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소통으로 본 ‘더 게임 퀵앤이지’

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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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2 오후 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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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게임 퀵앤이지 박스 일러를 캡처. 사진출처: 보드게임긱

라이트게이머인 무이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지난 글 의사소통으로 본 '스페이스 크루'와

같은 맥락에서, (오늘 팝콘게임즈에서 출시된) 더 게임의

간단 버전 ‘더 게임 퀵앤이지’를 리뷰해보고자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 게임은 단순한 간단 버전이 아닙니다!

게임 진행은 본판과 큰 틀에서 비슷합니다. 숫자 카드를

오름차순과 내림차순에 맞게 내려놓는 게임으로, 모든 카드를

내려놓으면 공동으로 승리하는 협력게임말입니다.

먼저 구성물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글을 읽는 분들이 본판을 해보셨다는 가정하에 글을

쓸 것이고요... 더 게임 본판은 ‘본판’으로, 더 게임 퀵앤이지는

‘퀵앤이지’로 줄여서 부르겠습니다.)

1. 구성물

보라색 오름차순과 내림차순 열 카드 두 장. 아래에 깔려 있는

연두색 카드들은 숫자 카드들의 뒷면. 사진출처: 보드게임긱

본판엔 열 카드가 네 장이지만, 퀵앤이지엔 두 장뿐입니다.

퀵앤이지의 구성물. 사진출처: 보드게임긱

위의 사진에서 아래쪽에 있는 것이 숫자 카드들입니다.

다섯 가지 색깔에 1부터 10까지 총 50장으로 본판의

대략 절반이죠.

제일 왼쪽의 열 카드와 오른쪽의 숫자 카드 세장.

사진출처: 보드게임긱

2. 게임 진행

게임 진행 중. 사진출처: 보드게임긱

본판을 해보신 분이라면, 위의 사진만 보셔도 어떻게 하는지

대략 느낌이 오실 텐데요...

손에 드는 카드는 두 장으로, 자신의 차례에 카드 한 장

혹은 두 장을 열 카드 옆에 내려놓은 뒤 다시 두 장이

되도록 카드더미에서 보충합니다.

열 카드 옆에 내려놓는 규칙은 본판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때 색깔은 상관없지만, 같은 숫자 위에는 내려놓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색깔은 뭐하러 있는 걸까요?

본판과 퀵앤이지의 규칙상 가장 큰 차이점은 되돌리기에

있습니다. 본판에서는 숫자가 10 차이 나는 경우 되돌리기를

할 수 있지만, 퀵앤이지에서는 같은 색깔이기만 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오름차순 열 카드 옆에 놓인 흰색 5 위에다

흰색 1을 놓을 수 있는 거죠.

게임은 50장의 숫자 카드를 모두 내려놓으면 공동으로

승리하고, 누군가 자신의 차례에 한 장도 내려놓지 못하면

공동으로 패배합니다. (자신의 차례를 시작할 때 손에

카드가 없는 플레이어가 있으면, 본판의 경우엔 게임을

그대로 진행하지만, 퀵앤이지에서는 즉시 패배합니다.)

본판과 달리, 공동의 승리 혹은 패배만 있을 뿐, 패배하더라도

남은 카드의 장수를 세지는 않습니다.

3. 의사소통

(0) 의사소통의 단계

지난 글 의사소통으로 본 '스페이스 크루'에서 협력게임의

의사소통이 아래와 같은 단계에 따라 이뤄진다고 얘기했었습니다.

A라는 플레이어가 의사 표현을 하면, 다른 플레이어들은 A의

의도를 파악하고, 그 의도에 부합하게 플레이하는 것이죠.

한편, 더 게임 본판을 예로 들면서, 세 가지 단계 모두에서

답답함을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고 본판이 별로라는 건 아닙니다. 저에게 본판은

협력게임을 소개할 때 처음으로 (그리고 자신있게!) 들이미는

갓겜이거든요.

더 게임 신판. 사진출처: 보드게임긱

근데, 퀵앤이지는 본판과는 정반대로 매우 원활한 의사소통을

보여줍니다. 이런 차이를 의사소통의 단계별로 살펴보겠습니다.

(1) 본판 vs 퀵앤이지: 의사 표현

본판의 의사 표현은 상당히 제한적입니다.

“이 열은 좀 천천히 가자.”, “이 열은 내가 찜할게.”

정도로 한정돼있으니까요.

그에 반해 퀵앤이지는 여기에다가 자신의 카드 색깔과 숫자가

높은지, 낮은지, 중간인지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도

모자라

“난 이 열에서 되돌리기 할게.”

도 가능하구요.

(규칙상으로는 구체적인 숫자만 말하지 않으면 되기 때문에

다른 의사 표현도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규칙설명서상으로

확실한 것만 말씀드렸습니다.)

가능한 의사 표현이 정~말 풍부해진 거죠.

(2) 본판 vs 퀵앤이지: 의도 파악

덕분에 퀵앤이지에서는 서로가 서로의 카드를 웬만큼 알고

플레이하게 되고, 그만큼 의도 파악도 쉽습니다.

(3) 본판 vs 퀵앤이지: 의도에 부합하는 플레이

본판은 상대의 의도보다는 나의 손패에 좌우되는 경향이

훨씬 크지만, 퀵앤이지는 다릅니다. 서로의 카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어, 대화를 통해 누가 어떤 카드를

어떤 순서로 내려놓을지 정해나갈 수 있으니까요.

