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대 전 보드게임 잡담 (3) 영업에 대하여
입대 전 보드게임 잡담 (1) + 소소한 이벤트 - 보드게임 커뮤니티 보드라이프 (boardlife.co.kr) - 첫번째 잡담
입대 전 보드게임 잡담 (2) Top 50과 애착게임 - 보드게임 커뮤니티 보드라이프 (boardlife.co.kr) - 두번째 잡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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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게임이란 취미를 즐기는 것에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은 무엇일까요.
많은 분들이 인간 컴포(?) 즉, 같이 플레이 할 사람을 구하는 것의 어려움을 꼽곤 합니다.
그런고로 오늘의 잡담은 게이머들의 끝나지 않는 숙제인 <영업에 대하여> 입니다.
<초심자를 영업함에 관하여>
먼저 저의 경우에는 따로 모임을 나가지는 않는지라 주변 사람들에게 영업을 하고 항상 모임을 개최하는 호스트 역할을 맡게 됩니다.
대부분 주변인들의 영업에 성공하였고 지인이 지인을 데리고 오는 등 흡사 다단계 구조로.. 여러 그룹에서 게임을 즐길 수 있었죠.
영업 성공률에는 어느정도의 자부심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런 경험들을 돌아보며 초심자를 영업하는 방식과 자잘한 생각들을 공유해보고자 합니다.
물론 많은 분들이 저마다의 훌륭한 방식으로 보드게임을 전파하고 있을 것이라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건방져 보이는 건 아닐까하는 걱정도 있습니다만..ㅎㅎ
정답이 없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임과 동시에 지나치게 원론적인 이야기가 될 것 같기에 자신에게 맞는 내용만을 취사선택하시길 바랍니다!
우선 비게이머를 보드게임의 세계에 성공적으로 끌어들이는 과정을 세가지 순서로 나누어보겠습니다.
일단 어떻게든 보드게임 테이블에 앉힐 것 -> 그 순간 재밌게 플레이 할 것 -> 그 후에도 보드게임에 대한 관심이 이어지게 할 것
아래에서 서술할 팁들을 이 세가지 과정에 대입해가며 읽는다면 조금은 더 유익한 글이 될 수 있을 듯 합니다.
0. 급하지 말자
모든 내용의 대전제입니다. 이는 단순히 보드게임 영업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모든 일에 통용될 거예요.
위에 언급한 세가지 과정에서, 마음이 앞서 서두르게 된다면
억지로 보드게임을 꺼내어 -> 이도저도 아니게 게임을 하다가 -> 보드게임에 대한 관심이 끊어지게 되는.. 앞으로 영영 보드게임 근처에도 가지 않을 수도 있겠죠.
보드게임은 기본적으로 사람과 사람이 하는 것인데 가끔씩 이걸 잊을 때가 있습니다.
게임에대한 애정이나 욕심이 클수록 '어때 이게 이렇게 대단하고 재밌는 게임이야'라는 마음을 상대방에게 강요하게되는 경우가 생기죠.
테포마보다 트럼프 카드 한 벌, 바둑알 몇 개가 더 재밌는 때와 상황이 있듯이, 흔히 말하는 좋은 게임과 즐거운 경험은 꼭 대응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가장 좋은 게임은 그 시간 그 장소에서 내 눈 앞의 사람들과 즐거울 수 있는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게임이 아닌 눈 앞의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는 여유가, 좋은 보드게임 파트너로 연결될 것이라 믿습니다.
1. 타이밍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루틴이 있습니다. 특히 휴일을 보내거나 노는 방식에 있어서는 생각보다 그 범위가 좁아요.
보드게임과 접점이 없던 사람에게 다짜고짜 '우리 보드게임 하지 않을래?' 하고 권한다면 따로 거절은 하지 않더라도 '하자니까 하는' 게임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시작부터 약간은 틀어지고 시작하는 것이죠.
저의 경우엔 보드게임에 대한 이야기나 애정을 주변에 흘리고 다니는 편입니다.
