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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우 - 룰 설명 잘하는 방법

7,036 조회

2015.03.08 18:01

보드게임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대체로 게임을 설명해야 하는 상황을 자주 맞이하는 편입니다.

저 역시도 그랬지요.

룰북을 보며 <어떻게 설명하면 이해하기 편할까?> 하고 늘 고민을 했기 때문인걸까요? 근 10년간 설명을 해야하는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이젠 친구들에게 "너굴의 설명은 기승전결이 있어서 상당히 이해하기 편해" 라고 인정을 받는 편입니다. 다만... 이제 거의 모든 게임은 제가 설명해야하는 상황이 찾아왔죠...ㅠㅠ

그런데 최근 주변 사람들이 제게 게임을 가르쳐주기 시작하며 <배우는 사람>의 입장에서 룰 설명을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어제 친구에게 킹덤빌더를 배우며, <게임을 처음 접하는 입장>에서 느낄 수 있는 괴로움과 지루함, 그리고 혼란을 모조리 겪었죠. 그리고 결국 이 글을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제 방식이 100% 효율적인 것은 아니며, 사람에 따라 제 설명하는 방법을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많은 친구들의 평을 보며 용기를 내어 노하우를 공개하는 것이니, 더 좋은 방법/경험이 있으시다면 댓글로 꼭 공유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__) 저도 배우고 싶어요.

그럼 왕초보의 보잘것 없는 노하우 보따리를 쪼~끔만 풀어보겠습니다.

1. 기승전결? 노! 결기승전!!

기승전결이라는 단어를 아시지요?

기는 시를 시작하는 부분, 승은 그것을 이어받아 전개하는 부분, 전은 시의를 한 번 돌리어 전환하는 부분, 결은 전체 시의를 끝맺는 부분을 뜻합니다 이야기의 흐름, 즉 기승전결이 명확하면 그 이야기는 이해하기 쉽고 기억하기도 편하죠. 모든 룰북도 이렇게 씌여 있습니다. 세팅->액션->해결->종료로 말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설명하시면 안됩니다. 전 게임을 설명할 때 "결" 부터, 즉 게임의 목표가 무엇이고 승리하려면 무엇을 해야하는지 반드시 먼저 설명합니다.

룰북을 보면 기승전결로 이루어져있습니다. 그러나 알고보면 룰북의 제일 처음 부분에 간략하게 나마 게임목적, 즉 결에 대한 내용이 써져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여기에 신경을 쓰지 않을 뿐이죠.

이 간략한 목적 설명이 사실 룰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게임 설명을 시작하자마자, "이건 하와이에서 벌어지는 게임이야. 이건 사람이고 저건 건물이고, 자기 차례가 되면 뭘하면 되고 남의 차례가 되면 뭘 하면 되고...." 이런식으로 물꼬를 트게되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은 ??????? 하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걸 왜 하는데?"

이 질문이 머리속에서 끊임없이 맴돌기 때문입니다.

어제 제 친구가 이런식으로 킹덤빌더를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난데없이 쏟아져 나오는 스킬들과 영역이야기, 그리고 자기차례 때 무엇을 하면 되는지 구구절절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들 한번에 이해했을까요? 아니요. 모두가 굉장히 혼란스러워 했죠. 게임의 배경과 각 액션이 도대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건지 알 수 없었거든요. 결국 한참 뒤에서야 게임 종료이야길 듣고 그 행동들이 왜 필요한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가상의 게임을 예로 하나 설명해볼게요.

기승전결 식 설명

"자기 차례때 액션을 하나 고르면 돼. 그리고 모두가 동시에 카드를 열어서 옷을 바꿔입는데, 낮은 카드부터 시작해. 그리고 스킬을 사용하면 되는데... [중략] .... 이렇게 해서 최악의 코디를 하는 게임이야. "

결기승전 식 설명

"이 게임은 최악의 코디를 하는 게임이야. 온 몸에 모든 옷/장신구를 걸치면 마지막 라운드가 시작되고 카드에 있는 패션테러 점수가 가장 낮으면 승리해. 각 액션으로는.... [이하 생략]"

결이 먼저 나오는 것으로, 모두는 이 게임을 "무엇을 목표로" 해야하는지 이해하게 됩니다. 게임내내 못난이가 되기 위해 최대한 낮은 점수를 따야하는거죠? 그럼 자연스럽게 이어질 액션/스킬 하나하나를 무엇을 위해 써야하는지 받아들이기 쉬워집니다.

