촐킨을 구매하지 않으려는 분들에게.

EpicW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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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3-7 오후 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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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자극적인 제목인 것 같긴 한데.. 뭐라 마땅한 말이 생각이 안 나서 이렇게 적습니다.

잊을만하면 촐킨 얘기가 한번씩 나오네요. 처음에 정말 싫어했던 게임으로써, 지금은 정말 좋아하는 게임 중 하나로써 저에게는 나름 뜻깊은 게임입니다. 부디, 밸런스 논쟁 때문에 촐킨을 안 해보시려는 분들이 마음을 돌리고 한번쯤은 (어쩌면 5번쯤은..?) 접해보길 바라시면서, 이 글을 씁니다. 다른 분들의 전문적인 리뷰에 비해서 정리도 안 된 글이고.. 그냥 안타까운 마음에 쓰는 글이라, 자유 게시판에 남깁니다.

게임에 대해 언급하기에 앞서.. 흔히 상정하는 "같은 실력"은 뭘까요? 2인플 10판해서 5승 5패면 같은 실력으로 볼 수 있을까요? 너무나 다른 플레이어들을 보고 있자면, 전 솔직히 같은 실력이라고 전제하기가 상당히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밸런스 문제는 한 사람이 A 테크 or A 요소를 선점할 때, 다른 B, C, D 로는 극복할 수 없거나, 매우 힘든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실력 차가 난다 하더라도요.

그런데 제가 플레이하면 할수록 느끼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요소는 상당히 드물다는 것입니다. 아그리콜라 2가족으로 이기는 것은 거의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3가족으로 그보다 많은 가족을 이기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케일러스 석재 건물 3개를 다 내주고도 이기기는 힘들지만, 1개만 가지고 있더라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쯤에서 잠깐만 일반 밸런스 이슈로 넘어가자면, 보드게임 뿐만 아니라 어떤 게임이든지 "밸런스"를 완벽히 잡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특히나 온라인 게임만큼 광범위하고 다양한 테스팅이 상대적으로 힘든 보드게임은, 더욱 그런 경향이 짙다고 생각합니다. 테라 미스티카도 둔갑술사, 연안민 밸런스 이슈가 상당했었죠.

그렇다면 모두가 평등한 게임이 즐거운걸까요? 옛날 우스개소리로 말하던 얘기가 기억납니다. 스타크래프트를 할 때 두 플레이어가 같은 종족으로, 일꾼만 생산할 수 있다면 완벽한 밸런스라고 하죠. 문제는 그게 전혀 재미없다는 겁니다. 보드게임 밸런스로 돌아와봅시다. 아그리콜라를 잘 아는 플레이어끼리 한다면,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가족 늘리기하게 놔둘까요? 케일러스를 잘 아는 플레이어끼리 한다면,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석재 건물을 독점하게 놔둘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 과정에서 치열한 눈치 싸움이 벌어지게 마련입니다. 또한 가족에 맞춰 어떤 직업 / 설비를 쓰는지, 석재 건물을 놓으면서 어떤 총애를 쓰는지에 따라 게임 양상은 확연히 달라집니다. 그 과정에서 석재 2개 놓는 사람이 이긴다, 가족 수 많은 사람이 이긴다.. 라고 한다면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독점하기 힘들다면, 밸런스 이슈의 문제는 상당히 사그러든다고 생각합니다.

쓸데없는 서론이 길었습니다. 촐킨으로 가볼까요. 전 촐킨에 대한 첫 인상이 상당히 나쁜 축에 속합니다. 원래 게임의 승패에 좀 연연하는 편인데, 촐킨의 첫 패배는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게임이 끝날 때 7점이었고, 신전 점수 다 받고 보니 13점이더군요. 같이 하던 플레이어는 50점 2명에, 40점대 한 명으로 기억합니다. 진 것은 제가 첫 판인데다, 게임 방식이 독특한 게임이라 그렇다 쳐도, 전 밥 먹이기 급급한데 상대방은 자원 바꾸고 신전 올리고 건물 짓고.. 이런 과정들을 겪고 나니 오만정이 다 떨어지더군요.

그리고 한 1년쯤 지났을까요. 온라인에서 촐킨을 지원한다길래 가끔 가다 한판씩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정말 같은 게임이 맞는지 의심될 수준일 정도로 재미있었습니다. 점수가 바로 많이 늘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20점 찍었던 적도 몇 번 있었고, 그러다 30점 찍기도 했었죠. 그런데 하면 할수록 수가 보이기 시작했었습니다. 욱스말 012가 왜 강한지도 보였고,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는지, 어떠한 상황에서 어떠한 테크가 괜찮은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니까, 상대방이 말을 올리면 어디를 목적으로 하는게 보입니다. 그 때부터 일방적으로 견제 당하는게 아니라, 서로 견제를 주고 받기 시작했죠.