일상 중 자연스레 취미를 공유하게 될 때 보드게임을 얘기하고 150여개를 보유중이다 하면 대부분 놀라면서도 호기심을 보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먼저 하고싶다고 말하는 것 같아요.
다음에 나랑도 한 번 하자 정도의 반응이 나온다면 다음 만남 때 가벼운 게임 하나를 슬쩍 꺼내면 됩니다.
다만, 처음부터 보드게임을 메인 목적으로한 약속을 잡는다면 피로감을 느낄 수 있어요.
밥을 먹고 잠시 카페에 갔을 때, 집에 모여서 놀다가 잠깐 시간이 뜰 때. "아, 보드게임 한 판 해볼까?" 정도의 가벼운 첫만남이 게스트에겐 기대 밖의 즐거움이 되는 듯 합니다.
예를 하나 들자면, 저는 6년 가까이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단 한 번도 먼저 보드게임을 꺼낸적이 없습니다.
수업을 하며 조금씩 게임 얘기를 녹여내다보면 학생들이 한 판이라도 해보자고 거의 애원을 해요.
그러다가 시험이 끝난 후에 이벤트성으로 게임하는 날을 잡으면 쉬는 날임에도 뛰어나옵니다ㅋㅋㅋ 그렇게 학원 나오기 싫어하던 애들이요.
처음부터 "얘들아 쌤이 보드게임을 좋아하는데 쉬는 날에 모여서 해볼까?" 식으로 접근했다면 이처럼 능동적으로 즐기지는 않았을거예요. 오히려 거부감이 생겼을지도 모르는 일이죠.
결국 게임을 꺼내는 타이밍은 내가 아닌 상대방이 하고 싶을 때여야 한다는 것이 요점입니다.
2. 게임 선택
일단 테이블에 앉히는 것까지는 성공을 했습니다. 이제 가장 중요한 게임 선택의 순간이죠.
영업 중 게임을 고르는 것에 있어 개인적인 두가지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첫째로 성향에 맞는 게임을 파악하되 가능한 다양하게 게임을 꺼내는 것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사람마다 성향이 다릅니다.
이기든 지든 도박성 플레이을 즐기는 사람.. 이겨야만 하는 사람.. 치고 받으며 재미를 느끼는 사람.. 공격을 당하는 상황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 등..
상대방이 어떤 유형의 게임에서, 어떤 상황에서 즐거움을 느끼는지 빠르게 파악하여 게임과 플레이를 조절하는 것은 당연한 과정이죠.
그럼에도 저는 다양한 종류의 게임을 꺼내려 노력하는 편입니다.
물론 입맛에 맞는 게임만을 꺼내준다면 당분간은 매우 즐겁게 플레이 할 것입니다.
다만 쾌락이 결핍으로 인해 촉진되듯이, 다양한 게임을 겪으면서 취향에 맞지 않는 게임을 접하고 이건 별로구나 느끼는 과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과정 속에서 좋아하는 게임에 애착이 생기고, 본인의 기호를 스스로 알아갈 때 더욱 입체적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이러한 취향을 찾아가는 시행착오는 가능한 영엽 초반 단계에서 끝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카르카손에서 실패하는 것은 '이건 좀 별로다 다른 게임 하자' 정도로 그치지만 아그리콜라를 하다가 저 감정을 느낀다면 보드게임 자체에 흥미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죠.
둘째로 난이도는 계단식으로 올릴 것 입니다.
쉬운 게임부터 차근차근 올려가며 게임을 꺼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얘기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과정이 곡선이 아닌 계단형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1단계에서 5단계까지 가는 과정이 1 - 2 - 3 - 4 - 5 가 아닌, 1111.. - 2222.. - 3333.. - 4444.. - 5555..의 형태인거죠.
