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을 통한 스토리텔링 체험 교육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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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3-2 오전 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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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국어교육과를 나왔는데 교사가 되지는 않고(아마 앞으로도 되지 않을 것이고) 문학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게이머입니다.

어찌어찌 하다보니 이번에 한 중학교에서 보드게임 관련 방과 후 수업 같은 것(자유학기제)을 맡게 되어서 한 학기 동안 수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기왕 맡게된 것이니 시간만 때우기보다는 제 전공에도 맞고 애들에게 도움이 되는 수업을 해보고 싶더라구요.

그래서 이런저런 고민을 하게 되었는데,이 글은 그 고민을 나누고 조언도 구해보고자 쓴 것입니다.

교육에 관심 없으신 분께는 지루하기만 한 글이 될 것 같으니 더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ㅎ

제가 해보고 싶은 것은 스토리텔링입니다.

요즘 인기있는 마블 영화 같은 것을 보면 흥미로운 캐릭터들과 긴박한 사건 전개가 도드라지잖아요.

학생들도 한번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보게 시키면서, 창의성도 기르고 서사물에 대한 문해력도 함양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옛날 옛적에"라든가 "스토리 큐브" 같은 게임을 써보려고 했는데 이 게임들은 너무 정해질 틀에서 단편적인 이야기를 만드는 감이 있고,

(저 개인적으로 이 게임들은 재미가 있는 게임이라기보다는 '교육용' 게임임에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참신하고 적극적인 사람들이 하면 재밌지만... 애들이 다 그렇게 해줄지는 의문이구요.)

TRPG를 하면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마스터(스토리텔러) 역할까지 하기는 버거울 것 같더라구요.

제가 마스터가 되어서 "좀비사이드"나 "엘드리치 호러" 같은 게임 혹은 TRPG를 이끌어나갈 수도 있기는 한데,

그렇게 하면 저 혼자서 시나리오와 카드를 보면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고 학생들은 기계적으로 주사위나 굴리게 될 확률이 커서요ㅋㅋ

그래서 게임의 재미+학생들의 참여 유도를 고려하면서 저는 이 정도 커리큘럼을 생각해 봤습니다.

1 - Ice Breaking : 보드게임 "타부" 만들어보기(설명/묘사력 함양)

2 - 영상물 보고 뒷이야기 만들어보기

3 - 보드게임(캣&초콜릿 + 무비 크리에이터)

4 - 우리 동네에 대한 이야기 정리/창작하기 or 보드게임 "인생게임"

5 - 지도를 보면서 캐릭터들 만들고 롤플레잉 해보기

6 - 뱀주사위 게임 or 부르마블스러운 roll and move 주사위 게임 만들어 보기

하나씩 풀어서 설명을 드릴게요.

1 : "타부"(Taboo)는 한국에서 별로 안 유명한 게임인데요, 독일에서는 교육 목적으로 많이 쓰는 게임입니다.

게임은 간단합니다. 한 팀이 문제를 내는 사람과 맞추는 사람들로 나뉩니다. 문제를 내는 사람은 다섯 개의 타부를 발화하지 않으면서 정답단어를 설명해야 합니다.

문제는 이런 식입니다.(영어라 죄송)

가령 여기에서 문제를 내는 사람은 Study, Learn, School, Teacher, Answer 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Test"라는 단어를 맞추게끔 설명해야 하는 거지요.

솔직히 말하면 이것도 성인들이 하기에는 엄청 재미있는 게임까지는 아닌데,

제가 저번 학기에 중학생들에게 수업을 하면서 이 게임을 알려주고, 스케치북을 나눠준 후 두 조씩 나누어서 직접 (한글로) 문제를 낸 후 다른 조에게 맞춰보도록 시켜 보았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습니다. 애들이 다른 조가 못 맞추게 하려고 문제를 어렵게 내고 무척 즐거워 하더라구요.

첫 시간에 이 게임을 하면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깨고 학생들이 직접 말해보는 경험을 갖게 한다는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 눈치채셨겠지만 이 게임 은근히 교육적입니다.

왜냐면 타부어 5개는 정답단어를 설명하기 위한 키워드들이어야 하거든요. 그리고 타부단어들을 언급하지 않으면서 단어를 설명하려면 그 단어에 대해 다층적으로 알고 있어야 하구요.

가령 "자동차"라는 단어를 쓰면 학생들은 타부어를 "핸들", "버스", "승용차", "엔진", "기름" 정도로 합니다.

그런데 자동차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라면 이 단어들을 빼고도 잘 설명할 수 있잖아요? "빽미러"라든가 "가솔린"이라든가 "면허"라든가 "현대/기아"라든가 "버스/택시"라든가... 뭐 이런 단어들을 언급하니까요. 그래서 이 게임을 하게 되면 하나의 사물을 다층적으로 보고 차분하게 설명하는 훈련이 됩니다.

2 : 영상물 보고 뒷 이야기 만들어보기

아무 영상물이나 틀어놓으면 저작권법에 위배될 수 있어서, 인터넷에 공개된 웹드라마 같은 것을 보려고 합니다.

