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 왕국 3부작 + 툼사가 캠페인 2인플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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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5 오후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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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킥스타터를 통해 서쪽 왕국 3부작과 툼사가를 받은 후, 두 달 정도 애인과 같이 2인플로 돌려보았습니다.

1. 서쪽 왕국의 건축가들

이젠 (드디어) 한국어판도 풀렸고 3부작의 첫 게임인만큼 후기도 많기에, 2인플에 대해 느낀 점 위주로만 간략히 적어봅니다.

타인의 일꾼을 포획한다는 인터액션 요소 때문에 다인플이 좋을 수밖에 없는 게임이라, 2인플일 때는 봇(콘스탄틴/헬레나)을 추가하여 마치 3인플처럼 즐길 수 있는 변형 규칙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봇 차례에는 봇 카드를 공개하고, 카드에 명시된 구역에 일꾼을 놓으면서 행동하는 게 전부예요. 워낙 간단하게 턴이 돌아가기 때문에 봇 규칙 자체가 번거롭진 않은데요.

아쉬운 점은, (다인플 요소를 살리고자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인간과 플레이하는 느낌을 구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봇의 포획 카드가 짧은 텀으로 연달아 나오면, 일꾼이 한두 명만 놓여 있는 곳에서도 꼼짝없이 잡혀가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웬만한 인간 플레이어라면 굳이 그렇게까지 하진 않겠죠? 봇은 (대리석 외에) 자원을 모으지 않고 견습생 고용이나 건물 카드 획득도 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처럼 자신의 플레이를 견고하게 다지기보다 어깃장 놓는 역할에만 주력합니다. 물론 요즘 1인플을 지원하는 게임에서 봇이 대부분 그런 역할을 하는 것 같지만, 건축가에선 유독 봇이 훼방하는 타이밍이 뜬금없거나 현재 판세와 동떨어진 경우가 많아 약간 비상식적 플레이라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희의 플레이도 스무스하게 굴러가지 않고 계속 발목을 턱턱 잡혀서 종료 점수도 평균 20점대에 그쳤습니다. (다인플일 때 보통 어느 정도 점수가 나오는지 문득 궁금하네요.)

봇을 빼고 다시 2인 진검승부를 해보니 상식적인 플레이로 흘러가서 게임의 인상이 더 좋아지긴 했어요. 다만 포획이 조금 심심해지는 건 어쩔 수 없고요. 애인이 3연속 지는 바람에 매우 박한 평가를 내려 소생불가 게임이 되는가 했지만.. (추후 서술)

1-1. 서쪽 왕국의 건축가들: 장인들의 시대 확장

번외로.. 장인들의 시대 확장은 '확장으로서의 본분을 다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꼭 필수로 추가해야 할 만큼은 아니지만, 새로 추가된 공예 카드가 적절하게 전략성을 더해줘서 신선한 느낌이 들거든요. 도구 카드와 견습생, 장식품과 건물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시너지가 크게 발휘될 수 있다는 게 장점입니다. 입문자들과 플레이할 때 처음부터 넣을 만하다고 생각하진 않고요. 여러 번 플레이해서 아이콘과 각종 효과에 익숙하다면, 장인 확장은 단연 추천해드릴 만합니다.

2. 서쪽 왕국의 성전사들

(팔라딘이 더 익숙해서 그냥 팔라딘이라고 부를게요..)

킥스타터 특전에는 기본 팔라딘 카드 12장 외에 프로모 카드 4장이 추가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프로모 카드를 포함하는 규칙이 총 3가지 있는데, 저희는 3번째 규칙으로 플레이했어요. 매 라운드마다 (3장 대신) 4장을 뽑아서 1장 사용, 1장은 덱의 맨 위, 1장은 덱의 맨 아래에 놓으며(여기까진 기본 규칙과 같고), 남은 1장은 게임에서 아예 제거하는 방식입니다.

프로모 카드 4장의 능력이 참 독특하면서 강력한데요. 의혹 카드를 가져올 때 식량도 1개 가져오기, 모든 액션에서 돈 1원 적게 들기, 모든 흰색 일꾼을 다른 색깔의 일꾼처럼 취급, 직전 라운드에 사용한 팔라딘을 다시 사용하기입니다. 특히 흰색을 조커로 취급하는 카드나 직전 팔라딘을 재사용하는 카드는 잘만 활용하면 게임 체인저의 면모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초반 라운드에 액션을 효율화해주는 카드들(OO 액션에 식량/돈 적게 들기)만 모조리 뽑혀나오면 중/후반 운영이 좀 답답할 수도 있는데, 프로모 카드를 포함하면 전략적 운신의 폭이 더 넓어지는 느낌이에요. 별빛바다에서 한국어판 출시할 때 어떻게든 같이 포함해서 내주면 많은 분들께 환영받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플레이한 후기는.. 애인이 매우 좋아했습니다! 두 번째 플레이부터는 규칙이 익숙해지고 나니 운영이 잘된다면서 일꾼을 참 알차게 써먹더라고요. 결코 웨이트가 가벼운 게임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흐름을 쉽게 파악한 것 같습니다. 결국 1점 차로 패배..

