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간의 타임워프 - 타임스토리즈.

de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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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9 오후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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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deep입니다.

최근에 출시된 게임을 구미보드게임 회원중 한명인 빅비님이 구매하셔서 플레이하게 되었습니다. 입고되자 마자 사신듯 하더군요. 덕분에 저도 신작게임 하게 되어서 즐거웠습니다. 확장은 아직 못 해봤고, 기본판인 타임스토리즈 : 정신병동을 플레이하게 되었네요. 짤막하게 리뷰 해보겠습니다.

11월 6일 저녁에 플레이했던 내용입니다.

타임스토리즈(쑨, 좀비쿠키, 살라딘,deep)

보드게임을 하다보면 테마 위주의 게임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로 테마 위주의 게임이 가지는 단점 내지는 제가 테마 게임에 대해서 안좋게 보는(이건 제 편견이겠죠.) 이유 중의 하나가 테마와 게임간의 밸런스에서 썩 좋은 결과를 내주지 못해서이지 싶습니다. 아마도 몰입을 못해서인가 싶기도하고, 잘 만들지 못한 테마 위주의 게임이 가지는 특징중의 하나가 "그래도 게임성이 좀 있기는 있어야하지 않겠니."라는 식에서 오는 테마와 게임의 괴리감 같은것이 있는데, 이 게임은 좀 다르더군요. 사실 게임성을 포기하긴 한 듯 합니다. 다만, 그걸 포기하면서 얻은 것이 게임성 측면을 훨씬 뛰어넘기에 이 게임은 기존의 게임과 다른 카테고리로 들어간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게임은 사실 기존의 보드게임이라는 장르가 가지는 특징과는 구별되는 몇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1. 기본적으로 협력 게임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협력게임과 구분지어지는 하나의 포인트가 있는데, 타임스토리는 일반적인 협력게임과 같이 게임내의 시스템과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들어 설명드리죠.

일반적인 협력게임이라하면, 게임내에서 매턴마다 플레이어에게 위협이 되는 무슨 사건이 일어난다거나 몬스터가 튀어나온다거나 하는 식으로 게임내 시스템이 전체 플레이어를 공격해옵니다. 그런 위협들을 플레이어들은 협력해서 그 위협에 대처해야하죠.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한다면, 위협들이 쌓여 전체적으로 패배라는 결과를 맞이하게 되며, 플레이어들이 힘을 모아서 가지고 있는 자원등을 효과적으로 이용하여 그 위협들을 다 제거해나가면, 게임에서 승리하는 식입니다.

이게 일반적인 협력게임이죠. 그런데 이런 방식은 설령 그전에 이미 플레이해본 플레이어가 있다고 하더라도, 게임에 있어 도움이 되는 수준이지,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이 의미없게 될 가능성은 적습니다. 왜냐하면 결국에는 게임으로 기능하기 위해서, 그런 난관을 해결하기 위하여 "자원"을 투입하게 구성되어있습니다. 그 자원은 게임내 구성물인 돈이나 일꾼등으로 표현될 수도 있고, 카드로 표현될 수도 있으며, 턴수로 표현될 수도 있습니다. 플레이어들은 그런 자원을 투입해야만, 난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게임은 다릅니다. 이 게임에서 주어지는 시련은 게임내에서 벌어지는 이벤트들이며, 그 이벤트들을 이미 해본 플레이어가 알고 있다면 그 위협들을 쉽게 해쳐나갈 수 있게 됩니다.

가령,
"당신에게 선택지 A,B가 있습니다."
"야 나 이거 전에 해봤어, 정답은 A지."

라고 한다면 B를 선택함으로 인하여 날려버릴 수 있는 위험성을 답을 알고 있다는 이유로 아무런 리스크없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답을 알고 있다면 게임내의 위협이 심각하게 저하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게임은 1회성에 가까운 게임입니다. 이것이 이 게임이 가지는 첫번째 특징입니다. 자 이 시점에서, 제 글을 읽고 계시는 분이 있다면 제가 이렇게 써놓으면 "에이 별로다."라고 생각하실 분이 계실지 모르겠으나, 좀 더 읽어보시죠.

