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고통받는 섬을 다시 자연의 품으로. 정령섬

개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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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6-29 오후 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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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spirit island

미개발된 섬에 상륙해 다른 플레이어들과 교역을 하고 마을과 도시를 건설하여 최고의 개척자가 되는, 여기 보드게이머라면 누구나 알고있을만한 게임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던 천연의 섬이었지만 시간이 흘러 마을을 세우고, 도시를 만들고, 길을 건설하며 문명의 땅으로 일궈나가게 되죠.

우리는 지금까지 수백, 수천, 어쩌면 수십만의 섬에 상륙하여 나무를 멋대로 베고, 곡식을 갈취하고, 양을 잡아들이며 개척을 해왔습니다. 보세요 저 드높은 문명의 탑을요. 얼마나 웅장하고 아름답습니까?

하지만, 인간들의 욕망이 검게 피어올라 섬의 하늘을 가리울 때, 섬의 정령들이 눈을 떴습니다.

▲좌 하단의 "협력하여 개척자를 조지는 전략게임" 이라는 문구가 이 게임의 알파이자 오메가입니다.

타임 투 리벤지. 이젠 복수의 시간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번엔 섬의 정령이 되어서 우리의 섬을 짓밟고 유린하는 인간 <침략자>들을 자연의 힘 앞에 무릎꿇리고, 우리의 섬을 다시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오늘 이야기 해 볼 게임은 던전로드와 더불어 안티 클리셰의 대표격인 게임, 정령섬입니다.

1. 어떤 게임인가?

정령섬은 1~4인까지 지원하는 협력게임입니다.

던전로드가 각 플레이어의 각 던전에 쳐들어오는 용사들을 각자 따로 무찌른 후 누가누가 더 잘 용사를 조졌냐를 따지는 경쟁 게임이라면

정령섬은 <우리의 섬>에 쳐들어오는 침략자들을 다 함께 몰아내는 테마의 협력게임이에요.

이 게임에서 여러분들은 제각기 특색있는 정령들을 하나씩 고른 후, 해당 정령의 능력과 섬의 원주민인 다한들의 도움을 받아 침략자들의 러쉬를 막아내게 됩니다.

▲12시 방향이 보라, 8시 방향이 빨강, 4시 방향이 파랑이지만 남의 보드에도 자신의 정령을 현신시켜 서로 돕게 됩니다.

게임은 몇 개의 턴으로 이루어지고 매 턴마다 각 정령들은 자신의 정령을 성장시킨 후, 사용할 카드들을 미리 등록해둡니다.

모든 정령의 등록이 끝났다면 등록한 카드 들 중 빠르게 발동하는 카드들을 먼저 사용하고, 침략자들이 섬을 유린한 후,

등록한 카드 중 느리게 발동하는 카드들을 사용하고, 다음턴으로 넘어가 위 사항을 반복합니다.

구체적으로는 몇 갠 가의 더 세세한 단계들이 있지만 일단 이정도로 정리하고 좀 더 디테일하게 이야기 해 볼까요?

2. 게임의 특징

▲ 여러가지 상황이 벌어지는 정령섬의 보드. 중단의 스크롤에 적힌 부분이 게임의 흐름을 적어둔 부분입니다. 저런 친절한 배려 좋아요.

정령섬은 일종의 프로그래밍 게임입니다.
플레이어들이 사용하는 능력카드 및 정령들의 특수능력은 <빠른 능력>과 <느린 능력> 으로 분류가 되는데, 이 두 능력의 발동 타이밍이 다르거든요.
상술했듯이 모든 플레이어들의 세팅이 완료되면 일차적으로 <빠른 능력>을 원하는 순서대로 발동시킵니다.

그래서 보드를 적절히 조절한 후, 이번엔 침략자들이 단계에 따라 섬에서 전투를 벌이고, 섬에 건물을 짓고, 섬으로 추가적으로 상륙해오죠.

