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킹스 딜레마 리뷰 : 좋은 게임이 될 수 있었던

해태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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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6 오후 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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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 이 리뷰는 더 킹스 딜레마에 대한 중요한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당신은 앵키스트 왕국의 다섯 가문 중 하나의 수장이 되어, 왕의 의회에서 왕국의 각종 대소사를 결정하게 됩니다. 새로 발견한 놀라운 재질의 금속을 의료용품을 만드는 데에 지원을 해야 하는가, 아니면 무기를 만드는 것을 우선해야 하는가? 신앙이 서로 다른 북방 왕국과 교류를 하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적으로 간주해야 하는가? 카드를 뽑으면 찬성 또는 반대라는 선택지가 주어지고, 플레이어들은 어느 쪽이 좋을지 토론을 해 왕국이 나아갈 길을 선택하게 되죠.

사실 위 문단이 게임을 설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플레이 방법을 설명해 주는 문단이기도 합니다. 큰 줄기를 말하면 사건 카드를 뽑는다 -> 토론을 한다 -> 선택한다 -> 스토리 진행 확인 을 반복하는 구조죠. 굉장히 단순합니다. 따라서 이 게임에서 주로 봐야 할 지점은 1) 협상과 토론, 그리고 2) 스토리가 진행되는 방식이 되겠습니다.

1. 협상과 토론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플레이어들은 각 카드에 적혀진 사건에 대해 찬성/반대의 토론을 하게 됩니다. 게임이 단순한 정치질 게임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집어넣은 장치로 권력 토큰과 돈이라는 요소가 있는데요, 기본적으로 찬성/반대에 플레이어들이 놓은 권력 토큰이 더 많은 쪽으로 진행되게 되며, 최종적으로 골라진 선택지의 반대 쪽에 투표한 사람들은 권력 토큰을 돌려받게 됩니다. 따라서 해당 안건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은 패스를 하거나, 좀 더 악랄(?)하게는 일부러 권력 토큰을 많이 쓸 사람의 반대 쪽에 투표하여 다른 사람들의 권력 토큰을 더 태워 이후 투표에서 우위를 가져갈 수도 있게 되죠. 돈의 경우에는 기본적인 점수가 되는 것에 더해 다른 플레이어를 매수하거나, 숨겨진 목표를 달성하는 등에 이용됩니다.

< 기본적인 스토리는 사건에 대한 찬/반 투표로 진행됩니다. >

이렇듯 룰과 진행 방식 자체는 간단하지만 플레이어들에게는 각 플레이마다 바뀌는 숨겨진 목표와, 가문별로 고정되어 있는 자신의 가문 목표라는 요소가 있기에 그 점을 고려해서 적절히 투표를 해야 한다는 점이 게임의 이름값대로 (왕은 아니지만)플레이어들에게 상당한 딜레마를 유발합니다.

다만 전체 캠페인의 길이가 좀 길기 때문에, 크게 보았을 땐 동일한 플레이 방식이라는 점에서 오는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게임은 지속적으로 변주를 주기도 합니다. 가문 목표가 부여하는 영구적 보너스, 특정 사건이 발생함에 따른 지속 이벤트, 연대기 스티커로 인해 달라지는 시작 권력 토큰과 자원 등이 있죠.

2. 스토리

킹스 딜레마에서는 게임플레이가 스토리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건 맞습니다. 스토리가 투표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중요한 분기에서 자신이 하고 싶었던 것과 반대 방향으로 진행된다면 불만이 생길 수는 있지만 어차피 게임 방식이 게임 방식이니만큼 이는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이 요소부터가 불호라고 생각하시면 이 게임을 하지 않는 것을 강력하게 권장합니다).

문제는 그 둘이 연관이 되어 있지만 조화롭지는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투표에서 주도권을 가지는 것은 권력 토큰을 많이 가진 플레이어이기 때문에 자기가 원하는 스토리로 끌고 가기 위해서 그저 더 많은 권력 토큰을 보유하는 쪽으로 플레이어들이 점점 선택하게 됩니다. 초기에는 플레이어들이 사건 하나하나에 관심을 가지고 열띤 토론을 벌이며 스토리를 탐색해 나가지만 캠페인이 진행될수록 결국 권력 토큰 많이 가진 사람이 깡패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에 나중에는 자잘한 사건처럼 보이는 투표들에서는 패스를 하고 시작 시 권력 토큰을 주는 연대기 스티커를 줄 법한 선택지나 아니면 중요한 스토리 분기가 될 것 같은 투표, 또는 목표와 관련된 투표에서만 경쟁을 벌이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것을 제지하는 장치는 아쉽게도 없고요.

