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어? 컬렉터?
보드게임에 첫발을 들인게 얼추 10년이 되어가는듯 합니다...^^;
물론...극초반에는 여기저기 모임에 마구 얼굴 들이밀고 밤샘도 종종 했던거 같은데...
같은 취미를 가진사람들이 저마다 다 다른 생각인지도...보드게임 모임을 다니면서 알게 되었죠...^^;
제가 자주 어울리던 분들은...말그대로 한 게임 한 게임 승패(?)에 연연하기보단,
플레이하는 시간동안 서로 딴지걸고 희희덕거리면서(돌이켜보면 그 게임을 한건 기억나는데 누가 1등을 했는지는 서로 기억을 못하는...)
킹메이커 역할(?)을 주로 하던 패거리(?)들이었던거 같습니다.
그러다 당시 최고 핫게임이던 AOS(에이지 오브 스팀)를 돌렸는데...그게 제겐 큰 분기점이었던거 같네요...
머리에 스팀 팍팍 오는 전략적인 게임인만큼...사전정보 없이 마냥 플레이 하고 싶은 마음에 패거리 + 다른 분들과 돌렸는데...
전략적인 플레이를 즐기는 분들에게...킹메이커(?) 패거리들의 전~혀 전략적이지 않은 플레이가 해가 된거죠...
당시 게임을 마치고 복기를 하면서 왜 거기서 그렇게 했냐? 그 부분에선 이러저러하는게 더 큰 승점 or 돈을 벌 수 있는데...
라는 대목에서 당황스러움과 제법 큰 미안함이 들었습니다...
(전혀 나무라시거나 투닥투닥 분위기는 아니었지요 ^^; 이해의 폭이 넓은 분들이었기에 플레이 성향차에 따른 더 큰 미안함을 느끼게 되는거죠)
그 무렵 저와 놀아주던 플레이어들의 목표(?)라면...1등을 하자가 아니라 당신보다 앞서면 된다...였달지? ^^;
전략적인 게임을 즐기면서 한 수 한 수, 내 테크트리를 타면서 머리 속의 계획이 구체화되는 기쁨보다는...
그저 내가 너에게 딴지 놓고 그 딴지탓에 쭉 미끄러지는 그런 너...가 좋았던 거고...(너의 불행 = 나의 행복)
그런 투닥투닥을 즐겁게 주거니받거니 하던...파티플레이 성향이 더 컸던거 같습니다...
30대중반이 넘어가니 대부분 가정이 생기고, 육아며 직장에서의 폭풍업무들이 너도나도 쌓여서...
자연히 얼굴도장 찍는 횟수가 줄어들게 되고, 책장을 채운 보드게임 중에 개봉노플이 넘쳐난 지도 오래입니다...
이젠, 게임을 구입하면서, 받아보고 정리하면서, 룰북을 읽으면서...
머리 속으로 제가 즐거웠던 때, 그 플레이메이트들을 소환해서 영화 [선생 김봉두]의 자폐플처럼 즐기는거 같네요...
친구 A는 이 선택에서 분명 이렇게 하겠지?
친구 B는 당연 그 다음 턴엔 저렇게 할거야...
친구 C는 꼴찌를 하고 나면 게임박스를 슬쩍 패대기 치면서 안해!안해! 를 남발할테고...
날이 좋아지고 이젠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해지면서, 책장정리를 하다...
언젠가 한번 돌리겠거니 하고 구입하고 잊어버린 밀봉 엘그란데(오래 전이라 10주년이 아닌 본판)를 찾아냈습니다. -_-;
당시엔 참 구하기 어려웠던 게임인데...어찌어찌 구입해놓고 새로운 게임들에 밀려 구석에 자리잡았던가 보네요...
나이드니 얼굴철판깔고 새로운 모임에 들이대는 것도 쉽지 않고...
취향이 다른 사람들과의 플레이에서 자칫 얼굴 붉히는 것도 피하고 싶고...
그렇게 책장가득 채운 보드게임들을 보니 플레이어에서 컬렉터가 된지 오래지만...^^
보드게임이 좋은건...한참을 쉬었다가 언제고 다시 돌려도 낯설지 않은 그런, 아날로그 감성이랄지...
크든 작든 보드판 하나 펼치고, 카드와 승점칩들 만지작, 일러스트에 대해서도 몇 마디...
그리고 그런 순간순간 누군가의 실수, 누군가의 탁월한 선택...또 누군가의 명대사~!
요즘 아이돌들의 노래는 휙휙 지나가서 기억도 못하지만,
당시 가수-특히 멤버들 공히 좋아하던 고 김광석 및 8090 세대-들의 노래라도 배경음으로 틀어두고
얼마 전 본 영화평, 동료나 선후배의 이야기를 거쳐 애인과 배우자흉(-_-;)도 곁들이면서 얼굴 도장 찍고 싶네요...>_<
사람들이 제각각 말하고 추천하고 기억하는 좋은 게임...재미난 게임들은 수도 없이 많지만...
돌이켜보면, 제게는 위로 5살, 아래로 12살을 넘나들던...내 취향과 엇비슷해서 즐겁게 어울릴 수 있는 플레이메이트...
그들과 돌렸던 모든 게임이 다 좋은 게임, 즐거운 게임이 아니었나 싶네요...
(그래서 역시 보드게임은 사람? ^^; & 사랑...-_-?)
보드게임이란걸 통해서...
온라인보다 오프라인이 더 살가운걸 알았고...(당연한 거지만...^^;)
순간순간의 수많은 선택들을 하면서...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하는...틀림이 아니라 그저 저마다의 다름인 것도 배웠고...
디지털의 속도감과 대비되는, 오로지 사람들 각자 시간과 공을 들여야만 맛볼 수 있는 아날로그의 투박하지만 잔잔한 따스함...
저런 것들을 아직도 기억하는걸 보면...
바쁜 시절들이 휙 지나고나면...
컬렉터에서 플레이어로...
다시 여유롭게 판 깔고 서로 발목잡으면서 희희덕거릴 날이 또 오겠죠? ^^
그 분들이 제게 말해주셨고, 저 역시 그에 화답했듯...
비록 얼굴 마주대하고 건네지는 못하지만,
과거의 그분들과, 지금 이 글을 읽는 분들 모두...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p.s : 가을이라 별별 생각들이 다 나는군요...참...좋죠?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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