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의 저택 2판, 1판에서 무엇이 달라졌나

쉐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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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9-25 오후 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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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앱을 결합시킨 보드게임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편이었습니다. 번거롭기만 할 뿐이지 특별할 것이 있을까 생각했죠. 보드게임은 아날로그라는 다소 보수적인 생각이 작용한 것도 없지 않겠습니다. 광기의 저택 2판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도 부정적인 견해였습니다. 1판처럼 키퍼와 조사자와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이 빠진 광기의 저택이 무슨 재미이겠는가 하는 거였죠. 그리고 광기의 저택 2판이 출시되었습니다. 해보신 분들 평이 좋아서 궁금하기도 했고, 앱과 보드게임의 결합을 체험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에 구입해서 한 번 테스트 삼아 돌려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소감을 1판과 2판 비교기의 느낌으로 적어볼까 합니다.

-편리한 세팅과 맵 제너레이팅

1판에서 가장 불편한 것은 세팅입니다. 저는 보통 키퍼로만 플레이를 했는데, 광기의 저택 보드 세팅에만 20분 가까이 걸립니다. 일일이 지도를 맞게 놓았는지 확인하고 아이템 위치 결정하고 그러는 동안 플레이어 세팅도 하고, 시나리오 세팅에 조건 확인하고...... 제가 가진 게임을 통틀어서 세팅에 가장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것이 이 게임입니다(메이지나이트보다, 패스파인더 카드게임보다 번거로운 세팅......). 그도 그럴 것이 세팅을 잘못 해 버리면 게임 자체가 잘못되어 버리기 때문에 신중함이 필수입니다.

2판은 이런 부담을 덜었습니다. 게임을 시작하면서 필요한 수준의 지도만 깔고 시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시작이 굉장히 빠릅니다. 불편하게 아이템을 올릴 필요도 없죠. 이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이, 1판에서는 모든 지도를 다 깔아놓고 아이템을 다 올려놓고 시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즉, 플레이어들이 전체적인 저택의 형태나 필드의 양상을 미리 보고 행동을 결정하게 됩니다. 그러나 2판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지도가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확장될지 모르는 것은 게임의 긴장감까지 달리합니다.

-키퍼의 부담과 에러 가능성 줄이기

이 게임의 시작과 끝이라 할 수 있는 키퍼에게는 그만큼 막중한 역할이 부여되어 있습니다. 세팅은 물론 게임 진행에서까지 키퍼가 잘 하느냐 못 하느냐가 게임의 재미를 좌우합니다. 키퍼는 게임의 모든 룰을 세세하게 다 이해한 사람이어야 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구성물을 언제 어느 타이밍에 쓸 수 있는지 등에 대해 늘 파악을 해두고 있어야 합니다. 광기의 저택을 하려는 사람들 중에는 아마 키퍼를 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못하겠다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키퍼가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각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되는지는 어플이 알려줍니다. 문을 열고 한 칸 더 간다라든가 퍼즐을 얼마나 한다든가. 한 퍼즐을 서로 다른 플레이어가 진행하면서 들고 옮기거나 자리를 바꾸는 등의 불편도 없습니다. 일정 부분의 규칙을 앱에 의지하는 만큼 에러의 가능성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앱의 개입 수준

앱에 의존하는 부분은 괴물과의 전투 처리, 신화단계의 효과 처리, 퍼즐 데이터 저장, 지도 상의 특이사항 표시 등입니다. 즉, 게임을 진행하는 중에 누적되거나 변동 가능한 데이터의 요소들이 앱으로 처리됩니다. 캐릭터가 어떤 조합의 행동을 어떻게 진행했는지 등은 앱에 반영되지 않습니다. 이는 보드게임이 보드게임으로 남아 있을 영역에 대한 하나의 조율이라고 생각합니다. 좀더 정확한 처리를 위해서라면 어느 캐릭터가 어떤 장비를 가지고 있는지, 어디까지 이동했는지 등이 나와야겠지만 그건 그것대로 사실은 더 번거로운 양상이 될 수 있겠죠.

