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G 이벤트 In Vancouver 후기 - 부제: 광기의 커맨더

너굴너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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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2 오후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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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족들이 전부 한국으로 놀러간 틈에 짬이 나서 글을 하나 올려봅니다.

2. 저는 매직더개더링 경험이 있긴 하지만, 그 마저도 아주 먼 옛날. 1990년대 후반쯤에 스타터덱(?) 같은걸 두 개 가지고 논게 전부입니다.

3. 커맨더라는 포맷은 적당한 찌그레기 카드를 긁어모아 친구랑 몇번 즐겨본게 다예요.

4. 이 후기는 순수하게 매직 초보자의 시선으로 작성 하였습니다.

5. 그러므로 다양한 편견, 오해, 불신, 착각의 뉘앙스가 담겨 있습니다.

6. 제 생각이 틀리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의견이 맞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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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같은 육아로 2년 가까이 보드게임을 못한 채 스트레스가 쌓여가던 나날.

평소 매직더개더링, 특히 커맨더 포맷( 기본자원 + 고유한 카드 = 100장으로 구성된 덱으로 2-4명이 치고 박는 게임 형태 ) 을

자주 즐기는 친구가 밴쿠버에서 매직더개더링 이벤트를 개최한다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친구의 꼬드김으로 과거에 구입한 기본 커맨더 덱을 들고 참가 결정!

참가비도 비싼데다 온갖 재야의 고수가 참가하는 경기보단 5천원 내고 한판 하되 프로모 카드도 한 장 받을 수 있는 친선경기에 참가하기로 했어요.

도착해보니 멀리서부터 느껴지는 매직 플레이어들의 짙은 오라...

다들 두툼한 배낭. 화려한 카드바인더. 무채색 후드티. 적당히 헤진 청바지. 때로는 고양이 머리띠도 한채 한데 모여 웅성거리고 있더군요.

하필이면.

공교롭게도.

때마침.

매직더개더링 이벤트 옆에서는 어떤 비즈니스 모임이 열리고 있었는데요. 캐쥬얼한 세미 정장 + 한 손에는 음식을 들고 다양한 비즈니스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요.

멀리에서 두 그룹의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보이더라고요.

너굴: "야, 나 이거 어디선가 본거 같아."
친구: "?"

너굴: "멕시코랑 미국이랑 경계가 이렇지 않냐?"
친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굴: "화려함으로 치면 쟤네는 미국이고 우리가 멕시코 아님?"
친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즈니스 모임쪽엔 입간판에 세미나와 모임 주제에 대한 요약이 적혀있지만...

매직더개더링 이벤트 쪽엔 대문짝만하게 찍힌 카드의 이미지가... ㅠㅠㅠㅠㅋㅋㅋㅋㅋㅋㅋ

괜히 좀 부끄러워서 확실하게 선을 그었습니다.

너굴: "잘 알고 있겠지만 난 매직더개더링 초보야. 그러니까 너희들과 달라. 난 외부인 같은거니깐."

제가 입고 있는 후드티 + 배낭 + 손에 들고 있는 덱박스를 친구가 위 아래로 훑어보고 비웃었지만요.

어마어마한 종류의 카드가 실시간으로 사고 팔리는데다 다음 참가자들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우렁차게 울려퍼집디다...

제발... 제발 내 이름을 그렇게 크게 부르지 말아줘...ㅠㅠㅠㅠ....

친선전에 이름을 올리고 잠깐 주위 구경 시작.

경기장 안쪽을 들여다보니 벌써 엄청난 수의 매직더개더링 플레이어들이 앉아서 게임을 즐기고 있더군요.

지역대표 선발전 같은 것을 치르는 것 같기도 했고... 매직더개더링 심판코스를 밟은 전문가들도 "심판"이라는 명찰을 달고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애매한 판정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늘어놓고 있었어요.

복도에서는 엄청난 양의 싱글카드를 팔고 있었는데요.

그 중에서 제일 비쌌던 것은 350만원짜리 이 카드.

위는 90만원. 아래는 45만원짜리 카드인데... 놀랍게도 이걸 사가는 사람들이 있더라구요.

도대체 생계로 무슨 일을 하길래 저런 카드를 구입할 수 있는걸까...? 하는 생각을 하는 동안,

왼쪽에서는 카드를 팔고자 하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카드 감정을 받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가져온 카드를 전문가들에게 보여주면 현재 시세 + 카드의 상태 + 수요 등 다양한 것을 적용하여 가격을 매기구요.

이렇게 임시 수표를 발급해줘요. 이 수표로 아까 보았던 싱글 카드를 구매하거나 아니면 보관하고 있다가 나중에 쓸 수 있습니다.

제 친구는 딱 3장 팔았는데 11만원을 벌더라구요.

