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크리스마스 보드게임 수다 후기

쉐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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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6 오후 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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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저에게 연인이 없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보드게임을 하고 놀았는데, 올해는 여느 해보다 실하다는 기억이 드네요. 아무래도 올해는 방탈출 보드게임을 진하게 즐겨서 그렇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현재까지 한글판이 출시된 방탈출 보드게임을 죄다 구매했더니 우리 모임 사람들이 자기들은 공짜로 즐긴다면서 좋아하더군요. ㅎ 그 후기를 써 봅니다. 온 사람들은 닉네임이 따로 없어서 본명에서 한 글자씩을 따도록 하겠습니다.
더불어, 방탈출 게임에 대해서 내용이 좀 나옵니다만 스포일러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어떤 뉘앙스까지 피하고 싶다 하시면 여기에서 내용을 보지 않고 돌아가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1. 이스케이프 더 룸 : 닥터 그래블리 별장의 비밀

낮 1시. 시간에 맞춰서 ‘푸’가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은’이 자기 연인인 ‘동’을 데리고 왔죠. 우리는 깜짝 놀랐습니다. 커플이 크리스마스에 다른 사람들과 보드게임을 하러 오다니! 우리 모임의 기존 멤버인 저와 ‘푸’, ‘은’, 그리고 무려 크리스마스에 새로 온 ‘동’의 네 명이서 간단한 통성명을 하고 곧바로 꺼낸 게임은 바로 이스케이프 더 룸입니다.
방탈출 게임들이 출시되고 게임을 전부 다 구매해서 즐길 타이밍만 보고 있었죠. 워낙 명성은 그 이전부터 들어왔던 거라서 두근거리며 박스를 개봉했습니다. 팬데믹 레거시 때처럼 에러플을 하는 일이 없게 하려고 처음부터 아주 꼼꼼하게 규칙서를 읽는 것은 기본이었고요.
방탈출 게임에 난이도가 있다는 건 뒤늦게야 알았습니다. 처음에 플레이 타임만 보고 90-120분이라 되어 있어서 엄청 길구나 라고 생각했죠. 3-8명에 저런 플레이타임이니까 4명이면 110분이겠거니 생각하고 개봉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저희는 50분만에 클리어를 했습니다. 다들 굉장히 눈치가 빠른 편인데다, 처음 온 ‘동’이 활약을 해 줬죠. 관찰력의 ‘동’! 퍼즐 풀기에 저! 호응에 ‘은’! 허둥지둥에 ‘푸’(ㅋㅋ 물론 성격이 급한 만큼 빨리 많이 풀었습니다만 ㅋ)! 힌트는 두 번 썼고 약간의 에러플과 함께 이룬 성과였습니다만, 그 에러플이 10분 이상을 더 잡아먹을 건 아닌 듯합니다. 다만 우리가 에러를 살짝 범했던 그 퍼즐에서는 구성물이 종이가 아닌 플라스틱이었다면 가격도 많이 안 올리면서도 좀 더 정확하게 게임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더군요. 하지만 클리어 후에 리플레이가 가능하게 재조합할 수 있다는 것은 장점으로 느껴졌습니다. 모임의 또 다른 사람들에게 던져주면서 룰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게임이 있다는 건 좋은 거죠.
한꺼번에 여러 개의 퍼즐이 제시되기 때문에, 여럿이서 나누어서 퍼즐을 풀다 보니 동시 클리어가 가능했던 부분이 있습니다. 넷이서 퍼즐 하나씩 잡고 있다가 먼저 푸는 사람이 다음 사람에게 합류해서 풀어가는 식으로... 그래도 체감상으로는 그렇게 어렵지 않은 편이라고 느꼈죠. 우리의 콧대가 한국인 표준보다 높아졌습니다.

