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출내기 보드게임 개발자의 고뇌 -1

데카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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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5-11 오전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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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로 할지, 단편으로 할 지 모르겠어서 일단 ‘1’이라는 타이틀을 붙여놨지만, 개인적인 소망으로는 고뇌가 끝나서 1편으로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아무튼 각설하고,

이 모든 고뇌가 시작된 것은 작년 8월쯤이었습니다. 같이 모임을 하던 동생이 ‘보드게임 공모전이 있는데 한번 해보는 것은 어떠냐?’라고 제안했었죠. 그리고 만들어본 여러 게임들... 초등학교 때 공책으로 게임을 만들었던 게 생각나서 그래, 한번 만들어보자 하고 시작을 했었는데 만드는 과정 자체가 너무 즐거워서 어느덧 수 많은 프로토타입을 양산하고 있더군요... 물론 대부분은 완성되지 못했지만요ㅎㅎ

그러던 와중에 머릿속에서 “일꾼배치 게임을 만들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아서, 결국 일을 저질렀고, 그렇게 Age of Faith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그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프로토타입 아무개”였죠ㅎㅎ

(초기 제작 노트의 사진)

당시 세 가지 게임을 테스트를 해봤는데, Age of Faith의 경쟁작은 카탄의 자원시스템과 과거 너무 재미있게 했었던 마리텔레콤의 비운의 명작 “단군의 땅”을 테마로 한 ‘아사달’, 그리고 인기 웹툰인 덴마를 테마로 한 ‘덴마 더 퀑’이었습니다.

비운의 게임 시리즈 - #9 최고의 웹툰에 대한 오마주, 덴마 더 퀑(Denma The Quanx): blog.naver.com/sazabi84/50191781056

비운의 게임 시리즈 - #10 배달민족의 이동 역사를 그린 게임, 아사달(Asadal): blog.naver.com/sazabi84/50191782154

저희 모임의 맴버였던 저스틴 군의 집에서 Age of Faith를 처음 돌려봤는데, 그 때 느낀 느낌을 도무지 잊을 수가 없습니다. 밸런스나 룰 부분에 여러 문제가 있었는데도, 2시간 반이 넘게 걸리는 게임을 내리 3판을 하면서 밤을 샜었거든요. 3판의 게임을 하고 나서 동생의 한 마디. “형 이거는 진짜 될 것 같아요.” 그 말에 자극 받아 저희 3명은 ‘우노마스게임즈’라는 오묘한 이름의 회사를 차리고, 자본금 3백만원으로 보드게임 업계에 뛰어들게 되었던 것입니다...

처음에 했던 느낌이 너무 좋았어서, 게임성에 대해서 어떻게 보면 자만심을 가졌던 것 같기도 합니다. 여러 모임에 찾아가면서 테스트플레이를 하기도 하고, 내부적으로도 숱하게 테스트를 진행하면서, 역시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패널테스트를 진행하게 되었고, 15부의 프로토타입을 만들면서 정말 일주일을 꼴딱 새기도 했었죠. 3명이 모두 제각각 낮에는 일이 있어서, 주경야겜새벽겜(생각하시는 그건 절대 아닙니다!)의 심정으로, 속으로는 “이건 미친 짓이야”를 외치면서도 결국 15부를 다 만들었습니다. 제가 눈물이 많은 사람이기는 한데 15부를 모두 부치고 나서는 진짜 눈물 찔끔 나더군요.

패널 테스트로도 지속적으로 피드백이 들어오고 있어서, 이대로 가면 아주 늦어도 6월 중에는 더 완성도 있는 게임을 선보일 수 있다는 생각에 기대가 됩니다. 다만, 지금껏 제가, 또 저희가 게임을 만들면서 생각하고 느껴온 고뇌들을 공유하면, 좋은 읽을거리가 되지 않을까 싶어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잡설이 길었네요 ㅜㅜ)

#고뇌 1. 재미란 어디에서 오는가?

