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소통으로 본 ‘쿼키 서킷’

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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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5 오후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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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키 서킷 박스 일러를 캡처. 사진출처: 보드게임긱

라이트게이머인 무이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지난 두 글

의사소통으로 본 '스페이스 크루'

의사소통으로 본 ‘더 게임 퀵앤이지’

와 같은 맥락에서, 더마인드와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협력 프로그래밍 게임 ‘쿼키 서킷(Quirky Circuits, 변덕스러운

회로, 2019년)’을 리뷰해 보고자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진짜 빡센 게임입니다;

먼저 구성물부터 살펴보겠습니다.

1. 구성물

쿼키 서킷의 로봇 피규어. 사진 출처: 보드게임긱

게임판을 돌아다니게 될 로봇들입니다. 이 로봇들의 움직임을

아래의 사진에서 볼 수 있는 명령 카드들로 조작하게 됩니다.

로봇청소기의 명령 카드. 로봇청소기 위에 앉아있는 고양이는

로봇이 아니다! 사진 출처: 보드게임긱

위 사진의 첫 번째는 왼쪽으로 돌기, 두 번째는 두 칸 가기입니다.

시나리오 북. 사진 출처: 보드게임긱

위 사진은 시나리오 북으로, 왼쪽 페이지엔 이번 시나리오의

규칙이 적혀있고, 오른쪽 페이지는 게임판이 됩니다. 게임판에

피규어를 올려놓고 명령어 카드를 사용해 움직임을 조작하게 됩니다.

2. 게임 진행

어떤 시나리오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사용하는 피규어, 명령

카드, 세부 규칙이 달라지지만, 기본 규칙은 간단합니다.

먼저, 카드를 섞어 더미를 만들고 인원수에 따라 정해진 손패

장수만큼 카드를 나눠 가집니다.

(1) 프로그램 단게

더마인드처럼 내고 싶은 명령 카드를 내고 싶을 때 뒷면으로

바닥에 내려놓습니다. 단, 더마인드와 달리 내려놓은 순서대로

늘어놓습니다.

명령 카드를 늘어놓은 모습이 왼쪽에 보인다.

사진 출처: 보드게임긱

(2) 실행 단계

플레이어들끼리 합의되면, 명령 카드들을 공개하고 내려놓은

순서대로 카드의 명령을 해결합니다. 즉, 로봇 피규어의

움직임을 조작하는 거죠.

(3) 재설정 단계

이제 라운드를 마무리할 차례입니다. 사용한 명령 카드를 모두

섞어 카드 더미 아래에 넣고, 손패를 다시 채운 뒤 다음

라운드를 시작합니다.

(4) 승리와 패배

시나리오의 목표를 달성하면 즉시 승리하며, 너무 많은

라운드를 진행해 배터리가 방전되면 패배합니다.

3. 의사소통

(0) 의사소통의 단계

지난 글 의사소통으로 본 '스페이스 크루'에서 협력게임의

의사소통이 아래와 같은 단계에 따라 이뤄진다고 얘기했었습니다.

A라는 플레이어가 의사 표현을 하면, 다른 플레이어들은 A의

의도를 파악하고, 그 의도에 부합하게 플레이하는 것이죠.

(1) 쿼키 서킷의 의사 표현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들은 말로든 아니면 다른 어떤 방식으로든

의사 표현을 할 수 없으며, 뭔가 말해야 한다면 ‘삐삐삑’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말할 수 없다고 의사 표현이 안 되는 건 아닙니다.

카드 뒷면의 장치 때문입니다.

명령 카드의 뒷면. 사진 출처: 보드게임긱

위의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명령 카드의 뒷면은 세 종류로

돼 있는데, 위 사진 왼쪽부터

첫째, 피규어가 바라보는 방향이 바뀌지 않는 명령 카드는

‘앞뒤’ 뒷면을 갖고 있습니다. (예: 한 칸 앞으로, 한 칸 뒤로)

둘째, 피규어가 바라보는 방향이 바뀌는 명령 카드는 ‘좌우’

뒷면을 갖고 있습니다. (예: 오른쪽 혹은 왼쪽으로 돌기)

셋째, 시나리오에 따라 사용하는 노란색 특수 카드들은 ‘노란색’

뒷면을 갖고 있습니다.

(2) 쿼키 서킷의 의도 파악하기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들은 다 같이 게임판을 보면서 플레이하기

때문에 로봇 피규어가 어디에 놓여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목표지점까지 가는 데 있어

거쳐가야 할 몇몇 지점들이 자연스레 눈에 들어오고

‘저기까지 간 다음에 오른쪽으로 돌아 세 칸 앞으로 가서

저기에 도착하고, 거기서 다시 왼쪽으로 돈 다음에 다섯 칸

앞으로 가면 되겠네.’

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누군가 명령 카드 한 장만

내려놓으면 그 카드가 뭔지 짐작하기 힘들 수 있지만, 여러 장을

세트로 내려놓으면 뒷면을 통해

‘아, 저 지점까지 간다는 얘기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상대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3) 쿼키 서킷의 의도에 부합하는 플레이

의도만 파악하면 로봇 피규어가 어디에 있게 될지 짐작할 수

있으니, 그다음 움직임에만 신경쓰면 되고, 그 의도에 부합하는

플레이를 하는 것은 곧 다음번 의사 표현이 됩니다.

다시 말해, 이 게임에서는 의사 표현과 의도 파악하기만

번갈아가며 나타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4. 게임감상

(1) 시간의 개입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 게임은 적당한 카드들만 갖고

있으면 매우 정확한 의사표현을 할 수 있습니다. 카드를

공개한 거나 마찬가지로 말이죠. 하지만, 당연히 뜻대로 안 될

때가 있겠죠?

