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전쟁/다섯군대전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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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11 오전 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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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눈팅만 하다가 처음으로 보라에 글을 쓰는 새내기입니다. 인사를 대신해 간략한 리뷰를 남겨보려 합니다. 대상 게임은 반지전쟁과 다섯군대전투입니다.

아시다시피 반지전쟁은 보드게임긱의 테마게임 순위에서 거의 10년 동안 1위를 지켜온 명작입니다. (지금은 팬데믹 레거시, 스타워즈 리벨리온에 밀려 3위입니다.) 명성을 듣고 덜컥 구매했는데 주변에 반지전쟁을 아는 사람은 없고 룰북은 뉴비 라이트 게이머인 제게 너무도 두꺼웠습니다. 덕택에 3년 가까이 게임을 소장만 했습니다.

그런데 2014년에는 다섯 군대 전투라는 게임이 나오더라구요. 반지전쟁의 시스템을 간소화시킨 수작이라는 평을 듣고 또 선뜻 질렀습니다. 두 게임을 소장하고 있으려니 새로운 고민이 생겼습니다. 어떤 것을 먼저 플레이해야 할까???? 이 고민 때문에 또 몇 년을 허비했습니다(-_-) 그러다 최근에야 용기를 내 두 게임을 차례로 해봤습니다. 혹시나 저처럼 두 게임을 소장만 하고 계시던 분, 혹은 두 게임 중 무엇을 구매할지 고민하시던 분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리고자 감상을 적어보려 합니다.

두 게임은 행동주사위 시스템을 차용했습니다. 자유민족과 암흑군단을 맡은 플레이어들이 각각 주사위를 굴리고 거기에서 나온 눈에 따라 번갈아가면서 행동을 합니다. 이게 전부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어떤 주사위가 어떻게 나왔을 때 어떤 행동을 할 수 있는지만 알아도 두 게임을 하는 데 무리는 없습니다. 문제는 잔룰입니다. 가령 반지전쟁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중간계의 지도에 익숙하고, 8개 국가의 이름과 심볼을 알고, 11명의 영웅(동료)의 생김새, 그리고 그 영웅들이 어떤 능력이 있는지를 섭렵해야 합니다.

잔룰은 가령 이런 식입니다. 김리와 보로미르, 레골라스는 군대의 전투력을 높여줍니다. 다만 이들은 원정대에서 별다른 역할을 못합니다. 반면 간달프, 성큼걸이, 메리아독은 원정대에서 길잡이를 맡을 때 각자의 능력을 발휘합니다. 성큼걸이는 나중에 아라고른으로 변신(?)할 수 있습니다. 만약 원정대의 동료가 전멸하면 골룸이 길잡이가 됩니다. 골룸의 능력은... 이런 식의 룰의 연계가 끝없이 이어집니다. 그래서 처음 게임을 할 때는 참조카드와 룰북을 계속 뒤적이게 됩니다. 저는 비교적 어릴 때부터 삽화가 섞인 톨킨 책을 읽고 영화도 여러 번 본 편입니다. 그래도 게임을 처음해볼 때는 어디가 곤도르고 어디가 이센가르드인지, 각 나라의 심볼은 뭐고 영웅들의 역할은 뭔지 계속 헷갈리더라구요. 아마 영화만 보신 분들은 더더욱 적응이 힘드실 것 같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다섯군대전투가 반지전쟁보다는 잔룰이 적습니다. 맵이 작고, 등장하는 국가도 적고, 국가를 상징하는 문양도 없고, 영웅들의 능력도 비교적 간소합니다.(다만 전투처리는 쪼~~~~~금 더 복잡합니다.) 그렇다 해도 웬만한 유로게임보다 잡다한 숙지사항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네, 두 게임의 잔룰은 악명이 높습니다. 그럴 만합니다. 그런데 이 잔룰들은 게임을 더욱 실감나게 만들어 줍니다. 원정대의 동료들에게 각각의 특수한 능력이 없었다고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소설(영화)에서 봤던 캐릭터들의 개별성이 사라져버릴 겁니다. 반지전쟁 때 간달프와 김리, 피핀의 능력은 다르고, 그들이 맡은 역할 역시 서로 달랐습니다. 게임의 잔룰은 그런 원작을 구현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그 잔룰로 인해 다채로운 전략이 가능해지는 것은 부수적인 효과에 가깝습니다.

