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 천일야화 리뷰 - 스토리텔링의 천상계 [Revisited]

너굴너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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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4 오후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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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매년도 : 2009년

게임 타입 : 스토리텔링, 주사위

플레이 타임 : 120분

플레이 인원 : 1 – 6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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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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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이라는 장르를 대단히 좋아하는 저는 어떤 게임이든 ‘스토리텔링’이 들어가있다면 반드시 해보는 편입니다. 정말 호불호가 갈리는 옛날옛적에부터, 극도로 혐오하는 주사위 전투 시스템이 들어간 마이스앤미스틱 & 던전앤드래곤즈 & 패스파인더를 거쳐, 전 세계의 게이머들에게 극찬을 받는 타임스토리즈까지 정말 안해본 게임이 없지요.

그러나 그 수많은 스토리텔링 게임 중 단 하나의 게임만을 꼽으라면 전 반드시 천일야화를 선택하겠습니다. 고민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타임스토리즈 따윈 이 게임에 비하면 새발의 피나 다름 없으니까요.

오늘은 서론이 조금 길었네요. 바로 리뷰로 들어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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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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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야화는 광활한 대륙과 바다를 돌아다니며 일정한 이야기 점수 + 운명 점수를 모아야 하는 스토리 텔링 게임입니다.

각 플레이어는 3가지 특수 능력과 함께 게임을 시작하며, 총합이 20이 되는 범위 안에서 목표 이야기 점수과 운명 점수를 비공개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7의 이야기 점수와 13의 운명 점수를 고를 수 있겠지요. 이렇게 각 플레이어마다 서로 다른 목표치를 가짐으로써 이야기가 언제 끝날지 예측할 수 없게 됩니다.

물론 각 플레이어는 자신만의 퀘스트를 하나씩 가지고 시작합니다. 이것은 열심히 돌아다니며 무언가 목표로 할 것을 제시하는 것일뿐 반드시 완료해야 하는건 아닙니다.

플레이어는 자신의 턴이 되면 자신의 부(Wealth) 트랙을 확인한 뒤 이동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동이 끝나면 조우(Encounter) 카드를 한장 뽑아 이벤트를 해결하게 됩니다.

이벤트 카드는 다양한 종류가 존재하며 대상 / 지역 / 시간(낮/오후/밤) 에 따라 다른 이벤트가 발생합니다. 이렇게 특정 대상을 만나게 되면 플레이어는 행동 참조표를 보고 자신의 반응을 선택할 수 있죠. 공격 / 질문 / 돕기 / 훔치기 / 따라가기 / 피하기 / 기다리기 / 마시기 등 행동의 종류는 대단히 다양합니다.

이렇게 행동을 결정하면 다른 플레이어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 지 참조표를 통해 확인하고 책에서 해당 이야기를 찾습니다.

물론 이야기조차 운명 주사위를 통해 +- 1 을 가감하기 때문에 한 게임에서 같은 이야기를 두 번 만나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게다가 같은 이야기를 마주치더라도 해당 플레이어가 가진 기술 / 상태 / 아이템에 따라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에 모든 플레이어가 자신만의 여정을 겪어나간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야기에 따라 이야기와 운명 점수를 받기도 하고 잃기도 합니다. 때로는 행동을 선택해야 하는 일도 있지요. 이렇게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평소엔 갈 수 없는 미지의 지역을 탐험하고, 수많은 괴물과 싸우기도 하며 게임을 진행하다가 자신이 목표로 삼았던 이야기 & 운명 승점에 도달한 채,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 되는 바그다드에 도착하면 승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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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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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임을 처음 접한건 2년 전이었습니다. 그리고 2년이라는 시간동안 단 한번도 이 게임을 싫어했던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하면 할 수록 천일야화가 품고 있는 수천가지 이야기를 더 알고 싶다는 욕구만 더 생겨났죠.

제가 겪었던 여행이야기를 짧게 들려드릴까요?

저는 무기 / 재치 / 연기 & 변장이라는 기술을 가진 평범한 청년이었습니다. 어느날 죽어가는 노인을 발견하고 어쩌다 이런 일이 생긴건지 묻기로 하죠. 그 노인은 죽어가는 목소리로 자초지종을 설명해주었고 저는 그 노인의 경험을 통해 지혜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 여행지에선 변장한 거지를 만나게 되죠. 무언가 질문을 하면 또 다른 지식을 얻을 수 있을거라 생각하며 거지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알고보니 변장한 채 시내를 돌아다니는 술탄(왕)의 장남이었습니다. 이런 놀라운 경험을 한 저는 주변 사람들에게 놀랄만한 썰을 풀 수 있는 스토리텔링 기술을 얻게 되죠.