스토리 진행 자체만 놓고 보았을 때는 좋았던 부분과 아쉬웠던 부분이 모두 존재합니다. 기본적으로 스토리는 여러 사건 카드 묶음이 한 덱에 섞여 하나씩 뽑히는 방식으로, 전체적인 관점에서는 여러 작은 스토리 라인들이 동시에 진행되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아직 게임에 대한 감이 잘 안 오고 중요한 사건들이 진행되지 않은 초반에는 플레이어들이 스토리에 덜 신경쓰는 모습을 보일 수 있습다. 하지만 중요한 스토리로 연결되는 지점인지 모르고 대충(또는 자기 개인적 목표에만 충실하게) 선택하다가는 그 단순한 선택이 스토리상으로 중요한, 또는 충격적인 결과를 불러오게 되는 것을 목격하죠. 그런 일이 한번 일어난 뒤에는 원래 점수에만 관심이 있었던 플레이어들도 자연스럽게 스토리에 신경을 쓰기 시작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렇게 "되돌릴 수 없는 중요한 선택"이라는 것은 저는 굉장히 좋았던 요소였습니다. 물론 게임에서 하는 일이 선택밖에 없는 게임이라면 이 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자칫하면 목표와 점수에만 치중하는 플레이를 할 수도 있는 게임에서 "너 스토리에 관심 없으면 좀 재미 없을거다?"라는 경고를 보내주는 것 같았거든요.

또한 스토리가 동시다발적인 여러 사건이 일어나는 형태인 데다 각 분기가 충분히 흥미롭기 때문에 단조로운 게임플레이를 어느 정도 가려주는 역할도 한다는 점도 괜찮았습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캠페인의 길이가 꽤 길기 때문에 게임플레이가 단조롭게 느껴지는 지점이 분명히 찾아오는데 스토리의 힘이 그런 부분을 완화해 주었거든요. 플레이어를 엔딩까지 끌고 갈 정도의 힘이 있었다는 건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조금 아쉬웠던 점은 보통의 경우 사건들이 복합적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특정 스토리 분기에 해당하는 점이었습니다. 다만 사건의 개수가 많고, 스토리 분기가 다양하지만 선택 당시에는 중요한 스토리 분기가 어딘지 알기 힘들기 때문에 그런 단점이 완화되는 면은 존재합니다.

이외에도 가문 설정과 전혀 상관없는 플레이가 가능하거나 강제된다는 것도 조금 안타까운 사항입니다. 예를 들어, "새로 발견한 놀라운 재질의 금속을 의료용품을 만드는 데에 지원을 해야 하는가, 아니면 무기를 만드는 것을 우선해야 하는가?"라는 선택지에서 군사력을 중시하는 가문이 무슨 선택을 하든 직접적으로는 별 상관이 없습니다. 각 가문별로 스토리 목표가 존재해서 각 플레이어가 특정 스토리를 보게 하려 유도하는 장치가 있긴 합니다만 그게 단순한 키워드라 그런 키워드에 연결될 법한 스토리가 아니라면 플레이어에게는 가문과 스토리의 큰 연관성이 없게 됩니다. 가문 컨셉에 따라 컨셉질을 할 수도 있지만 그건 게임이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플레이어에게 달렸고요. 가문의 설정이 너무 스토리에 묶이게 된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가 되겠지만 이 경우는 반대로 그 연관성이 너무 약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보면 비록 스토리와 게임 플레이가 조화롭지 못한 지점은 존재해도 그 균형은 전체적으로 잡혀 있다는 것은 긍정적인 일입니다. 비록 룰북에서 점수가 최종적으로 중요하다는 암시를 하고 있긴 해도 게임을 하면서 스토리의 내용과 자신의 게임플레이적 목표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을 하게 되거든요. 특히 최종 목표로 제시된 것이 게임플레이적 목표인 게임이고 스토리를 이끌어나가는 방법이 매우 단조롭기 때문에 그러한 부분에서 지속적으로 고민거리를 던져준다는 것은 아주 좋았던 것 같습니다.

3. 엔딩

* 여기서부턴 게임에 대한 중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만약 이 게임을 할 확실한 예정이 있다면 읽지 않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이렇게 플레이어들은 자기가 원하는 스토리로 최대한 유도하는 동시에 자신의 목표를 완수하거나 점수를 얻기 위해 토론과 협상을 거치며 게임을 플레이하고, 그 과정에서 스토리를 계속해서 따라가면서 앵키스트 왕국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건들을 함께하고 때로는 충격적인 진실도 맛보게 되죠.

그러나.
그. 러. 나.

