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함께한 데드 오브 윈터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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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9-14 오전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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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앞서... 올 초부터 저는 올해 플레이한 게임들의 리스트를 엑셀로 정리해두고 있습니다.

사실 작년 말에 시도해보려고 했던, 한해동안 했던 많은 게임들 중에서 최고의, 최악의, 이것저것 여러가지 이유를 갖다 붙인 저 나름의 시상식을 준비하려고 했던 거였는데, 적어놓은 게 없다보니, 놓치는게 많아서 내년으로 미뤄두었었지요.

아무튼, 그런 이유로 연초부터 게임 모임에 나가서 게임을 할때마다 계속 리스트를 버젼업 하고 있습니다.

아직 연말이 되지 않아서 쉽게 결정하긴 이르긴 합니다만, 지금까지로 보면, 저에게 있어서 올해 최고의 게임은 '데드 오브 윈터 : 크로스로드 게임' 한글판이 차지하게 될 것 같네요...

사실, 개인적으로 플레이했을 때보다, 아이들이 플레이하는 걸 지켜보면서, 감독 역할 (이러저러한 관리자 역할)을 했을때, 훨씬 더 멋진 결과가 나왔고, 무엇보다 그 과정이 한편의 드라마를 방불케 했으니,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였지요...

제가 이 게임을 최고로 치는 가장 큰 이유는 게임의 결과가 앞서 각 플레이어들의 행동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기사 어느 전략게임들 중에 안그런게 있느냐?고 반문하실 수도 있지만, 전략적인 선택의 결과에 따른 연결이 아니고, 앞서 사소하다고 생각하고 넘어갔었던 것들, 무시하고 넘어갔었던 것들이 결국 게임의 승패에 커다란 역할을 했다는 것에 있습니다.

왜, 좋은 게임들은 게임이 끝나고 나면, 앞선 플레이들을 복기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잖아요...

저는 왠만한 전략게임들을 하면서, 그런 걸 해본 적이 별로 없는데... (기껏해야 다음에는 이러이러한 것들을 좀 챙겨야겠구나... 정도지요..)

아이들과 함께 한 데드 오브 윈터는 게임이 끝난 후, 아이들과 20~30분 정도, "아까 이렇게 저렇게 했어야 했네?" 라던가 "아까 왜 이러저러하게 하지 않았어?"라던가... 라는 식으로 복기를 하고 있는 모습을 어렵잖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건 정말이지 '보드게임 수업'을 진행하는 사람으로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 아닐 수 없지요.

제가 생각하는 이 게임의 최대 약점은 바로 '배반자의 승률'이 지나치게 높다는 겁니다. (미칠만큼 운이 없지 않은 이상 도저히 질 수가 없습니다.)

이때문에 심지어, 배반자의 승률을 낮춰줄 만한 하우스 룰을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하우스 룰은 별거 아닙니다. 원래 데드 오브 윈터는 한 플레이어가 모든 액션을 완전히 마친 후, 다음 플레이어가 하게 되어 있는데, 그런 식으로 하지 않고, 선 플레이어부터 시계방향으로 각 플레이어는 오직 하나의 액션 (주사위를 사용하는 액션이건, 사용하지 않는 액션이건 상관없습니다)만을 플레이하면서, 차례대로 돌아가면서 플레이 하는 겁니다.

배반자가 마지막 플레이어 인 경우, 게임을 망치기가 너무 쉽기 때문에 생각해낸 고육지책이지요.

(크로스로드 카드의 경우, 모든 플레이어가 동시에 왼쪽 플레이어의 크로스로드 카드를 뽑고, 내 왼쪽 플레이어의 턴에 조건이 성립하면 하는 걸로... 이렇게 하면, 크로스로드 카드가 너무 강력해지기는 하지만... 뭐... 이정도는 감당할만하다고 생각됩니다.)

시간 상으로는 어제네요...

어제 지역아동센터 아이들과 함께한 데드 오브 윈터의 과정을 한번 복기해보겠습니다.

저는 이 게임을 설명할때, 아이들에게 좀비 드라마를 찍는 과정이라고 설명하는데...

어제 게임(드라마)의 제목은 "배반자의 불운"입니다.

