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프리미엄 2100년 + 후기
오늘 보드게임 아레나 프리미엄 만료기한이 2100년을 찍었습니다. 어쩌다 보니까 이렇게 됐네요.
한동안 게임 이식하느라 바빠서 잘 안 오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온 김에 소감이라도 올려볼까 합니다.
- 번역
누구라고 말은 안 하겠습니다만 아레나 번역을 하다 보면 (대부분은 안 그렇지만) 가끔씩 규칙서도 안 읽고 번역기 수준으로 번역하면서 번역 포인트만 타가려는게 딱 티가 나는 사람이 보이는데,
그러면 게임 하는 사람이나 나중에 고치는 사람이나 본인이나 전부 결과적으로 시간만 낭비하기 때문에
(사실 아레나 번역 페이지 맨 위에도 적혀있는 내용이긴 합니다만) 최소한 규칙서를 읽은 뒤 그에 맞게 번역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혹시 오역이 있다면 가감없이 수정 부탁드립니다.
확정 번역 100개 이상이거나 해당 게임 10번 이상 플레이하면 직접 수정 가능합니다.
저도 번역 끝난 뒤에는 한번씩 검수는 합니다만 돈 받고 하는 것도 아니니 번역에만 매달릴 수는 없어서 오역도 가끔 나오니까요.
- 게임 이식
예전에 개인 사이트를 운영한 경험도 있었고 D&D 캠페인을 하느라 html이나 자바는 꾸준히 만지고 있었어서 부담없이 도전해봤습니다만, 예상 외로 정말 험난한 길이었습니다.
왜 아레나 스튜디오에 수많은 프로젝트가 미완성 상태로 버려져있는지 짐작이 되더라구요.
지금은 게임 11개를 이식했고, 앞으로도 약간 더 할 예정입니다.
무슨 게임을 올릴건지는 보드게임 아레나 스튜디오 규정상 알파로 올라오기 전까지는 대놓고 공개할 수 없네요. ㅠㅠ
그럼 시간 순서대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 오목, 커넥트포
이 두 게임에서는 제가 처음부터 작업한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코드를 수정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각각 스왑계열 오프닝과 턴 되돌리기 기능, 게임판 크기 추가 등이 있었죠.
아레나에서는 백엔드에 php/SQL, 프론트엔드에 js/html/css를 쓰는데,
제가 전문 프로그래머도 아닌데다가 이 당시에는 아레나 프레임워크가 많이 낯설어서 이리저리 고생했습니다.
지금도 많이 미숙하긴 해도 그 당시 코드를 지금 들여다보면 정말 쪽팔리네요.
게다가 커넥트포의 경우 코딩 잘못해서 기존의 턴제 테이블을 모조리 말아먹는 대형사고를 쳤었기도 하구요 ㅠㅠ
그나마 운영진의 도움으로 뒷수습은 했지만... 그래서 이제는 남의 게임 버그 수정에는 손을 안 댑니다.
○ 따목
사실상 제 첫 프로젝트입니다.
오목과 기본 골자는 비슷해서 이미 있던 오목 코드를 기반으로 짰는데도,
다인플을 포함한 온갖 변형규칙을 쑤셔넣으면서 예상보다 작업이 정말 길어졌습니다.
워낙 고생을 한 탓에 '앞으로는 이 정도로 변형규칙이 많은 게임은 안 하는게 좋겠다'는 다짐을 했지만...
그래도 첫 프로젝트라 리뷰어 승인, 알파, 베타, 그리고 정식 공개까지 오면서 정말 뿌듯했던 게 아직도 인상에 깊게 남아있습니다.
○ 텀블위드
지금 와서 이야기하는 거지만 여러모로 의견 조율에 골때리는 경험이 많았습니다.
그래픽 디자이너가 유독 고화질 SVG 사용을 고집한 탓에 알파 단계에서 모바일에 엄청난 랙이 걸렸다가 버그 수정을 명목으로 PNG 기반으로 돌린 기억도 있고,
기본 게임판 사이즈나 플레이어 보조 기능 도입 여부 등으로 토론한 적도 있었고...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정말 즐겁게 작업했었습니다.
그 외에는, 1년 전쯤에 누군가 작업하다가 말도 제대로 안 하고 도망간 상태였어서 게임 디자이너의 포용력이 정말 엄청나더라구요.
이 게임 이식하면서 먼지쌓여 있었던 웹 개발 지식을 다시 익히는 계기가 되었네요. 아직도 야매 수준이지만...
○ 피르가
원래 구성물은 3차원으로 배치하지만 꼼수를 써서 2D로 구현한 게임입니다.
콰르토 같은 다른 게임도 이런 식으로 평면화한 게 많지요.
사실 이런 간단한 추상전략 게임 자체 이식부터 시작했으면 아레나 프로젝트 작업 적응도 더 무난했겠지만...
이 게임에서는 클래스 이름 잘못 설정했다가 애드블록에 막힌 기억도 나네요. 정말 어이가 없었던 사태 ㅋㅋㅋ
○ 바하마 택시
요상한 그리드를 어떻게 구현할지 머리싸매다가 결국 브루트 포스로 해결본 게임입니다.