2. 엑시트 : 파라오의 무덤

파라오의 무덤을 두 번째로 고른 건 순전히 제목만 보고였습니다. 난이도가 5이며, 한글판이 나온 엑시트 시리즈 중에서 가장 높은 난이도라는 건 박스를 꺼내고 나서야 알았습니다(그래블리 별장의 비밀의 난이도를 확인한 것도 바로 이때였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래블리 별장의 비밀을 완전 엔딩으로 클리어한 바, 세상에 풀지 못할 것이 없는 전설적인 영웅의 허세를 뒤집어쓰고 파라오의 무덤 박스를 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만신창이가 되었...... 플레이타임은 2시간을 간신히 안 넘겼고, 힌트는 7번은 사용한 듯했습니다. 끝나고 확인해 본 결과 우리의 별점은 3점...... 그나마도 우리가 쓴 힌트 중에서 이미 그 힌트의 내용을 아는 거였으면 안 쓴 걸로 쳐서 그랬습니다.
중간중간에 나온 반전의 트릭에서는 한 번은 감탄을 했다가 한 번은 어거지라고 아우성치다가... ㅋ 퍼즐들이 한꺼번에 제시가 되는데 어떤 퍼즐을 풀기 위한 재료들이 다 모였는지 아닌지를 완전히 파악할 수 없고, 어떤 조합을 써야 하는지가 불분명하다는 것 때문에 체감 난이도는 더욱 어려웠습니다. 힌트를 통해 정답까지 확인해본 게 하나가 있을 정도였죠. 콧대가 정상으로 돌아오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스케이프 더 룸과의 차이점이라면 카드를 통해 퍼즐이 제시되기 때문에 스토리텔링으로서의 몰입감은 좀 아쉽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한 내용보다 퍼즐 자체의 내용이 더 많기 때문에 이야기적인 묘사들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기도 하고요. 그러나 난이도는 확실히 높아서 퍼즐 푸는 맛은 좀 더 좋았고요. 구성물을 파헤쳐서 재조합을 할 순 없지만 아쉬움은 별로 없었습니다.
한 가지 크게 아쉬운 점은, 우리가 분명 문제를 잘못 풀었는데도 조합해서 나온 번호가 정답 조합의 번호와 일치하는 조합이 있었다는 겁니다. ‘은’이 풀어서 답이 나왔다고 해서 저와 ‘푸’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정답 카드를 이때 확인했는데, 우리의 풀이가 틀렸더라구요.