가령 "퐁당퐁당 LOVE"라는 낯뜨거운 제목의 네이버 웹드라마가 있는데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여고생 김슬기가 학교 가기 싫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조선시대로 갑니다(...) 그 조선시대에 왕은 윤두준이구요.

현대인인 김슬기와 조선시대의 인물인 윤두준은 생각부터 말투 복장 등등 모든 것이 다른데요, 둘 사이에 러브러브한 기류가 생깁니다...

이 정도면 뒷 이야기는 대충 그려지실 것 같습니다.

이런 저런 일을 겪으면서 김슬기가 윤두준이 썸을 타고 사랑을 하게 되고, 그러다가 김슬기는 결국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재로 돌아가서 헤어진다거나 둘이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산다거나 하겠죠?

저는 학생들에게 드라마의 앞부분만 보여주고 뒷 부분에 윤두준과 김슬기가 어떤 사건들을 겪으며 어떻게 될런지를 상상해보고 이야기하게끔 해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제가 대학생 나이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니까 수업이 재미있게 되었던 커리큘럼인데, 중학생들에게도 이 드라마가 재미있을지, 학생들이 잘 할 수 있을지는 사실 잘 모르겠네요ㅎ

3 : 보드게임(캣&초콜릿 + 무비 크리에이터)

캣&초콜릿은 한국에 정발도 되고 꽤 알려진 게임이고... 무비 크리에이터는 한국에 소개도 안 된 게임 같은데, "옛날 옛적에"의 비쥬얼 버젼이라고 보면 됩니다.

플레이어들이 각자 요런 식의 이미지 카드들을 들고 있다가, 차례로 한장씩 내려놓으면서 릴레이로 이야기를 만드는 게임이예요.

저는 이 게임이 참 재미있다고 생각하는데 한국에 알려지지도 않았고 약간 언어가 있는 이벤트 카드들도 있어서 걱정입니다.(한글화 해주세요! 엉엉ㅜ)

저 개인적으로는 이 게임의 "옛날옛적에" 같은 것보다 재미도 있고 이야기의 자유도가 높아서 수업 목적에 맞을 것 같아요.

4 - 우리 동네에 대한 이야기 정리/창작하기

학생들이 각자 자신이 살던 동네에서 겪었던 이야기/동네에 대해 알고 있는 이야기들을 공유하고, "초등학교 6학년 김모군의 하루" 같은 제목으로 다이나믹하고 굴곡 있는 이야기 만들어보기.

'인생게임' 해보면서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한 서사 만들어보기

5 - 지도를 보면서 캐릭터들 만들고 롤플레잉 해보기

왕좌의 게임이나 반지의 제왕 같은 게임 설정으로 볼 수 있는 지도를 출력해주고, 각각 능력치가 있는 캐릭터들을 만들어서 직접 판타지 이야기만들어보기.

(TRPG 정도의 자유도를 주면 애들이 버거워할 것 같고, 도라스레 정도로 가볍게 할 수 있는 느낌의 게임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몇몇 몬스터/설정은 제가 피규어를 가져가거나 캐릭터 카드 같은 것을 만들어 가서 학생들이 이야기를 진행하다가 등장하게 만들구요)

6 - 뱀주사위 게임 or 부르마블스러운 roll and move 주사위 게임 만들어 보기

중학생 버젼의 인생게임 같은 것을 직접 만들어보도록 시키고 싶습니다.

한 명의 중학생이 학교를 다니면서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일들이 있잖아요. 선배가 시비를 건다거나, 나쁜 짓을 한다거나, 연애를 한다거나, 선생님께 혼이 난다거나, 친구와 싸운다거나, 선도부를 하게 된다거나..

뭐 이런 사건들을 구상하고 정리해서 각각의 칸에 넣은 후, 각각이 맡은 캐릭터로 게임을 진행하면서 이야기 진행해나가는 것을요.

대략 이 정도로 생각해 봤는데요. 혹시 저와 같은 목적으로 특별활동 OR 수업 같은 것을 중학생 정도의 학생들에게 해본적 있는 분 계신가요?

있으시면 제게 부족한 부분을 지적/조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쓴 것 중에 조금이라도 참조하실 만한 것이 있으시면 참조/차용해서 쓰셔도 좋구요.

요즘 교사분들도 꽤 많이 보드게임계로 들어오신 것 같은데, 저는 이런 이야기도 아카이빙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저부터라도 이번 학기에는 위에서 말한 커리큘럼을 조금 더 정제해서 진행해보고, 좋았던 것, 부족했던 것, 보완했던 것을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물론 제 시간이 안 나거나 아무도 관심 없으시다면 중간에 소리소문 없이 연재가 끊길 수도 있겠지만요:)

어쨌든 경험+고민을 나누고자 쓴 글이니 조언할 게 있으시면 언제든 편하게 말씀해주시고 관심 있으신 분들의 호응(?)도 부탁드리겠습니다!

모두 즐거운 주말 보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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