그렇게 한동안 촐킨에 빠져 집에 오기만 하면 아레나로 2~3판 돌리고 잤었습니다. 한 10일쯤 지나자, 지금 게시판에 올려졌던 이슈가 느껴졌습니다. 자원을 다 올렸다고 생각하면, 약칠란 끝은 금 2 돌 2 옥수수 2 하면 옥수수가 8 + 6 + 2 = 16. 팔렝케 끝은 가면 9 + 3 = 12. 게임에서 명시된 자원표로 봐도 명백히 팔렝케가 손해입니다. 나무를 받는다고 치면 4개 = 8. 약칠란 1 트리만 타서 받는다고 쳐도 10. 아무리 생각해도 제작사가 뭔가를 잘못 본 것 같습니다. 그 후로는 판수도 줄었고, 접속하는 횟수도 점점 줄었습니다. 할 때마다 건물 트리만 했고, 꽤나 많이 이겼습니다. 해골 트리 가는 사람한테는 지는 경우가 거의 없었고, 건물 트리는 누가 더 빨리 달리냐, 뭐가 더 잘 깔리나의 싸움이었습니다. 하면 할수록 오프라인 촐킨마저 팔고 싶은 기분이었습니다.

이제 접을까.. 생각했던 무렵, 어떤 사람과 플레이를 했는데, 나무와 옥수수를 쌓더니, 제가 건물 트리 가는 것을 보자마자 해골 트리를 가더군요. 속으로 당연히 이기겠거니 생각했습니다. 초반에 점수 차이가 좀 났지만, 금방 좁힐 수 있겠거니 싶었습니다. 그런데 점수 차이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분명히 비효율적인 액션들인데, 마치 잘 계산된 수식 마냥 필요한 곳에 딱딱 맞아 떨어지는걸 보니 귀신에 홀린 기분이더군요. 팔렝케, 차첸이차를 끝까지 올린 상대방은 저보다 20점 가량 많은 점수로 이겼습니다. 저보고 잘 했는데, 너무 뻔한 것 같다고 하더군요.

그 후에는 다른 게임도 하고, 잠깐 보드게임에 시들하기도 하고.. 예전만큼 촐킨에 타오르진 않습니다. 하지만 언제든지 꺼내서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게임이고, 절대 팔지 않을 소장 리스트 중 하나로 남아있습니다. 그렇다면, 촐킨은 재미있지만, 밸런스가 안 맞는 게임일까요?

제 나름대로 생각한 것은 완벽하진 않지만, 납득할만한 밸런스라는 것입니다. 아그리콜라, 케일러스 같은 게임처럼요.

그 이유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1. 팔렝케 트리는 기본적으로 완벽한 자급자족을 제공합니다. 수정 해골은 약칠란에서 얻어도 되고, 차첸이차 기술에서 얻을 수도 있습니다. 옥수수는 팔렝케에서 나오고, 기념비가 아니라면 욱스말에서 지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약칠란은 필연적으로 자원 교환을 해야하는 타이밍이 몇 번 옵니다. 팔렝케도 있으면 좋지만, 약칠란에 비해서는 그 필요성이 덜 한 편입니다.

2. 사원에서 제공하는 점수가 상당히 크고, 자원도 제공합니다. 기본적으로 후반이면 모르되, 초-중반에는 팔렝케 트리가 상대적으로 올라가기 쉽습니다. 팔렝케 기술의 마지막 단계도 그렇고, 차첸이차 기술 보너스를 고려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건물 짓는 자원은 물론이고, 초반의 점수 보너스를 확보하는데도 도움을 줍니다.

3. 상대적으로 랜덤성에 의존하게 되는 약칠란은, 어떤 건물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한번의 교환으로 많은 대비를 하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다 게임이 끝나면 자원이 남는 경우가 좀 있죠. 하지만 팔렝케는 건물에 의존하는 경향이 약하고, 필요로 하는 기념비만 건지면 되기 때문에 건물 계획을 짜기가 쉽습니다.

4. 약칠란의 4번째 칸 (수정 해골)은 일부 예외(해골 테크 상대의 수정 해골 기념비용, 확장에서의 수정 해골 건물용)를 제외하고는 쓸모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후자의 경우에는 온전히 혜택을 다 받을 수 있는 팔렝케 트리에 비해, 금 2 철 2 옥수수 2를 포기하고 가기에는 아깝습니다. 하지만 팔렝케 액션은 모든 칸이 온전하게 옥수수를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분명, 약칠란도 수많은 장점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완벽히 밸런스가 맞는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5.5 : 4.5 정도는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 밸런스가 실력으로 뒤집을 수 없는 차이인가 한다면, 절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깔리는 기념비와 시작 타일을 바탕으로 좀 더 치밀하고 유연한 계획을 짜는 사람이라면, 어느 트리를 타던 승리한다고 생각합니다. 초보와 고수 차이가 아니라, 한 끗 차이의 실력이라도요.

이 정도의 밸런스 차이도 마음에 안 드실 수 있고, 이 정도가 아니라 훨씬 더 심한 밸런스 격차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으실 겁니다. 촐킨을 해보고, 그에 대해서 불평하시는 분들이라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호불호가 갈리는 게임이 있는데다, 저보다 훨씬 많이 하시고, 깊게 하셨는데도 그렇다 느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런 이슈 때문에 그냥 넘어가기엔, 촐킨이 너무나도 재미있는 게임이란 점입니다. 전 푸에르토리코가 초 고수들이 4~5턴 만에 누가 이길지 보이는 싱거운 게임이라고 생각했고, 아그리콜라는 가족 늘리기가 전부라고 생각했으며, 황혼의 투쟁은 미국이 매우 불리한 소련 버티기 게임이라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상기한 이유로 놓치면 얼마나 아까웠을지, 왜 진작 일찍 플레이하지 않았는지 아쉬울 정도로, 전부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게임들입니다. 부디, 촐킨을 안 해본 분들에게도 그렇게 될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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