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움의 미학 - 마르코 폴로의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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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7-26 오후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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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리뷰에서는 룰에 대해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

촐킨의 등장은 은 신선함을 넘어선 충격이었다.

많은 분들이 잘 아시다시피, 마르코 폴로의 발자취(이하 마르코 폴로)의 작가들의 전작은 촐킨이었습니다. 일꾼 놓기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죠. 최근 나왔던 다른 일꾼 놓기 게임들과는 다르게, 정말 "새롭다"고 할만한 게임이 나왔던거죠. 촐킨은 분명 신선하고, 재밌고, 묵직했습니다. 다만 반대급부로 이 게임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꽤나 있었죠. 그런 촐킨 작가들이 시쳇말로, 모두에게 "먹힐만한" 게임을 들고 나왔습니다.

기대 속에 나온 마르코 폴로는 과연?

그 작품이 바로 마르코 폴로입니다. 감히 말하건대, 이 게임은 보드게임 초심자부터 숙련자까지, 모두를 사로잡을만합니다.

룰? 쉽습니다. 넉넉잡아 20분이면 설명 끝나고도 남습니다. 잔룰도 적어요.

컴포넌트? 초심자에게 익숙한 주사위에다, 테마에 맞는 아트워크도 좋습니다.

길이? 길어봤자 2시간도 안 걸립니다.

재미? 주사위 일꾼, 특수 캐릭터, 길 연결, 흥미로운 테마. 이 정도면 재미 없기가 더 힘듭니다.

두근거린다고 합시다.

마르코 폴로를 간략하게 설명하면, 주사위를 사용하여 액션을 하고, 그 액션을 바탕으로 점수를 얻는 게임입니다.

점수를 얻는 방식에는 계약 이행, 여행 (교역소 건설) 두 종류가 있습니다.

여행은 할 수 있는 액션을 늘려주고, 라운드 시작마다 보상을 주기도 하며, 게임 종료 후 추가 승점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계약은 일정 자원을 지불하면 보상을 주는데, 이 보상들은 자원과 돈부터 여행과 다른 미션 같은 보상과 함께 승점을 줍니다.

이를 어떻게 잘 조화시키느냐가 게임의 승패를 가르죠. 계약만 이행한다고 승자가 될 수도 없고, 여행만 한다고 승자가 될 수도 없습니다. 여행을 하지 않고 계약에만 집중한다면 강력한 대도시 액션들에 밀릴 수 밖에 없고, 계약을 깨지 않고 여행에만 집중한다면 승점과 보상이 부족합니다. 결국 여행으로 자원을 얻고 계약을 깨고, 계약으로 얻은 자원으로 여행을 하는 식의 순환이 필요한 것이죠.

그렇다면, 이 게임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소들을 보도록 할까요.

쿠빌라이 칸은 능력은 괜찮은데, 심심합니다. 베이징에서 시작하는게 전부라니!

마르코 폴로의 첫 번째는 특수 캐릭터입니다. 다채로운 캐릭터들은, 다른 게임에서라면 가히 사기적인 능력을 지닙니다.

주사위 눈금을 자기 맘대로 쓴다던가,

남들이 하는 행동마다 무엇을 받아온다던가,

맵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올 수 있다던가,

원래는 남들이 선점한 자리에 돈을 내고 들어가지만 자기는 맘대로 들어간다던가.

하나같이 사기적인 능력들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캐릭터들이 밸런스가 맞습니다. 더구나 캐릭터 하나하나의 능력이 강력한만큼, 다른 캐릭터를 플레이한다면 플레이 양상이 확연히 달라지게 됩니다.

두 번째는 가벼움입니다.

마르코 폴로는 한 액션에 같은 색이 두 번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중립 주사위를 사용한다면 같은 액션도 여러 번 할 수 있습니다.

강력한 대도시 액션은 선점이 가능하지만, 일반 액션은 일정 비용만 내면 여러 사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다른 게임처럼 선점의 요소를 갖춰놓으면서도, 다른 길로도 숨통이 트이게끔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는 게임을 전략 속에 진행하면서도, 빡빡하게 느껴지지 않게 만들어줍니다. 적어도 다른 일꾼 놓기 게임처럼, 하나 선점 당했다고 모든 계획이 어그러지는 일은 없습니다. 러시안 레일로드처럼 점수가 시원시원하게 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게임하는 동안 극악하게 고통스러울 일이 없다는 얘깁니다.

마지막은 테마와의 결합입니다.

촐킨만큼 게임이 직접적으로 닿아있진 않습니다. 그렇지만 사막에서는 낙타를, 바다에서는 뱃삯을 내는 여행과 계속해서 이어지는 왕의 지원, 처음 온 서양인들을 환대하는 도시들, 베이징에 도착하면 내려지는 칸의 점수. 게임 곳곳에서 느껴지는 테마성은 마르코 폴로를 단순한 주사위 일꾼 게임이 아닌, 동방 견문록을 써가는 과정으로 만들어줍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마르코 폴로는 정말 굉장한, 완벽한 게임인 것 같군요.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마르코 폴로도 단점이 있죠.

일단 특수 캐릭터입니다. 게임의 리플레이성을 높여주고, 흥미를 돋궈주지만 일부 캐릭터는 플레이 성향을 고정시킵니다. 예를 들어 이동하는 칸마다 모조리 교역소를 놓는 윌리엄이라는 캐릭터를 하면, 이동 액션은 최소 3칸 이상 움직이는 방향으로 플레이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단점은 큰 것이 아닌게, 플레이 전체의 방향을 좌지우지하는 능력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컴포넌트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게임 하다보면 3개 짜리 (커다란 것)와 1개 짜리(자그마한 것)이 잘 구별이 안 갑니다. 가져오다 실수하기도 하고.. 모양이나 구성물 자체에 관한 불만은 없습니다만, 조금만 모양을 달리 하거나, 크기를 좀 더 키웠더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단점이 너무 적은 것 같은데.. 마르코 폴로 자체가 단점을 찾기 힘든 게임입니다. 그만큼 완벽한 게임이라기보다, 촐킨처럼 신선한 게임이 아니다보니 취향을 적게 탄다고나 할까요. 개인적으로 마르코 폴로의 포지션은 묵직하게 즐기는 전략 게임이라기보다, 앉은 자리에서 두 판 정도 돌려볼 수 있는 가볍고 재미있는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판 돌린다고 진이 빠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번에는 다른 플레이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볍습니다.적당한 랜덤성, 적당한 무게.

묵직한 전략 게임에 질리거나, 조금은 가벼운 게임을 찾고 계시다면, 웃으면서 진행할 수 있는 전략 게임을 찾는다면 마르코 폴로를 적극 추천합니다.

한줄평 - 간만에 보는 주사위 게임. 명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수작. 트루아와는 또 다른 재미로 즐겨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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