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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양조장을 꾸려보자! 디스틸드 (Distilled) 리뷰입니다.

7,664 조회

2021.08.22 23:26

디스틸드(Distilled) 리뷰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올려보는 리뷰입니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요즘 신작을 접하기 참 어려운데요, 대신 TTS로 여러 퍼블리셔에서 아직 출시되지 않은 게임들을 프리플레이 해볼 수 있게 제공해 주고 있어 그를 통해 킥스중인 디스틸드를 진행해 보았습니다. 아쉽게도 시간 관계상 게임을 끝까지 즐기지는 못했지만(죄송합니다 ㅜㅜ), 그래도 큰 흐름과 포인트들은 이해할 수 있기에 간단한 소개글을 적어 봅니다(한글판을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하기 전 한잔 하고 시작하시죠! 에...근데 뭐 하기로 했더라...

( 그림 1. 게임 아트워크는 꽤나 예쁩니다. )

<개요>

저는 보드게임 외에도 몇몇 취미들을 즐기는데, 그 중 하나가 칵테일 조주 및 위스키를 모으는 것입니다(조주사 자격증도 준비했는데 아직 시도하진 못했네요 ㅎㅎ). 찬장에 수십 종의 술을 두고, 가끔씩 면세점에서 위스키를 사 모으는 것을 즐기곤 합니다. 언젠가 위스키를 증류하는 보드게임을 디자인해 보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쉽게도 먼저 이렇게 나와버렸습니다. 아무튼 테마 때문에 상당히 저의 눈길을 끈 게임 중에 하나인데, 말 그대로 증류(distillation) 를 하는 증류소를 운영하는 게임입니다. 이스트, 물, 곡물과 과일 같은 재료를 구매해서 양조하고, 증류한 후 판매하거나 통에 담아 숙성시켜 풍미를 높이는 등 증류소에서 볼 수 있을 법한 각종 요소들이 잘 녹아들어 있습니다. 일단 게임의 기본적인 흐름과 룰을 짚어보겠습니다. 이미 포도나무님께서 잘 짚어주신 바 있으니, 간략히 큰 그림만 설명해 보겠습니다.

<규칙 설명>

( 그림 2. 게임 점수판. 100점까지의 명성 트랙과, 7개로 구성된 라운드가 보입니다. 옆에는, 9종류 술의 레이블이 보입니다. )

디스틸드는 7라운드로 진행됩니다. 매 라운드마다, 각 플레이어는 선부터 돌아가며 재료 구매 > 양조 > 판매 > 숙성 페이즈를 진행합니다.

( 그림 3. 카드를 구매할 수 있는 시장입니다. 아래는 기본 재료들, 위는 증류소 업그레이드 / 고급 재료 / 아이템 순입니다. 카드는 가져가는 즉시 채워지게 됩니다. )

구매 페이즈에서는 선부터 돌아가며 재료 또는 아이템(숙성용 통 또는 병입용 병 등입니다), 양조장에 둘 기구들이나 전문가를 고용합니다.

혹은, 약간의 돈을 내고 새로운 술을 만드는 법에 대한 연수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재정이 되는 한 원하는 만큼 구매할 수 있고, 모든 플레이어가 패스를 선언한다면 양조 단계로 넘어갑니다.

( 그림 4. 플레이어 보드 왼쪽의 칸에 물, 재료, 효모를 넣으면 발효가 시작됩니다. 보글보글...)

양조 페이즈에서는 각 플레이어가 동시에 진행합니다. 술을 이루는 기초적인 재료인 물, 효모(이스트), 재료(곡물, 과일, 식물 세 가지 재료가 있습니다)를 필수적으로 하나씩은 넣어야 하며, 원한다면 다양한 재료를 첨가할 수 있습니다. 이 재료들을 워시백(washback, 증류주의 기본이 되는 발효주인 워시wash 를 만드는 발효조를 일컫는 단어입니다) 에 넣고, 잘 섞어 발효를 시킵니다.