지혜와 스토리텔링 기술을 배운 저는 산골짜기에서 큰 뱀이 꽈리를 튼 채 쿨쿨 자는걸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뒤에 여성이 잠들어 있는걸 발견하죠. 무언가 잘못 되었음을 직감한 저는 무기 다루기 실력을 뽐내며 뱀의 머리통을 베어냅니다. 그리고 잠들어있다 깨어난 여성의 눈물을 닦아주죠. 아직도 두려워 하는 여성을 위해 동굴에 함께 남기로 하며 둘은 사랑에 빠집니다. 그리고 저는 이 여자와 결혼하기로 결정하죠.

다음 여행길에서 저는 함정에 빠진 이프리트 발견합니다. 그리고 도와주면 좋은 물건을 주겠지? 하는 욕심에 이프리트를 도와주기로 결정합니다. 그러나 이프리트를 풀어주는 순간 천둥같은 목소리가 들려오며 저를 꾸짖습니다. 죄를 짓고 저주를 받았던 이프리트 였던거죠. 그를 풀어준 댓가로 제가 저주를 뒤집어 쓰게 됩니다.

게다가 우연히 다음 여정길에서 만난 것은 화난 이프리트. “이 놈이 그 놈이구나!” 싶기도 하고 저주를 뒤집어 쓴게 억울하여 매섭게 공격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러나 애초에 클래스가 다른 이프리트는 가볍게 저를 제압하고 제 사지를 부숴대기 시작합니다. 고통에 찬 비명을 들으며 즐거워하던 이프리트는 저를 남겨두고 유유히 떠나죠. 이렇게 전 장애인이 되고 맙니다.

저주에 씌인데다 장애인이 되어버린 저는 3명의 장님을 만나게 됩니다. 동질감이 들어 말을 걸어보니 자신을 도와주면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하네요. 흔쾌히 받아들이고 도움을 구할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해주기로 합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 길이 바뀌는 바람에 우리는 길을 잃고 미아가 되어버립니다. 3명의 장님은 제게 괜찮다며 눈을 잃은 이유를 설명해주죠. 그리고 자신들의 눈을 잃게 만든 그 아이템을 제게 넘겨주고 자기들 끼리 길을 떠나버립니다. 혼자 미아가 되어버린 저만 내버려 두고요.

매 턴마다 이런 말도 안되는 반전의 반전이 벌어지기 때문에 천일야화가 주는 중독성은 정말 엄청납니다.

제가 천일야화를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세가지만 짚어보지요.

1.엄청난 볼륨의 이야기

천일야화는 약 2300개 정도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게다가 각 이야기가 가진 분기점을 생각해보면 어림잡아 3500개 정도라고 생각할 수 있겠네요. 이것만 해도 정말 놀랍지만 어떤 이야기를 경험하는 가는 무작위로 결정됩니다.

어떤 이벤트냐에 따라 조우 방식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특정 시간에, 특정 장소에서, 특정 인물을 만나, 특정한 상태여야 하고, 특정한 스킬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이야기 번호에 1을 가감할 운명의 주사위의 결과가 완벽하게 일치 해야 같은 이야기를 두 번 경험할 수 있습니다. 불가능하죠.

물론 같은 이야기를 맞닥뜨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의 결과가 똑같은건 아닙니다. 자신이 가진 스킬과 갈림길에서의 선택에 따라 또 다시 이야기가 바뀌기 때문이죠.

제가 지금까지 해본 어떠한 게임도 이러한 볼륨 & 스케일의 이야기를 담아내지 못했습니다.

2.내다버린 권선징악

제가 스토리텔링 전략게임 어보브 앤 빌로우에서 가장 아쉬웠던 것 중 하나는 지루한 권선징악 패턴의 이야기였습니다. 착한 일을 하면 보상을 받고 나쁜 일을 하면 벌점을 받았죠. 이런건 동화책에서나 먹히는 패턴입니다.

천일야화는 그런 지루하기 짝이 없는 권선징악 패턴을 내다버렸습니다. 가증스럽게 착한척 하는 플레이어의 팔다리를 부러뜨리고 성별을 바꿔버립니다. 쓸데없는 관심과 친절에 짜증난 도적들은 당신을 두들겨 패거나 보물을 훔쳐가지요. 이프리트를 풀어주면 저주를 받기도 하고, 때론 친구를 도우려다 실수로 되려 죽여버리기도 합니다. 나서도 되지 않을 일에 나서다가 일을 망쳐놓고 우울함을 얻기도 하죠.