2. 기존 테마 보드게임과 달라지는 것, 두번째는 일정한 스토리 라인이 있는 것입니다.

사실 기존의 테마성 보드게임이라고하면, 물론 스토리같은 것이 있긴 한데, 그것을 즐기려 게임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리하여 보통의 테마성 보드게임들은 테마 같은 것이 일종의 조각화 되어서 게임의 군데군데 뿌려져있는 형태입니다. 이벤트 A, 이벤트B 이런 식으로요. 그리고 그런 이벤트들이 우연하게도 스토리라인이 이어지게 될 수도 있지만, 그렇지도 않을 수 있습니다. 혹은, 이벤트들이 순서대로 스토리라인을 구성하기는 하는데, 결국 처리되는 것은 게임적 시스템 측면에서 처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벤트가 벌어졌을 때, "어... 그래 이야기는 알겠어. 그럼 내가 가진 A,B카드를 쓰면 되는거지?"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이 게임은 스토리 라인 자체가 이 게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게임내 모든 이벤트들은 묘사가 꼼꼼하게 주어져있으며, 전체 스토리의 윤곽을 알아내는 것이 이 게임의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플레이어들은 일종의 어드벤쳐 게임 내지는 예전의 게임북 형태의 경험을 하게되는 것입니다. 사실상 가장 유사한 기존 매체가 한 이십년 전쯤에 유행했던 게임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 스토리 시작이 있고, 중간의 해결과정이 있고, 마지막 마무리가 있습니다.

그런식으로 되어있다보니, 기존의 협력보드게임들이 다소 엉성하게 각 사건들이 구성되어 있는 단점이 있다면 이 게임은 처음부터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기위한 방식으로 모든 이벤트들이 연계되어있습니다. 잘 짜여져있다고 볼 수 있죠.

그래서 스토리가 잘 짜여져있어서 재미있음?

네, 재미있습니다. 식상한 표현이긴 한데, 하나의 소설을 읽는듯한 느낌이 듭니다. PC판의 인터렉티브 노블같은 느낌이 듭니다. 보통 이런 식의 게임이 좀 묘사가 떨어지면 재미없는 느낌이 들게 마련인데, 이 게임은 묘사가 잘 되어있고, 그림도 상황에 잘 맞게 되어있어서 재미가 있습니다.

예를 하나 보시겠습니다.

타임스토리즈의 첫번째 게임인 정신병동은 여러 장소들로 구성되어있습니다. 각 장소는 고유한 카드 더미를 가지게 구성되어있습니다. 위 장소는 게임내 만나는 첫번째 장소입니다. 플레이어들이 각 장소에 도착하면, 장소 카드 더미를 게임 보드위에 순서대로 죽 깔게 됩니다. 그러면 위 그림 우측에서 보다시피 하나의 장소가 눈앞에 펼쳐지게 됩니다. 그리고 장소를 글로써 묘사하는 한장의 카드를 옆에 깔게 되어있습니다. 그 카드의 묘사는 이런식이죠.

(※ 이 문장은 게임내 텍스트와 완전히 다릅니다. 제가 그냥 쓰는 것입니다.)

"이 곳은 주간 응접실이다. 오후의 아늑한 햇살이 내리쬐는 창이 있고, 큰 응접실 내에서는 환자들과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가 각자 자기 시간을 보내고 있다. 고요한 느낌이 드는 곳이다. 다들 각자의 일에 뭔가 몰입해 있는 모습이다. 맨 왼쪽에는 간호사가 무언가 말을 걸고 싶은듯이 우리들을 쳐다보고 있다. 그 오른쪽에는 혼자서 낮은 목소리로 뭔가를 중얼거리며 체스판을 보고 있는 남자가 있다. 그 오른쪽에는 어딘가 불안정한 느낌의 여자가 혼자서 큰 그림판 위에서 붓을 들어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런 식의 텍스트가 적혀있으면, 플레이어는 각자 오른쪽에 있는 그림의 카드들 중에서, 자기가 원하는 카드를 뒤집어서 뒷면에 적힌 내용을 읽고 해당하는 액션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각 장소마다 저런 카드 모음들이 적혀있으며, 플레이어들이 다른 장소로 이동하게 되면, 또 다른 장소카드 더미를 깔아서 액션들을 수행하고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방식입니다.

