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77에 관한 추억 그리고 간단한 감상.

Alex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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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30 오후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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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에 대해서 두줄로 설명해도 될 정도로 게임은 너무 간단합니다. 한명 당 5장씩의 카드를 핸드에 들고, 한명씩 숫자 카드를 내면서 더해 나가다가 그 총 합이 11의 배수 ( 11,22,33,44,55,66 ) 가 되거나 77 이상이 되면 패하는 게임입니다. 물론 카드를 낼때 한장을 덱에서 가져가 보충합니다. 특수 카드가 있어서 돌아가는 턴을 바꿔주는 카드, 그 다음 사람이 2장을 내야만 하는 카드, - 10 을 해주는 카드 등이 있습니다. 설명이 끝났습니다. 무지무지하게 간단하죠? 이건 더하기 빼기만 배운 사람이라면 5세 영아들도 금새 할 수 있는 게임입니다.

제가 이 게임의 리뷰를 쓰는 이유는, 이 게임을 권하고자 쓰는 것이 아닙니다. 이 게임을 돈 주고 사기 위해서는 사실 까다로운 조건이 필요합니다.

1. 사람이 5명 이상 모이는 파티성 게임을 자주 하며, 그 중에는 보드 게임을 한번도 안해본 사람이 수두룩 하다.
2. 나는 보드게임을 돈 주고 사본 적이 거의 없다.

더 이상 생각나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Gamer`s Game`을 즐겨본 분들이라면, 로보 77은 사실 매우 시시하기 짝이 없을 것입니다. 로보77은 게임 본연의 게임성보다는,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의 왁자지껄함과 흥겨운 분위기가 게임성의 대부분을 차지 합니다. 물론 곱하기 2 카드를 냈는데, 그 다음 사람이 곱하기 2짜리 카드를 2장 내고 그 다음 사람이 4장을 어찌 어찌 방어해 냈을 때의 그 의외성은 반전 요소가 가득하긴 합니다만,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니까요. ( 76에서 낼 카드가 -10밖에 없어서 66... 11의 배수 금지 원칙에 걸려서 졌다. 이런 건 사실 반전도 아니고요 )

하지만 저는 로보 77 에 관한 흥미로운 추억들이 많습니다.

대학교때 우연히 로보 77에 관한 글과 자료를 인터넷에서 보고, 후배들과 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으로 저는 그것을 집에 있는 흑백 프린터기로 프린트 한 다음에 복사집에 가서 코팅을 합니다. 이런 핸드메이드는 물론 따지고 보면 불법에 속하지만, 저는 그때 이게 불법이거나 잘못된 행동인지도 몰랐지요. 저는 그때 이게 오히려 공개된 게임이고 아무나 이렇게 쓸 수 있는 게임인 줄 알았습니다. 그만큼 보드게임 자체에 무지했거든요.

저희 대학교 동아리는 약 40명 정도 되었는데, 일년에 며칠동안 합숙 비슷하게 하면서 모임을 갖는 경우가 두번 정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마다 이 게임을 들고 나갔고, 항상 성공을 했습니다. 약 1시간 정도는 애들을 불타오르게 만들 수 있었죠. 로보 77은 의외로 인원수를 타지 않는 게임입니다. 좀 무리하면 10명까지도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을 저희는 거의 당연하게 돈내기를 했습니다. ( 모여서 별 할일 없이 시간을 죽여야 했던 선배들은 고스톱, 포커, 부르마블, 플레이스테이션2, 심지어는 컴터를 가져와 연결해서 스타크래프트까지 했습니다. ) 우리들끼리 룰을 하나 추가한 것이죠.