그 모든 침략이 끝난 후 다시 정령들이 세팅해둔 카드 중 <느린 능력>이 발동 됩니다.

따라서 플레이어들은 단순히 눈 앞의 문제를 처리하는 활동을 넘어서 다음턴을 바라보며 계산하는 활동을 자연스럽게 요구받게 됩니다.

간단하게 예를 들면 다음 턴 전투가 일어날 지역이라면 침략자들과 전투를 할 다한을 이번턴의 <느린능력> 으로 보내둔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이런 구조와 동시에 공포카드와 침략자 행동은 어느정도 카드 드로우의 영향을 받는다거나 하는 식으로 고착되지 않게 하는 등 여러모로 세련된 게임 진행 방법을 보여줍니다.

▲해안가에서는 존재감 폭발하는 바다 정령. 반대로 내륙가에서는 힘이 급격하게 빠집니다.

또 다른 특징이라면 인터액션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 게임 특이한게, 1인이 하든 4인이 하든 하는 일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각자 1인플 세팅을 한 후, 보드만 가운데 모은 후 각종 토큰을 다 합쳐놓고 플레이하면 다인플이 됩니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저 상황에 자신의 앞의 보드만 철저히 처리하고 적당한 공포만 생성해준다는 약속만 철저히 이행해준다면(쉽게 이야기 해 각자 1인분만 해 준다면)

협력게임임에도 불구하고 한 마디도 하지 않아도 기본게임 정도는 클리어가 가능합니다.

여기서 이 게임의 특징이 드러나는데요, 저런 성격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정령들의 강점과 약점을 차별화시켜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다른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 하지만 강정령이 출동한다면 어떨까? 강! 정! 령! 강의 정령은 침략자를 내륙에서 해안으로 아주 편하게 배달해줍니다. Like a 쿠팡ㅁ...

예를들어 어떤 정령의 경우 섬의 해안에서만 힘을 쓸 수 있어요. 즉 조금만 안쪽에서 침략자들이 나타난다면 이 정령은 그 침략자들을 처리하는데 여러모로 난해한 부분이 있어요.

그렇다면 이 정령으로 1인플을 할 수 없는가? 그렇진 않습니다. 선택과 집중을 잘 해서 약점을 커버하고 그런 부분에서 남들의 배로 노력한다면 1인분을 충분히 할 수 있거든요.

하지만 이 정령의 옆에 침략자들을 이리저리 밀고 당겨주는 액션이 용이한 정령이 붙어서 내륙에서 쳐들어오는 침입자를 해안으로 쭉쭉 밀어준다면?

본인의 내륙을 케어할 노력을 돌려서 다른 사람의 해안을 처리해줄 여유가 생기는겁니다.

이런 식의 인터액션은 여타 협력게임과 다른 정령섬만의 아이덴티티를 구성하는 큰 축이 되죠.

여타 다른 협력게임들이 <토론을 통한 결론을 얻어내는> 게임이라면 정령섬은 <서로 도와 부족한 부분을 메꾸어 나간다> 라는 본연의 협력쪽에 가까운 느낌이에요.

3. 게임의 장단점

협력게임이라는 얘기를 들으면 뭔가 두근두근하고 다 같이 고난과 역경을 헤치고 일어서 힘을 모아 악을 무찌르고 세상을 구하는 그런 가슴 벅차오르는 경험....을 기대하겠지만

의외로 협력게임은 호불호가 꽤 강합니다. 바로 알파플레이어 문제 때문이에요.

▲ 데오윈 등의 세미 협력 게임은 배신자의 존재를 통해 조언을 조언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방식을 통해 알파플레이어의 활동을 억누릅니다.

협력게임은 장르가 갖는 특수성 때문에 조언이 인정됩니다. 문제는 우리가 께이머다 보니까 어디까지가 조언인지 그 선을 지키기가 어렵다는거죠.

그렇잖습니까? 못생겼다고 하는건 참을 수 있어요. 하지만 겜못이란 얘기는 참을 수 없는게 우리들이잖아요.

