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매 결정에 생산비용을 고려할 필요가 없고, 고려해서도 안되며, 고려할 수도 없는 이유
네, 또 재미없는 이야기 들고 왔습니다.
이전에 제 글을 보시면 여러 논쟁에 대해 저는 가치판단을 하지는 않습니다. 혹은,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만, 저는 경제학적 용어나 개념을 잘못 사용하거나 오해가 있는 상황에 대해 많이 나서서 바로잡으려고 하는 편입니다.
독점이 나쁜 이유는 가격이 비싸서가 아니다, 라는 내용은 두어번 썼던 것 같네요.
사명감이나 어떤 그런 건 아닌거 같고, 그냥 제가 그렇게 생겨먹었나 봅니다.
소비자의 구매결정에 있어서 생산비용은 1) 고려할 필요가 없고, 2) 고려해서도 안되며, 3) 고려하기가 매우 어렵다, 라는 주장을 펼쳐보려 합니다.
이전 글을 읽으시면 조금 이해가 편하실 것 같습니다.
https://boardlife.co.kr/bbs_detail.php?tb=board_community&bbs_num=44940&id=&reply_type=on
그전에, 조금 혼동이 있어 보이는 내용을 짚고 가겠습니다.
0. 생산비용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사용된 재료가 주는 가치를 무시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같은 게임이라면 구성품이 플라스틱인 것이 종이인 것보다 비싼 것은 일반적으로 합당합니다.
이유는 플라스틱이 더 내구성이 좋고 느낌도 좋기 때문이죠. 즉, 재료의 다름이 주는 효용이 있습니다.
(종이를 더 선호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요는, 비용이 아니라 완제품의 재료가 주는 효용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좋은 재료를 쓸 경우 생산비용도 늘어나는 경우가 많겠지만,
소비자에게 주는 효용은 구성품이 좋아서이지 비용을 많이 투입해서가 아닙니다.
극단적인 예로, 어느 회사가 나무를 직접 심어 그걸로 종이를 만들어 보드게임 구성품을 만든다고 해보죠.
당연히 비용이 비싸지겠죠.
하지만 그 비싸진 비용이 최종 구성품에 아무 차이도 주지 않는다면, 비용 때문에 가격이 비싸야 할까요?
생산원가가 높아져서, 혹은 구성물의 가격이 높으니 가격이 비싸지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혹시 구성품의 질적 차이로 인한 효용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0. 외국에서 파는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비싼거지 사실 그에 비하면 비싼게 아니다, 라는 논의도 제 논지와는 다른 부분입니다.
외국 가격이 비싸졌기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결국 그 가격이 비싸냐 아니냐의 논의는 똑같이 이루어져야 할 내용입니다.
또한 외국 가격과 비교하는 것은 해구를 통해 영문판을 구하는 기회비용과 한글판을 사는 경우를 비교할 문제이므로 또 다른 사안입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1. <높은 생산 비용이 높은 소비자 효용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구매 결정에 생산 비용을 고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수작업으로만 만들 수 있는 어떤 물건이 있습니다.
A 라는 사람은 3시간에 걸쳐 물건을 만들고, 자신의 시간당 $20 의 가격을 매겨 생산비용을 $60 으로 책정하고, 거기에 $10의 이윤을 붙여 $70 에 판매합니다.
B 라는 사람은 1시간만에 물건을 만들고, 시간당 $30의 가격을 매겨 생산비용 $30을 책정하고, $20의 이윤을 붙여 $50에 판매합니다.
A의 물건이 B의 물건보다 생산비용이 비쌉니다. 동일한 물건이라면, 이윤을 적게 붙힌 A의 물건을 사야할까요?
B의 낮은 생산비용은 그의 물건이 안 좋다는 방증이 아니라, 오히려 능력과 노력을 통해 비용을 낮춘 것으로 봐야하지 않을까요?
생산비용의 높고 낮음은 물건에 들어간 재료의 좋고 나쁨에도 영향을 받지만, 회사의 능력과 노하우, 노력에 의해서 크게 달라집니다.
높은 비용으로 인한 손해는 회사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고, 낮은 비용으로 인한 이득은 회사가 누려야 할 부분입니다.
