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vs 추리: 컨설팅 디텍티브 리뷰

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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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8-15 오후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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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게이머인 무이입니다.

최근에 재밌게 플레이했던 수사추리게임들을 리뷰해 보고

있는데요, 최근 글들인

수사 vs 추리: 사건의 재구성 리뷰 와

수사 vs 추리: 디텍티브 리뷰

에서 수사추리게임의 플레이 과정을

(1) 단서수집, (2) 가설수립, (3) (가설)검증

으로 나눈 뒤, 단서수집단계를 ‘수사’로 불렀고, 검증단계를

통과하는 유일한 가설을 찾아내는 것을 ‘추리’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1) 단서수집 및 (2) 가설수립에 치중하는

게임을 ‘수사게임’이라 부르고, (2) 가설수립 및 (3) 검증에

치중하는 게임을 ‘추리게임’이라고 불렀구요.

사진출처: 보드게임긱의 사진을 확대캡처

이번 글에서는 셜록홈즈 컨설팅 디텍티브(이하 컨설팅 디텍티브)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이 게임을 플레이해보기 전에는

옛날 게임이라 난이도만 높고 지루한 추리게임이겠거니

생각했거든요. 근데, 실제로 플레이해보니 정말 신기한 게임이더군요.

왜 아직도 긱 100위 안에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셜록홈즈 컨설팅 디텍티브는 다른 수사추리게임들처럼 플레이어들이

협력해서 사건의 전말을 밝히는 게임으로, 진행방식은 자신이

방문하고 싶은 장소가 적혀 있는 카드를 선택해 뒷면의 텍스트를

읽는 게 다인 왓슨 앤 홈즈를 협력으로 플레이한다고 생각하시면

얼추 비슷하지 않을까 합니다. 하지만, 방문할 장소가 스무 곳도

안 되는 왓슨 앤 홈즈와 달리 방문할 장소가 엄~청 많아 등장인물

혹은 건물의 주소록에 해당하는 런던 안내책자가 있고, 그 외에

의뢰인이 베이커가 221B를 방문한 당일자 신문이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규칙은 상당히 간단해서 구성물을 살펴보는 것으로 거의 파악이

가능한 수준입니다. 구성물들을 살펴보면요...

그리스어판 런던 안내책자

먼저 위 사진은 주소록에 해당하는 런던 안내책자인데요,

안쪽을 살펴보면

안내책자의 내용

위 사진과 같이 등장인물, 건물의 주소가 적혀 있습니다. 예를 들어

Boone, Hugh ............... 21EC

라고 적혀 있는 건 Hugh Boone이라는 사람이 런던의

EC(중동부) 21에 산다는 건데요, 21의 의미는 런던 지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런던 지도

위 사진은 런던 지도로, 한국어판의 지도와는 스타일이 조금

다르지만 쓰임새는 똑같습니다.

런던은 중동, 중서, 북서, 남동, 남서 이렇게 다섯 개의

구역으로 나뉘고, 각 구역을 조금 더 확대해보면

런던 지도를 확대한 모습

위 사진과 같이 건물에 번호가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앞에서 본 런던 안내책자의 21과 같은 번호는 건물에 적힌

이 번호입니다. 그래서, 런던 안내책자에서 Hugh Boone의

주소를 21EC로 확인했으면, 아래의 사진과 같은 사건 책자에서

21EC(한국어판에서는 중동부 21) 항목을 찾아 읽으면 그것이

곧 Hugh Boone을 방문해 이야기를 듣는 게 됩니다.

사건 책자. 사건 책자에는 사건에 대한 소개글이 있기 때문에

게임을 시작할 때도 읽게 된다.

아래의 사진은 신문으로 그때그때 뭐 좀 건질 게 없나하고

읽게 되는데, 앞뒤 한 장이라 읽을 게 엄청 많은 건 아니지만,

나중 사건을 조사할 때는 이전 사건에 나왔던 신문도 읽어야

해서 읽을거리가 점점 늘어납니다.

신문

구성물을 소개했으니 규칙을 정리해보면... 게임은 사건 책자에서

사건에 대한 소개글을 읽으며 시작하고, 이후에는 원하는 장소를

런던 안내책자와 지도를 활용해 방문하고 이야기를 듣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사건의 진실을 파악했다고 생각하면, 사건 책자

뒤편에 있는 질문들에 답하는데, 정답을 맞힐 때마다 정해진

점수를 받게 됩니다. 추가로, 셜록홈즈가 어떻게 추리했는지

살펴보고 홈즈에 비해 더 방문한 장소 한 곳당 5점의 감점을

당하게 됩니다. 셜록홈즈는 다섯 군데를 방문했는데,

나는 여덟 군데를 방문했다면 추가로 세 군데를 방문했으니

3*5=15점의 감점을 받는 겁니다.

