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내 감정을 쉽사리 드러내지 않는다. 특히 그 감정이 부정적 감정이라면 더더욱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물론 매번 성공하지는 못한다. 나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오는 감정을 누르기가 아직도 만만치 않다. 보드게임을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꼭 이기고 싶은 사람에게 졌을 때, 너무 큰 차이로 또는 너무 아깝게 졌을 때, 그냥 졌을 때. 그럴 때면 화로 가득 찬 가시가 온몸에 돋아난다. 그리고 누군가 그 가시를 건드리게 되면 나도 모르게 상대방을 찔러대고 결국은 나에게 가장 큰 상처를 남긴다. 그래서 나는 그 가시나 최대한 돋아나지 않도록 나를 돌보고 또 돌본다. 한번 돋아나면 내가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드리지 않아도 그 가시를 키우는 그런 사람이 있다. 배우자이다. 특히 보드게임을 할 때 더욱 그렇다. 지면 그냥 화가 난다. 분하다. 진심이다. 그래서 질 것 같으면 게임을 하고 싶지 않다고 떼를 쓰는 경우도 종종 있다. (다른 사람과 할 때는 전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빛의 도시 파리’라는 게임을 할 때이다. 공용 보드판에 타일을 배치해 점수를 얻는 게임이라 타일을 놓는 위치가 중요하다. 그런데 내가 놓으려는 위치에 와이프가 먼저 타일을 놓는 것이 아닌가. 물론 와이프 차례였고 그 또한 그 자리가 꼭 필요한 자리였다. 나를 방해할 목적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때의 그 분노란. 나는 “내가 졌어.”라고 말하며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와이프가 어르고 달래서 결국 게임은 이어갔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이런 일들은 우리 사이에 비일비재하다. 신기하게도 게임은 바뀌지만 상황과 역할은 거의 바뀌지 않는다. 나는 삐지고 와이프는 어르고 달랜다. 스스로 돌아보아도 참 실망스럽고 못난 모습이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면 안 그랬던 상대방도 나와 같아진다. 승패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던 와이프도 요즘에는 게임에서 지면 기분이 좀 안 좋아 보인다. 그래서 사람 마음도 일정 부분 물리 법칙을 따른다고 생각한다. ‘작용 반작용’ 상대에게 기를 쓰고 이기려는 모습을 보이면 상대방도 똑같이 기를 쓰고 이기려고 든다. 내가 삐지면 상대방도 삐진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누구나 다 안다. 보드게임을 할 때 힘을 빼는 것! 그렇다면 돌아오는 힘도 약해질 것이다. 하지만 마음과 물리 법칙이 다른 점이 여기에 있다. 마음은 내 마음이지만 내 뜻대로 잘 안된다.
커뮤니티에서는 배우자와 즐겁게 보드게임을 했었고, 하고 있고, 할 것이라는 내용의 글을 볼 수 있다. 부러운 사람들이다. 가장 믿고 의지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취미를 즐겁게 공유하는 것은 인생의 큰 즐거움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내 마음만 잘 다스리면 된다. 그러면 나 또한 인생의 큰 즐거움 하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p.s 즐거운 보드게임 라이프를 위해 와이프에게 제시할 보드게임 플레이 근로 계약서를 만들어 보았다. 와이프가 서명해 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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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꼭 이기고 싶은 그런 사람 다들 있으신가요?ㅠ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