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으로 시 창작하기 #3 (마지막 회)

용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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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5 오전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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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게임으로 시 창작하기 #1

보드게임으로 시 창작하기 #2

이전 글은 위 링크로.

이제 마지막입니다. 재미없는 글이지만 읽어주시는 분들이 있어 감사합니다. ㅎㅎ

지난 글에서는 창작하기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말았네요. 이어서 계속해 보겠습니다. 단순한 이미지의 나열만으로도 시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를 했었는데, 딕싯의 그림만 묘사하여 나열한 예시를 보겠습니다.

예시)

물방울 속에 사람이 있다. 해가 있다. 뱀이 있다. 들판이 있고, 물방울 속에는 물이 있다.

물방울들은 모두 어딘가에 묶인 채 떨어져 내리고 있다.

벽에 몸이 갇힌 채 머리만 내밀고 있는 사슴은 뿔이 있다. 여자의 치마 속에 갇힌 물고기들이 떠돌아다니고 여자의 머리카락은 뿔처럼 치솟는다. 노파가 앞치마를 들고 자신의 뱃속을 보여준다. 학대의 순간이 포착되고 있다. 노파는 뿔을 들고 웃었다. 나는 곰인형 뒤에 숨었다.

물방울 속에는 꼭두각시가 어딘가에 묶인 채, 얌전히 앉아 있었다.

딕싯을 해보신 분들이라면 익숙한 그림들이 보이실 겁니다. 정말 그 그림들을 글로 옮겨 놓았을 뿐입니다. 그렇지만 그냥 읽어서는 이렇게 그림을 나열한 것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바로 제목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시에서 제목은 내용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많은 시인들이 시를 다 써놓고도 제목을 정하지 못해 며칠씩 밤을 새우기도 합니다.

위 예시에 ‘슬픔’과 관련된 제목을 붙여 봅니다. '슬픔의 형태'라고 해보도록 하죠. 슬픔이라는 말이 제목에 들어가는 순간 나열된 그림들이 의미를 품고 살아나는 것이 느껴질 것입니다.

사실 이 정도면 딕싯을 활용한 시 창작하기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다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후의 내용들은 낯설게 하기 방법 몇 가지입니다. 학생들에게 알려주면 좋은 방법들이지요.

먼저 가장 간단한 비유를 만드는 방법입니다. '깡통'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깡통이 길가에 버려져 있다.' '깡통이 찌그러져 있다.' '깡통이 녹슬어 간다.'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문장입니다. 그러나 이 문장을 살짝만 비틀어주면 시가 됩니다.

'내가 길가에 버려져 있다.' '나는 찌그러져 있다.' '나는 녹슬어 간다.'

'깡통'을 '나'로 바꿨을 뿐입니다. 또 다르게 바꿔보면

'아버지가 길가에 버려져 있다.' '아버지는 찌그러져 있다.' '아버지는 녹슬어 간다.'

이번에는 '아버지'로 바꿨을 뿐입니다.

아이들에게 이 예시를 들면서 저는 창의성은 아주 특별하고 기발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반드시 해 줍니다.

'기존에 주어진 것을 살짝만 비틀어주면 완전히 새로운 것이 나오게 된다. 바로 우리가 깡통을 아버지로 바꾼 것처럼'

또 다른 방법입니다. 주어와 목적어 또는 부사어의 자리를 바꿔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전혀 엉뚱하면서도 기발한 표현이 나오기도 합니다.

위에 제시했던 '슬픔의 형태'의 몇 부분을 고쳐 보겠습니다.

① 벽에 몸이 갇힌 채 머리만 내밀고 있는 사슴 -> 사슴 속에 머리가 갇힌 채 몸만 내밀고 있는 벽 또는 머리 속에 몸이 갇힌 채 벽만 내밀고 있는 사슴

② 여자의 치마 속에 갇힌 물고기 -> 물고기의 치마 속에 갇힌 여자

이외에도 단어 잇기, 마인드 맵 만들기, 반대로 생각하기 등등 많은 방법들이 있습니다만 이제 마무리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동아리에서 학생들이 쓴 시와 소설을 엮어 만든 문집입니다. 문집의 제목은 한 아이가 쓴 시의 한 행을 그대로 따와서 지었습니다. ㅎㅎ

아이들이 시는 '딕싯'을 바탕으로 썼고 소설은 '디셉션'을 바탕으로 썼습니다. 여기서 다루지는 않았지만 소설도 놀라운 것이, 아이들이 게임을 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A4용지 30페이지 분량의 소설을 써오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가진 능력은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어디서 본 시가 보입니다. #1에서 드렸던 문제의 보기 중 하나가 여기 있네요. :)

그리고 우측의 시도 어디서 많이 본 그림이죠? ㅎㅎ 짧지만 강렬한 무언가가 있는 멋진 시입니다.

좌측의 시는 딕싯을 기반으로 했지만 이후 학생의 상상력과 위에 보여드렸던 시 변형방법이 더해졌습니다. 그래서 원래의 그림은 많이 사라졌죠.

정답은 (가)입니다.

(가)는 제가 쓴 작품입니다. 기성시인이라고 해놓고 제가 썼다니 속은 기분이시죠? 죄송합니다.ㅋㅋㅋ

그런데 저는 시인입니다. ㅠㅠ

시인이 제 입으로 시인이라고 말하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지만...

원래 정말 잘난 사람은 자기 잘난 점을 말하지 않죠.

하지만 저는 못난 놈이라 제 자랑이라도 잘해야겠다 싶은 마음....흐윽.

얼마 전에 시집도 냈습니다... 들고 오시면 사인도 해드립니다... ㅋㅋ

왠지 써놓고 보니 홍보글이 되어 버린 느낌. ;;;

아 정말 부끄럽다. ;;;;

어쨌든, 저는 보드게임으로 다양한 수업을 만들어보고 있습니다. 시쓰기, 소설쓰기 같은 문학적 영역만이 아니라 테포마로 화성이주프로젝트에 대한 탐구 수업이나 아줄, 알함브라, 사그라다 등으로 건축, 테셀레이션, 스페인의 역사에 대해 탐구하는 수업, 그리고 로렌초, 메디치 등의 테마를 바탕으로 르네상스 시대에 대한 탐구 등등...

사실 저는 궁금한 게 생기면 늘 찾아보는 편입니다. 예를 들어 사그라다를 한다면 사그라다가 무엇인지 찾아보는 거죠. 그렇게 나름 자기주도학습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드게임은 자기주도학습을 할 거리가 많다고 봅니다. 아이들에게도 그런 습관을 길러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또 언젠가 이런 수업에 대한 글로 돌아오겠습니다. 재미는 없지만 @_@;;

끝.

P.S. 방학 중 학교에서는 시리즈 왜 안 하냐고 물으시는 분이 계셔서... 이번 시즌은 쉽니다. 학교와 가정 모두 일이 너무 많아서요. ㅠㅠ 교사는 방학하면 노는 줄 아시겠지만... 저는 방학 전보다 더 바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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