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보드게임 BEST 20 (20~16위)

근육파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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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7 오후 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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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인해 게임을 못하는 상황이라 올 해 한 게임들 순위나 정해볼까 싶어 점수를 매겨봤는데요. 그냥 느낌대로 점수를 매기면 아무래도 전략게임이 파티게임에 비해 높은 점수를 받을 것 같아 나름대로 다음의 세 가지 기준을 세워봤습니다.

완성도: 밸런스, 테마, 메카니즘의 타당성, 게임 디자인, 아트웍, 가격 대비 컴포넌트의 질
매력: 세팅과 룰설명 대비 재미, 리플레이성(얼마나 자주 손이 가는가), 초심자 접근성(초플도 빨리 적응 가능한가)
올해 나의 경험: 올해 내가 얼마나 즐겁게 했는가

나름 기준을 정하긴 했지만 어차피 일개 보드게이머의 주관적인 의견일 뿐이니 순위는 크게 신경 쓰지 마시길ㅎㅎ

20위부터 16위 입니다.

20위 워체스트

디자인이 참 훌륭한 게임입니다. 다소 빡빡한 추상 전략의 틀 안에 운적 요소가 적절히 들어간 백 빌딩을 접목시킨 점이 탁월했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방보다 한 수 앞을 더 내다보는 추상 전략의 치열한 수싸움을 기대하는 사람에겐 아쉬운 점일 수 있겠지만 저처럼 조금 고민하다가 결국엔 어떻게든 되겠지 식으로 플레이하는 사람에겐 이 부분이 정말 매력적이거든요.

다양한 능력을 가진 캐릭터들을 드래프트로 선택해 나만의 팀을 꾸리는 부분도 좋습니다. 이 과정 자체가 게임의 (나만의)큰 그림을 그린다는 즐거운 착각을 하게 해서 즐겁고, 게임에 지더라도 캐릭탓(**이 사기네~)을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백 빌딩을 통해 내가 할 수 있는 전술 선택지의 확률을 컨트롤 하는 점도 재밌는 부분인데요. 전투에 별로 도움이 안되는 말들을 일부러 비효율적으로 상대 말들과 교환을 하면서 내 백 안의 주력 말들의 사이클을 높이는 식의 운영이 가능해집니다. 또한 게임의 승리 조건이 거점 점령이기 때문에 전투에 심취한 상대방에게 줄건 주면서 은근한 기동력으로 거점을 후다닥 먹어버리는 등 다양한 승리 패턴이 가능하더라구요.

2:2로 플레이할 땐 팀원과 합을 잘 맞춰야 하는데 서로 손에 든 코인 정보를 대놓고 알려줄 수는 없으니 믿음의 눈빛 교환이 중요해 집니다. 역으로 상대편 들으라고 기만 작전을 펴기도 하고요. 이럴 땐 또 파티 게임 느낌이 나서 재밌더라구요.

아쉬운 점은 들고 다니기가 힘들고 코인 홀더가 기본 구성품에 빠진 점 정도가 생각나네요.

19위 이스탄불 빅박스

비보드게이머에게 전략 게임의 맛을 아주 살짝 찍어먹게 해줄 수 있는 딱 좋은 포지션의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말을 움직인 다음 도착한 칸에서 행동을 하는 메카니즘이 국민 게임인 부르마블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같은 방식의 행동을 돌아가면서 반복하기 때문에 처음엔 좀 어리둥절 하더라도 금세 익숙해 지더라구요.

룰 설명은 새로운 보드게임을 할 때 꼭 필요한 시간이지만 너무 길어지면 듣는 사람은 지겹고 하는 사람도 힘들잖아요? 이럴 때 게임 설명 사이에 위트를 섞어줄 수 있는 요소가 있으면 편한데, 이스탄불엔 도박판 찻집이라던지 항상 감옥에 가 있는 마음은 착하지만 불량한 삼촌(?)같은 요소가 있어 조금 부드럽게 설명이 가능해 좋았어요.