3. 인질협상가 : 본판 및 범죄의 급증 확장

엑시트에서 너무 몰입했던 ‘푸’가 쉬는 동안 돌릴 게임으로 저는 인질협상가를 꺼내었습니다. 일인플 게임이지만 구경하는 맛도 있을 거라 생각했죠. 그래서 ‘동’에게 먼저 가르쳐 주었습니다. 처음 왔으나 게이머로서의 뛰어난 자질을 보여주었던 ‘동’은 금방 게임을 이해하고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은’에게 인질범의 역할을 맡겼죠. 별 거 없었습니다. 일단 세팅할 때에 인질범 관련 카드는 다 ‘은’이 뽑게 하고 난 다음에 이렇게 권했죠. 협상가가 잘못하면 비웃어라. 그리고 테러 카드를 뽑아줘라. (후후......)
그가 상대했던 적은 아케인. 아케인이 원했던 것은 돈이었습니다. 초반에 순조롭게 진행한다고 생각했으나, 두 번째로 뽑힌 테러 카드가 빨간색 테러 카드를 절반으로 줄이거나 아니면 두 장으로 줄이고 다시 테러 덱에 들어가는 카드였죠... ‘은’은 묘하게 행복해 하고 ‘동’은 고통받는 순간은 이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동’은 꽤나 선전했습니다. 테러 카드가 줄어들지 않았다면 인질을 다 구해내고 범인을 항복시키기까지 했을 겁니다. 저는 몇 번이고 “시간이 없다, 그냥 사살해라”라고 권했으나 ‘동’은 끝까지 굿 엔딩을 보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극적 사건 카드가 주사위를 굴려 나온 숫자로 위협 눈금을 맞추는 거였고, 위협 눈금이 4에서 2로 줄어들었으나 바로 이 마지막 순간에 주사위 굴림이 꽝 크리를 내면서 결국 한 명 남은 인질을 구해내지 못한 채로(여섯이나 구했는데) 인질범을 처리하지 못했죠. ‘은’이 묘한 승리감을 느끼는 것을 보고 저는 입꼬리를 올렸습니다. “이제 니가 해 봐야지, ‘은’아?”
‘은’의 게임은 생각보다 빨리 끝났습니다. 상대가 교사인 도나였는데, 인질이 무려 12명이나 되었죠. 이 열두 명은 주사위 두 개를 굴려 11이 나오면 한 명씩 죽고, 66이 나오면 한 명씩 풀려납니다. 그리고 첫 번째 테러 카드를 공개했죠. [극적 사건 카드를 한 장 골라서 덱 맨 위에 더하세요] 그리고 한 라운드가 더 지나 그 극적 사건 카드를 공개했습니다. [게임이 끝날 때까지 주사위를 1개 빼세요]
...... ?!?!?!
도나와 상대하는데 주사위를 한 개만 굴려야 한다는 사실에 ‘은’은 절망했습니다. 멍하니 게임을 하다가 “아 화난다”(장난조로)를 한 번씩 툭툭 뱉더군요. 그 옆에서 ‘동’은 어쩐지 그런 극적 사건 카드를 뽑은 대역죄인이 되어... 좋아하더군요. ㅋ
범죄의 급증의 카드들이 확실히 본판 카드들에 비해 극적인 밸런스가 강한 듯이 느껴집니다. 결국 두 명의 인질협상가들은 다들 실패하고 말았죠. 저도 여태 2판 했는데 다 실패한 걸 보면 기본 난이도는 어렵게 세팅이 되어 있는 듯합니다. 퍼즐성과 테마성이 잘 맞아 있어서 좋고, 한 게임이 빨리 끝난다는 것도 장점이죠.
‘은’은 결국 게임을 조기 정리했고, 다음 게임을 꺼내려는 사이에 우리 모임의 또 다른 인원인 ‘마’가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었죠. 쉐푸라는 별명답게 제가 김치 스파게티와 감바스를 준비하는 동안 이들은 위저드 익스트림으로 들어갔습니다.

4. 위저드 익스트림

개인적으로 트릭테이킹 게임들은 더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이 ‘위저드 익스트림’ 때문입니다. 물론 모든 게임들이 저마다의 큰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저는 그 중에서도 이 게임이 갖는 승점 시스템이 정말 빼어난 요소라고 생각하거든요. 이기는 것만 신경 쓸 것이 아니라 지는 것까지 콘트롤을 해야 하는 시스템이 이 게임의 백미죠.
한 번에 끝까지 설명하면 바로 이해하기가 살짝 어려운 규칙이기 때문에 일단 기본 규칙을 가르쳐주고 나서 게임을 시작했습니다. 다들 한 게임만에 규칙은 다 이해를 하더군요. 똑똑한 녀석들... 그래서 두 번째 게임부터 사보타지 규칙까지 알려주고 제대로 플레이를 시작했습니다.
요리하던 중간에 들어가 보니, 역시나 ‘마’가 사보타지를 쥐고 있었습니다. 그는 게임에서 이기는 것보다 재미있게 깽판치기를 즐기는 타입이라... 제가 웃으면서 말했죠. “니가 사보타지 할 줄 알았어” 그러자 ‘마’가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앞의 판에 정상적으로 게임을 했는데 내 앞에 까만 토큰 4개가 와 있더라고.” ㅋㅋㅋ
브릿지 게임의 플레이 타임에 나름의 정치한 수싸움이 필요하고, 그러면서도 남이 안 될 때마다 빵빵 터지는 파티게임적인 면모도 살짝 있는 훌륭한 게임을 참 오랜만에 돌렸네요.