이 점에서 반지전쟁 시리즈는 함께 잔룰의 대명사로 불리는 메이지나이트(이하 메나)와 구별됩니다. 제 생각에 메나의 잔룰은 테마구현의 장치가 아닙니다. 가령 수도원은 마을과 뭐가 다르고, 던젼과 성의 몬스터는 어떻게 다르고, 각각의 지형은 어떤 효과를 지니고, 각각의 캐릭터는 어떤 스킬을 가지는지... 등은 세계관을 표현하기보다는 게이머에게 고민할 요소를 만들어주기 위한 요소에 가깝습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복잡해지는 상황 속에서 계속 최적의 수를 고민하게 만드는 유로게임에 복잡성을 더하게 만들어 줬지요. 반면 반지전쟁/다섯군대전투는 어디까지나 테마게임입니다. 모든 잔룰은 실감나게 중간계를 구현하는 소품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톨킨과 피터 잭슨의 작품을 재미있게 읽은 사람들에게는 잔룰을 익히는 일조차 즐거울 수 있습니다.

물론 중간계에 별 관심이 없었던 사람에게 이런 작업은 피곤할 따름일 것입니다. 저는 테마를 빼놓고 시스템만 본다고 해도 반지전쟁/다섯군대전투가 괜찮은 게임이라고 봅니다만, 톨킨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이 복잡한 잔룰을 ‘공부’하는 것은 아무래도 비효율적입니다. 그 정도 시간과 공을 들이면 얼마든지 다른 좋은 게임들을 많이 배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만큼 밸런스를 맞추면서도 섬세하게 원작을 재현한 게임을 저는 알지 못합니다. 최근에 핫한 스타워즈 리벨리온조차도 영화의 세계관을 충실하게 따왔을지언정, 원작의 전개를 그대로 축소시켜 놓았다는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차라리 원작의 세계관에서 벌어졌음직한 곁가지 서사를 게이머가 스스로 만들어가게끔 해준다는 느낌에 가까웠죠. 저는 중간계를 다룬 두 게임이 메나나 리벨리온보다 낫다고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다만 원작에 대한 충실도의 측면에서 볼 때 이것들이 여느 게임과 비교해도 독보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중간계 이야기에 매료된 적이 있으시다면 반지전쟁/다섯군대전투는 꼭 한 번 쯤 도전해보시기를 추천 드리고 싶습니다.

이어서 두 게임의 차이점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두 게임의 핵심적 차이는 제목에 암시되어 있습니다. 반지전쟁의 핵심이 전쟁(War)이라면 다섯군대전투는 전투(Battle)입니다. 클라우제비츠는 두 개념을 명확히 구별했습니다. 전투가 단체로 결투를 벌이는 일이라면, 전쟁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설계된(그러나 우발적인 사건들로 인해 가변적 결과를 불러올 수밖에 없는) 행위입니다. 전투는 전쟁의 수단 중 하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가령 세계대전 때를 생각해보세요. 동부전선, 서부전선, 북아프리카전선 등에서 수많은 전투가 일어났습니다. 전투의 지휘관들은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적을 섬멸할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반면 전쟁을 총괄하는 원수들의 조금 더 스케일이 큰 고민을 할 필요가 있었을 겁니다. 어느 전선에 병력을 집중할까? 이 전선에서는 적을 섬멸하는 것보다 그냥 참호로 버티기만 하는 게 효율적이지 않을까? 적국의 장군 중 매수할 수 있는 사람이 있나? 전면전을 펼치는 동안 국내의 경제는 유지될 수 있을까? 이런 고민들은 ‘전쟁’과 관련된 것입니다.

다른 예를 들어볼까요?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의 목표는 베트남 정권의 붕괴였습니다. 베트남의 목표는 자립적 생존이었죠. 베트남은 미국의 군사력을 따라잡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이 연달아 ‘전투’에서 승리해도, 그러니까 많은 베트남인을 죽여도 베트콩들은 버텼습니다. 시간이 흐르자 미국 내에서 반전여론은 커져가고 정치적 문제로 비화되면서 미군은 철수했습니다. 한국에서는 베트남 전쟁을 미국의 승리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역사학계에서는 미국의 패배로 보는 게 정설입니다.(황투에서 베트남 전쟁을 표상하는 ‘진창’ 카드의 효과를 떠올려보세요...) 베트남인들이 아무리 많이 죽었다고 해도, 정치적 목적을 달성한 것은 베트남이었거든요.