게임을 잘하면 게임을 못하는 어린 양들을 마치 목동처럼 이끌어야 하는게 우리들입니다.

지금 건너고 계신 그 강이 우리의 두시간을 고이접어 날려보낼 삼도천이자, 요단강인게 확실하다면 당연히 "님이여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라고 애타게 바짓가랑이를 붙들어야 하는겁니다.

하지만 이게 일정 수준 이상을 넘어서는 순간 초심자 플레이어에게 "어째서 나는 내 뜻대로 하지 못하는 이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게임이 이러한 알파플레이어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이런 저런 장치를 곁들여요. 대표적인게 데오윈 등의 배신자 시스템입니다.

▲ 물론 실제로 게임에서 이정도까지 하얀 바퀴가 날아오르진 않겠지만...그래도 계산할 수 있겠어요?

정령섬은 이러한 문제에 아주 정면으로 맞대응합니다. "알파플레이어? 할 수 있으면 해보세요" 라고요.
이런 대응으로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는데, 먼저 정령섬의 액션이 갖는 동시성이라는 특징을 들 수 있겠네요.

일반적인 게임과는 달리 정령섬의 경우 모든 플레이어들이 동시에 턴을 진행합니다.

이렇게 보드 위의 상황이 다방면으로 병렬처리 되다 보니 아무래도 상황을 보면서 조언을 하나하나 할 수가 없습니다. 물리적으로 가능은 하지만 이 게임을 네다섯시간씩 할 건 아니니까요.
다음으로는 각 플레이어의 차별화를 들 수 있습니다. 기본적인 정령카드와 정령들의 타고난 능력만 해도 열개 이상의 텍스트가 있는데 각 정령이 성장해가면서 추가적으로 카드들을 받거든요.

플레이 해 보시면 알겠지만 이 카드들에는 심볼들이 딸려있어서 이러한 심볼들을 어떻게 조합하냐에 따라서 추가적으로 능력을 쓸 수 있는지 없는지도 정해지는 등 생각보다 계산할 것이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각 플레이어는 자신의 정령을 현신시켜 그 구역을 중심으로 보드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어느정도 정령이 성장하기 전에는 다른 사람의 영역에 쉽게 발을 들이밀지를 못합니다.

▲ 그렇다고 이렇게 이야기 하시면 안됩니다.

즉, 정령섬은 남의 상황에 참견할 능력도 여유도 없습니다. 당장 우리 집 불난거 끄는것만도 바쁘거든요.

이러한 방식을 통해 정령섬은 알파플레이어 한 명에게 지휘를 맡기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신의 땅은 자신이 책임 질 것을 요구하고,

"우리 이걸 어떻게 헤쳐나갈까?" 가 아닌 "누가 여기좀 어떻게좀 해줘" 라는 협력의 방식을 통해 각 플레이어의 플레이 기회를 보장을 해주죠.

이는 강렬한 알파플레이어와 함께하며 <나는 이 게임에서 무슨 역할인지 모르겠다. 그럴거면 그냥 너 혼자 1인플을 하지> 라는 감정을 느끼는 유저들에게 정말 각광받는 부분입니다.

(비밀입니다만 누가 뻘짓을 해서 초토화된다 해도 강하게 탓할수 없단 얘기도 됩니다 후후.)

▲ 게임의 깊이에 비해 1인플 세팅이 매우 간결합니다.

정령섬의 또다른 특징이라면 압도적인 솔로플레이를 빼먹고 얘기할 수 없겠네요.