친구가 카드를 팔고 있는 동안 바로 오른쪽에서 발견한 귀여운 가족. 아빠가 팔려고 가져온 카드를 종류별로 분류하고 있더라구요.

나이를 보아 내용을 이해하진 못하고 색깔과 종류만 열심히 분류하는 것 같았어요.

딸 둘을 가진 입장에서 나도 10년 뒤면 이런 모습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잠시 뒤, 친구와 제 이름이 "매우 우렁차게" 호명되었고, 저희는 커맨더를 진행 할 테이블로 안내 받았습니다.

상대방은 커플이었는데요. 이미 다수의 이벤트 참가경력을 가진 경력자들이었습니다.

전 이때 알았어요.

내가 곧 즐길 커맨더 게임은 개빡셀거라는걸 ㅡㅡ

이제부터 제가 느낀 커맨더의 날것 그대로의 감상을 시작합니다.

1. 매 턴마다 벌어지는 미친 상황. 미친 시너지. 부족한 CPU.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커맨더는 2-4명(최적 4명)이 다 함께 치고박고 싸우는 난투형 포맷입니다. 대지라고 불리는 기본 자원카드 + 고유한 카드로 100장을 만들어 승부를 내죠.

"100장".

엄청나게 두툼한 덱이다보니 다 쓸 수도 없는데다가 이 덱에서 나오는 시너지 콤보의 종류는 무궁무진 합니다.

게다가 1:1이면 순식간에 압살 당할 국면에서 다른 플레이어들과 정치질을 하며 유리한 플레이어를 끌어내는 일이 자주 벌어지기 때문에,

꼴찌도 숨 죽이고 있다가 갑자기 선두권으로 치고 나가는 일도 허다하죠.

이렇기 때문에 커맨더로 입문하는 즐겜러 + 초보자들이 굉장히 많다고 합니다. 요즘엔 유명 IP (디앤디, 반지의 제왕, 닥터후 등) 를 끌어오며 입문자도 늘리고 팬층을 더욱 강화하고 있죠.

다만 이것은 밝은 면일뿐.......

복잡한 효과가 쓰인 카드가 플레이어마다 5-10장씩 깔리는 일이 대다수입니다. 그럼 적게 잡아도 20장. 상황에 따라 많게 잡으면 40장의 특수 주문/생물 카드가 바닥에 깔린다는 소린데요.

이 놈들이 서로 벌이는 시너지가 제 정신을 나가게 하더이다...

그 예로 공룡카드를 쓰던 친구가 있었는데 저를 콱! 하고 공격하더니 그 효과로 덱에서 7장을 뒤집어 공룡카드를 우루루 뽑아내질 않나...

공룡마다 온갖 효과가 붙으며 서로 시너지 효과로 더 강해지질 않나... 그 공룡에다가 카드를 덧붙여 공격력 + 체력을 뻥튀기 하질 않나...

작고 귀여웠던 공룡이 갑자기 공격력 15가 되어 위협이 되질 않나...

그 옆에 있던 파트너는 닌자? 같은 카드로 1/1 짜리 약한 놈을 갑자기 10/10 짜리 괴수로 바꿔버리질 않나... 그 효과로 뭐 이렇게 되고..

저렇게 되고... 이러쿵 저러쿵 하더니 1/1 짜리 생물(토큰) 14개가 튀어나오질 않나...

분명 테이블을 정리하는 마법으로 모든 몬스터를 다 죽였는데 다음 턴에 비슷한 수의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질 않나...

<구글에서 찾은 비슷한 광경>

지쟈스 크라이스트... 믓시엘... 부처님... 알라여... 제발 절 구원해주세요...

매 상황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건지 그 이유를 뭐라뭐라 설명해주는데

1. 카드도 낯설고 2. 효과는 너무 깨알 같아서 읽을 수도 없고 3. 진행이 빨라서 이해가 어렵습니다.

농담이 아니라 너무 많은 일이 벌어져서 어느 순간 뇌가 작동을 멈춰요.

핸드폰이 너무 과열되어서 켜지지 않던 적 있으신가요? 그게 님 뇌에서 벌어집니다. 영혼의 붕괴를 막으려고 뇌가 기능을 중단해요.

보드가 비워지며 "기회다!" 싶어 꺼져가는 촛불 같은 의지를 긁어모아 횃불 같은 투지로 끌어올리면,

바닥에 넘쳐나는 자원들 때문에 순식간에 처.음.보.는.새.로.운. 카드가 와장창 깔립니다.

미쳐버려요. 진짜로요.

크툴루님의 용안을 직접 두 눈으로 목격해도 이거보단 덜 미칠거예요.

이 친구들은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두뇌가 MTG 으로 특화된건지...

