들이 있습니다. 그웨트도 그러한 게임 중 하나입니다.
그웨트를 보면 볼수록 어떻게 이렇게 찰떡인 테마를 찾았을까 싶습니다. 유튜브에서 가이오트님의 자세한 배경설명을 듣고 게임을 해도 전반적인 흐름에서 억지스러운 느낌이 없어 몰입이 잘 됩니다.
보드게임의 테마에서 나오는 간접 경험을 중요시하는 저에게는 이 부분이 큰 호감 요소였습니다.
- 우리가 만들어가는 세상 -
처음에는 중립건물과 재난밖에 없는 황량한 길에 게임이 흐를수록 점점 건물이 들어서고 길이 반듯하게 닦이며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집니다.
새로운 건물들은 플레이어들에게 다양한 액션을 제공할 뿐 아니라 상대방에게는 걸림돌이 되죠. 건물 뿐만 아니라 게임에 풀리는 인력시장과 재난/인디언 상황도 플레이어들이 어느정도 결정하기 때문에 게임 흐름을 플레이어가 직접 만들어 갑니다. 심지어 게임 템포 및 종료 시점도 플레이어에 의해 결정됩니다.
브라스 버밍엄과 같이 함께 유기적인 세상을 만들어가며 서로 아옹다옹하는 이러한 느낌이 저는 너무 좋습니다.
- 하나의 덱빌딩 게임-
그웨트는 덱빌딩 게임입니다. 네, 물론 덱빌딩 메커니즘으로 이루어진 소떼가 있으니 당연하겠죠. 하지만 저는 그웨트는 전체가 하나의 덱빌딩 게임과 같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덱빌딩 게임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은 이유는 네 가지가 있습니다.
1. 간단한 차례와 복잡한 효과들
덱빌딩 게임은 카드를 정해진 수만큼 뽑고 사용하는 간단한 차례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각각의 카드 효과는 간단한 것부터 아주 복잡한 것까지 다양하죠.
이는 그웨트의 행동도 마찬가지 입니다. 정해진 칸수를 가고 멈춘 곳의 효과를 적용하면 됩니다. 덕분에 아래의 간접적인 인터액션과 합쳐져 경쾌한 진행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건물 효과가 게임의 대부분이기 때문에 종류가 많고 따라서 룰 설명하기가 힘든 단점이 있습니다.
2. 다양한 초기 세팅
그웨트는 초기 세팅이 정말 다양합니다. 사용하는 건물, 중립 건물 순서, 재난/인디언 타일, 인력시장, 역장 타일 등 고려해야할 요소가 많습니다. 깔리는 카드풀을 보고 방향을 정하는 덱빌딩 게임과 비슷하죠.
이는 주어진 세팅을 보고 전체적인 게임 흐름을 예측해서 플레이하는 깊이와 리플레이성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초보자가 세팅의 방향성을 한눈에 깨닫기는 힘듭니다.
3. 비직관적인 시스템
좋은 카드를 구입해도 나중에 뽑아서 써야만 하는 덱빌딩 게임과 같이 그웨트도 내 행동의 효과가 바로바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건물을 지어도 한바퀴 돌아서 건물에 가야하고 소를 사도 버려진 카드를 덱에 섞어 뽑아야 합니다. 기관사를 고용해도 기차를 전진시키지 않으면 아무런 점수가 없죠.
이 때문에 게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감을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는 게임 내내 지고 있다는 부정적인 느낌을 주지 않는 장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고 있다는 위기감을 주지 않는다는 단점이 되기도 하죠.
진짜 큰일 났다하는 위기가 몇번씩 찾아오는 다른 게임들과 달리 그웨트는 아무렇게나 플레이해도 어떻게든 게임이 흘러갑니다. 게임에서 지고 있어도 막상 플레이를 하면 자신이 손해보는 행동이 거의 없고 점수도 직관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뒤쳐지는 느낌을 받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하호호 게임을 하다보면 큰 차이로 져버린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상황 파악을 위해 점수트랙이 있어서 중간중간 점수를 표시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게임이 끝나고 복기를 해도 어디서 잘못됐는지 알기가 힘듭니다. 다른 게임들은 어떤 행동을 먼저 할 걸, 그때 다른 플레이할 걸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웨트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하나하나의 행동이 아닌 전체적인 흐름이 잘못된 것이죠. 이 때문에 다른 게임들에서의 실력은 화려한 기술을 익히는 느낌이라면 그웨트는 내공을 쌓는 느낌이 듭니다.