특히, 모든 플레이어의 손패가 좋지 않을 때가 그럴 때인데...

다들 난감해하며 서로 눈치를 살피느라 자연히 시간이 흐르게

되고, 답답한 상황에 놓여 있음을 모두가 깨닫게 됩니다.

(2) 진짜 게임이 시작되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면

‘아~ 결국 내가 내야 되는 건가? 이 카드들로? 내도 이해하기

힘들텐데... 이거 욕먹겠는데?’

와 같은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한데, 그때 누군가 결심을 굳히고

명령어 카드 세트를 내려놓게 됩니다. 바로 이때가 진짜 게임이

시작되는 순간이죠.

모두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속으로

‘이건 또 무슨 x 같은 ...’

이라며 비명을 지르지만, 이게 또 골똘히 생각하다 보면

‘아~ 혹시 저기를 가려고 그러나? 아니면, 혹시 그 카드를

썼나??’

라며, 가능성을 두세 가지로 좁히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3) 추리

예전 글 의사소통으로 본 '스페이스 크루'에서 스페이스

크루에서의 의도 파악하기 단계를 추리로 볼 수 있다고 했었는데,

쿼키 서킷의 이러한 의도 파악하기 단계는 추리로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추리 그 자체입니다. 방금 내려놓은 카드들의 정체를

밝혀내야 하니까요.

디크립토. 사진 출처: 보드게임긱

(4) 디크립토?

이렇듯 힘겹게 의사 표현하고, 그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고민고민하는 과정은 출제자와 팀원 모두 고통스러워하는

디크립토를 떠올리게 합니다.

(5) 카운팅

게임을 하다 보면 추리가 힘겨운 만큼, 도움이 되는 다른

정보가 없을지 찾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카운팅을

하게 됩니다. 특히나 4인플의 경우, 각자의 손패 장수는

(2인플에 비해) 줄어들어 난이도가 상승하는 한편, 라운드마다

거의 모든 명령 카드를 사용하기 때문에 카운팅이 쉬워지고,

그런 만큼 카드 카운팅이 거의 강제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이겠지만, 각 시나리오에는 사용되는 명령 카드의 구성을

아래의 사진처럼 명시하고 있습니다. 카운팅하라는 거죠.

한 칸 가기 5장, 두 칸 가기 2장, 세 칸 가기 1장 등 명령 카드

구성을 시나리오별로 명시하고 있다.

사진 출처: 보드게임긱의 사진을 캡처

(6) 인원수

이 때문에 저는 퀴키 서킷의 최적 인원수를 4인이라고

확신합니다. 난이도가 높지만, 그만큼 빡센 추리를 즐길 수

있거든요.

2인은 손패 장수가 한 장 더 많아 난이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좀 쉽게 플레이하고 싶은 분은 2인이 어떨까 합니다.

(7) 쿼키 서킷 vs 스페이스 크루

보드라이프에 올라온 쿼키 서킷에 대한 후기와 리뷰를 보면

이 게임에 대한 평가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 거 같습니다.

한쪽은 가볍게 하하호호하는 게임이고, 또다른 한쪽은 추리가

만만찮은 게임인데... 저는 후자 쪽, 즉 빡센 의사소통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있는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사소통의 관점에서 보면, 현시점에서 스페이스 크루와 가장

비슷한 재미를 즐길 수 있는 게임이라 생각하지만, 스페이스

크루보다 더 빡세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의사소통이 빡센 만큼 경쾌함이 좀 부족한데, 이점

때문에 스페이스 크루 만큼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다 같이 고민하는 순간이 길고 잦으며,

그만큼 진행이 좀 더디니까요. 디크립토가 떠오를 만큼 말입니다.

(8) 직관적인 규칙

마지막으로 이 게임의 규칙에 대해 간단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굉장히 간단한 기본 규칙에, 시나리오마다 새로운 규칙이

추가되는데, 너무 직관적이라 한 번 설명하면 다들 ‘아~’하고

반응하고는 다시 안 물어보더라구요. 게다가 유머러스한 규칙을

읽는 거 자체가 재밌고, 다음엔 어떤 규칙이 등장할지 기대하게도

됩니다.

5. 마무리

이 게임을 보드게임긱에서 처음 접했을 땐 박스 일러와 간단한

게임소개만 보고 어린이 게임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보드라이프에 게임등록을 할 때도 좀 가벼운 느낌으로

‘변덕스러운 회로’라는 이름으로 등록했거든요; 그러다, 자메스

카임님의 리뷰

지극히 주관적인 3분 후기 – 쿼키 서킷(Quirky Circuits)

를 읽고 심상찮다는 느낌을 받아 게임을 사긴 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코딩이 유행인 요즘 세태에 편승한 교육용

게임으로 생각해 크게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게임을

할수록 빡세다는 느낌을 받았고,

(정확하게는 두 번째 로봇인 트윌을 플레이하면서부터입니다.

첫 번째 로봇은 좀 쉽습니다)

특히 4인플에서 게임이 만만찮음을 넘어 버거움을 느끼면서

(플레이에서 구멍이 되고 있는 상황에 처하면서ㅠ) 스페이스

크루를 플레이할 때보다 훨씬 강렬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그만큼 큰 재미를 느꼈습니다.

빡쎈 의사소통을 경험할 수 있는 협력게임을 찾으신다면

쿼키 서킷이 그 답이라고 생각해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 플레이는 많이 했는데, 멤버가 계속 바뀌는 탓에

(게임의 특성상) 첫 번째 로봇만 계~속 플레이했고, 두 번째

로봇을 플레이하다 중단된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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