이런 골치아픈 모양을 위해 별개의 알고리즘 짜는 것도 정말 귀찮은 일이라...
이 게임부터 효과음이나 배경화면 같은 요소로 게임을 좀 더 꾸미기 시작했는데,
처음이라 무료 애셋을 찾는 요령이 없어서 정말 힘들었습니다.
구글링하면 바로 나오는 정말 좋은 이미지들은 대부분 '상업적 이용 불가'가 걸려있었던 기억이 나는군요.
그래도 이제는 대충 어디서 뭘 찾아야될지 익숙해진 상태긴 하죠. 이걸 기뻐해야 할지...
○ 과일섬 타이쿤
예전에 새해에 잠깐 다뤘던 적이 있었던 코리아보드게임즈의 작품입니다.
그 당시의 소감에 대해서는 이 글을 참조해주세요: 왜 K-보드게임은 보드게임 아레나에 올라올 수 없는가
이때부터 아레나에서 게임을 즐기기보다는 게임 이식 자체에 재미를 붙이게 된 거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 야니브
이스라엘산 플레잉 카드 게임입니다.
도중 탈락 메커니즘이 있는 게임을 구현하는 건 처음이라 개발 중에는 생각지도 못한 버그나 문제점이 튀어나올 때가 종종 있었는데 어떻게든 해결됐네요.
그 외에는, 라운드 스톱 기준 5점 + 탈락 기준 -201점이라는 기본 규칙이 너무 지루해서 (2인 기준 턴 단위로 계산해보니 100턴 넘게 걸렸습니다)
진행시간이 훨씬 짧은 규칙을 디폴트로 설정한 게 기억에 남는군요.
○ 트윈 팜즈
이 게임은 정말 특이했습니다.
그도 그럴 게, 아레나 작업 시점 기준으로 킥스타터 프로젝트도 아직 시작하지 않은 게임을 미리 이식했거든요.
게임 퍼블리셔에서 전폭적으로 지원해주고 (그림 파일 요청하면 하루 내에 전부 만들어줬습니다)
의견 교환도 활발해서 정말 코딩할 맛이 났던 게임입니다.
게임 자체는 카드 2장씩 내는 트릭테이킹입니다만,
리드 수트도 트럼프도 없고 카드 조합만으로 승부보는, 어찌보면 포커랑 더 비슷한 게임이라는 느낌이 드네요.
○ 나라비
처음으로 작업한 협력 게임입니다.
카드를 숫자 순서에 맞게 늘어놓는 게임이라 3~5인에 대응될 UI를 어떻게 설계할지 머리 정말 많이 싸맸습니다.
처음에는 수직으로 죄다 늘어놓아서 퉁칠까 했는데 그건 좀 심각하게 아닌 듯해서 툴팁으로 타협했습니다...
카드 옮길 때 회전도 고려했었는데 막상 해보니까 눈아파서 그냥 심플하게 페이드아웃-페이드인으로 퉁쳤구요.
아레나 하나비에서 ELO 때문에 게임 취소가 빈번한 문제도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도 했었네요.
여러모로 꼼수가 많이 는(?) 색다른 경험이었네요.
○ 피어 18
게임 규칙 구현보다는 UI 설계와 카드 번역에 훨씬 시간을 많이 쏟았던 게임입니다.
게임 규칙은 카드 18장만 쓰는 게임인데다 특수 규칙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라 적절하게 쉬웠습니다.
카드 이미지를 통째로 뜯는 것도 시간이 꽤 걸렸고, 글자와 카드가 너무 작아보이지 않게 조정도 많이 했었고,
그리고 어떻게 해야 사파리에서도 고장나지 않을지 참 많이 시행착오를 거쳤죠. 그놈의 사파리 ㅅㅂ...
○ 민화투
이제 와서 푸는 썰이지만 노림수님 리퀘스트로 이식한 게임입니다.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진짜 인터넷에서 민화투 칠 수 있는 곳이 없나? 하나쯤은 있을법 한데?' 했는데...
정말 없더라구요? 그래서 만들어봤습니다.
당연히 시중에 나오는 앱보다는 못하겠지만, 찰진 화투 효과음이나 편한 인터페이스 구성 등을 위해 이래저래 최대한 부단히 노력한 게임입니다.
그러니까 많이 해주세요 ㅠㅠ
○ 육백
민화투 이식하면서 삘받아서 육백도 이식할까 했는데,
원조 일본 규칙 + 육백 + 삼봉이 죄다 비슷하면서도 다르다보니 주저하다가 결국 전부 한 게임에 쑤셔넣었습니다.
따목 이식할 때 했었던 변형규칙 많은 게임은 손대지 말자는 다짐이 이렇게 와장창... ㅎㅎ;
민화투 이식하면서 해외 디스코드 채널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육백 이식할 때도 크고 작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특히 배너와 화투 이미지를 선뜻 제공해주신 분께 정말 감사를... ㅠㅠ
처음에는 두세개정도나 만지고 그만두려고 했지만 생각보다 정말 오랫동안 작업하게 됐네요.
미천한 실력이지만 앞으로도 좀 더 하고 그만둘 생각입니다.
도와주신 퍼블리셔/디자이너/아티스트 모두와 제가 이식한 게임을 즐겨주시는 모든 분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