카드 한장 낼 때마다 돈 100원씩 내기. ㄷㄷㄷ ( 대학생들 기준으로는 나름 큰 판이었죠 )

이게 사람이 7명쯤 되면 돈이 순식간에 수북히 쌓입니다. 이기기는 힘들고, 한번 이기면 오천원쯤 벌게 되는 경우도 있어요. 33,44, 55, 66 이런 카드가 손에 들어간 사람은 땅바닥에 내려놓고 버리고 시작하죠. 자기 패를 한탄하면서 ㅋㅋㅋ 근데, 아주 웃기는 건, 바닥에 돈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자기 돈이 그 쌓인 돈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기 시작한다는 것이죠. 7명이서 하다가 나중에 두명이 남아서 배틀을 벌이게 되면, 지금까지 꼴아박은 돈이 아까워서라도 꼭 이기고 싶어집니다. 승부가 정해지면 2등을 한 사람은 실질적인 꼴등으로 전락하여 절규하게 되는데, 이것이 이 게임의 묘미 그 자체였습니다. 게임이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치열해지는 이유였죠. 정말 게임이 시끌벅적하고 재미 있었습니다. 아내랑 둘이 점잖게 앉아서, "음~ 이 게임 괜찮은데?" 라고 평가하는 정도랑 다르지요. 그때는 어려서 , 그리고 여학생들도 많이 끼어서, 사람이 많아서... 말 그대로 환호와 절규가 교차하는 파티였습니다.

제가 가져간 카드는 일반 종이를 코팅한 것이었기에 당연히 질이 형편 없었고, 코팅을 어떤 식으로 하는 지 몰라도, 계속 코팅 비닐이 허물을 벗었습니다. 얇게 허물을 벗고, 또 벗고 또 벗고. 카드가 끊임없이 허물을 벗으니 그것도 훌륭한 엔터테이닝 요소였습니다 ;;

그래서 이 게임은 대학생때 선후배들과 즐겁게 놀던 한때를 추억하게 해주는 게임입니다.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서 돈을 벌게 되어 여유가 생기자 로보77을 실제로 구매하게 되었지만, 할 기회는 거의 생기지 않았고, 졸업한 후배들끼리 대여섯이 모여 한판 돌려본 적도 있지만 그때처럼의 흥이 나지는 않더군요.

이 게임은 부르마블을 먼저 샀는지 로보77을 먼저 샀는지 헷갈릴 정도로, 보드게임에 무지할 때에 산, 아주 오래 전에 산 게임입니다. 안돌아간지 몇년은 되어 보이는 게임이죠. 하지만, 이 게임이 재미 없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이 게임에는 무척 많은 추억들이 얽혀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지금와서 `일반적인 게임 용도`로 권하자니, "명작이라더니 실제로 해보니 이게 뭐야? 그냥 더하기 빼기네 " 라고 실망할 분도 많을 것 같아서 함부로 권할 수도 없네요.

다음과 같은 분에게 권합니다.

1. 5인 이상 파티성 게임을 많이 하고, 그 게임의 참가자는 게임을 거의 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2. 겨우 숫자를 뗀 영,유아들이 많이 껴서 게임을 한다.
3. 내가 보드게임을 돈 주고 사본 적이 거의 없는 보드게임 초짜다.
4. 본문 내용처럼 대학생 MT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잠깐 흥을 돋굴 수 있는 게임이 필요하다.
5. 우린 흥을 돋구고자 카드 한장 낼때마다 돈을 내야 하는 돈내기를 불사한다. ;;

다음과 같은 분에게는 권하지 않습니다.

1. 위 네가지에 해당하지 않는 분에게는 다 권하지 않습니다.
2. 특히 두세명이서 게임 하면, 음, 이 게임은 이렇게 하는 거구나? 하는 밋밋한 느낌밖에 없을 겁니다.

이 게임은 분위기만 잘 맞으면 거의 100% 성공하는 10점 만점에 10점짜리 게임입니다. 하지만, 잘못된 장소와 잘못된 인원 그리고 잘못된 게임성향일 때 내놓아서는 안되는 게임이죠 ^^ "결국 돈내기 하면 더 재밌다는 이야기 아니냐? 돈내기 해서 재미 없는 게임이 어딨느냐"라고 하실 수도 있는데... 음... 그것보다는 제 추억에 관한 이야기로 읽어주십시오 ㄷㄷㄷ;;

리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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