제가 유달리 고민이 많은 캐릭터라서, 보드게임을 처음 만들 때부터 했던 고민은 “대체 게임의 재미는 어디에서 오는가?”였습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처럼 선문답적인 질문에 도무지 답을 찾기가 어렵더군요. Age of Faith 일전의 수 많은 프로토타입들도 어떨 때는 재미가 있고, 어떨 때는 재미가 없었습니다. 국민게임 스타크래프트도 재미있을 때가 있고 재미없을 때가 있으니까요. 특히 AOF의 테스트를 진행하면서, 어떤 날은 테스터 분들이 너무 재미있게 게임을 즐겨주시고, 어떤 날은 좀 지지부진한 감이 없지 않아서, 여러 번 멘붕이 왔었습니다ㅎㅎ 지금은 많이 면역력이 강해졌는데 (우리 아이 면역력에는 역시 홍x장군!), 대체로

1) AOF의 재미는 여러가지 테크트리를 타면서 다른 플레이어들과 상호작용을 하는 것인데, 이 부분이 부족하면 대부분 재미가 떨어졌다.

2) 게임의 초반 진입장벽이 조금 있는 편인데, 진입장벽을 잘 극복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런 결과가 나오더군요... 아무래도 AOF를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개인보드와 메인보드로 시스템이 이분화되어있기 때문에, 테크트리를 타는 메인보드에 집중을 하기가 어려운 면도 있더군요. 가장 많이 들어왔던 피드백은 “너무 할 게 많아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와 “랜덤성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플레이를 하기가 어렵다”였습니다. 이 중 앞의 피드백은 이렇게 이분화된 시스템이 가장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AOF를 안 해보신 분들에게는 좀 안 와 닿으실 수도 있는 부분인데, 개인보드와 메인보드를 모두 갖춘 게임들인 ‘빌리지’, ‘러시안 레일로드’, ‘쓰루 디 에이지스’를 예로 들자면, 세 게임은 개인보드와 메인보드 중 어느 부분에 집중해야 할지가 딱 정해져 있는 반면에 AOF는 이 부분이 명확하게 구분이 안되었던 것이죠. 빌리지는 테크트리가 메인보드에 있는 반면, 러시안 레일로드와 쓰루 디 에이지스는 테크트리가 개인보드에 집중되어 있죠. AOF는 메인보드와 개인보드에 각각 테크트리가 존재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아까와 같은 의견들이 나왔던 것 같습니다. 좀 더 부연설명을 하자면,

AOF의 테크트리는 주로 메인보드에서 이루어집니다. 러시안 레일로드나 빌리지와 비슷한 테크트리가 메인보드에 그려져있기 때문인데, 각 테크트리에 접근하는 방법이 제 각각이고, 랜덤성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랜덤하게 뽑히는 장인들을 통해 테크트리를 탄 다는 점이 특징이죠.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다뤄보겠습니다) 대부분의 테스트 게임에서 관찰되었던 사항이, 테크트리를 타는데 사용되는 ‘큐브’가 메인보드에 많이 올라올수록 반응이 좋았고, ‘개인보드’의 자원이나 건물에 집중할수록 재미가 떨어지더군요.

즉, ‘테크트리를 타는 것’이 AOF의 재미요소인데, 다른 부분들이 재미요소를 느끼는데 방해로 작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진입장벽으로의 역할도 하고 있었으니까요. 이 부분을 해결하면 정말 완성도가 확 올라갈 것 같은데, 게임을 완전히 리뉴얼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저를 엄습하고 있습니다ㅎㅎ 그러나 두려움을 극복해야겠지요...

결국 ‘재미요소’도 중요하지만 ‘재미요소’를 전달하는 방법도 무척이나 중요했다는 결론입니다. 게임의 복잡성이 ‘재미요소’를 오히려 가리고 있었던 셈이죠. 어떻게 고쳐나가는지가 관건이지만, 분명히 좋은 방법이 있을 것 같습니다.

#고뇌 2. 랜덤성이란 독인가 약인가?