그렇기 때문에 게임 진행에 있어서 1판에서처럼 역동적인 개입이 되지 않습니다. 1판에서는 키퍼가 플레이어의 이동 양상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행동하는 중에 개입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예를 들어, 한 플레이어가 복도에서 서재로 들어가서 아이템을 조사하려고 했는데, 서재로 들어서는 순간 키퍼가 신화 카드를 사용하면서 외치죠. “잠깐~~ 서재에 있는 플레이어에게 이상한 일이 생깁니다~” 그러나 앱은 조사자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조사자의 현재 체력도, 이상상태도 모두 카드로 표시하지 앱으로 표시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화카드의 구현 방식이 “라운지에 조사자가 있다면 그들 중 가장 의지력이 약한 조사자가 피해를 받습니다. 라운지에 아무도 없다면 그냥 무효입니다.”라고 하는 형태이죠. 키퍼와 조사자 사이의 타이트한 긴장감과 심리전은 2판에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협력 게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고질적인 단점 중 하나인 적당한 타협이 불가능했던 1판과는 달리, 승리를 위해 적당히 아이템을 바꾸거나 주사위 굴림을 새로 하는 등의 타협도 2판에서는 가능합니다.

-시나리오의 다양성과 리플레이성

앱에는 기본적으로 4개의 시나리오가 제공됩니다. 일단 가장 짧은 시나리오를 두 번 해봤는데, 지도와 아이템 출현 위치의 변경은 있었으나 완전히 동일한 구성의 시나리오를 두 번 했습니다. 1판에서는 기본판에만 다섯 개의 시나리오가 제공되고 각 시나리오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가 하는 디테일한 스토리가 2-3가지씩 제공됩니다. 대신 지도가 고정된 형태이죠. 그러니 1판에서는 똑같은 지도를 두고 약간씩 서로 다른 전개를 느낄 수 있다고 하자면, 2판에서는 지도가 랜덤해지는 대신에 스토리 전개가 동일한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과연 어느 것이 리플레이성이 높냐고 묻는다면, 저는 2판이라고 하겠습니다. 비록 이야기는 좀 더 단조롭기는 하지만 적어도 한 판이 끝나고 새로 시작할 때의 정리와 세팅이 간편하다는 점, 솔로 플레이도 가능하다는 점 등의 장점이 리플레이성을 확실하게 해 줍니다.

-컨버전 키트와 1판 구성물

2판 안에는 기본적인 컨버전 키트가 있습니다. 이 컨버전 키트는 1판을 이미 보유한 사람들이 2판의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해 놓은 것입니다. 1판의 빅박스(기본판, 금단의 연금술 확장, 야생의 부름 확장)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앱의 추가 설정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1판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1판 기본판이나 2판 ‘거듭되는 악몽’ 추가 컨버전 키트(1판 기본판의 구성물을 2판용으로 만든 컨버전 키트)를 설정하면 앱에서 ‘Dearly Departed’라는 시나리오를 추가로 즐길 수 있습니다. 1판 ‘야생의 부름’ 확장이나 2판 ‘억눌린 기억’ 추가 컨버전 키트(야생의 부름의 구성물을 2판용으로 만든 컨버전 키트)를 선택하면 앱에서 ‘Cult of Sentinel Hill’이라는 시나리오를 추가로 즐길 수 있습니다. 또한 각 1판의 캐릭터와 지도 구성물을 모든 시나리오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2판 안에는 1판의 캐릭터에 해당하는 조사자 시트와 괴물 타일, 그리고 인물 토큰(야생의 부름에 있는)이 들어 있습니다. 2판을 즐기기 위해 1판에서 가져와야 하는 구성물은 조사자 피규어, 괴물 피규어, 지도 타일이 전부입니다(이것들이 2판용 추가 컨버전 키트에 들어 있는 구성물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괴물 피규어가 관리가 어렵고 보기도 귀찮아 괴물 타일을 바로 쓰는 쪽이라서 조사자 피규어와 지도 타일이 전부이네요. 참고로 1판 ‘금단의 연금술’ 확장에 따르는 추가 시나리오는 없고 대신 캐릭터와 지도 타일만 모든 시나리오에 같이 쓸 수 있는 정도입니다.

-영어의 난이도

카드나 구성물은 어떻게 한글화를 한다고 하더라도 앱의 영문을 어쩌겠냐고 할 수 있겠죠. 영어를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사람 한 명만 있으면 90% 이상은 그냥 할 수 있습니다. 플레이버 텍스트들을 실감나게 읽지는 못해도, 대략적인 내용만 정확하게 번역할 수 있으면 되죠. “갑자기 지축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방의 벽에서 균열이 일어납니다. 먼지가 일고 파편이 머리 위로 떨어집니다. 부상 카드 3장을 뒷면이 보이게 받으세요”라고 읽으면 실감나겠지만 “집이 흔들려서 파편이 떨어집니다. 부상 카드 3장을 뒷면이 보이게 받으세요”라고 한다고 해서 진행을 못할 건 아니니까요. 플레이버 텍스트는 읽기 난이도가 조금 있습니다.