그동안 열 시간 넘게 진행해온 선택의 딜레마? 진행됐던 스토리? 엔딩 게임에서 이 모든 걸 엎어 버립니다. 그동안 착실하게 쌓아왔던 스토리는 별 상관이 없고 단 한번의 협상 게임이 엔딩을 결정하죠. 그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플레이어들은 왕국/배신자/중립 중 한 편을 비밀리에 선택합니다.
2) 각 플레이어는 비밀리에 6종류의 섹션 중 왕국/배신자 쪽에 도움을 주거나, 자신의 점수만 관계된 칸들 중 2칸씩(5인 기준)을 선택합니다.
3) 선택 결과에 따른 전투력 점수+기존 스토리 카드에서 등장한 전투력 점수를 합쳐 왕국/배신자 진영의 승/패가 결정되고 승리 진영에서 가장 많은 점수를 얻은 사람이 승리합니다. 패배 진영의 플레이어는 모두 탈락합니다.

이게 끝입니다. 정말 어디서부터 말해야할지 모르겠는데...

1) 그동안의 스토리와 엔딩이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스토리의 내용? 미스터리 스티커에서 밝혀지는 진실과 왕국의 행보? 엔딩과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나마 엔딩에 영향이라도 주는 건 밝혀진 스토리 카드 중 특정 진영의 전투력 점수가 얼마나 되냐가 끝이고 그마저도 내용상으로는 전혀 상관이 없죠.
2) 플레이어 개인의 행보와 최종 선택간의 상관관계 또한 전혀 없습니다. 모아왔던 스티커? 권력 토큰? 돈? 각 진영 점수? 그런 건 아무런 상관 없습니다. 그냥 누가 누가 어디에 많이(또는 잘) 체크하냐가 끝입니다.
3) 그동안 자신이 모아왔던 왕국의 발전을 위하는 선택의 결과였던 명성(흰 왕관) 점수와 자신의 가문의 힘만을 위하는 야망(검은 왕관) 점수에 상관 없이 진영을 선택할 수 있고 아무런 제약 사항이 없습니다. 명성(흰 왕관) 점수가 높으면 배신자 진영을 선택하는 데 페널티가 있다거나, 왕국 진영이 이기면 야망(검은 왕관) 점수가 깎인다던가 그런 보정치는 전혀 없습니다.
4) 문제는 이 엔딩 스토리가 고대의 비밀 단체에 맞서 왕국을 지켜내느냐, 그 비밀 단체 편에서 왕국을 다 뒤엎어 버리거나라는 거죠. 그동안 왕국을 위한답시고 선택을 해온 플레이어가 갑자기 배신자 편에 서서 왕국을 파괴하고 엎어 버리는데 뭐 스토리상으로나 게임 메커니즘상으로나 아무런 제약 사항이 없다는 게 참 괴리감이 심합니다. 플레이어가 원하지 않아도 승리를 위해 한쪽 진영을 선택해야만 하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진행되는 스토리 분기 중에서는 그 끝이 특정 진영의 전투력 점수를 높여주는 경우가 있는데, 그 추가 전투력 점수가 한쪽 진영에 몰려있을 경우에는 반대 진영을 선택할 경우 이길 확률이 0%에 수렴하기 때문에 정말 승리와 상관없는 플레이어가 아니라면 자신의 의사와 반대되는 진영을 고르게 되는 거죠.
5) 최종 승자는 한 진영 전체가 아니라, 단 한 명, 그것도 총합 점수가 가장 높은 사람이라는 점도 문제입니다. 플레이어가 어떻게 해도 점수 상으로 이길 수 없는 경우에는 결국에는 킹메이커를 위한 도구가 되거나 그냥 중립을 선택하고 엔딩에서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압도적인 점수 차를 가지고 있을 경우에는 그냥 아예 안전한 중립을 선택하고 점수만 챙겨하면 반드시 승리할 수도 있죠. 그러한 경우는 협상의 의미가 없게 됩니다.

저는 엔딩 게임의 룰을 읽었을 때부터 거의 패닉에 빠졌었습니다. 내가 이거 하나 하려고 몇 주간 이렇게 달려왔나? 라는 생각이었죠. 물론 이런 엔딩 방식에 납득할 수 있는 분들이라면 별 상관이 없겠지만 저는 전체 게임플레이와 그동안 쌓아왔던 스토리가 이 엔딩 하나로 전부 부정당하는 기분이었습니다. 디자이너가 게을러서 게임을 이렇게 만들었는지 아니면 원래 그냥 이럴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참 실망했습니다.

결론적으로는 흥미로운 설정과 스토리의 힘으로 아쉬운 면이 있는 게임플레이를 가리고 플레이어들에게 엔딩까지 보게 할 만한 힘은 있는 게임이지만, 그 엔딩에 도달하면 플레이어들의 뒤통수를 아주 강하게 후려갈겨 버리는 게임이라고 하겠습니다. 엔딩만 좀 신경써서 만들었어도 이렇게까지 실망할 일은 없었을 텐데...아무튼 오랜만에 충격과 공포를 준 게임이라는 점은 높이 사겠습니다. 후속작으로 퀸즈 딜레마라는 게임이 나온다는데 킹스 딜레마와 비슷한 느낌이라고 하면 전 관심이 가진 않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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