이제 이 게임에 대한 감상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1) 엄청난 자유도

이 게임에선 점수를 신경쓰지 않는다면 런던에 있는 어떤 장소든

갈 수 있어 자유도가 매우 높습니다. 덕분에, 진짜로 탐정이

되어 탐문 수사를 하는 거 같은 느낌을 받아 테마몰입이 잘 되구요.

(2) 용의자는 어디에?

예를 들어, 용의자들의 알리바이를 하나하나 체크해 나가는 것도

많은 경우 가능하고, 좀 극단적인 경우로는 (실제로 이런 식으로

플레이하는 분은 없겠지만... 저는 해봤습니다;) 의심스러운 사람이

크게 다쳤는데 막상 어디 있는지 모른다면 런던에 있는

모든 병원을 다 뒤지는 것도 가능합니다.

가장 자주 접하는 경우는 이런 겁니다. 중요인물을 찾으려는데,

주소록에 등록돼있지 않거나 집이나 직장에 없는 경우 말이죠.

이럴 땐 가용한 모든 정보를 동원해 찾아야 하는데, 성공하기라도

하면 환호성을 지를 정도로 흥분하게 됩니다. 이 순간이 이 게임이

갖고 있는 수사게임으로서의 재미를 가장 잘 보여주는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3) 수사게임으로서의 난이도

높은 자유도에서 눈치챈 분도 계시겠지만, 이 게임은 애초에

추리는 내려놓고 수사게임처럼 진행하더라도 플레이에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신중하게 플레이한다면 점수도 꽤 뽑을 수

있고 말이죠. 이렇게 컨설팅 디텍티브를 수사게임으로 본다면

난이도는 그렇게 높지 않습니다. 제가 평소 매우 신뢰하는

후기러인 다아님이 ‘노리판 모임후기’에서 세 번에 걸쳐 쓰신

컨설팅 디텍티브 후기를 봐도 특별히 난이도에 대한 언급이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게 아닐까 합니다. 제가 느끼기엔 텍스트도

많고 해서 ‘사건의 재구성’의 어려움 난이도 보다는 살짝

어려울 수 있지만, ‘디텍티브: 모던 크라임’에 비할 수준은

아닌 거 같거든요.

(4) 추리게임으로서의 컨설팅 디텍티브

하지만, 셜록홈즈의 추리과정(해답)을 살펴보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셜록홈즈는 어디까지나 추리를 통해 사건을 해결하기

때문에, 수사게임으로 생각했던 게임이 실은 추리게임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고 이 사실 자체가 충격적으로 다가옵니다.

근데 더 충격적인 것은 셜록홈즈의 추리에 있어서 중요했던

단서들이 어디 깊숙한 곳에 숨겨진 것이 아니라 명백히

드러나 있다는 데 있습니다. 분명히 나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이게 뭔가 싶어 고민했었는데, 그 단서가 의미하는 바를

몰라 고개를 갸웃하며 넘겼던 거죠.

(5) 추리게임으로서의 난이도

같은 추리게임으로서 왓슨 앤 홈즈와 이 게임을 비교하면요...

왓슨 앤홈 즈는 단서들이 비교적 잘 드러나고 의미가 명확한

대신, 이러한 단서들을 모두 관통하는 유일한 가설을 세우는 게

다소 어렵다면, 컨설팅 디텍티브의 경우는 단서들의 의미 자체를

파악하기 힘들어 왓슨 앤 홈즈 보다는 확실히 난이도가 높습니다.

훨씬 높다 못해 일단 저는 못 하겠더라구요; 이 게임의 난이도에

대해 ‘극악’, ‘살인적’이라고 표현하는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 (거기다 예전엔 영문으로 플레이해서

게임이 더 어렵게 느껴졌을 수도 있을 거 같네요.)

근데 글쎄요... 제가 셜록홈즈의 추리과정을 다시 되짚어 보니

개연성에 약간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말해, 진짜로 이렇게 추리를 할 수 있을까라는 거죠.

(혹은, 주어진 단서들이 다소 막연해 다른 가설들도 얼마든지

세울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저는 이 게임의 작가가 셜록홈즈의 추리에서 보여준

개연성이 셜록홈즈 소설에서 보이는 개연성에 어느 정도 맞춘 게

아닌가라는 의심이 듭니다. 셜록홈즈 소설엔 다소 억지스러운

경우도 꽤 있다고 들었는데, 제 의심이 맞다면 이 게임의 개연성이

그리 높지 않아 실제로 셜록홈즈의 해답처럼 추리하기는 힘들다는

거죠. 즉, 추리게임이라는 것은 일종의 허상이고, 실상은

수사게임이라는 건데, 이건 어디까지나 사건을 세 개밖에

진행하지 않은 저의 생각이라 다른 사건들을 추가로 플레이해서

숙련된다면 달라질 수도 있겠네요.