예전에 다른 모임에서 3인플로 몇 번 해봤던 경험과 비교해보면, 2인플이 조금 덜 타이트한 대신 직접적인 눈치싸움은 더 강한 인상이었습니다. 흔히 팔라딘의 단점으로 인터액션이 적고 개인판 위주로 플레이해서 멀티 플레이어 솔리테어 같다는 점이 지적되곤 하는데, 2인일 때는 서로의 판만 신경쓰다 보니 상대의 수가 더 잘 보여서 (생각에도 없던) 견제를 하게 되기도 하더라고요. 전 그보다 팔라딘의 최대 단점은 공간 차지라고 생각합니다.. 길게 놓은 공용 보드 위아래로 모두 카드가 깔리고 개인판에도 사방으로 놓을 카드가 많다 보니, 3부작 중 가장 테이블을 크게 잡아먹는 게임이었어요.

3. 서쪽 왕국의 자작들

서쪽 왕국의 자작들은 다양한 시스템을 복합적으로 엮어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하고자 하는 야심이 돋보이는 게임입니다. 덱빌딩, 론델, 셋콜렉션, 일꾼 배치와 밀어내기 같은 익숙한 게임 메커니즘들이 많이 담겨 있는데, 그런 메커니즘들을 원형 그대로 따오기보다는 다 조금씩 변주해 놓았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플레이어의 차례가 총 7단계로 구성되어 있고 각 단계마다 세부 규칙이 있어서 흔히 말하는 fiddly(자잘하게 할 게 많다)라는 표현도 틀린 것은 아니에요. 개인판에서 카드가 떨어질 때 적용할 액션도 있고, 마을사람을 보내버리거나 고용할 때 효과도 발생하고, 메인 액션에서 부가적인 영향이 생기기도 하고, 부패/미덕이 충돌하면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도 효과를 받고.. 등등 챙길 게 많은 건 사실이거든요. 하지만 게임의 흐름은 생각보다 훨씬 경쾌하게 진행됩니다. 자기 차례를 몇 번만 해보고 나면 이런 규칙들을 자연스럽게 유기적으로 엮을 수 있어요. 메인 액션들이 (트레이드를 제외하면) 대부분 상대에게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남의 차례에도 집중하게 돼서 그렇기도 하고요. 이렇게 다양한 요소들을 변주한 형태로 섞어놓고 자기 차례에 할 수 있는 선택지가 많았던 게임으로 타완틴수유가 떠오르는데요. 제게 타완틴수유는 과식한 듯한 기분이 끝까지 가시지 않는 데 반해, 서쪽 왕국의 자작들은 처음엔 '너무 많이 먹었나?' 싶지만 게임을 하다 보면 소화가 다 되는 느낌입니다.

팔라딘에서 팔라딘 카드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운영의 묘를 발휘하는 것처럼, 자작에서는 3장의 카드를 어떤 순서로 개인판에 배치해서 최대한의 효율을 낼 것인지가 즐거운 고민거리로 작용합니다. 그리고 성에 일꾼을 배치하는 액션은 규칙뿐만 아니라 비주얼 면에서도 가장 독특하면서 소위 말해 '뽕맛'을 느낄 수 있는 요소이기도 해요. 1층에 일꾼을 3명 이상 놓으면 1명은 2층으로 올라가고 다른 2명은 양 옆으로 이동하는데, 이동한 곳에도 일꾼이 3명 이상 있다면 같은 방식으로 이동이 연이어 발생합니다. 그렇게 연쇄적으로 일꾼의 이동이 타다닥 일어남에 따라 원하는 효과가 발생할 때 정말 짜릿합니다. 잘 써먹긴 어렵지만 제대로 한번 터졌을 때 쾌감이 아주 크다고 할까요. 물론 다른 액션들도 나름의 방식으로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고요. 특히 책을 필사하는 액션은 셋콜렉션 요소라 익숙하다고 적당히 무시해버리기 쉬운데, 작정하고 필사 액션을 달리면 종료할 때 꽤 높은 점수를 뽑아낼 수 있어서 항상 상대의 플레이에 주의해야 합니다.