예를 들어 상대방이 처음 꺼낸 1,2 단계 게임을 재밌어한다고 해서 바로 3,4단계로 가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소화 가능한 난이도에서 충분히 다양한 게임을 즐기도록 한 뒤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는 것이 실패 확률을 낮추고 성취감을 높이는 동시에, 보드게임의 다양성을 느낄 수 있는 방식이라 생각해요.
물론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겠지만..
추가로 저는 난이도를 올릴 때 꼭 언급을 해주는 편입니다.
여자친구와 사귀기 시작하고 2~3주 가량 라이트한 게임들만을 즐기다가 윙스팬을 처음 꺼내며 "이건 흔히 전략게임이라 부르는 어려운 게임인데 너무 유명하고 재밌는 게임이지만 룰설명만 15분은 들어야 될텐데 한 번 도전해볼래?" 이런 식인거죠. 모두가 알다시피 막상 플레이해보면 윙스팬 정도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상대가 생각보다 안 어렵고 할만한데? 느낄 때 쯤 "어려운 게임인데 빨리 배운다. 더 어려운 것도 해봐도 되겠다."정도의 멘트를 곁들여준다면 축하합니다. 다음 게임으로 테포마를 꺼낼 수 있게 됐습니다.
3. 져주지 않는 것
조금은 의아할 수 있는 내용일 것 같습니다만 저는 영업중이라도 게임을 일부러 져주는 경우는 없습니다.
일부러 져주는 것을 수학문제를 가르치는 것에 비유를 해보자면.. 풀이 과정에서 막히는 부분에 대한 조언이나 중간중간 틀리는 계산을 바로잡아 주는 정도가 아닌, 틀리게 써온 답을 맞았다고 해주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비록 답은 틀렸으나 방향이 너무나 옳았음을 알려주는 것이 제가 지향하는 방식인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보드게임은 놀랍도록 치밀하게 설계되어있죠. 모두가 최선의 플레이를 할 때 해당 게임에서 의도된 재미가 묻어나온다고 생각해요.
다만, 기를 쓰고 이기고자 플레이한다는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ㅎㅎ 특별히 봐주지 않는 선에서 더 균형을 맞추는 몇가지 노하우를 얘기해보자면,
(1) 가능한 다양한 방식으로 플레이하기 : 거의 모든 게임은 이기기위한 전략이 여러가지겠죠. 고정된 테크를 타는 것이 아닌 가능한 게임에 흩어진 요소들을 전부 이용해보자는 마인드입니다.
(2) 비슷한 밸류의 선택지라면 더 재밌는 쪽을 선택하기 : 예를 들어 <확정적인 5점 or 랜덤하게 0점 또는 10점>과 같은 상황이라면 후자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푸쉬유어럭 장르의 게임이라면 평소엔 멈췄을 상황에서 한 두번 더 도전해보는 정도가 되겠네요.
이런식으로 플레이하다보면 게임 흐름 자체가 다채로워짐과 동시에 초심자와 숙련자의 간극도 어느정도 좁힐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선택에 크게 간섭하지 않는 선에서 효과적인 노하우나 해결책을 슬쩍 제시해주는 것도, 밸런스를 조절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겠습니다.
+. 게임을 꺼내주기만 하는 것이 아닌, 몇가지를 설명해준 뒤 직접 고르도록 하는 것도 능동적으로 즐기게끔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보유한 보드게임을 리스트로 정리해놓는다면 더욱 효과적인데, 이에 관련해선 첫번째 잡답에서 언급한 바 있으니 이 글에선 생략하겠습니다.
보유한 게임으로 정리한 영업용 자료입니다. 가능한 같은 한 섹션 안에서 같은 장르가 없도록 구성해놨습니다.
Step3~4의 경우 각자 보유하신 좋은 게임들로 얼마든지 대체 가능하니 영업 단계에서는 Step1~2 정도만 참고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오늘의 잡담은 여기까지입니다.
글이 자꾸만 길어지는 것을 보면서 글솜씨의 부족함을 너무나 느끼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날이 많이 추워졌는데 모두들 건강 잘 챙기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