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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 vs 추리: 디텍티브 리뷰

4,884 조회

2020.08.04 22:06

라이트게이머인 무이입니다.

최근에 재밌게 플레이했던 수사추리게임들을

리뷰해 보고 있는데요, 최근 글인

수사 vs 추리: 사건의 재구성 리뷰

에서는 사건의 재구성을 리뷰하면서 수사추리게임의 플레이 과정을

(1) 단서수집, (2) 가설수립, (3) (가설)검증

으로 나눈 뒤, 단서수집단계를 ‘수사’로 불렀고, 검증단계를 통과하는

유일한 가설을 찾아내는 것을 ‘추리’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1) 단서수집 및 (2) 가설수립에 치중하는 게임을

‘수사게임’이라 부르고, (2) 가설수립 및 (3) 검증에 치중하는

게임을 ‘추리게임’이라고 불렀구요.

사진출처: 코리아보드게임즈의 디텍티브 박스일러를 확대캡처

이번 글에서는 ‘디텍티브: 모던 크라임’(이하 디텍티브)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하는데요,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들은 안타레스라

불리는 수사기관의 팀원이 되어 연결된 다섯 개의 사건을

하나씩 협력해서 해결해나갑니다. 사건을 해결했다고 생각하거나

게임상의 시간을 다 쓰면 안타레스의 국장으로부터 몇 가지

질문을 받고 여기에 대해 답하게 됩니다.

게임은 ‘안타레스 데이터베이스’라 불리는 웹사이트에서 그때그때

찾을 수 있는 텍스트와

안타레스 데이터베이스. https://antaresdatabase.com

사건마다 다른 35장의 카드 더미에서 필요한 카드를 찾아

거기에 적힌 텍스트에서 단서를 수집하며 진행합니다. (즉, 수사)

각 사건의 (스페인어판) 카드 더미. 카드 더미는 35장의 카드로 구성되는데, 카드 위쪽에

번호가 적혀있어 그때그때 필요한 카드를 찾아서 읽게 된다. 사진출처: 보드게임긱

텍스트에는 추가로, 안타레스 데이터베이스에서 새로운 정보를

읽으라는 지시가 적혀있거나 다음 수사를 위한 선택지가 주어집니다.

A라는 인물을 조사하고 싶으면 22번 카드를 찾아 읽고, B라는

장소를 방문하고 싶으면 17번 카드를 찾아 읽으라는 식으로요.

카드의 오른쪽 위에는 시계 아이콘과 시간이 적혀있다. 사진출처: 보드게임긱

하지만, 읽고 싶다고 선택지에 있는 아무 카드나 다 읽을 수

없는 게, 각 사건에는 ‘4일 안에 (즉, 32시간) 사건을 해결하되

야근은 최대 6시간까지만 (즉, 총 38시간)’과 같은 시간제한이

걸려있고 카드를 읽을 때마다 시간이 흐르기 때문입니다.

위 사진에 있는 카드는 3시간짜리네요.

게임판. 빨간색 날짜 마커가 오른쪽 날짜 트랙에 있고, 파란색 시간 마커가

아래쪽 시간 트랙에 놓였다. 시간 트랙에서 오후 5시 이후는 빨간색인데

이 시간에 수사하기 위해서는 야근을 해야 함을 뜻한다. 사진출처: 보드게임긱

(1) 다음엔 어떤 카드를 읽을 것인가?

그러다 보니 이 게임에선 지금까지 확보한 단서를 통해, 현재

나와 있는 여러 가지 선택지(카드) 중 어떤 것을 골라 읽을지

판단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게 되고, 여기에 대한 플레이어들간의

토론이 사실상 이 게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걸 몰랐던 저는 1인플ㅠ)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숨겨진 단서 찾기와 가설 세우기가 요구됩니다.

(2) 숨겨진 단서 찾기

이 게임은 수사추리게임답게 명백히 드러나는 단서 외에

텍스트에 숨겨진 단서가 많습니다. 이런 숨겨진 단서를 찾는

방법은 두 가지로 나뉩니다.

첫 번째는 새로운 텍스트가 공개될 때마다 쭈~욱 읽으면서

작가가 심어놓은 단서를 즉시즉시 캐치하는 방법으로

왓슨 앤 홈즈나 셜록 파일즈와 같은 추리게임에서는 흔한

방식입니다. 바로바로 할 수 있어야 게임이 원활히 진행되기

때문에 나름의 숙련도를 요구하구요. 그래서, 이 게임을 충분히

즐기기 위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추리게임들을 먼저

플레이해보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두 번째는 여러 텍스트를 비교해 작가가 심어놓은 단서를

캐치하는 방법으로, 텍스트가 많은 이 게임에선 피할 수 없을 거

같습니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라, 게임을 끝내고 각자

집으로 돌아간 뒤 그동안 나왔던 텍스트들을 차근차근 다시

살펴보는 것도 좋을 거 같습니다. 복습이 필요한 게임이라고나 할까요?