이 부분에 대해서도 너무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랜덤성은 리플레이성을 어느정도 보장하는 보증수표이지만, 대신 전략게임이나 일꾼배치 게임과 같이 효율적인 움직임이 중요한 게임에서는 테스트 해주신 분들에게 불편한 점으로 다가오는 것 같더군요... 특히, 랜덤성을 극복할 수단이 없어서 하려던 플레이가 무너지거나, 감점을 당한다던가 하는 부분은 크게 단점으로 부각될 수도 있었던 부분입니다. 일반적으로 랜덤성은 캐쥬얼 게임에서 보통 부각되고, 전략게임과 같은 헤비한 게임에서는 최소화되기 마련인데, 저희 게임은 복잡하고 매니아 분들에게 어필하고자 만든 게임임에도 불과하고 랜덤성이 무척 강하게 부각되었었죠...

그래서 랜덤성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들을 했습니다. 원래는 각 플레이어가 카드를 뽑으면, 그 카드 중에서만 액션을 고를 수가 있었는데, 다른 플레이어의 카드에도 돈을 주면서 들어갈 수 있는 식으로, 액션의 폭을 넓혔습니다. (개리님의 아이디어가 주요했죠ㅎㅎ 감사합니다) 또한 건물이나 각종 기능을 통해 랜덤성을 보완할 수 있는 수단을 배치했죠. 물론 이렇게 해도 완전히 꼬이는 게임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게임이" 꼬이는 결과는 막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의문이 한 가지 듭니다. 랜덤성이 무조건 나쁜 것인가? 이것에 대해서는, "통제할 수 없는 랜덤성은 나쁘다"라고 확실하게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통제할 수 없는 랜덤성은" 무조건 나쁠까요?

가끔씩 아이패드로 게임을 받아서 하고는 하는데, "Inflation RPG"라는 게임이 무척 재미가 있더군요ㅎㅎ 전투는 자동으로 진행이 되었는데, "크리티컬"과 "일반 공격"의 공격력 차이가 무척이나 크다 보니까, "크리티컬"이 뜨지 않으면 적에게 패배하게 되고, 무척 화가 나더라구요. 즉, "통제할 수 없는 랜덤성"이 좌절감을 불러일으켰던 것입니다.

반면, 다른 플레이어와 어떤 게임을 하는데, 상대방이 주사위를 던질 차례이고 만약 6이 나오면 간발의 차로 제가 지는 상황이었다고 가정을 해봅시다. 이 상황에서 상대방이 6이 나온다고 해서 좌절감을 느낄까요? 사실 앞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상대방의 주사위는 "통제할 수 없는 랜덤성"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좌절감보다는, 비교적 나오기 힘든 확률이 나왔기 때문에 "재미있는 경험"으로 남을 가능성이 큽니다.

위의 두 예만 비교해보아도, 무조건 "통제할 수 없는 랜덤성"이 나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두 경우의 차이는 결국 "통제할 수 없는 랜덤성"이 다른 사람과 연관되었느냐, 아니면 시스템과 연관되었느냐입니다. 어떻게 보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통제할 수 없는 랜덤성에 대해 상대방을 비난할 수가 없는게 아닐까요? 마치, 정부는 욕하면서도, 자신과 친분이 있는 고위 공직자(이런 사람이 있다면 ㅜㅜ) 앞에서는 그런 얘기를 쉽게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겠죠.

이처럼, 어느 것 하나도 명확한 부분이 없습니다. 어떤 공식이 있어서, 그런 공식대로 게임을 만들면 재미가 있다! 이랬으면 좋겠는데, 결코 그렇지 못한 것이 게임을 기획하시는 분들이 모두 풀어야할 숙제가 아닌가 싶네요...

고민의 세계로 함께 빠지보시렵니까?

아직 타이틀을 발매한 적도 없고, 준비하고 있는 단계에 있는 풋내기 게임 개발자가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사실 웃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 하고 있는 고심은, 어느 개발자 못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이런 부분들을 함께 공유해보고 싶었습니다. 긴 글 재미있게 읽어주셨다면 감사드립니다^^ 혹시나 저와 함께 고민의 세계에 빠져보실(?) 분은 언제라도 환영합니다!ㅎㅎ 물론 추천드리고 싶지는 않네요 어흑흑(ㅜㅜ)

언제나 감사드리고, 부족한 게임 열심히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쁘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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