물론 메이지나이트라거나 칸반 등의 뛰어난 솔로플레이를 지원하는 게임들은 얼마든지 꼽을 수 있습니다만 정령섬의 그것은 격이 달라요.
정령섬은 솔로플레이 규칙을 따로 지원하지 않습니다. 아마 "솔로 플레이 할 때에 다른 정령들에게 영향을 주는 카드는 본인에게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였던가? 이정도만 추가될 뿐, 다인플의 규칙을 그대로 가지고 오면 끝입니다. 즉 따로 귀찮게 솔로플레이용 모듈을 준비할 것도, 규칙을 익힐 것도 없죠. 더불어 다인플의 1/n으로 줄어드는 세팅 덕분에 펼치기도 접기도 용이합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메이지나이트나 칸반을 세팅의 문제로 자주 꺼내지 못하는 걸 감안한다면 확실히 차별화되는 무엇인가 있죠.

▲정벤져스...어쎔블!! 한국에 정식 발매된 본판+프로모+확장만 해도 12종의 정령이 여러분들을 기다립니다.

플레이 경험의 다양화도 긍정적인 부분이에요. 본판만 해도 정령이 8종이나 되며 각종 시나리오와 적대국 모듈을 결합시켜 같은 정령으로 해도 난이도 배분이 쉽습니다.

더불어 정령의 성장시 어떤 카드 위주로 잡으며 콤보를 구성하는가도 재미있는 부분이고요. 단순히 클리어 여부 뿐 아니라 점수를 기록할 수도 있어서 차근차근 갱신해나가는 맛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초보자와 숙련자와의 갭이 존재한다는 단점은 있어요.

앞서 여러번 들었던 비유이지만 어느정도 숙련되면 사실 기본 시나리오는 어느 정령으로 해도 쉽게 깰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단순히 2x했을 뿐인데도 초보자가 끼면 순식간에 초토화되는 섬을 볼 수 있어요.

이건 <다 같이 최선의 결과를 찾아나가는> 것이 아니라 <다 같이 1인분씩을 해야하는> 정령섬의 협력 스타일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남에게 이래라 저래라 참견받지 않는다는 장점이 반대로 다른사람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어렵다는 단점으로 작용하는거에요.

더불어 카드를 메인으로 하는 게임이다 보니 초보자의 경우 본인의 정령이 어느 부분에서 강점을 보이는지, 어떤 카드들과 궁합이 좋은지 등을 캐치하기도 어렵고,

카드 텍스트도 마냥 짧은 것 만은 아니라서 부담스러운 부분도 분명히 있습니다.

▲ 똑같이 누적 능력발동인데 2번째 정령에는 추가로 라는 워딩이, 3번째 정령에는 없습니다.

아 그리고, 규칙이 좀 러프한 부분이 있어요. 이를테면 용어 통일이라거나 뭐 이런 부분이요.

사실 찬찬히 뜯어보면 나름 논리적인 매커니즘이 갖춰져 있는 듯 하긴 합니다만 저 같은 경우는 규칙서가 꼼꼼하게 쓰여있는걸 선호하는 편이라서요.

(참고로 위 사진같은 경우 <추가로> 라는 매커니즘은 <대신에> 밑에 붙어 <대신에>에 종속되지 않고 <추가로> 발동되기 때문에 붙는 개념입니다. 굉장히 불필요하지 않나요?)

더불어 상술했듯 카드와 정령의 능력이 워낙에 다양하기 때문에 용어에 대한 이야기라거나 능력 충돌에 관한 이야기 등이 FAQ에 이런저런 설명을 죽죽 달아놨습니다. 이런건 별로에요.

4. 마치며

팬데믹 이후 등장한 수 많은 협력게임 중에서도 정령섬은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게임입니다.

테마에만 치중해서 게임성 자체가 허술한 몇몇 협력게임과 달리 차분히 계산하여 최적의 결과를 찾아내는 퍼즐요소 및 정령의 성장등을 꾀하는 전략적 요소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게임이에요.

규칙이 조금 복잡해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부분만 제외한다면 두 시간 정도 밀도있는 플레이를 보장해주는 좋은 선택지가 될 거에요.

▲ 그리고 오늘, 여러분들의 섬에 새로운 침략자들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걱정 마세요. 새로운 정령들의 가지와 발톱이 여러분들과 함께 할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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