(3) 가설 세우기

이 게임은 플레이어들이 사건의 전말을 설명할 가설을 세우더라도

이걸 검증할 만큼 충분한 단서를 제공하지 않아 추리게임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플레이하면서 가설을 정말 많이

세우게 되는데요, 이런 가설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 사건의 전말이 아니라 일부만을 설명하는 가설로, 일종의

감이라고 해도 될 만큼 간단한 것들입니다. ‘이 사람한테서 냄새가

나는데, 혹시 이 사람을 찾아가면 중요한 단서를 주지 않을까?’

같은 거 말입니다. 이런 가설들은 여러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를 때 자주 세우게 됩니다. 저는 국장의 질문에 답할 때도

이런 식으로 많이 했는데, 다른 분들은 어떠신지 모르겠네요.

둘째, 단서를 바탕으로 사건의 전말에 대한 가설을 세울 수도

있습니다. 단서가 충분치 않아 흐릿한 윤곽만 얘기할 수 있지만요.

그럼에도, 여러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를 때 기본적인 방향을 제시합니다.

(4) 가설에 대한 공격

흐릿한 윤곽에 대해서만 얘기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칫

오버해서 다소 구체적인 가설을 세운 뒤 그에 기반해 수사를

진행하다 보면 작가가 뿌려놓은 미끼에 여지없이 낚이면서

아무 소득 없이 시간이 훅~ 지나가 버려, 사건 해결에 실패의

그림자가 드리우게 됩니다.

(5) 항상 부족한 시간

이런 식으로, 저는 플레이하면서 (게임상의) 시간에 있어 여유를

느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항상 한 시간 남았거나 가능한

시간을 모두 다 쓴 다음에야 게임을 끝낼 수 있었는데... 덕분에

플레이를 거듭할수록, 여러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를 때 점점 더

신중해지고, 선택한 카드를 읽어내려갈 때 엉뚱한 카드를

선택한 건 아닐지 늘 조마조마했습니다.

(6) 손에 잡히지 않는 진실

다시 가설로 돌아가면... 사건의 흐릿한 윤곽은 보통 늦어도

수사 초반에 그릴 수 있는데, 문제는 웬만해선 세부적인 내용을

알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나름 수사에 성공하고 있고 단서도

쌓이는데, 이상하게 진실은 아직도 저 멀리에 있는 거 같고

시간도 얼마 안 남았습니다. 점점 더 긴장하고 점점 더 신중하게

선택을 해 나가지만, 상황은 나아지는 게 없는 거 같고 어느덧

국장의 질문에 대답할 때가 됐습니다.

(7) 답하기 쉬운 질문들

하지만, 막상 질문들을 접하면 어떻게든 답은 맞힐 수 있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생각보다 간단해 ‘겨우 이거 물어보는

거였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종종 있습니다.

(8) 이 게임의 재미

질문이 간단해 약간 허무할 수도 있는데, 이런 점은 작가가

의도한 바가 아닌가 합니다. 플레이어들은 이미 질문에 답할

준비가 돼 있지만, 그 사실을 플레이어들에게 알려줘 안도감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더 압박하기 위해 사건의 진실이 한참

멀리 있는 거처럼 분위기를 풍기는 거죠.

바로 이점에서 이 게임의 재미가 어디에 집중돼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진실에

확실히 다가갈 단서는 아직 없는데,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는

시행착오 때문에 방금 한나절을 날렸고, 그래서 이미 망한 거

같고, 시간 때문에 앞으로 볼 수 있는 카드가 기껏

서너 장뿐이라면 얼마나 강렬한 압박감(+좌절감)을 느끼겠습니까?

그 외에도 사건마다 다르게 적용되는 규칙들이 대체로 시간적

압박을 더 강화한다는 점을 봐도, 이 게임의 재미가 ‘시간의

압박을 강렬하게 느끼는 가운데 격렬한 토론을 통해 어려운 선택을

해나가는 데’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9) 다채로운 사건들

이 게임의 기본적인 재미는 시간의 압박에서 오지만, 한편으로

사건마다 조금씩 다른 규칙 혹은 진행에서 오는 다채로운 재미도

좋았습니다. 어떤 사건에서는 별다른 가설을 세울 필요 없이

단수서집에만 집중하면 되고, 어떤 사건에서는 방대한 자료를

찬찬히 다 들여다봐야 하기도 합니다. 다섯 개의 사건 모두

개성이 강하고 새롭다는 느낌을 준다는 점은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10) 난이도

이 게임이 갖고 있는 수사 및 추리의 난이도는 기본적으로

추리 게임인 왓슨 앤 홈즈나 셜록 파일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단순한데, 바로 개연성

때문입니다. 개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텍스트에 숨겨놓은

단서를 비교적 찾기 쉽게 하고, 중요한 단서의 경우엔

안타레스 데이터베이스와 카드에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심어놓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비슷한 난이도라 하더라도

워낙 텍스트가 많은 게임이라 게임의 볼륨에서 오는

체감 난이도는 상당했습니다. 한편 선택의 순간에는 항상

집중하고 긴장하기 때문에 비교적 여유롭게 플레이할 수 있는

추리게임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사건 하나를 끝내고 나면 진이 다 빠질 정도로요.