그러나 모든 이야기가 이렇게 반전을 가진건 아닙니다. 어떤 일은 권선징악 패턴을 착실하게 따르고 있죠. 용기를 내서 구해낸 아름다운 공주와 결혼을 하기도 하고, 온갖 고생 끝에 아름다운 바다속 궁전에서 권력을 누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플레이어들은 ‘이번엔 착한 일을 할까 / 나쁜 일을 할까 / 그냥 방관할까’ 사이에서 끊임없는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한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모험을 아주 잘 그려내고 있죠.

3.즐거운 주사위

천일야화도 주사위를 통해 다양한 결정을 내립니다. 어떠한 성격의 캐릭터인지,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가끔 성공 체크를 위해 쓰기도 하죠. 그러나 어느 주사위 굴림도 기분 나쁘지 않습니다.

성공하면 성공하는 대로 재미난 이야기가 진행되고 실패하면 실패하는 대로 재미난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이죠. 친구들이 겪고 있는 사건사고를 구경하는 것도 아주 즐겁지만, 그만큼 빨리 내 차례가 되어 주사위를 굴리고 싶은 마음도 큽니다. 굴림 하나하나가 새로운 이야기를 펼쳐주기 때문에 이렇게 주사위 굴리는게 재밌는 게임도 없거든요.

다만 이 게임은 딱 한가지 장벽 때문에 수 많은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게 됩니다.

1. 능숙한 영어 실력 필요

영어. 이 단점 하나가 ‘3인 베스트’ / ‘귀찮은 참조표 보기’ 같은 작은 단점을 다 씹어먹습니다.

천일야화가 플레이어들에게 요구하는 영어 능력은 어마어마 합니다. 영어를 즉석에서 읽고 바로 해석해야 부드러운 진행이 될 뿐만 아니라, 다양한 구어체 및 천일야화의 배경이 되는 중동 문화에 대한 약간의 지식도 필요합니다. 독특한 괴물의 이름처럼 고유명사 같은 것이 해석에 발목을 잡기도 하며, 그쪽 문화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종교인 / 옷 / 음식 등을 보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모자라 평소에는 보기 힘든 동사와 어투도 자주 쓰입니다. 물론 전체적인 내용의 맥락을 통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있지만, 영어에 충분히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등장 인물들의 미묘한 행동 / 반응을 충분히 느낄 수 없죠. 저도 해외 생활 13년차이지만 아직도 ‘이런 단어도 있어?’ 하며 사전을 뒤져보는 일이 허다 합니다.

정말 환상적인 게임입니다. 게임을 끝낼 때마다 모든 플레이어가 자기만의 신나는 모험 이야기를 만들게 돼요. 너무나 개성 강한 이야기들 뿐이라 가장 재밌었던 이야기를 꼽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이 게임에 인터액션이 너무 부족하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그러나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친구들이 성별이 뒤바뀌고, 사람들을 도와주다 ‘넌 뭔데 끼냐’며 두들겨 맞고 못생겨거나, 마법사에게 깝죽대다 크게 혼나거나, 동료에게 배신 당하는걸 볼 때마다 ‘푸하하하ㅡ 꼴 좋다!’ 하고 마음껏 비웃기도 하고, 제 캐릭터가 착한 일을 하다 감옥에 갇혀버리면 친구들이 ‘너 거기서 언제 나와? 용돈 좀 보내줄까?’ 하고 놀리는 그 과정 자체가 너무 즐거워요. 게임 속에서의 직접적인 인터액션은 없지만,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 이야기에 반응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인터액션이라 봅니다.

어떠한 스토리텔링 게임도 이 게임만큼 다양한 이야기 경험을 주진 못합니다. 종종 내 아이들과 함께 천일야화를 즐기는 모습을 상상하곤 합니다. 과자와 음료를 쌓아놓고 서로가 겪어나가는 모험담을 흥미진진하게 즐기는 것만큼 행복한 천국도 없겠지요.

제게 있어 퍼즐계에 부동의 1위가 리코쳇 로봇이라면, 천일야화는 스토리텔링 게임계의 부동의 1위입니다. 앞으로도 이 게임을 앞지를 수 있는 스토리텔링 게임은 절대 나오지 않으리라 자신할 수 있습니다.

원문 :: www.raccooncave.com/tales-of-the-arabian-ni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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