이 과정에서 효모는 재료를 먹고 발효를 진행해 알코올을 생성합니다. 즉, 재료 하나당 알코올 카드 한 장을 추가합니다. 이후, 이 발효주를 증류합니다. 알코올이 더해진 재료 덱을 잘 섞고, 첫 장과 마지막 장을 랜덤하게 제거해 다음 라운드에 사용할 수 있게 보관합니다 (테마적으로는, 이것은 증류 초반의 헤드head와 후반의 테일tail 을 잘라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얼마만큼의 증류액을 잘라내는지에 따라, 술의 풍미가 크게 달라집니다. 헤드와 테일은 불쾌한 향을 가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이 컷팅을 잘못 하게 되면 술에 맹독성 메탄올이 섞여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이후, 이번에 뽑힌 재료를 고려해 원하는 레이블을 붙인 후, 이 술을 적절한 통에 담습니다.

( 그림 5. 실제 위스키 양조에 사용되는 워시백. 전통적으로는 목재가 이용되지만, 최근 스테인레스 등도 이용됩니다. 통 하나당 수천 리터 이상의 재료를 양조할 수 있습니다.)

( 그림 6. 보드판에도 존재하는 위스키 증류기. 흔히 pot-still 이라고도 부릅니다.

몇 번 증류하는지에 따라 특성이 미묘하게 달라진다고도 하고, 저 증류기의 재질과 목 길이에 따라서도 풍미가 약간씩 달라진다고 합니다. )

( 그림 7. 증류하여 1년간 숙성한 위스키. 11원을 받고(좌상단의 돈 모양), 6점을 받을 수 있습니다(좌하단의 위스키 잔-노징 글라스 혹은 글랜캐런 글라스라고도 합니다).

별도로, 위스키 레시피에 따른 점수와 숙성 연차 보너스 점수를 받을 수 있습니다. )

판매 페이즈에서는, 선부터 돌아가며 방금 증류한, 또는 숙성을 진행중이던 술을 판매할 수 있습니다. 술을 판매할 때는 덱을 공개하여, 들어간 재료, 알코올 함량, 추가된 풍미와 병입된 병 등을 고려하여 명성 점수와 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이 때 술을 판매하며 무료 업그레이드, 시그니처 술을 위한 재료와 같은 일종의 보너스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 그림 8. 창고에는 최대 두 개까지의 술을 숙성시킬 수 있습니다. 아메리칸 오크통에서 잘 숙성되고 있는 브랜디입니다. 아래를 보면, 5개의 풍미 카드가 추가되면(즉, 별도의 카드 효과 없이 5턴간 숙성되면) 15점의 추가 점수를 제공합니다.)

숙성 페이즈에서는, 이번에 증류한 술을 이용해 새롭게 숙성을 진행하거나, 이미 숙성중인 술을 추가 숙성할 수 있습니다. 일부 고급 주종(위스키, 럼, 브랜디, 빠이주(흔히 아시는 고량주가 포함되는 중국식 증류주입니다) 와 같은) 은 판매 전에 필수적으로 숙성을 진행하여야 하며, 일부 시그니처 레시피는 반드시 얼마 이상 숙성되어야 하는 등의 요구 조건이 존재하기도 하는 대다, 숙성이 진행됨에 따라 추가적인 보너스를 줄 수 있는 풍미flavor 가 점점 더해지게 되므로 고득점을 위해서는 적절한 숙성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숙성 페이즈까지 마치고 나면, 공동 목표 중 달성된 것이 있는지 확인하고 만일 달성했다면 점수를 선점합니다. 이후 원한다면 시음회를 열어 명성을 돈으로 교환하고, 카드를 교체한 이후 다음 라운드로 넘어갑니다. 마지막 라운드라면, 그 동안 판매한 병 콜렉션, 개인 목표, 구매한 카드를 통해 추가 점수를 얻고 게임이 종료됩니다. 7라운드 동안 가장 높은 명성을 얻은 플레이어가 승리합니다.

