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로운 2015년 연말정산 (3)

ske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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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8 오전 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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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skeil입니다.

"게임을 열심히 하다 보니 자꾸 기록을 남기고 싶어지고,

기록이 쌓이니 역사를 적고 있는 것 같다..."가

지난 이틀 간의 요약이었고요.

오늘은 번역자 관점에서 제 활동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저의 보드게임 취미생활은 "플레이"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구입한 게임을 가능한 한 빨리 뜯고,

룰북을 읽고 이해하고,

모임에 가지고 나가서 설명하고 플레이하고,

다시 룰북 읽으며 틀리게 한 부분을 찾아내고,

궁금증이 해결되지 않으면 퍼블리셔나 디자이너에게 묻고...

이런 과정을 반복합니다.

가지고 있는 게임들을 적어도 10번씩은 하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죠.

(사사로운 2015 연말정산 (1)에서 보여드린 플레이 횟수 기록이 이런 점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하나의 게임을 놓고 정말 깊게 파면서 연구하고

치열하게 플레이하면서 스트레스를 좀 받고 게임이 끝난 후에 다른 사람들과 복기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곤 합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게임을 플레이시키러 다른 사람들을 테이블에 앉히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그러려면 그들에게 게임을 알려줘야 하고요.

게임을 알려주려면 영어로 된 걸 한글로 옮겨주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겠죠.

다른 사람과 게임을 하고 싶은 욕구,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다양한 게임을 보여주려는 욕구를 해결하려면

결국 언어의 장벽을 함께 넘어야 합니다.

제가 본격적으로 리뷰에 뛰어들면서 번역 작업도 뒤따르게 되었습니다.

제게 가장 크게 영향을 준 것은 2009년에 나온 스페이스 얼럿입니다.

룰북 읽고

"와! 이거 진짜 신기하네?!"

라며 큰 충격을 먹었죠.

생각해 보니 스페이스 얼럿 룰북은 읽기만 하고 번역은 안 했네요;;;

대신에 사운드트랙을 한글로 녹음했죠. 휴 =3

그렇게 2009부터 다수의 게임의 룰북을 번역하기 시작했습니다.

룰북을 번역하면 카드도 번역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조금 더 욕심을 내면 내 번역이 원래 카드 텍스트를 감쪽같이 대체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기죠.

카드를 스캔하고 그 이미지를 포토샵으로 조금만 만지고 인쇄하면 마치 원본 같은 한글 카드가 만들어집니다.

당연히 룰북도 그렇게 가능하고요.

그 다음 해인 2011년에 7 원더즈의 룰북도 그렇게 만들어 봤습니다.

제 기억으로, 7 원더즈의 첫 번째 확장이 나올 때 즈음이었던 것 같은데요.

퍼블리셔에 보낸 문의 메일의 답장에 제가 만든 룰북에서 원본 양식을 빼달라는 내용이 담겨서 돌아왔습니다.

한국에 파트너 회사 (코...보...게...)가 생겼으니 그렇게 해달라는 것이었는데요.

당황스럽긴 했지만 퍼블리셔에서 그렇게 해달라고 하니 뺄 수밖에요.

아마 이때부터 저한테도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생겼을 겁니다.

많은 퍼블리셔가 있지만 그들 자신의 저작권에 대해 모두가 같은 정책 (또는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곳은 굉장히 엄격하고, 또 어떤 곳은 그렇지 않죠.

그래서 "내가 퍼블리셔에 먼저 얘기해서 번역과 한글화 자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방자한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스페이스 얼럿 이후로 우호적으로 지내는 체코 게임즈 에디션에 제안을 넣어 봤으나

다른 파트너사들과의 계약 문제로 모두 거절! ㅠㅠ

그러다가 2011년 말 즈음에 무려 7년만에 다시 돌아온 반지의 전쟁 (2판)이 눈에 들어왔죠.

부도났던 회사를 다시 재편한 그들에게 메일을 보냈고 2012년 초에 허락을 받아냈습니다.

처음으로 퍼블리셔에서 그들의 파일을 받아서 번역하고 한글화 파일을 만들 게 된 것이었죠.

원작 세계관도 잘 몰랐던 게임을 붙잡고 컴퓨터 앞에서 (원작 내용을 검색해 가며) 열심히 작업했습니다.

겨울에 착수했는데 정신차려 보니 여름;;; (맴맴맴맴 매~~~~앰~~~~)

규칙의 양도 많고 아직 명확하지 않은 부분일이 있어서 디자이너에게 메일 보내거나 긱에서 질문해서 하나둘씩 깨달아 갔습니다.

정말 힘들고 지루한 시간이었는데, 지나고 보니까 덕분에 그 게임에 더 애착이 생긴 것 같습니다.

반지의 전쟁의 퍼블리셔인 아레스 게임즈와는 여전히 잘 지내고 있어서

확장이나 스핀오프가 나올 때마다 열심히 한글화 작업을 하고 있고요.

다만, 작년 말에 서로 좀 일정이 꼬여서 빨리 주겠다던 "다섯 군대의 전투" 파일을 늦게 넘겨받아서

올해에 제가 이 게임을 제대로 소개하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이번 해 말에 내겠다던 반지의 전쟁 두 번째 확장 출시가 슬그머니 내년으로 넘어가서 제게 여유 시간이 더 생겼네요.

현재는 언덕 위 집에서의 배신 룰북과 시나리오를 틈틈이 읽고 있습니다.

이 게임의 퍼블리셔는 아발론힐인데, 모회사가 D&D와 매직 더 개더링의 판권을 가지고 있는 무서운 곳이죠.

아무튼 무서운 곳입니다. ㅎㄷㄷ

언집배 시니리오 번역과 한글화 작업은 가능하면 내년 봄에 끝내려고 하니까요.

기다리실 분들만 기다려 주세요. ^^;;

왜 봄에 끝내려고 하냐면 반지의 전쟁의 두 번째 확장이 제 예상엔 3-4월 사이에 나올 것 같고요.

게다가 제가 2월 즈음에 출시될 또 다른 게임의 번역을 맡을 가능성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아레스 게임즈의 게임은 아니고요.)

몇 달 전에 가지고 있던 게임들을 꽤 많이 정리해서 팔고 남은 게임 몇 개를 아는 동생에게 선물로 줬습니다.

그 중 어떤 카드 게임은 2009년 말 즈음에 나왔던 걸로, 제가 카드 텍스트를 번역해서 출력한 문서도 들어 있었습니다.

그 친구가 집에서 해보고 와서 하는 말이,

"형, 그 번역이 너무 거칠어~"

디스 아닌 디스였지만 생각해 보면 벌써 5-6년 전이니 그 사이에 제 번역 능력이 조금은 나아졌다는 얘기이기도 해서

그냥 웃었습니다.

"그럼, 그 번역 다시 해줄까?"

라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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