반드시 목적 설명 후 상세설명으로 들어가셔요. 목적을 나중에 알게되어,그 방대한 양의 룰을 다시 한번 목적에 맞춰 기억해내야 하는건... 생각보다 굉장한 고역입니다.

2. 액션을 설명할 때 각각 번호를 붙여주세요.

정말 단순한 게임이 아니고서야, 게임 내에선 자기 차례 때 할 수 있는 액션이 최소 두 개 이상 있습니다. 이때 그냥 액션을 하나하나 설명해주는 것보다, 총 몇가지의 액션이 있는지 정확하게 언급해주는게 좋습니다. 손가락을 쫙! 펴고 하나씩 접어가며 설명하면 시각적으로도 좋죠.

번호 없이 설명할 때:

"네 차례가 되면 카드를 가져올 수 있어. 그리고 이걸 손에 넣으면 되지. 아니면 카드를 사용할 수 있어. 손에서 버리면 되구. 아니면 카드를 교환할 수 있어. 덱 위에서 카드를 뽑아서 카드를 바꿔가면 되구. 아니면 카드를 팔 수도 있어. 이러면 돈이 생겨. 그리고 또 다른 액션이 있는데 카드를 모두 버리고 새로 5장을 뽑을 수도 있고 카드를 모두 비공개로 덮고 턴을 종료하면 돼."

자, 묻겠습니다. 플레이어가 한 턴에 할 수 있는 액션은 몇가지가 있나요?

아마 답하기 힘드실거예요. 언제 액션 설명이 끝나는지 예상을 못했을테니까요.

그럼 이렇게 설명해볼까요?

번호로 설명할때:

"네 차례가 되면 총 6가지의 행동 중 하나를 할 수 있어. 첫째! 카드를 뽑아 손에 넣는다. 둘째, 카드를 버리고 사용한다. 셋째. 덱에서 카드를 하나 뽑아 카드를 바꾼다. 넷째. 카드를 팔고 돈을 받는다. 다섯째. 카드를 모두 버리고 새로 5장 뽑는다. 마지막으로 여섯째. 카드를 모두 비공개로 덮고 턴을 종료한다."

자, 묻겠습니다. 플레이어가 한 턴에 할 수 있는 액션은 몇가지가 있나요?

:) 답하기 쉽죠?

물론 6개의 모든 액션을 한번에 기억하진 못하실거예요. 그러나 최소한 6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내가 그 중에 몇개의 액션을 기억 못하는지 알 수는 있습니다. 이것만 해도 플레이어들에겐 큰 도움이 되죠. 전 이렇게 설명해준 뒤, 다시 한번 번호별로 언급함으로써 한번 더 환기를 시킵니다.

각 액션별로 상세한 설명을 해야한다면

"자 첫번째 액션. 카드 뽑기에 대해서 설명해줄게." 하며 지금 몇번째 행동을 설명하고 있는지 알려주면 금상첨화!

3. 점핑! 점핑! ... 가능하면 하지마세요.

게임을 설명하다보면 불가피하게 뒤로 돌아가 특정 부분에 대해 다시 언급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어쩔 수 없지만, 게임 설명이 오락가락 이것저것 마구잡이로 설명하게 되면 룰 설명을 듣는 사람들은 패닉에 빠져요. 보통 긴장하거나, 룰에 대한 확신이 없거나, 허둥지둥 설명하다가 놓치는 경우가 대부분일텐데... 일단 자신감을 가지세요. 자신감이 없으면 모두가 헤맬 확률이 엄청 늘어납니다 ㅋㅋ 그리고 2번 방법을 이용하여 큰 덩어리에서 세부 덩어리로 쪼개가며 차분하게 하나씩 설명해주는게 좋습니다.

저는 설명 도중 3번의 롤백(뒤로 돌아가기)이 일어나면 그때부터 조금 혼란이 오기 시작하더군요ㅠㅠㅠㅠ 가능하면 연관있는 규칙끼리 뭉텅이로 묶어서 순서대로 설며해주는게 좋습니다.

이동규칙 -> 전투규칙 -> 전투해소 -> 전투해소 상세설명 -> 이동규칙 상세설명 -> 전투규칙 예외설명 -> 전투규칙 상세설명

이런 혼란스러운 순서보단

이동규칙 -> 이동규칙 상세설명 -> 전투규칙 -> 전투규칙 상세설명 -> 전투규칙 예외설명 -> 전투해소 -> 전투해소 상세설명

이런식으로 흐름이 있으면 훨씬 더 이해하기 좋겠지요.