승리 조건이 루비를 모으는 것이라 레이싱 요소로 인해 게임이 늘어지지 않는 점, 게임이 끝나고 최종 루비 수가 많이 차이나지 않는 점도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초플이라도 승점으로 한바퀴 따라잡히고 그러면 자존심 상하잖아요?

초심자와 게임할 때는 이 게임의 목표는 루비 모으기라는 점을 계속 상기시켜야 합니다. 가끔 엔진 빌딩(또는 도박?)에만 너무 심취하셔서 정작 루비 모으는 행동은 등한시하는 경우도 생기거든요.

영업용 게임으로서의 장점들을 주로 적었지만 확장을 끼우면 보드게이머들이 하기에도 그렇게 심심한 게임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세팅과 정리를 합심해서 한다면요ㅎㅎ

아쉬운 점은 빅박스라 크다(?), 세팅/정리 너무 귀찮다. 정도가 있는데, 그래서 한글판이 나온다는 [이스탄불 다이스]를 기대중입니다.

18위 크라스 카리어트

첫인상은 ‘순한맛 티츄’ 였는데요, 하면 할수록 티츄와는 전혀 다른 이 게임만의 고유한 매력이 느껴졌습니다.

티츄와 비교했을 때 가장 도드라지는 특징은 ‘가벼움’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우선 클라이밍 족보가 아주 단순해서 포커 족보를 전혀 모르는 초심자라 하더라도 쉽게 접근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1등(혹은 승/패) 정하기가 아닌 꼴등 피하기라는 점도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요소인데요, 매 판 제일 잘할 필요 없이 꼴등하지 않을 정도로만 잘하면 되거든요. 그래서 보다 가볍고 편한 마음으로 게임에 임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는 ‘멕이는’ 특수 카드도 일조를 하는데요. 1등으로 나가려는 사람 바지 가랑이 붙드는 느낌으로 사용하거나 안 먹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강해져서 돌아올게”라며 카드를 먹을 땐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형성되더라구요.

그렇다고 이 게임이 긴장감 제로의 마냥 매가리 없는 게임이냐면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일단 클라이밍 게임이 주는 기본적인 쾌감(앞 사람의 강한 패를 나의 더 강한 패로 밟을 때)이 분명히 존재하구요. 또 손패를 재배치할 수 없는 답답함이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내 손패를 더 강하게 만들 수도 있는 성장 요소로 작용하는 점. 라운드 후반 오픈 카드가 없는 상대를 지금 내가 낼 수 있는 제일 강한 족보로 압박하느냐 아니면 좀 더 후반을 대비해 내 손패를 강하게 만들어 둘 것인가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물론 나만 특수 카드 없으면 꼴등해야죠ㅠ

무엇보다 아내가 좋아하는 몇 안되는 게임이라 저도 애착을 가지고 있는 게임입니다.

아쉬운 점은 카드 디자인이 마치 프로토 타입을 그대로 내놓은 것 같다는 점? 직관적이고 시인성이 좋긴 하지만 좀 더 아름다울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17위 벨 에포크 파리

파스텔 풍의 우아한 표지 그림과는 전혀 다른 지독한 게임입니다. 저는 이 게임을 하면서 리바운드를 하기 위해 골밑에서 박스 아웃하는 농구 선수들이 생각나더라구요. 그만큼 메인 보드판에서 자리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집니다.

