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낙으로 시작된 로스트 시티와 크니치아를 위한 변백

킴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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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2-23 오후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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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성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지만 게임은 재미있다"는 평은

유독 라이너 크니치아가 달고 다니는 부제같은 것이죠.

요즘 핫한 아르낙의 호평의 이유 중 "실제 탐험하는 느낌을 잘 구현"했다는 말을 곱씹으며 아르낙을 해봤습니다.

적절히 재밌게 했지만 어딘지 뒷맛이 쓴 이유로,

탐험을 다룬 또다른 게임인 로스트 시티를 통해

테마에 관한 소회를 남겨보려고 합니다.

물론 꿈보다 해몽 일 수도 있으니 적당히 재미로 읽어주세요.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로스트시티는 2인 전용게임이고,

잃어버린 유적을 탐사하는 테마입니다.

그러나 게임은 단순히 숫자카드를 뽑고 모아서 점수를 많이내는 게임이죠.
카드는 3장의 투자카드와 2~10까지, 5색으로 되어있는 숫자카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특이하다면 점수가 0부터 시작이 아닌 마이너스 20점부터 시작이고요.

로스트시티가 구현해놓은 시스템은 아주 간단하고 구성물도 조촐하지요.

우선 점수가 마이너스부터 시작하는 것은 초기 매몰비용을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집 앞마당에 유적이 있다면 시작 비용은 0이겠지만 일단 어디론가 가야하니까 돈이 깨지겠죠.

그리고 투자카드는 내가 모은 점수를 "나중에" 따따불 시켜주는데,
유물이 충분하지 않다면 어리석은 투자로 인해 심한 마이너스가 되거나 겨우 투자비를 건질 정도가 됩니다. 그래서 고위험 고수익이고, 게다가 유적에 접근을 시작한 시점이라면 투자를 받지도 못합니다.

실제로 투자자들은 크게 넣고 크게 먹기위해 아직 설익은 새로운 아이템을 원하죠.

그것이 투자니까 (끄덕)

그렇기 때문에 아예 눈길도 안줘야 할 곳도 있고,

당장 눈 앞의 8,9를 과감히 버리는 것이 어쩌면 셀프로 희망고문을 하지않고 건전하게 게임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실제로, 크니치아가 로스트시티를 할 때 초반에 자주 하는 수라고 합니다.)

카드모으기는 또 어떻습니까, 각 숫자는 오름차순으로만 모아야 하는데 이것은 손익분기점을 향한 점진성을 간략하게 표현한 것이고,

물러날 수 없는 사업의 특성 또한 아주 심플하게 녹여냈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현실의 사업에서 내가 생각하던 원하는 플로우대로 일이 착착 될 일이 없고, 늘 몇가지의 경우에서 버릴건 버리고 취할건 취해야 하는 선택을 항상 해야하는데 이걸 압축하여 손에 8장의 카드로 쥐어 주셨습니다.

카드를 보면서 한숨을 쉬다 고개를 들어 공용 보드를 봅니다.
나의 현황과 착착 진행중인 상대방의 발전 상태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상대와 나 사이에 다소 낡은 카드가 널려있습니다.

이중엔 어쩌면 상대방에겐 더이상 필요가 없지만 나에겐 꿀인 재료들이 있을 수 있고,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아 보이는 것도 있습니다.

누구나 기회가 있다면 집어갈 수 있고요.

더 나아가 상대방이 포기한 카드를 보며 상대는 왜 저 카드를 버릴 수 밖에 없는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 알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괜히 주워 먹었다가 앞으로 다가올 전혀 새로운 기회-새카드-를 놓치는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죠.

이런 조바심, 긴장, 위기감을 다층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게임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시간은 유한하기 때문에, 카드 뒤의 나침반이 시계로 보일 정도로 카드 더미는 빠르게 줄어갑니다.

어느덧 나의 모험의 성과와 상대의 손에 여전히 남아있는 8장의 카드, 내가 쓰진 않았지만 절대 버릴 수 없었던 카드 몇장을 함께 내보이며 사업적 성과를 비교합니다.

숫자는 거짓말을 안하고, 이견의 여지가 없지만 그 어려운 일(한 색깔을 8장이상 모으는 것)을 해낸 사람은 추가 점수를 받습니다.

좋은사업이었음을 공공연히 평가를 받는 것이겠죠.
미래가치에 현혹되어 괜히 내가 손을 댔던 곳은 겨우 0점을 넘겼을 뿐이지만요.

이렇게 게임을 하고 나니, 아르낙이 구현한 테마라는 것은 행위를 도식화 한 것에 불과한것이 아닌가...

"차를 타고, 미개발 지역으로 나아가, 내가 모아온 자원을 내고, 어떤 어려움-수호자-에 직면하여 그것을 사냥인지 거래인지로 포섭하고,

그놈에게 얻은 자원을 통해 탐색을 하고 기록을 해 더 나은 이득과 조수를 얻는다"는 흐름인데,

이게 어찌보면 토큰에 망치를 그려놓고 토큰을 내면 망치질을 한 셈으로 친다 같은거죠.

그에 반해 로스트시티는 카드들의 숫자와 색을 살펴가며 그때 그때 필요한 카드를 붙이고 버리는 행위를 게임으로써 구현 했을 뿐 이지만

그 찰나의 감정은 어쩌면 실제로 탐험이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실현할 때, 직면해야할 여러가지 순간처럼 느껴졌습니다.

늘 테마는 어디가 가져다 버렸냐는 매도(?)를 당하는 크니치아는 어쩌면 테마를 게임에 녹여낼 때,

외부로 드러나는 행위의 유사성 보다는 내재적인 심리요인으로 해석하여 유사경험을 이끌어 내는 디자이너가 아닐까하는 크뽕을 한사바리 들이켜봅니다.
적어도 제게는 후자의 방식이 대리체험이라는 궤에서 더욱 "테마가 잘 와닿는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크니치아 선생님 만수무강 하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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