(11) 플레이하기 전 필요한 준비

그런 만큼 이 게임을 플레이하기 전에 약간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플레이 시간을 아주 넉넉하게 잡아놓는 게 좋겠습니다.

(저는 평균 3시간반 정도 플레이했지만, 5시간을 미리 비워

놓았습니다.) 실제로 그만큼 걸리진 않더라도 플레이를 느긋하게

하기 위해서 말이죠. 제가 사건해결에 실패해서 다시 플레이했던

사건이 두 개가 있는데, 둘 다 시간을 넉넉하게 잡지 못해

시간에 쫓기면서 플레이했던 사건들이었거든요.

둘째, 첫 번째 사건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모든 스케줄을

정해놓고 가능한 빨리 모든 사건을 끝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이전 사건에 나왔던 등장인물이 계속 등장하고 예전의 텍스트들도

계속 검토해야 하기 때문에 기억이 생생할 때 빨리 끝내는 게

최선이라 생각합니다.

셋째, 노트북을 준비하시길 권해드립니다. 저는 아이패드로

진행했는데, 안타레스 데이터베이스에 입력할 게 많아 굉장히

불편하더군요. 노트북이 꼭 있어야 할 거 같고, 안타레스

데이터베이스를 자주 들여다보기 때문에 노트북이 적어도

두 대는 있는 게 좋을 거 같았습니다.

화이트보드의 경우, 저는 1인플로 진행해서 그런지 대부분의

사건에서 아무것도 적지 않고 진행했음에도 전혀 지장이

없었습니다. 모든 텍스트가 안타레스 데이터베이스나 카드에

있어 찾아보기 쉽고, 게다가 사건의 양상이 그렇게 복잡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예외도 있습니다!) 하지만,

협력으로 플레이한다면 서로 간의 의사소통을 위해 화이트보드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더군요.

(12) 디텍티브 vs 사건의 재구성

두 게임 모두 수사게임이지만, 사건의 재구성이 거의 순도

100%의 수사게임이라면, 디텍티브는 사건의 전말에 대한 가설을

늘 세워놓고 있어야 한다는 점, 추리게임에서 단서를 심을 때

사용하는 방법을 그대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추리게임의 느낌도

꽤 납니다. 이런 점에서 두 게임엔 차이가 있구요, 결정적으로

난이도에서 큰 차이가 납니다.

사건의 재구성을 리뷰하면서 왓슨 앤 홈즈와 셜록 파일즈가

어려웠거나 개연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분에겐 사건의

재구성이 나을 거라고 했는데, 비슷하게 왓슨 앤 홈즈와

셜록 파일즈가 할 만했거나 좀 쉽다고 느끼는 분에겐 디텍티브가

더 나을 거라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디텍티브와 사건의 재구성은 애초에 타겟이 다른

게임으로, 규칙이 없다시피하고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는

접근성을 우선시하면 사건의 재구성이 갓겜이고, 접근성을

외면한 채 게임성만 놓고 보면 디텍티브가 갓겜이라는 거죠.

그런 만큼, 두 게임을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디텍티브가 훨씬 더 재밌다는

걸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정작 구매는 사건의

재구성만 하려고 합니다. 그것도 풀확장으로요! 영업용으로

너무 괜찮은 게임인 거 같아서 말이죠.

이제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디텍티브는 확실히 진입장벽이 높은 게임입니다. 추리게임에

대해 어느 정도의 숙련도를 요구하고, 플레이 시간이 길며,

짧은 기간 내에 모든 사건을 마무리해야 된다는 제약조건도 있고,

노트북이나 화이트보드 등의 준비물도 필요하니까요. 하지만,

이런 진입장벽을 넘어서기만 하면 굉장한 경험을 할 수 있으니

수사추리게임을 좋아하시는 분은 꼭 도전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P.S. 다른 게임을 리뷰할 때는 가능한 한 5회플 이상 해보는데,

이 게임은 그러질 못해 혹시 저와 다른 플레이 경험을 하신 분이

계시면 댓글 남겨주셔서 서로의 경험을 공유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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