5. 이스케이프 룸 – 프리즌 브레이크

위저드 익스트림으로 만신창이가 된 ‘은’이 건전지를 사와서 마침내 이스케이프 룸을 돌려 보았습니다. 별 두 개인 프리즌 브레이크를 보고 우리는 기고만장했죠. 실제로도 28분에 주파했습니다. 이 정도면 선전했던 것 같아요.
암호 해독기가 큼직한 플라스틱 덩어리라서 불필요하게 가격을 늘인 주범이라는 욕을 먹기는 했으나, 어쨌든 안에 게임이 4개가 들어 있으니 좋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적어도 프리즌 브레이크 하나만 놓고 본다면 볼륨감은 플레이타임으로도 증명되듯이 그래블리 별장의 비밀에 비해 절반 이하이긴 합니다. 풀어야 하는 퍼즐의 개수 자체가 적긴 하고요. 다만 퍼즐의 빌딩 스케일이 좀 아쉽기는 했습니다. 이미 뻔한 정보를 굳이 다시 퍼즐로 포장해 놓은 것도 한둘 있었고, 논리적으로 풀어나가기보다 넌센스식의 퍼즐도 두어 가지가 있었죠. 몰입도의 측면에서는 그래블리 별장의 비밀과 비슷한 수준이어서 좋았습니다. 갑자기 한국인 이름이 나와서(그런데 안에 있는 사진에는 외국인이 나와 있어서) 좀 느낌이 뜨아하긴 했지만 말이죠. ㅋ
이스케이프 룸의 제일 큰 장점은 재구성을 하는 것 이상으로 출력물로 리플레이가 가능하다는 것이겠죠. 하지만 그게 크게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기본적으로 퍼즐의 구조도를 이미 알고 있는 한 풀어가는 것에서 얼마나 차이를 줄지는 아직 안 해봐서 잘은 모르겠네요. 솔직히 방탈출 게임의 리플레이를 생각하는 것부터가 “아이고 의미 없다”라는 느낌이긴 합니다.

6. 엑시트 : 연구실의 비밀

난이도 4.5였죠. 4.5와 5라는 이 0.5의 난이도 차이는 위대한 것이었습니다... 파라오의 무덤보다 확실히 쉬워졌더군요. 방탈출 게임 꽤나 한다는 “마”가 합류한 것도 있긴 했으나, 아무튼 플레이 타임은 57분으로 줄었습니다! 힌트도 하나 썼는데, 우리가 필요한 카드를 다 가졌나 확인하는 차원에서 한 개 쓴 거라 안 쓴 거나 다름이 없어서 별 10개로 훌륭하게 마감했습니다. 퍼즐로서의 만듦새는 확실히 엑시트가 이날 해본 게임들 중에 가장 좋았다고 생각해요. 게임이 끝나고 과감하게 버리는 맛도 좋았고... ㅎ

**********

방탈출 게임 덕분에 상당히 즐거운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동’은 특히나 위저드 익스트림에서 ‘은’에게 [검은 보석]을 계속 선물했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했으나 다행이 그날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ㅋㅋ
저와 ‘마’, ‘푸’도 솔로이지만 외롭지 않은 크리스마스를 잘 보내었으니 이제 연말 연초도 기대됩니다.
저는 전날 했던 디스 워 오브 마인의 상흔을 이날 모임으로 씻어내기도 했고요... ㅋㅋ(디스 워 오브 마인은 정말 힘겹더군요... 자세한 후기는 나중에 ㅎㅎ)

* 덧붙임
데드라인 한글화 자료와 각종 패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특히 디스 워 오브 마인은 수정할 게 좀 있겠더라구요. 취합되는 것들부터 제가 찾은 것들까지 해서 12월 31일에 다 같이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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