1판에서 없던 시스템 중 하나가 ‘미치다(insane)’라는 요소입니다. 한 조사자가 자신의 정신력 수치만큼의 광기 카드를 받으면 그는 미치게 됩니다. 무작위로 ‘미치다’ 카드를 한 장 뽑게 되는데, 그 뒷면에는 그 캐릭터만의 고유한 승리 조건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즉, 미친 캐릭터는 다른 플레이어와는 다른 방식으로 승리할 가능성이 생깁니다. 이건 그 캐릭터를 조종하는 플레이어만 읽고 파악해야 하는 거니 적어도 ‘미치다’ 카드에 대한 한글 구성물이나 번역 자료 정도는 있어야 원만하게 플레이할 수 있겠지요.

-총평

그래서, 어느 쪽이 더 좋냐고 저에게 물으면 지금의 저는 2판이 더 좋다고 하겠습니다. 게임을 하기 위해서 방대한 양의 영문 텍스트를 미리 읽을 필요가 없으니까요. 게임 자체의 재미는 단연 1판입니다. 그러나 게임 자체의 재미가 압도적으로 뛰어난 것이 아니라면, 세팅의 번거로움은 플레이 의욕을 반감시키는 요소라는 점을 이번 2판을 통해서 깨달았습니다. 광기의 저택 1판은 한글화 자료가 다 있지만 나머지 빅박스 확장은 룰북을 말고 구성물 한글화 자료가 없기 때문에 영문을 읽고 해야 한다는 조건이 동일하다면 그때그때 읽고 바로바로 할 수 있는 2판쪽이 더 편리합니다.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모임이라면 진행하기가 좀 어려울 수 있습니다. 단지 몇 체크를 하세요 정도 이상으로 영문 지시가 있기도 하거든요(예를 들어, 괴물의 사정 거리 밖으로 도망칩니다 등). 시나리오의 양이 적은 건 분명하지만 앱으로 나오는 만큼 FFG 측에서 얼마든지 시나리오는 보완해줄 수 있겠죠(하지만 최강의 장사꾼인 FFG가 그럴리가 없겠죠...... 분명 추가 시나리오에만 쓸 수 있는 구성물을 포함시켜서 판매하겠죠...... 그리고 저는 하염없는 FFG의 노예......)

이미 한 번 플레이를 마치고 나서 제가 가진 모든 확장의 지도 타일과 조사자 피규어를 2판 박스 안에 모으기로 결정했습니다. 시간이 많다면 야생의 부름 확장의 한글화 자료를 만들 생각도 있었지만 아마 10월 말까지는 바쁜 데다가 10월 말이 되면 나올 아컴 호러 카드게임을 바로 구매해서 한글화 자료를 만들어야 할테니 말입니다. 무엇보다, 앱으로 하는 2판에 대해 아쉬움이 별로 없네요. ㅎ 충분히 재미있습니다. 기본 시나리오로 두 게임을 했는데 두근거림이 꽤 오래 가네요. 할 수 있는 분은 꼭 해보시라고 권해 드리고 싶네요.

*추가 1. 현재 보드라이프 자료실에 보면 엘케인님께서 올려 놓은 "미치다" 카드 번역 자료가 있습니다. 역시 빠르고 대단하시네요~

*추가 2. 앱 의존도가 높아서 맵 타일이나 다른 구성물이 필요 없지 않느냐는 의문을 보이는 분이 있으셨는데, 거의 플레이가 안 된다고 봐야 합니다. 일반 아이템과 같은 거의 대부분의 구성물의 세부적인 내용은 앱에서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마법 주문도 마찬가지이고, 맵 타일이 없으면 캐릭터 피규어 위치 표시도 할 수 없으니 말이죠.

*추가 3. 방금 쪽지에 대해 답변을 하던 중 발견했습니다. 2판의 추가 컨버전 키트 중 "억눌린 기억" 추가 컨버전 키트는 1판 "야생의 부름" 확장뿐만 아니라 "금단의 연금술" 확장의 구성물까지 다 포함한 것이라 합니다. 말하자면 "거듭되는 악몽"이 1판 기본판 구성물의 추가 컨버전 키트라면 "억눌린 기억"은 1판 빅박스 화장 구성물의 추가 컨버전 키트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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