그래서 말씀인데, 수사가 아니라 추리를 통해 90점 이상 받은 분

계시면 댓글 좀 부탁드립니다!

(6) 여유로운 플레이

이 게임은 (수사게임으로 생각했을때의) 난이도도 많이 높지

않지만, 디텍티브: 모던 크라임처럼 긴장감을 강요하지 않아

여유롭고 쾌적한 플레이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플레이 시간이

길어지면 좀 지칠 때도 있었지만, 그때그때 새로운 단서를 발견하는

기쁨이 커서 다시 기운이 나더라구요.

(7) 오역 이슈

이 게임엔 오역 이슈가 있어 게임을 사놓고도 플레이 안 한 분이

꽤 계실텐데요... 저는 바로 플레이하셔도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잘하게 틀린 데가 많긴 하지만, 플레이에 치명적인

경우는 드물거든요. (저는 ‘19세기라 좀 허술하네’라고

마인드 컨트롤하며 넘겼습니다;) 외래어 표기법에 문제가 있어,

사람 혹은 건물의 이름을 두 가지 방법으로 표기해 혼란을 주는

경우들이 있었지만, 이미 몇몇 글에서 지적된 수준이었고

꼭 그게 아니더라도 런던 안내 책자에서 이름을 찾을 때

이점을 생각하고 있으면 큰 문제가 안 되는 것들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Paris를 파리 혹은 패리스로 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말이죠. (하지만, the White House를 어떤 곳에서는

화이트 하우스로 번역했다가, 다른 곳에서는 백악관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는 점은 함정;)

제가 플레이하면서 경험한 심각한 오역은 딱 하나 있었습니다.

스포일러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혹시 몰라서 스포일러 처리합니다.

사건 1의 소개글에 나오는 쪽지에서 Spaniard를 ‘스패니어드’로

번역하지 않고 ‘스페인 사람’이라고 번역한 부분이 오역입니다.

(8) 2인 베스트?

저는 이 게임을 1인플로 진행했는데, 텍스트가 많아

플레이 시간이 길어지더군요. 이점을 제외하면,

디텍티브: 모던 크라임처럼 1인플로 진행해서 아쉬웠던 점은

없었습니다. 2인 베스트일 거 같지만, 플레이 시간이 길어도

상관없다면 1인플도 추천할 만합니다.

2인플. 여성이 런던 안내책자를 들고, 남성이 사건 책자를 들고 있다.

왼쪽 아래는 런던 지도, 오른쪽 아래는 신문이다.

(9) 컨설팅 디텍티브 vs 사건의 재구성

저는 이 게임과 가장 흡사한 게임으로 사건의 재구성을 꼽고

싶습니다. 두 게임 모두 수사게임의 재미를 잘 보여주고

자유도도 높으니까요. 차이점이라면, 사건의 재구성이 미리 짜놓은

각본을 쫓아간다는 느낌이 강하다면, 컨설팅 디텍티브의 경우

플레이어가 주도적으로 게임을 이끌어간다는 느낌이 강하다고 할까요?

읽어야 할 많은 텍스트 등의 진입장벽을 제쳐놓고 비교한다면,

제 경우는 컨설팅 디텍티브가 사건의 재구성보다 확실히 더 재밌었습니다.

(10) 마무리

제가 아직 숙련되지 않아서이겠지만, 저는 이 게임을

추리게임이 아니라 추리게임의 특징을 많이 보이는 수사게임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수사게임으로서의 난이도는 사건의 재구성의

어려움 난이도보다 약간 높은 정도로 생각하고 있구요.

플레이에 있어 오역의 영향은 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게임을 가지고 있지만, 플레이를 미룬 분에겐 바로

플레이해보시라고 권해드립니다. 먼저 플레이해본 분들이

공유하신 오역정보를 읽어보신다면 플레이에 지장이 없을 거

같거든요. (단, 신문에 있는 오역은 스포일러가 될뿐더러 게임의

재미를 현저히 떨어뜨릴 가능성이 있어, 공유를 하더라도 조심히

했으면 합니다.)

디텍티브: 모던 크라임처럼 강렬한 긴장감 속에서 수사를

이어나가기보다는 좀 여유롭게 수사를 하길 원하신다면 이 게임이

최고일 거 같네요. (아, 하나가 더 있네요;)

-모든 사진은 보드게임긱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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