사실, 첫번째 게임을 4인플로 시작했었는데, 첫 라운드에 경찰서의 마지막 칸에 도착한 플레이어가 좀비를 잡다가 물려 죽는 바람에 연쇄물림으로 3명이 사망... 이건 도저히 게임을 계속할 용기가 나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어차피 중간에 아이들이 새로 좀 더 도착했기 때문에 과감히 첫 게임을 포기하고, 5인플로 다시 게임을 시작하기로 합니다. 시간 관계상 캐릭터는 그대로, 공동목표도 그대로... 대신, 남은 시간이 얼마 안되는 관계로 배반자가 들어가면, 게임이 금방 끝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처음으로 배반자를 넣고 게임을 하기로 합니다.

게임의 공동 목표는 2개의 덱을 완전히 소모시키는 미션입니다.

첫 라운드부터 한명이 추방에 대해 언급합니다. "어라~ 뭐지? 뭔데, 벌써부터 추방을 주장하는 걸까??" 오히려 이것때문에 추방을 외치는 그 한명이 배반자로 몰리게 됩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배반자일 것 같다고 해서 함부로 쫓아낼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게임은 서로서로 도와가며, 그럭저럭 잘 흘러갑니다.

라운드 마커가 3라운드가 되었을때, 드디어 게임을 끝나기 위한 라운드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좀비만 잘 피하고, 배반자만 활동하지 않는다면 말이죠..)

일단 가장 중요한 위협 카드는 4라운드를 진행하는 동안, 실패시 오는 패널티가 생각보다 크지 않기 때문에, 3번의 라운드 동안, 포기했습니다. 다만, 넘치는 식량카드를 묻는 위협 카드만 해결했습니다.

현재의 게임 상황은 겨우 아슬아슬하게 게임이 유지되고 있는 지경입니다.

캐릭터는 1명밖에 죽지 않았지만, 위협 카드를 3번 포기했기 때문에, 사기는 그다지 높지 않습니다.

게다가 경찰서를 거의 다 뒤져가는 상황인데도, 총은 3자루 밖에 게임판에 있지 않습니다. (심지어 이때문에 누군가 총을 들고서 내려놓지 않는다는 의심도 있어왔습니다.) 덕분에 좀비가 바글바글 합니다.

식량 상황도 그렇게 좋지 않습니다. 현재 경찰서와 마트를 집중적으로 탐색하는 중인데, 도대체가 마트에서도 2~3짜리 식량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라고 마트를 탐색 중인 플레이어는 주장하는 중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까 첫라운드부터 추방을 언급하던, 플레이어가 집에 가봐야 한다는 겁니다. (지역아동센터라서 시간이 되면, 집에 가야하는 친구가 있거든요..)

게임 도중에 1명이 빠지게 생겼지만, 늦게와서 함께 진행하던 다른 친구가 있었기 때문에, 그 친구에게 맡기고, 원래 하던 친구는 집에 가게 됩니다.

갑자기 메인 캐릭터를 맡게된 다른 친구는 게임을 완전히 익힌 상태가 아닙니다. 주사위를 사용하는 과정 정도는 여태껏 보아오던 게 있으니 충분히 따라갈 수 있지만, 문제는 늘 그렇듯이... 한글로 써있지만, 그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는 "개인 목표 카드"에 있었습니다.

결국 아무리 봐도 개인 목표카드의 의미가 이해가 안간다는 그 친구로 인해, 게임의 관리자 정도에 머물며, 카드의 의미를 모를 경우, 설명해줘야 하는 위치에 있는 제가 그 친구의 개인 목표를 확인해봅니다.

"2. 배반자가 있을 경우, 배반자를 추방한다."

그렇습니다. 이 친구는 중간에 들어왔기 때문에, 배반자가 무엇인지 전혀 몰랐던 겁니다. (사실 저도 이 카드를 처음 봐서, 이런게 있는지 아예 상상도 못했었습니다. 그러니, 추방을 주장하는 친구를 배반자가 아닐까 의심할 수 밖에 없는 거지요.)

그러고보니, 첫 라운드부터 추방을 외쳤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군요... 바로 이해가 됩니다.

자, 일이 이쯤되니, 난감해졌습니다. 현재까지는 그 누구도 배반자 플레이를 하지 않았거든요...