<감상평>

게임의 일러스트부터 실제 진행까지, 술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법한 테마가 유려한 일러스트와 컴포넌트 위에 아름답게 잘 입혀져 있습니다. 저처럼 술을 즐기고 양조 과정에 따른 여러 요소들을 흥미롭게 보는 분이라면 분명 "아, 이걸 이렇게 넣어 놨네!" 라고 느낄 만한 요소들이 많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증류 단계에서 바로 풍미를 더하고 시작하는 플로어 말팅floor malting, 술의 증류에 유동성을 더해주는 증류탑column still 이 있는가 하면, 재료로는 진의 주재료인 주니퍼베리, 고량주의 재료인 수수, 데킬라의 재료인 아가베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 그림 9. 양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보리를 잘 뒤집어가며 말려야 합니다. 이를 모두 손수 하는 증류소는 이제 몇 군데 남지 않았는데요, 이 뒤집는 작업을 몇십 년이고 한 노동자들은 직업병으로 어깨가 앞으로 말리곤 합니다. 이를 몽키 숄더라고 부르고, 이 이름을 딴 위스키도 존재합니다. 이 건조 과정에서 이탄 등을 사용하면 다른 어느 술에서도 찾기 힘든 독특한 풍미가 배어듭니다.)

개인적으로는 카드 덱을 섞어 증류하는 도중 알코올을 컷하는 과정이 테마를 잘 살려 재밌었는데(물론 어쩌다 보니 알코올이 다 뽑혀나와 무알콜 증류주...가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이 부분에 운이 많이 개입되어 고급 재료를 구매해 때려넣었는데 모조리 뽑혀 나와 버리는 슬픈 상황이 나오기도 합니다. 특정 레시피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재료 몇 장 이상, 혹은 어떤 재료는 없을 것, 등의 요구 조건이 존재하는데 운 없게도 필요한 재료가 쏙쏙 뽑혀나와 버리면 눈물을 머금고 싸구려 보드카나 양조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다행히 이렇게 뽑힌 재료는 다음 양조 시에 다시 첨가할 수도 있고, 일부 카드등은 이런 무작위성을 줄여 주긴 합니다만, 똥손이라면 몇 라운드 내내 양조를 실패하는 경험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술한 여러 가지 보정 장치가 들어가 있어 회복 불가능할 정도의 상처는 아닙니다. 애초에 실패를 용납할 수 없다면 재료를 넉넉히 넣으면 되고, 혹은 돈을 조금 아껴 이 컷 과정을 우회할 수 있는 증류기를 살 수도 있고요.

( 그림 10. 다양한 특징을 가진 술들이 존재합니다. 요구하는 재료, 숙성하는 병, 숙성 연차수, 명성 점수 들도 모두 다릅니다. )

그 외에도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진 여러 술 레시피가 있어서(9 종류), 다양한 방향을 선택할 수 있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저렴한 소주를 만들어 매 라운드 판매하며 박리다매 정책을 펼 수도 있고, 고숙성의 위스키나 코냑을 만들어 오래오래 묵혔다가 프리미엄을 붙여 팔 수도 있죠. 숙성주는 숙성을 시키는 라운드에는 즉시 판매할 수 없지만, 대신 최고로 숙성된 위스키 한 병에는 소주 3병+알파의 명성치가 추가로 붙기 때문에 단타와 장기 투자의 밸런스를 잘 잡아야 합니다. 대신, 저렴하게 파는 플레이어는 초기의 이득으로 시설을 잘 갖추어 스노우볼링을 굴려야 하겠죠. 이처럼, 어떤 재료가 공급되는지, 어떤 플레이어가 어떤 주종을 선택했는지에 따라 유불리가 빠르게 바뀌기 때문에 이를 잘 좇는 재미가 있습니다.

( 그림 11. 아무것도 없이 돈 몇 푼 들고 시작한 양조장이 게임 끝물에는 온갖 기기로 가득 차게 됩니다. )

그 뿐 아니라, 다양한 콤보와 라운드가 지날 수록 성장하는 맛을 느낄 수 있는 여러 장치가 잘 마련되어 있습니다. 초반에는 돈 한두 푼으로 시작해 겨우겨우 싸구려 재료를 모아 밀주를 빚는 데 그치지만, 술을 팔고 그걸로 좋은 재료를 사 더 많은 수익을 내는 선순환을 굴리다 보면 쭉쭉 지수적 성장을 하게 됩니다. 게다가 술을 판매하기만 하면 보너스 중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는데, 모든 보너스가 꽤 강력하기 때문에 점점 효율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증류소를 보는 뿌듯함이 있습니다.