이 게임에서 승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인데 게임이 끝나고 구역당 영향력으로 점수를 먹는 방법과 1, 2, 3단계 건물을 소유할 때 얻을 수 있는 보너스 타일로 먹는 방법이 있습니다. 보너스 타일 중 점수를 많이 주는 것들도 대부분 내가 소유한 건물에 비례해서 승점을 먹기 때문에 결국은 ‘좋은 타이밍’에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 중요해 집니다. 여기서 좋은 타이밍이란 대개 초중반에는 낮은 단계의 건물을, 그리고 후반부에는 랜드마크를 포함한 높은 단계의 건물을 소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때문에 게임 초반 낮은 단계의 건물이 열리자마자 선점하기 위한 자리싸움, 중반엔 적절한 위치의 건물을 소유한 채 버티면서 보너스 타일로 최대한 점수 뽑아먹기, 후반부 영향력 점수를 먹기위한 눈치싸움 등이 각 페이즈 마다 치열하게 전개됩니다. 즉, 서로 머리 끄덩이 잡아 당기고 버티는 인터랙션이 엄청난 게임인데 이 과정들이 굉장히 즐겁더라구요. 분명 플레이어 성향을 타는 부분이겠지만 전 운이 좋게도 유쾌한 경험이었어요.(아~ 똥차 언제 뺄거예요? 앞차가 빠져야 저도 빼죠ㅋㅋㅋ)

속도감 또한 이 게임의 장점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장고의 여지가 아예 없지는 않지만 내 차례에 하나의 행동만 할 수 있고 행동 자체도 단순한 편이라 4인플 시에도 대기 시간이 길지는 않았습니다.

아쉬운 점이라면 표지에서 느껴지는 우아한 아트웍이 막상 인게임에서는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모듈형 보드판 너무 귀찮다, 타일 세팅 너무 귀찮다. 정도가 있겠네요.

16위 티츄

할 때마다 이상하게 긴장이 되는 게임입니다. 전 1:1 대결보다 2:2 팀 대결에서 좀 더 불타오르는 성격인가봐요. 실수하면 같은 팀에게 민폐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티츄는 그 악명(?) 답게 확실히 중독성이 있는 게임인데요. 티츄의 특징들을 생각해보면, 한판 한판이 오래 걸리지 않아서 내 플레이 결과를 바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 비록 이번 판은 망했더라도 다음판에서 손패만 잘 들어온다면 크게 한탕 할 수 있을거라는 기대감. 리스크를 껴안고 티츄를 선언한 다음 성공했을 때의 짜릿함. 등등이 있는데 이렇게 열거해 보니깐 정말 도박의 그것과 닮아있네요.

제가 티츄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어느 정도로 노력하느냐에 따라 내 실력을 끌어 올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노력이란 다른 말로 하면 ‘카운팅’입니다. 물론 처음 카드 교환에서의 노하우나 다양한 상황에서의 대처법 등은 경험을 통해서 키워 나가야 하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내가 지금 보다 티츄를 좀 더 잘 하고 싶으면 다음 판은 카운팅을 좀 더 빡세게 하면 됩니다. 카운팅을 통해 남은 카드들의 예측이 가능해지면 어떤 플레이를 해야할지가 명확해 지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렇다면 비슷한 실력의 플레이어들이라 가정할 때 게임을 ‘이기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티츄 선언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실력이 좋은 사람이라도 똥패를 들고 1등으로 나갈 순 없겠죠. 하지만 티츄는 단판 게임이 아니라 1000점을 목표로 여러판을 하게 되고 따라서 나한테 좋은 손패가 들어왔을 때 기회를 놓치지 않고 티츄 선언을 해서 보너스 점수를 먹어야 우리팀이 이길 확률을 높일 수 있습니다. 쓰고 보니 너무 당연한 말인 것 같아 민망하지만 티츄 실패에 대한 리스크 때문에 충분히 좋은 손패를 들고도 주저하셨던 분들이라면 좀 더 공격적으로 티츄를 부를 때 승률이 더 높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편이 더 쫄깃쫄깃하고 재밌거든요.

아쉬운 점은 초심자의 경우 새 소원 들어줄 때 에러플할 여지가 있는데 상대 손패를 못 보기 때문에 바로잡아 줄 수가 없다. 나중에 눈치채기도 쉽지 않다. 정도가 떠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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