아니면 태생적으로 두뇌가 멀티코어인건지 보드를 슈루루루루룩 훑어보면서 매턴 계산을 하던데요? ㅡㅡ

싱글코어 두뇌를 가진 저는 중후반부턴 카드 이해를 포기하고 광기의 흐름에 몸을 맡겼습니다.

모두가 미쳤을 땐 그냥 함께 미치는게 맘이 편하더라고요.

2. 대명사 좀 쓰지 말라고....

이 광기 속에서 저를 더욱 미치게 만드는게 하나 더 있었는데요. 바로 대명사입니다.

지들끼리(?) 뭐라 뭐라 카드 효과를 설명하고 보여주고 이해하면서 나누는 대화가...

A: "이 카드를 사용하면 저 카드가 발동 되어서 그 효과로 얘랑 쟤의 능력을 강화해."
B: "그 카드는 니가 예전에 보여준 걔랑 호환이 잘 되는거 아냐? 그것도 덱에 있어?"
친구: "아 나도 비슷한거 당한 적 있어. 너도 그거 중심으로 튜닝한 덱이야?"

A: "아, 그거랑 좀 다르긴 한데 비슷해."

너굴:

카드 이름을 말해도 모를 판에 이거 저거 그거 아까 그거 아까 저거...

이런 대화는 통째로 뇌에서 필터링 해버렸습니다.

그래야만 얼마남지 않은 정신력을 보존할 수 있거든요.

3. 넌 이미 죽어있다.

전혀 그럴거 같지 않은 상황인데 "너는 이번 턴에 죽는다" 하고 선언이 나오고 실제로 그렇게 되더군요.

제 친구 체력은 무려 33 (40으로 시작합니다) + 적당해보이는 몬스터 서너장.

상대방은 고작 7 + 약해보이는 몬스터 5-6장.

누가봐도 제 친구가 압도적으로 이길거 같은 상황인데,

친구: "아... 큰일이네... 이거 두들겨 맞고 나가 떨어지겠는데...."

하며 고통에 빠집니다.

응? 누가봐도 니가 유리한거 아냐???

물어보니 커맨더에서 남은 체력은 승부의 유리함을 나타내는 지표가 아니더군요.

실제로는 지고 있는(지는 것처럼 보이는) 상대방이 카드의 시너지나 조합을 보았을 때 훨씬 더 유리한 상황이었대요.

이윽고 뭔가 양쪽 손에서 와장창ㅡ 하고 한바탕 마법대소동(...)이 벌어지고 투닥거리더니

제 친구가 아주 극적인 차이로 승리했습니다.

위 짤방마냥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는데... 그나마도 상대가 아주 사소한 실수를 하나 해서 순서가 꼬여 승리를 쥐지 못한거래요.

저만 빼고 모두가 다양한 경우의 수를 생각해보며 그런 국면을 봤다는거잖아요?

MTG 하는 사람들은 진짜로 두뇌가 멀티코어인가봐요 ㅡㅡ;;

뭐... 승부는 끝나고 당연하지만 저는 꼴찌로 게임을 마무리 했습니다. 프로모 카드 하나 받아서 히히~ 이러고 있는데 그 3명은 카드를 정리하면서

특정 장면에서 어떤식으로 해야했을지 복기까지 하더라고요.

당연히 안들었습니다.

이게 '친선' 경기라니... 도대체 경쟁게임은 얼마나 미친 상황이 벌어지는거죠...?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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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친구는 보드게임을 거의 즐기지 않고 커맨더 하나만 집요하게 즐기는데요.

오늘 배워보고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어요.

테이블 위에서 온갖 특수효과로 떡칠된 카드가 날아다니고, 상황이 계속 바뀌고, 악! 하는 순간에 국면이 휙휙 뒤집어지는데...

그 상황의 다양성과 파훼법이 무궁무진하다보니, 국면을 정확히 바라볼 수 있는 눈과 정확한 수순으로 대응할 수 있는 두뇌만 가지고 있으면 정말 재미있겠더라고요.

여러가지 보드게임을 질리도록 반복해서 즐겨봤지만... 이 커맨더만큼 한판에 보드게임 20판을 농축한 것 같은 온갖 미친 상황이 벌어지는 게임은 거의 해보지 못한 것 같아요.

저 같은 초짜에겐 너무 많은 카드가 우루루루 쏟아져 나오는데다 이름이 하나같이 어려워서 학습곡선이 미친듯이 높은게 흠인데 (정말 이걸로 입문하는 사람들이 많다고요...?)

익숙해지면 진짜 재밌을 것 같긴 합니다.

이런 게임이 취향에 맞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꼭 한번 해보세요.

이벤트 다녀오자마자 침대에 누워서 2시간 동안 잠든건 비밀이예요.

아마 뇌기능 어딘가가 망가져서 긴급복구를 하고 있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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