게임에서 배반자가 없다면 상관없지만, 배반자가 있다면, 그게 누구일지, 상상할 수도 없는 상황인 겁니다.

그나마 딱 한명, 한차례 바보짓을 해서 우리를 어이없게 만든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정도는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이라는 것으로 충분히 이해하고 넘어갈 수준이었던 겁니다.

결국 저는 선택을 그 친구에게 완전히 맡깁니다.

"니가 누군가를 추방 투표에 올리는 것은 상관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추방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이 추방에 반대할 수도 있는 거니까..." 라고요...

하지만, 결국 결정적인 한마디를 하게 됩니다. "어차피 시간도 많이 지났고, 개인적으로 이 게임을 하면서, 배반자를 만나본 적이나, 추방당한 플레이어를한번도 만난적이 없기 때문에, "그냥 미친척 하고, 한명 골라서 추방해볼까?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긴 하다." (즉, 앞서 말한 배반자가 유리한 상황이라는게 진짜 그런건지 궁금해진 것이죠.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실제로는 겪어본 적이 없으니까요..)

이 말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물어보니, 다들 나름의 이유가 있더군요. ㅎㅎㅎ) 원래대로라면 추방을 안하는게 맞는 상황에서 네명의 플레이어가 추방에 동의하게 됩니다. (결과를 보고 저도 놀랐어요...)

그런데, 그런데.... 놀랍게도 그 추방된 플레이어가 무려... 어처구니없게도... 바로 "배반자"였던 겁니다.

사실 여기까지만 해도, 아직 게임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상황이라 애매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이게도 이번 라운드가 마지막을 확률이 높은 상황이고, 무엇보다도 추방된 배반자가 가장 마지막 플레이어였다는 겁니다.

즉시, 추방당하지 않은 모든 플레이어는 계획을 세우기 시작합니다.

일단 각자의 목표를 확인합니다. 공교롭게도 현재 "2. 배반자가 있을 경우, 배반자를 추방한다."는 목표를 가진 플레이어만 개인 목표를 완성한 상황입니다. 한명은 손에 약이 하나 부족하고요. 한명은 손에 '총'이 하나 부족합니다. 1명은 그냥 웃고만 있군요... 믿는 구석이 있나 봅니다.

약이야 뽑으면 된다지만, 문제는 '총'입니다.

게임의 공동목표가 2개의 덱을 소모하는 것인데, 우리가 현재 달려가고 있는 것은 경찰서와 마트거든요... 경찰서에 남아있는 카드는 달랑 두장, 심지어 총이 필요한 그 플레이어는 경찰서에 있지도 않습니다.

우리의 최종 계획은 각자 필요한 아이템을 모아서, 피난기지로 전부 복귀하는 겁니다.

이것도 쉬운 것은 아닙니다. 왜냐면, 이동하다가 충분히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추방당하지 않은 플레이어의 캐릭터 12명 중에서 무려 5명이 부상 토큰 2개를 달고 있는 상황입니다.

만약, 배반자 플레이어가 마지막 플레이어가 아니었다면, 배반자에게 맞아죽을 수도 있는 상황인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결국 사기가 떨어져서 지게 되겠죠.

하지만, 앞서 밝혔듯이, 저희는 무려 3개의 위협카드를 무시하며 달려왔습니다. 심지어 게임의 목표가 카드 더미를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손에 온갖 카드들이 넘쳐납니다. 모든 이동을 연료로 해결하며, 카드를 뽑았고, 도서관 사서의 힘으로 뽑은 경찰서 도면 아이템으로 마지막 경찰서까지 탐색을 마쳤는데...

아까 적기를 경찰서를 엄청 털었는데, 총이 적다고 했잖아요... 바로 마지막에 묻혀 있었던 거지요. 결국 '총'까지 손에 넣게되어 개인 목표를 이룹니다.

또한 약이 필요한 플레이어는 아이템까지 포함하여 주사위를 총 5개 굴릴 수 있기 때문에, 병원에서 탐색만 해도 충분한 상황입니다.

결국 모든 플레이어가 자신의 개인 목표를 이루고, 피난 기지로 복귀하였습니다.

배반자의 개인 목표를 보니, 아이템만 잘 모으면, 충분히 개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더군요. 문제는 주사위가 모자르다는 것... 한번에 2장을 뽑는 아이템이라도 있다면 시도해보겠지만, 그런 캐릭터가 없어요...