다시 이야기를 돌아오겠습니다. 전술과 전략이라는 용어의 차이만큼 두 게임의 양상도 다릅니다. 다섯군대‘전투’는 암흑군대랑 자유민족이 싸우는 게임입니다. 다만 암흑군대의 군사력은 엄청나게 세고, 자유민족에게는 병력은 허약합니다. 암흑군단은 자유민족을 최대한 빨리 섬멸해야 합니다. 몇 턴이 지나면 ‘숙명트랙’이 올라가면서 자유민족에 새로운 영웅들이 등장하고, 숙명트랙이 끝까지 가면 자유민족이 승리하게 됩니다. 게임의 승패는 몇 턴 안에 암흑군대가 자유민족의 거점들을 빼앗을 수 있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각 플레이어는 어떤 지역을 먼저 침략할지, 어떤 지역을 중점적으로 방어할지 등을 주로 고민해야 합니다.

반면 반지‘전쟁’은 좀 더 양상이 복잡합니다. 우선 등장하는 국가가 8개나 됩니다. 처음에 이 국가들은 전쟁에 참여를 안 합니다. 전쟁 중인 국가만 병력을 소집할 수 있기에 플레이어들은 각각 자기편의 국가들을 전쟁 상태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국가들을 전쟁상태로 만들려면 상당히 많은 액션이 소모됩니다. 여기서 플레이어에게는 선택이 강요됩니다. 어느 나라부터 전쟁 상태로 만들지, 어떻게 하면 전쟁상태가 아닌 국가를 선제공격할 수 있을지 등등에 대해서요. 다른 고민거리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반지원정대에 여러 동료들이 동행하면서 원정대가 ‘타락’하는 것을 막아줍니다. 하지만 그들은 원정대에서 이탈해서 다른 병력에 합류하면 군사로서의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자유민족 쪽에서는 언제 어떤 동료를 원정대에서 이탈시킬지에 대해서도 고민을 해야 되겠죠.

더 근본적인 측면에서 접근해봅시다. 반지전쟁의 목표는 전투의 승리/방어가 아닙니다. 자유민족은 절대반지를 파괴해야 승리합니다.(물론 암흑군대의 영토를 점령해서 이길 수는 있습니다만, 그러기는 몹시 힘듭니다...) 개별지역의 전투는 원정대가 반지를 파괴할 시간을 마련할 수단에 불과합니다. 자유민족 게이머는 다섯군대전투를 할 때처럼 어떻게 전투를 벌일지를 고민할 뿐 아니라, 전투(주로 방어)에 얼마나 많은 행동을 소비할지도 고민해야합니다. 그의 궁극적 목표는 단순히 전쟁에서 버티는 게 아니라 자신의 목적(반지원정대의 완주)을 이루는 것이니까요.

이렇게 볼 때 두 게임은 제일 먼저 목표의 규모 측면에서 차이가 납니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을 이기기 위한 병법을 ‘전략’(Strategy)이라 부르고, 전투를 이기는 병법은 ‘전술’(Tactic)이라 명명했습니다. 그렇다면 반지전쟁은 전략게임, 다섯군대전투는 전술게임이라 불러도 무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 둘 중 어느 쪽이 우월하다고 말하기는 힘듭니다. 반지전쟁 쪽이 더 복잡하기는 합니다. 그만큼 게임을 할 때마다 다양한 양상이 펼쳐지기도 하구요.

다섯군대전투는 결국 암흑군단이 자유민족의 어느 도시부터 공격할지의 여부를 제외하고는 대동소이하게 진행되는 게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다섯군대전투가 열등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공격/방어의 연속일 뿐이라 할지라도 주어진 주사위의 눈금 속에서 최대의 효율을 뽑아내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긱을 보면 다섯군대전투를 수 십 번은 해본 사람들은 게임에 고정된 전략이 존재하지 않으며 매순간 임기웅변을 잘해야만 승리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아 말합니다. 요컨대 반지전쟁이 총체적인 운영을 고민하게 만든다면, 다섯군대전투는 그보다 조금 더 타이트한 틀 속에서 최적화의 방법을 강구하게끔 강요하는 게임입니다. 시스템은 유사하지만 이만큼 미묘한 차이가 있는 게임들이니, 시스템의 취향에 따라(그리고 무슨 게임의 원작이 인상 깊었는지에 따라) 원하는 게임을 선택하고 플레이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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