생산비용이 더 높다고 당연하게 그 물건이 주는 효용이 더 큰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생산비용이 높으니 높은 가격에도 구매를 하겠다, 라고 결정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소비자가 보고 판단하고 효용을 누리는 것은 최종 결과물입니다.
소비자가 구매 결정에 생산비용을 고려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2. <기업의 비용절감 유인을 감소시킬 수 있기 때문에> 구매결정에 비용을 고려하면 안됩니다.
1번과 연결되는 내용입니다.
만약 모든 소비자가 비용 + 마진 % 의 가격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절감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생산비용을 공개하고 마진 붙여서 판매하면 되니까요.
보드게임 유통업을 생각하면,
열심히 공을 들여 낮은 가격에 물건을 들여오는 협상을 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한국시장을 조사 분석해서, 이러이러한 요인으로 앞으로 큰 성장 가능성이 있다, 지금은 투자라 생각하고 낮은 가격에 공급해달라, 라던지,
우리 아니면 한국에 이정도 규모의 게임을 발매할 회사는 없다, 가격 안 낮추면 포기하겠다, 라던지,
마케팅과 유통에 효율화를 통해 비용을 낮추든지, 등등,
전혀 공을 들일 필요가 없어집니다. 생산가격을 낮춰봐야 거기에 똑같은 마진% 붙여서 팔게되고, 남는 이익은 똑같을 것이니까요.
원가 절감, 생산비 절감을 위한 노력을 통해 그 이득을 취하는 것이 기업의 할 일이고,
그 과정에서 발전과 혁신이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3. <한 제품에 기여하는 총비용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생산비용을 고려하는 것 자체가 어렵습니다.
각종 비용이 하나의 제품에 정확하게 어떻게 녹아지는지 알기는 어렵습니다.
이건 소비자가 외부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회사 내부에서도 불가능한 일에 가깝습니다.
따져야 할 게 너무 많기도 하고, 건물 임대료, 직원 인건비, 등 고정비용을 각 제품군에 얼마만큼 할당해야하는지도 난제입니다.
하물며 내부정보를 전혀 모르는 소비자가 비용을 생각해서 구매결정을 하는 것은 불가능입니다.
설령 그렇게 한다 하더라도,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될 때마다 나의 판단을 바꾸고 적당한 가격을 업데이트 해야 할텐데, 가능할지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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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1: 나는 그래도 내 구매 결정에 생산비용을 고려한다,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그렇게 입장 개진해 주셔도 괜찮습니다. 이건 개인의 판단이니 제가 이렇다 저렇다 할 사안이 아닙니다.
다만, 남들도 그래야 한다고 주장하시는 분께서는 그 근거를 제시해 주시면 의미있는 토론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사족 2: 저는 생산비용은 소비자에게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라는 주장을 제가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나름의 근거를 들어 적었습니다.
니 말이 무슨 근거가 되냐,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아무 경제학 교재를 펼치셔서 소비자 이론 부분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사족 3: 주장한 사람이 근거를 대야지 무슨 소리냐, 라고 하시는 분들을 위해 손에 짚이는 교재 하나 적어놓습니다.
"A short course in Intermediate Microeconomics with Calculus" by Serrano and Feldman, Part 1, Theory of Consumer 부분입니다.
사족 4: 소비자의 결정에 생산비용이 고려되어야 한다, 라는 이론이나 주장의 학술적 근거가 있으신 분들은 꼭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런 내용이 있으면 제가 꼭 알고 싶고 공부하고 싶은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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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의 사족: 경제학은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을 가정합니다. 위의 주장은 그런 가정을 바탕으로 소비자의 당위성 있는 행동을 이론화 한 내용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늘 합리적이진 않죠.
그래서 심리학을 결합한 행동경제학이 나왔고, 실험을 통해 비합리적인 행동을 연구하는 실험경제학이 나왔습니다.
즉, 경제학의 가정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우리는, 제 주장대로 행동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개인의 선택에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는 것을 지양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합리적인 경제주체라면 그렇게 할 것이다, 라는 이론에는 흔들림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흔들리는 저는, 내일은 오늘보다 합리적인 결정을 하기위해 노력하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