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vs 추리: 사건의 재구성 1400 리뷰

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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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2-19 오후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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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과 그의 충견 퍼시벌이 그려진 박스 일러. 사진 출처: 보드게임긱

라이트게이머 무이입니다.

예전 글에 썼듯이, 저는 사건의 재구성 시리즈를 아주 좋아합니다.

수사 vs 추리: Top 3’s

그래서, 얼마 전 출시된 ‘사건의 재구성: 1400’(이하 1400)을 아무런 망설임

없이 구매했구요.

이야기를 이어 가기 전에, 사건의 재구성 전 시리즈에 공통되는 기본 규칙과

게임마다 달라지는 추가 규칙에 대해 간단하게나마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0. 사건의 재구성 시리즈의 기본 규칙

사건의 재구성 시리즈에서는, 장소 판에 있는 QR 코드를 찍으면 그 장소로

이동하고, 인물 카드에 있는 QR 코드를 찍으면 그 인물에게 말을 걸고,

말을 건 상태에서 다른 인물 카드 혹은 단서 카드의 QR 코드를 찍으면

그 인물에게 다른 인물 혹은 단서에 대해 물어보는 게 됩니다.

- 기본 규칙에 관한 (사진을 포함한) 조금 더 자세한 내용은 예전 글을

참조해 주세요.

수사 vs 추리: 사건의 재구성 리뷰

1. 1400의 추가 규칙 간단 소개

사건의 재구성 시리즈는 QR 코드를 찍으며 진행하는 기본 규칙은 유지하면서

본판의 전문부서나 느와르 확장의 네 가지 행동 같은 추가 규칙에는

지속적으로 변화를 주고 있습니다.

1400에서는 본판의 전문부서에 해당하는 가족이 등장하는 한편,

QR 코드를 찍으면 각각 종교, 물건, 인물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주인공의

세 형제. 사진 출처: 보드게임긱

박스 일러에도 등장하는 주인공의 충견 퍼시벌이 주인공과 항상 동행하는데,

퍼시벌의 QR 코드를 찍고 단서 카드를 찍으면, 단서의 냄새를 맡아 냄새의

주인을 추적합니다.

선한 눈을 가진 퍼시벌. 사진 출처: 보드게임긱의 사진을 캡처

가족과 퍼시벌만 해도 플레이하기에 충분할 거 같은데, 아직도 남은 게

있습니다. 주인공이 꾼 예지몽을 보여주는 꿈 카드 말입니다. 이 카드들은

게임이 시작되는 즉시 공개하게 됩니다.

꿈 카드의 뒷면. 사진 출처: 보드게임긱

2. 본판의 단점

게임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마쳤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제가

예전 글에서

수사 vs 추리: 사건의 재구성 느와르 확장 리뷰

사건의 재구성 본판의 단점으로 ‘미리 짜놓은 각본을 쫓아간다는 느낌’을

들면서, 좀 더 구체적으로

“특정 인물에게 특정한 질문을 해야 돌파가 된다는 겁니다. 아직 사건의

흐릿한 윤곽이나마 파악하지 못했을 때 이런 상황을 맞닥뜨리면 그렇게

답답할 수가 없습니다.”

라고 썼고, 느와르 확장이 이런 단점을 잘 극복했다고도 썼습니다.

1400 역시 (이 시리즈의 최신 게임답게) 이러한 단점을 극복했는데요,

느와르와는 전혀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그 해법은

(예상하시겠지만) 꿈 카드와 퍼시벌에 있습니다.

3. 꿈 카드의 역할

먼저 꿈 카드에 대해 이야기해 보면요...

우선, 꿈 카드가 담고 있는 장면이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 구체적이라,

공개되자 마자 자연스레

‘어, 이 사람이 이 사람과 같은 사람 아냐?’,

‘이 사람 혹시 이런 거 하고 있는 거 아냐?’

등 여러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심지어 전체 사건의 줄거리를 예측하기도 합니다.

게임이 막 시작됐을 뿐인데, 벌써 사건의 전말에 대해 이런저런 가설을 세워

볼 수 있다는 점에서, 1400은 다른 수사추리게임과 큰 차이를 보입니다.

상당히 재밌는 순간이기도 하구요.

한편, 꿈 카드는 수사에 대한 가이드라인 역할도 합니다. 꿈 카드 중에

이해가 안 가는 장면이 있다면, 아직 뭔가 모르고 있다는 걸 뜻하기 때문에,

각각의 꿈 카드가 뜻하는 바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수사에 있어 이정표가

되기 때문이죠.

4. 퍼시벌의 역할

기존의 사건의 재구성 게임에서는, 하나의 증거가 등장하더라도 그 증거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파악하기 위해 한참 헤매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1400에서는 퍼시벌에게 증거의 냄새만 맡게 하면 냄새의 주인에게로

바로 이동하기 때문에 진행이 시원시원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요약하자면, 1400에서는 1) 꿈 카드로 사건의 흐릿한 윤곽을 파악한 뒤

게임을 시작하며, 2) 퍼시벌로 답답한 상황을 돌파함으로써, 본판의 단점을

극복했다는 겁니다. 테마도 살리면서 말이죠.

