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피할 수 없다면... (3)
질주는 본능이라 표현해도 무리가 없을만큼, 인간은 속도가 주는 강한 자극을 외면하기 어렵다. 철들기 전부터 빨리 달릴 것을 주문받는 우리는, 심지어 국가가 “과속은 위험하다”고 그렇게 강조하고, 도로 위에 포도송이만큼이나 주렁주렁 과속감시카메라를 달아놓아도, 그걸 피해서 틈만 나면 가속 페달을 힘껏 밟고 있지 않은가. 분명 질주는 인간의 본성을 자극하는 마약같은 것으로 꼽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도박 또한 마찬가지다. 돈을 놓고, 돈을 먹는다는 점에서 현대 사회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자본주의와 다를 바 없건만, 짧은 시간에 너무나 큰 효과를 낳기 때문에 그 자극을 참아내기 힘들다. 그 자극에 취해서 몸도 마음도, 심지어 주변 사람까지도 피폐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마약 중독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강하게 인간의 본성을 자극하는 것은, 바로 타인의 불행에 대한 쾌감이다. 직접 경쟁을 통해서 상대를 패배시켰을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전혀 다른 외부 요인으로 인해 상대방이 불행해지는 경우에도, 우리는 적지 않은 쾌감을 느낀다. 이건 거의 모든 문명권에서 공통된 표현으로 나타나는데, 독일어의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가 대표적이다. 심지어 한국인은 그 역(逆)에 해당하는, “타인의 행복은 나의 불행”을 의미하는 표현도 있지 않은가.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이 밖에도 살인이나, 폭력같이 인간의 본성을 자극하는 것들은 부지기수지만, 함께 살아가는데 심각한 반작용을 초래하는 것들은, 인류문명이 발전하면서 사회화 과정에서 대부분 억제되거나 다른 방향으로 발산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고대 로마에서 살인과 폭력의 본성을 충족시켜주었던 검투사 시합이, 오늘날에는 복싱이나 격투기 등으로 변화한 것이 대표적 사례라 하겠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 덜 문명화된 탓인지는 몰라도, 상기한 세 가지 자극 요인들에 대해서는, 겉으로는 억제를 표방하고 있을지언정, 실제로는 끊임없이 부추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과속방지턱과 감시카메라가 지천에 널린 나라에서, 외국인이 가장 먼저 익히는 한국어 표현이 “빨리빨리”라는 사실.
내국인 카지노는 단 한 곳만 허용하는 나라인데, 온 국민이 부동산이라는 거대한 투전판에 서로 못 들어가서 안달이라는 사실. (1)
그리고, 유치원에 들어서면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누가 누가 잘하나”. 사회화를 시작하면서, 경쟁만을 끊임없이 부추기는 현실. 분명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협동의 가치는 경쟁보다 결코 가볍지 않을텐데, 우리는 이 사회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로 만들어 놓았다. 수능 시험 날 스러지는 많은 젊음 앞에 가슴 아파하기 보다, “그 정도도 못 견디는 나약한 정신상태”를 비난하며 살아갈 자격을 운운하는 괴물들과 우리는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과속, 도박, 타인의 불행에 대한 쾌감은 이 땅에 발붙이고 사는 한, 외면하려 해도 끊임없이 자극받는 본성인데…
(1) 도박의 폐해가 국적을 가리는 문제가 아님에도, 내/외국인을 가리는 카지노라는 것은, 이미 이 사회가 이 문제를 윤리의 관점에서 보고 있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