4. 아이콘이 많다면 비유를 들어주세요.

게임을 하다보면 수많은 아이콘들을 만나게 됩니다. 처음 하는 사람들에겐 룰도 벅찬데 아이콘 까지 외우려면 정말 죽음이죠.

특히 레이스포더갤럭시가 악명 높은데, 저는 이 게임을 할 때 비유를 많이 들어줍니다. 예를 들어볼게요.

"자, 카드를 보면 두 가지 종류가 있어. 노란 사각형와 동그라미지. 노란 네모는 뭐냐면, 네모난 건물들이야. 건물들을 개발해서 내 행성이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바뀌도록, 즉 더 효율적으로 활동하기 위해서 짓는거지. 노란 사각형이 뭐라구? 건물.

자 그럼 동그란건 뭘까? 우주에서 동글동글한게 뭐지? 별, 바로 행성이야. 그런데 행성을 보면 두 가지 색이 있어. 검정색과 빨간색. 검은색은 착한 애들이야. 검은 양복을 입은 신사들이지. 여기에 쓰인 만큼 카드(돈)을 주면 우리랑 동맹을 맺어서 능력을 빌려줘. 근데 봐봐. 속이 초록색으로 꽉차있지? 얘네 행성은 초록색 자원으로 가득 찬거야. 여기에서 초록 자원이 마구마구 나오지. 근데 얘는 테두리에 초록색이 있네? 이건 행성 주변에 초록 자원이 둥둥 떠있는거야. 우리 편으로 만드는 순간 한번만 생기는거지. 우리가 수거했으니까.

어, 근데 이거 봐. 왜 이 행성은 빨간색일까? 빨간색 하면 뭐가 생각나? 피, 폭력, 분노 이런거지. 얘들은 완전 폭력적인 애들이야. 우리가 돈을 줘도 말을 안들어. 그럼 어떻게 해? 쥐어 패서 굴복 시켜야지. 내 행성/빌딩들을 보면 빨간 행성을 부수기 위한 힘을 빌려주는데가 있어. 이래서 노란 건물을 짓는거야. 자, 동맹군들을 끌고가서 그냥 쥐어 패버리면 얜 우리팀이 되겠지? 얘넨 나한테 뒤지게 맞았으니까 돈 달라는 소리는 못 하겠지? 그러니까 돈은 줄 필요 없어."

이런식으로 스토리 텔링을 해줍니다. 그럼 친구들은 나중에 혼란이 오더라도 "야, 네모는 뭐였지? 아, 빌딩." 하고 어느정도 스토리를 통해 유추하기도 하더군요.

완벽한 방법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아이콘들을 좀 더 재미나게 배우는 효과는 줄 수 있습니다.

5. 룰이 많다면 아예 "나머지는 그때그때 알려줄게" 라고 정직하게 말하세요.

저 역시 종종 겪었던 일인데... 처음 룰 설명땐 아무말도 없더니 나중에 가서야 갑자기 "아!! 맞다!! 이땐 이런 규칙이 적용 돼" 하고 알려주면서 제 행동을 제지하면 당황스러움을 크게 느낍니다. 룰을 다 배웠다고 믿고 전략을 짜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벽 때문에 모든게 흐트러지니까 "헐...ㅠㅠ" 하는 반응이 절로 나오더군요.

잔룰이 있다면 게임을 시작할 때 알려주세요. 없어도 한번 언급하세요. 이렇게 한번 말해두면 게임 도중 갑작스러운 룰의 등장에 사람들이 놀라지 않습니다.

"미처 설명하지 못한 이런저런 잔룰이 좀 있어. 처음이니까 에러플 걱정하지 말고 싶은걸 마음대로 시도해봐.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알려줄게."

이 말 한마디로 플레이어들은 "아, 우리가 모르는 뭔가 있구나. 뭔지 모르니까 일단 이거저거 해봐야지." 하고 게임에 임하게 됩니다. 모르는 룰이 갑자기 등장하게 되어도, "음, 이게 그 잔룰이구나" 하고 훨씬 받아들이기 쉬워지죠. 허탈감/실망감을 크게 줄여줄 수 있습니다. "몰랐던 룰 때문에 졌어" 이런 원망 섞인 말이 잘 안나오게 되죠 :)

6. 꼭 선을 잡으세요.