또한 여러 카드들과 기본 능력을 잘 조합하면, 좋은 효율을 보이는 콤보도 찾을 수 있습니다. 할인을 바탕으로 고급 병을 대량으로 구매해 병 콜렉션 점수를 노릴 수도 있고, 비싼 오크 배럴을 이용해 남들은 3~4 년이 걸릴 숙성을 한두 라운드 만에 쭉쭉 진행시키면서 높은 점수와 함께 목표를 달성할 수도 있습니다(실제로, 위스키 통은 위스키 맛의 절반을 좌우합니다! 고급 증류소는 고품질의 통을 구하는 데에 엄청난 시간과 자금을 쏟습니다. 디스틸드 내에도 비싸지만 강력한 오크통으로 잘 구현되어 있습니다). 특정 상황에 점수를 더해주는 여러 아이템과 전문가를 적절히 고용하면, 같은 술도 배로 비싸게 팔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다양한 콤보를 설계하는 방법이 있고, 이를 실제 구현하여 이용하면 큰 이득으로 돌아옵니다.

( 그림 12. 한국에서는 정지나 명인이 안동 소주를 시그니처 레시피로 만듭니다. )

이런 재미있는 테마가 게임성과 잘 배합되어 있습니다. 웬만한 유로게임이라면 다 들어 있는 비밀 개인 목표, 플레이어별 특수 능력과 그에 따른 본인만 만들 수 있는 시그니처 레시피, 경합의 요소가 있는 공동 콘테스트 목표, 셋 콜렉션 목표 등이 그렇습니다. 전반적으로 꽤나 만족하며 게임을 즐겼습니다.

( 그림 13. 각자 서로 다른 개인 능력, 스타팅 자원, 비밀 목표, 시그니처 레시피를 가지고 시작하게 됩니다.)

물론 아쉬운 점도 몇 가지 있습니다. 비록 한 판 플레이테스트가 전부라 아직 섣부른 판단일지 모르겠습니다만, 18명이나 되는 스타팅 능력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큰 틀인 재료 구매 > 운빨 뽑기 > 숙성 후 판매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기 때문에, 누가 더 선순환을 빨리 굴리고 엔진과 콤보를 빨리 짜는지에 승패가 달려 있다고 보입니다. 게다가 후발 주자에 대한 보정이나 견제가 없기 때문에, 이미 큰 돈으로 대규모 시설을 갖춘 플레이어를 운 나쁘게 몇 번 양조가 망했다면 따라가기가 힘들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뒤처지는 플레이어에게 보조금이나 카드 보너스 등을 챙겨 주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 플레이어간 인터랙션은 카드를 챙겨 가기 혹은 5~10점 내외의 미션 선점 정도입니다. 물론 좋은 카드와 필요한 카드가 쉽게 보이기 때문에, 끊어 가는 등의 견제도 할 수 있습니다만 인터랙션이 더 동적이었다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납품 요소를 만들어 선이 먼저 더 좋은 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다던지 하는 인터랙션이 있었다면 개인적으로는 더 좋았겠지만 이건 개인 취향의 영역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런 솔리테어 느낌을 좋아하는 분들도 존재하니까요. 사실, 인터랙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양조장이 성장하는 걸 보며 느끼는 뿌듯함이 상당하긴 합니다.

( 그림 14. 디스틸드 하고 위스키 한잔? 사진은 요즘 가격이 쭉쭉 오르는 글렌드로낙 18년입니다. )

간단히 꼽아본 디스틸드였습니다. 테마부터 그렇고, 늘어지지도 않고 상당히 유쾌하게 흘러가는 게임 플레이에 적당한 플레이타임과 무게가 좋게 느껴졌습니다. 언어 요소도 좀 있고, 한국은 배송비가 너무 비싸 킥스에 많이 들어가시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드는데, 한국 술도 있는 김에 한글판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글을 적어 봅니다 :) 저도 기회가 되면 TTS 로 몇 판 더 즐겨 보며 첫 인상을 수정해 보아야겠습니다.

그럼, 다들 즐거운 보드라이프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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