묘사를 읽어보고 그림을 쳐다보고, 그 카드를 뒤집어 액션을 수행하고 하는 과정이 있다보니 매번 새로운 장소로 가서 그 그림을 쳐다보고 또 묘사를 머리속에 그려보고 하다보면 어느새 자기 자신이 이 게임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되어서 굉장히 몰입성이 있습니다. 하나의 세계를 그려내는 방식이 기존보다 꼼꼼하게 되어있어서 단순히 카드 텍스트와 그림이지만, 마치 그 장소에 가 있는 것 같은 몰입성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몰입성이 있는 게임은 좋은 게임이죠.

단순히 카드 몇 장으로 이루어진 게임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카드들이 주는 몰입성은 소설책이나 영화를 보는 수준과 근접합니다. 아무래도 지도와 화면묘사 등이 있어서 그런 듯 합니다.

사실 어쩌면 이런 방식은 예전의 TRPG의 방식과 유사합니다. 마스터가 각 장소를 배치하며, 각 사건들을 배치합니다. 플레이어들은 그 세계를 모험하며, 곳곳에 배치된 사건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지요. 타임스토리즈에서는 각 카드들이 마스터 역할을 대신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의 모듈화된 TRPG라는 표현이 있던데 굉장히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게임 내에서 각 캐릭터들을 맡으며 각자 다른 능력치로 각자 조금씩 다른 역할을 수행하며(언변이 좋은 캐릭터, 전투력이 좋은 캐릭터) 중간중간 테스트.라고 하는 주사위 굴림시간이 있는데, 각자 능력에 맞는 테스트를 하면 유리하게 결과를 뽑아낼 수 있는 것은 D&D에서 내성굴림과 유사한 느낌입니다. 각 장소에서 벌어지는 이벤트들이 일정한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있는 것도 마스터가 짜오는 시나리오 역할을 하는 것이죠.

그러한 과정중에서 스토리라인을 즐기는 게임입니다. 그리고, 그 스토리라인의 품질이랄까요. 그건 이렇게 평가할 수 있겠네요.

제목과 같습니다. "플레이어들의 4시간을 확실하게 날려줍니다" 타임스토리즈는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있는 것 뿐 아니라, 이 게임 자체가 시간 여행 장치입니다. 4시간 뒤로 당신을 날려줍니다.

국내에는 본판인 정신병동과, 첫 확장인 마시 사건. 까지 출시된 것으로 알고 있고, 추후에도 이런 시나리오성 확장이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제작사가 짜놓은 시나리오외에 다른 시나리오를 직접 만들 수 있는 키트가 출시될 예정입니다. 그럼 정말 TRPG와 비슷한 느낌으로 할 수 있을듯 하네요.

결론적으로, 기존의 보드게임에 속해있던 게임들과는 다른 느낌의 게임입니다. 제가 과문한지라, 이전에도 이런 장르가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굉장히 신선한 느낌의 게임입니다. 한번만 플레이만 된다고 폄하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으나, 그 밀도는 굉장히 높은 게임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꼭 해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아울러, 빅비님의 한글화가 참 빛을 발했습니다. 한글로 잘 번역해놓은 한글화가 있었기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텍스트만 번역하여 에버노트의 노트북 형태로 공유해주신 것인데, 그걸로도 재밌게 했네요.)

(여담이지만, 제가 게임을 말아먹을뻔한 액션을 한지라, 끝나고 나서 좀비쿠키,빅비 두분이서 얼마나 갈구던지 흑흑흑흑 ㅠㅜ)

De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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