4. 간접적인 인터액션
그웨트는 딱 선 넘지 않는 정도의 간접적인 인터액션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돈을 뺏거나, 영차영차하며 서로의 기차를 밟고 전진하거나 상대방의 길을 건물이나 재난타일로 막아버리는 것이죠. 글에는 무섭게 쓰여있지만 실제로 서로에게 큰 영향을 주지는 않습니다. 딱 덱빌딩에서 카드를 버리게 하거나 방해 카드를 추가하는 것과 비슷한 양상이죠.
하지만 이런 간접적인 인터액션 역시 장점이 될 수도, 단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직접적인 인터액션은 마음 상할 여지나 킹메이킹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요즘 게임에서는 자제하는 편이죠. 하지만 그웨트에서는 직접적인 견제가 아예 없어서 선두의 스노우볼을 막기가 힘듭니다. 또 내 플레이가 게임 판도를 뒤집는 일이 없어서 신의 한수 혹은 빵빵 터지는 호쾌한 맛이 안들죠. 흐르는 큰 강물을 최대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꾸려고 애쓰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이러한 네가지 이유 때문에 처음에는 몰랐지만 플레이를 하면 할수록 덱빌딩 게임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각자의 소떼를 덱빌딩하고 또, 게임판 전체를 함께 빌딩하는 게임 흐름이 잘 짜여져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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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행 철도 확장
- 한층 다양한 경험 -
보드게임의 확장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다양성을 추가하는 확장과 기존 시스템을 흔드는 확장. 전자의 경우 확장을 추가해도 본판의 플레이를 그대로 할 수 있죠. 하지만 그웨트의 확장은 후자에 가깝습니다.
북부행 철도 확장의 가장 큰 특징점은 지점 놓기 행동의 추가입니다. 새로운 행동으로 챙겨야할 것이 많아지고 득점 방식이 바뀌어서 본판 그대로 플레이 할 경우 꼬라박을수도(!) 있습니다. 필수적으로 새로운 행동을 챙겨야 하죠. 이미 산 확장이기에 이렇게 강제로 먹여주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횡적으로 다양한 효과와 득점방식 역시 추가해줍니다. 이미 망망대해 같은 초기 세팅에 고려해야할 요소가 더 생기게 되죠.
- 본판의 밸런스 잡아준다 -
그웨트 본판의 경우 약간의 밸런스 문제가 있습니다. 아래 내용은 게임을 알아가는 재미를 해칠 수 있으니 주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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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카우보이 테크가 강합니다. 보드게임긱에서 이야기하길 고점은 건축가 테크가 높다고는 하지만 카우보이가 쉽고 직관적이고 효율이 좋아서 누가해도 좋은 점수가 나옵니다. 사실 강한 테크가 있는 게 초보자들이 처음 감을 잡는데는 도움이 되지만 게임의 다양성을 해치죠. 이를 확장에서는 지점을 추가하여 해결하였습니다. 카우보이의 경우 도시에 배송을 위해서는 지점을 어느정도 신경 써야하기 때문에 득점이 까다로워졌습니다. 건축가의 경우 공짜로 건물을 건설하게 해주는 지점 보너스를 추가하여 파워를 더욱 올려줬죠. 다만 본판에서 가장 약하다고 평가받는 기관사의 경우는 어떤 버프가 있는지 아직은 잘 체감이 되지 않습니다.
본판의 또 하나의 문제는 캔자스 시티 런(run)입니다. 캔자스 시티에 놓으면 감점을 받는 대신 두둑한 돈을 챙길 수 있습니다. 철도 게임의 대출과 같은 시스템이죠. 그런데 초반 배송 도시들의 효과가 좋지 않아서 캔자스 시티에 여러번 놓는 것이 어느정도 강제됩니다. 물론 효율적인 플레이지만 초반이 뻔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을 확장에서는 캔자스시티의 감점을 더욱 크게하고 낮은 도시에서만 이을 수 있는 지점을 추가하여 해결하였습니다. |
- 굳이 없어도? -
위와 같은 효과를 가진 확장이지만 저는 굳이 없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소위 말해 필수확장은 아니란 이야기죠.
확장을 끼게 되면 지점을 놓는 보조행동을 안하기가 힘들어서 다른 보조 행동이 사장되는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본판의 밸런스 문제도 어느정도 아는 사람들끼리 하면 알아서 맞출 수 있는것 같습니다.
따라서 본판이 지겹고 새로운 맛을 느끼고 싶을 때 추가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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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의 카우보이와 같이 우리는 오늘도 달립니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 살아가죠. 예상치 못한 일 때문에 길을 돌아가기도 하고 누가 나의 길을 막기도 합니다. 하루의 결과가 좋은 날도 있고 망한 날도 있죠. 내가 지금 제대로 나아가는지도 알기가 힘듭니다. 하지만 끝나고 보면 목표에 도달해 있을 마치 우리의 인생과 같은 게임, 그레이트 웨스턴 트레일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