5. 1400의 특징

사건의 흐릿한 윤과을 파악하거나, 답답한 상황을 돌파하는 것은 플레이어

입장에서 상당히 품이 드는 일인데, 꿈 카드와 퍼시벌을 통해 쉽게 해결해

버리니까, 플레이어에 따라서는 (특히, 기존의 사건의 재구성 팬이라면) 게임이

끝나고 나서

‘내가 뭘 했다고 사건이 해결됐지?’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고, 가이드라인을 따라간다는 점에서 다소 수동적으로

플레이했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게임이 매끄럽게 주~욱

진행돼서, 보통 수사추리게임에서 경험할 수 있는

“앗, 혹시 쟤가 저기서 그걸 했던 거 아닐까!!!”

와 같이 놀라거나 흥분되는 순간도 별로 없더라구요.

6. 느와르 확장 vs 1400

이런 특징을 느와르 확장과 비교한다면, 느와르에서는 (이전 글에서 쓴 것처럼)

플레이어가 주도적으로 게임을 이끌어 감으로써 본판의 단점을 극복한 반면,

1400은 반대로 플레이어가 수동적으로 게임을 쫓아감으로써 게임이 매끄럽게

진행된다고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달리 말하면, 느와르가 추리요소를 강화하는 데 촛점을 맞췄다면, 1400은

접근성을 높이는 데 촛점을 맞춘 게 아닌가 합니다.

7. 쉽지만 쉽지 않은 1400

이렇게 말씀드리면, 1400이 엄청 쉬운 거 같지만, 저는 느와르에 비해

오히려 더 힘겹게 플레이했습니다. 사건 네 개 중에 세 개를 다시

플레이했거나 해야 하거든요;

성실하게 수사한다면, 사건의 전말을 파악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지만,

(스포일러 때문에 자세히 말할 수 없는데;) 100점 만점을 막기 위한 장치가

있어서, 마치 디자이너가

“니가 낙심할까 봐 사건의 진상은 대충 파악할 수 있게 해 줬어. 하지만,

그걸로 사건을 다 해결했다고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

라고 약 올리는 거 같더라구요. 뭐, 어쩔 수 없이 다시 플레이했고 말이죠.

8. 역사적 배경

마지막으로, 테마 몰입에 약간이나마 도움이 될까 해서, 역사적 배경에 대해

살짝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이 게임의 배경이 된 1400년 프랑스의 왕은 샤를 6세인데, 모르는 왕이라

찾아보니... 1400년은 영국과의 백년 전쟁 기간이지만, 프랑스가 유리한

국면에서 휴전 협정을 맺어 1389년부터 1415년까지 비교적 평화로운 시기를

구가하던 중이었으며, 이 평화기가 끝나는 1415년에 그 유명한 아쟁쿠르

전투가 있었더라구요. 아쟁쿠르 전투 당시의 왕이 바로 샤를 6세였는데,

승리한 영국 측 헨리 5세에 가려서 몰랐었네요.

9. 마무리

1400은 꿈 카드를 통해 사건의 흐릿한 윤곽을 파악할 수 있게 하는 동시에,

수사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함으로써, 플레이어가 다소 수동적으로 게임을

쫓아가게 유도합니다. 덕분에, 본판의 “특정 인물에게 특정한 질문을 해야

돌파가 된다.”는 단점을 극복하고, 게임의 진행을 매끄럽게 만들었으며,

게임에 대한 접근성도 높였습니다. 하지만,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걸까요? 수사추리게임에서 경험할 수 있는 놀라움이나 흥분은 사라지고

없더라구요.

재미 측면에서 보면, 큰 한 방은 없지만 사건의 흐릿한 윤곽을 점점 구체화해

나가는 잔재미가 꽤 좋은 게임이었습니다.

이런 특징 때문에 기존의 사건의 재구성 팬 중에는, 1400에 다소 실망하는

분도 계실 거 같은데, 그런 분은 100점을 목표로 게임을 하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긴장감도 올라가고 기존의 사건의 재구성 게임들과는 차별되는

재미를 느끼실 수도 있을 거 같거든요.

사건의 재구성 시리즈 중에 가장 재밌게 플레이한 느와르 확장과 비교한다면,

전 느와르가 더 좋지만, 잔재미와 함께 게임 진행에 있어 좀 더 디테일하고

세련된 느낌을 주는 1400도 무시할 순 없었습니다.

1400에 관심있는 분들께 도움이 됐길 바랍니다.

- 난이도가 서로 다른 네 개의 사건만을 가지고 결론을 내리려니

조금 부담스럽고 자신이 없네요; 다른 분들은 어떻게 플레이하셨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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