보드게임을 처음 배운 사람에게 "자, 이제 해봐" 이러면 부담 & 당혹감을 느낍니다.

아직 잘 모르니까 실수할까봐 머뭇거리죠. 그러니 가능하면 선을 잡으세요. 그리고 차례를 휘리리리리리릭~ 끝!!! 진행하는게 아니라,

"자, 내 차례네. 액션 6가지 기억하지? 난 일단 카드를 한장 뽑을게. OOO 때문에 지금은 카드교환 액션을 할 수가 없어. 그리고 이 카드를 사용하고, 이렇게 말을 움직인 뒤, 새로 카드를 뽑고 턴 종료야."

이렇게 혼잣말을 하듯 턴의 진행을 읊어주며 진행해주시면 좋습니다. 그럼 다음 플레이어는 일단 따라해볼 수 있거든요. 카드를 뽑아보고, 사용해보고, 그리고 따라서 말을 움직여본 뒤 턴을 종료할겁니다. 그 다음, 다다음 사람들은 이미 예시를 봤기 때문에 쉽게 따라하거나 색다른걸 해보려고 시도하겠지요 :)

만약 경험자가 두세명이 있다면, 경험자->경험자->경험자->초보->왕초보 순서로 하는게 좋습니다. 초보들은 경험자들이 하는것을 지켜보며 턴의 진행을 알게되거든요.

7. 칭찬을 하세요.

이건 제 스타일이지만... 저는 게임을 할 때 "그렇지. 그 액션 선택은 좋았네!" 하며 항상 칭찬을 해줍니다. 특히 이해도가 떨어지는 아이들과 할 때 유독 더 많이 하는 편이예요.

플레이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를 유심히 보지만 이상한 수에 대해서 "아, 그건 좋지 않아. 아, 그러면 안돼지." 같은 제지하는 행동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초보가 고민 끝에 악수를 두더라도 칭찬하며, 훌륭한 수를 두면 "아, 얘들아 이거 봐봐. 이건 결정적일 수 있어. OOO 전략이라는게 있는데 바로 이걸로 시작되는거야." 하고 모두에게 이런 방법이 있음을 알려주는 기회로 활용합니다. 절대로 첫게임에 모든 전략을 다 알려주지 마세요. 정형화된 전략으로 게임을 즐기는 것보다 스스로 연구하고 고민하며 최선의 수를 찾아가도록 가르치는게 더 좋습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 서로 새로운 정보를 얻게 되죠.

엉망진창으로 헤매고 자꾸만 의미없는 수를 두더라도 "그렇지. 그럴땐 그런 액션도 좋아. 아! 이런 액션도 가능했겠다." 하며 맞장구를 쳐주며 추가적인 정보를 흘려주세요. 이러면 다른 친구들도 간접적으로 룰을 기억할 수 있게 되죠. 계속 잘하고 있다고 복돋아주세요. "의외로 나도 잘하는데?" 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다보면 "조금 더 어려운 것도 할 수 있겠는데?" 하는 자신감으로 변합니다 :)

모두가 익숙해지면 그때부터 좀 진지하게 게임에 임해도 충분합니다.

다만, 이 방법은 사람에 따라 효과가 정말 다릅니다.

호되게 짓밟아주면 승부욕을 태우며 더 몰입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너무 띄워주면 게임을 시시하게 바라보는 사람도 있고, 호되게 당한 기억 때문에 게임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생기는 사람도 있어요.

사람마다 다 달라서.... 당근과 채찍 중 어느쪽을 쓸진 플레이어의 성향에 따라 맞춰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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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주절주절 써놨지만... 듣고보면 별거 아니네~ 싶을지 모르겠습니다 :(

그래도 상대방이 어린아이라고 생각하고, 단어 하나하나 어순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고 상대방을 배려해주며 설명해주세요.

스스로 보난자/크레이지타임/트랜스아메리카를 세팅하고 열심히 하는 초1들... 절대 꿈 같은 소리가 절대 아니예요.

한국의 아동 복지시설에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재미나게 설명 해줬더니 아이들 모두 이해하더라구요.

"선생님 곧 갈게!! 게임 좀 준비해줘!!" 하고 외치면 아이들이 후다닥~ 게임을 가져와서 다 세팅까지 해놔요.

그리곤 빵끗 웃으며 "선생님!! 빨리 와요!!!" 하고 절 부르죠.

게임이 어렵다고 말하는 상대방을 보고 "아, 이 사람은 어려운 게임은 못하겠구만" 하고 판단하지 마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