아니, 사실은 있었습니다. 그런 캐릭터가...

그런데, 아까 무시하기로 하고 넘어갔던, 위협카드 중 실패시 '사기 1 하락, 그리고, 자신의 가진 캐릭터를 왼쪽사람에게 넘기기'를 하는 과정 중에 부상을 2개 입은 바로 그 캐릭터를 왼쪽사람에게 넘겨버렸던 겁니다. (이때까지는 아직 추방이 이루어지기 전이었습니다.) 즉, 자신도 이길 수 있던 기회가 스스로의 선택으로 날아가 버린 것이죠.

또한, 원래 배반자가 이기기 쉽다고 계속 외쳐대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위협카드를 해결하고자 할때, 방해하기가 너무 쉽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희는 무려 3번을 포기했습니다. 그러니, 카드도 소모하면서, 실패로 이어지게 만드는게 가장 좋은 배반자 입장에서는 기회가 너무 없었던 것이죠.

심지어, 게임 외적인 요소도 있습니다.

앞서 밝혔듯이, 저희가 게임을 하다가 중간에 접고 다시 한 거잖아요... 사실 이때, 처음 나눠준 초기 아이템을 전부 회수하여 나눠 줬어야 하는데, 카드를 회수하여 나눠주다보니, 카드가 비더라고요. 왜그런가 따져보니, 다음 게임에서 배반자를 맡았던 아이가 자신의 카드를 돌려주지 않았던 겁니다. 그러니 카드가 모자랄 수 밖에요. 결국 계속 갖고 있던 초기 아이템을 그대로 가지라고 하고, 나누어줬던 카드를 다른 친구에게 넘기게 되었던 것이죠.

문제는 바로 이렇게 받게된 카드가 자신의 목표와 전혀 상반되는 카드였던 겁니다. 즉, 카드만 제대로 나누어졌다면, 배반자도 충분히 승리를 공유할 수 있었던 거였는데, 또다시 본인 스스로 승리를 걷어차 버린 것이죠.

마지막으로, 어떤 식으로 승리를 거둘 수 없는 배반자는 최후의 수단, 공격하여 사기를 없애는 (그리하여 모두가 지게 만드는) 방법을 고민하게 됩니다.

캐릭터 이동의 특성상, 한 라운드에 한번의 이동만 가능하기 때문에, 카드를 떨어뜨리려는 목적으로 이동하였던 캐릭터는 피난기지로 가지 못하고 남아있게 됩니다. 그렇게 남아있는 캐릭터는 2명... 현재 사기도 2... 심지어 남은 캐릭터의 부상 정도는 하나는 부상 1, 하나는 부상 2, 배반자가 가진 주사위는 정확히 3개...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런데, 배반자의 불운은 끝이 없습니다. 하필이면, 주사위 눈이 3,2,2로 공격을 두번만 시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마침 손에 가지고 있는 잡동사니 카드 (주사위 하나를 재굴림 할 수 있습니다.) 원래는 자신의 개인 목표를 위해서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현재 그게 불가능한 상황이라 과감히 사용하기로 합니다. 안되는 놈은 뭐를 해도 안된다고, 재굴림 결과는 "1".... "아~~ 망했습니다."

더 웃기는 건, 뭔지 아십니까? 이전 라운드에서 배반자는 탐색으로 주사위 눈을 1 높여주는 아이템을 뽑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별로 쓸모없다고 생각하여 버리고, 새로운 카드를 뽑았습니다. 역시나 스스로 걷어찬 기회였다는 것이죠.

결국 게임은 추방당하지 않은 4명의 플레이어는 승리를, 추방당한 배반자만이 유일하게 패배하는 결과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역대 이렇게 흥미진진했던 과정과 결과는 정말이지 처음이었던 것 같네요.

(오죽하면, 이렇게 후기를 남길 정도일까요... ㅎㅎㅎ)

물론 이런 과정이 늘 나오는 것은 아닐겁니다. 그러나, 한번 이런 과정을 맛보고 나면, 정말이지 '다시 한번'을 외칠 수 밖에 없습니다.

2주후, 바로 그 친구들과 데드 오브 윈터 한번 더 하기로 했습니다. 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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