게임의 종료 조건은 팔라딘보다 건축가에 가깝습니다. 빚 또는 증서 카드 더미 중 어느 한쪽이 다 떨어졌을 때 끝나거든요. 다만 빚이 떨어지면 증서 카드를 더 많이 뒤집은 사람이 높은 점수를 가져가는 식(반대도 마찬가지)으로 약간 규칙을 뒤틀었는데, 그래서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종료 조건이 발동되는 시점도 중요하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그런데 4번째 플레이했을 때, 둘이 처음부터 비슷한 목표로 달리다 보니 예상치 못하게 게임이 너무 일찍 끝나버리기도 했어요. 때로는 아직 할 게 많이 남았는데 끝나버렸다는 느낌이 들 수 있어서 단점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와 애인 모두 자작 > 팔라딘 >>> 건축가 순으로 3부작의 최종 감상을 정리하게 됐습니다. 애인은 팔라딘을 조금 더 좋아했었는데 마지막에 자작을 한번 더 해보고 나서 바뀌었네요. 전작들보다 챙길 규칙이 늘어나긴 했어도 그만큼 재미도 배가된 듯해서, 현재로서 저희에겐 자작이 1순위입니다.

4. 서쪽 왕국 툼사가: 캠페인

서쪽 왕국 3부작을 아우르는 '툼사가(Tomesaga)'에는 3부작을 이어서 진행하는 캠페인 모드와 각 게임의 협력 모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희는 캠페인 모드만 플레이해봤어요.

캠페인의 목표는 명확합니다. 3부작의 각 게임을 1번씩 하고 나서 최종적으로 Tome 카드를 가장 많이 획득한 사람이 승리하는 거죠. (일종의 목표 카드인) Tome 카드는 게임 도중에 먼저 조건을 달성해서 선착순으로 획득할 수 있고, 각 게임 종료 시 순위에 따라 획득하거나 Tome 카드에 새겨진 문장을 일정 개수 이상 모아서 획득할 수도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툼사가에는 Tome 카드의 목표 조건을 먼저 달성하기 위한 일종의 레이스 요소가 추가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게임 도중에 먼저 조건을 달성해 가져온 Tome 카드는 다음 게임에서 특정 혜택을 주기 때문에 단순 승리에만 집중할 수는 없어요. 예를 들어, 건축가에서 건물 4개를 짓는 조건을 가장 먼저 달성해 Tome 카드를 가져온 사람에게는 (다음 게임인) 팔라딘에서 개발 액션의 비용이 (원래 4원에서) 3원으로 줄어드는 혜택이 부여되는 방식입니다. 결코 혜택이 작지 않아요.

하지만 툼사가에서 각 게임에서의 승리는 여전히 중요합니다. 게임 종료 시 승자가 몇 점 차이로 이겼느냐에 따라 각 플레이어에게 주어지는 Tome 카드 장수가 달라지거든요. 전 건축가를 플레이할 때 (위에서 예시로 든) 건물 4개 짓기 Tome 카드를 빨리 가져오는 데만 몰두한 나머지, 초반에 일꾼을 건축에 모조리 소모해버리고 나중엔 극도로 빈곤한 게임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동안 애인은 차분히 자원을 모아 여유롭게 건물도 짓고 성당도 올리고 하더군요.. 결국 전 10점 이상으로 크게 패배했고, 첫 게임에서 애인은 Tome 카드 5장, 저는 1장을 획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팔라딘에서는 Tome 카드의 혜택으로 개발 액션을 초반에 잘 써먹어서 제가 이기고 7:5까지 따라잡긴 했지만, 다시 자작에서 지면서 결국 10:7로 캠페인에서 패배했네요..

결국 Tome 카드의 목표를 먼저 달성하는 동시에 개별 게임의 승리까지 챙겨야 하기에 저처럼 작은 그림에만 집착하면 캠페인의 최종 승자가 되긴 어렵습니다. 앞에서 건축가가 소생불가 게임이 될 뻔했다고 언급했지만, 툼사가를 진행하고 나서 애인이 건축가를 재평가해주기도 했네요(이겨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전반적으로 서쪽 왕국 3부작에 새로운 도전을 주는 방식이라 치열하면서도 흥미로운 경험이었어요. 서쪽 왕국 3부작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한번쯤 진하게 캠페인을 즐겨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쓰다 보니 너무 장문의 글이 되었네요.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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