이렇듯 퀵앤이지의 경우 각 단계에서 의사소통이 원활해,

잘 풀릴 때는 카드를 모두 공개한 거나 마찬가지로 흘러갑니다.

4. 게임감상

(1) 긴장감

퀵앤이지는 손에 드는 카드와 열 카드 모두 두 장뿐이라

한 번 꼬이면 갑자기 패배하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게임

초반에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습니다. 한 번 실수하면

끝이니까요.

(2) 강제되는 계획

이런 실수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항상 계획을 세우고

플레이해야 합니다. 최소한 다다음 플레이어까지는 뭘 낼지

생각해두고 플레이하게 되는 거 같습니다.

이런 계획적인 플레이는 끝내기를 하는 마지막 두 라운드

동안 특히 중요해집니다.

(3) 강제되는 의사소통

계획적인 플레이를 하기 위해 플레이어들은

“나는 빨강 파랑 들고 있는데, 너는 무슨 무슨 색 갖고 있어?”,

“숫자는?”, “무슨 색 갖고 있다고 그랬지?”

와 같은 질문과 답변을 끊임없이 주고받습니다.

(4) 플레이 시간

그래서, 퀵앤이지의 숫자 카드는 본판의 절반밖에 안 됨에도

플레이 시간이 절반으로 줄거나 하지는 않는 거 같습니다.

(5) 이 게임의 묘미

여기까지 읽으시면 의사 표현이 지나치게 원활해서 게임이

좀 시시하지 않냐고 말씀하실 분도 계실 거 같은데요...

아직 말씀드리지 않은 묘미가 남아있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A라는 플레이어가 흰색 낮은 수를 들고

있다고 말했는데 나는 흰색 3을 들고 있으면, 아무래도 A가

가진 숫자는 1, 2일 가능성이 높겠죠? 그러면 흰색 3을 들고

있으면서도, 다른 플레이어들이 헷갈리지 않도록

“난 흰색 중간을 들고 있어.”

라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즉, 상황에 맞춰 의사소통을

조절해 나갈 수 있는 묘미가 있다는 겁니다.

이런 경우는 내가 들고 있는 카드의 숫자가 4나 7처럼

좀 애매할 때 자주 발생하며, 숫자 카드들을 카운팅한다면

이런 애매한 상황에서도 절묘한 의사표현을 통해 상대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6) 깔끔한 진행을 위한 대안

이런 묘미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을 하다 보면 서로 너무 말을

많이 해서 아무리 협력게임이지만 의사소통이 너무 과하다고

생각하실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좀 더 깔끔한 진행을 위해 아래의 사진과 같이

(작은) 표시 카드를 만들어보았습니다.

아래에 있는 것이 숫자 없이 색깔만 나타내는 (코드네임

단어 카드 사이즈의) 표시 카드들이다

만약 내가 파란색 중간과 빨간색 낮은 수를 가지고 있으면,

아래 사진과 같이 표시 카드 위에 토큰을 놓는 거죠.

파란색 중간과 빨간색 낮은 수를 토큰으로 표시했다

스페이스 크루를 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흉내 좀 냈습니다ㅋ

이렇게 하면 꼭 필요한 의사소통만 하게 되지만, 어차피 말을

많이 해야 하는 터라 조용해지지는 않습니다.

혹시 표시 카드가 필요하신 분은

‘더 게임 퀵앤이지’를 위한 표시 카드

에서 다운받으시길 바랍니다.

5. 마무리

퀵앤이지는 본판의 간단버전이지만, 의사소통에 있어서 아예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런 만큼 본판과 확연히 구분되는

게임성을 보여줍니다. 본판이 답답한 의사소통 덕에 각자

로스트 시티를 하는 거 같은 느낌과 재미를 (실패 없이)

항상 제대로 보여준다면, 퀵앤이지는 과할 정도의 의사소통을

통해 제대로 협력한다고 할까요? (다시 말해, 재미만 놓고

본다면 저는 본판을 더 선호하긴 합니다.)

이름이 ‘quick and easy’이지만, 생각보다 그렇게 quick하지

않고, 한편 easy하기 위해서는 정말 말을 많이 해야 하는

게임입니다. 본판에 비해 플레이 시간이 짧고 규칙 설명도

살짝 간단하지만, 본판과 비교할 수 없는 의사소통을 맛볼 수

있어 협력게임으로서는 본판에 비해 훨씬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이 게임에 관심 있는 분은 최근에 NeoMaki님이 쓰신

(리뷰? 프리뷰?)The game quick and easy

도 읽어보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저랑은 살짝 다르게

보셔서, 게임을 파악하시는 데 도움이 될 거 같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퀵앤이지는 당연하고 스페이스 크루보다

더 까다로운 의사소통을 보여준다고 생각되는 게임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Thanks to: 리뷰를 작성하는 데 있어 두 분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올해 초 퀵앤이지를 소개해주시고 저의

집요한 플레이 요구를 다 받아주신 쉘링포드님,

더 게임 시리즈에 대한 여러 의견을 들려주신

(더 게임 시리즈의 빅팬) 윤님께 감사드립니다.

P.S. 더 게임 시리즈를 좋아하는 분께는 본판의

2인 경쟁게임 버전인 ‘더 게임: 페이스 투 페이스’를

강력하게 추천해 드립니다. 짧은 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플레이해봤었는데, 뭔가 신기하고 엄청 재밌더라구요.

관심있는 분은 NeoMaki님이 쓰신

(이겜뭥미?)더 게임 페이스 투 페이스 리뷰

를 읽어보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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