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케누와 여덟 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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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4 17:59

*저는 보드엠으로부터 고료를 받고 테케누의 구성물을 번역하였으나, 본 게시물은 보드엠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반 보드게이머로서 작성한 글임을 밝힙니다.

테케누에는 행동의 종류가 신의 이름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단계에서의 마앗(마트), 특수 행동에서의 아누비스까지 총 여덟 신이 존재합니다.

저는 보통 보드게임을 하면 테마를 어느정도 보는 편인데, 테케누는 테마와 보드게임 내의 행위와의 연관을 짓기 매우 어려웠습니다. 이럴 경우 이런 연관 내용을 규칙서에서 잠깐이라도 언급하기 마련인데 테케누는 규칙의 양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라 아쉽게도 그 어떤 배경 설명 없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번역하는 입장에서도 정확이 어떤 것을 뜻하는 것인지를 알아아햐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번역하면서 관련 배경 지식을 꽤나 찾아봤었는데, 이 내용을 공유하면 테케누 플레이에 좀 더 몰입하실 수 있지 않을까 하여 본 글을 작성해봅니다.

참고로 저는 고대 이집트에 대한 어떤 사전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고, 모든 것은 구글링에 의존한 제 개인의 추측이므로 디자이너의 의도와는 무관할 수 있으며, 사실과 다른 점이 있을 수 있으니 어느정도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호루스부터 시작해 의식의 순서대로 마앗, 아누비스까지 기술해보려 합니다.

0. 테케누의 뜻

아, 그 전에 일단 이 게임의 제목부터 짚고 가 봅니다. 다들 하시겠지만, 테케누는 고대 이집트어의 "뚫다"의 명사형이라고 합니다. 즉, 이 게임의 주요 매커니즘이기도 한 오벨리스크 그 자체를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오벨리스크가 왜 이렇게 과장되게 표현되어 게임 구성물로 들어갔는지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습니다.

오벨리스크는 모든 이집트 신전에 장식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신전의 위대함을 나타내기 위한 화룡정점의 역할을 합니다. 태양신 그 자체를 나타내며, 대지의 신과 하늘의 신이 교감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0-1. 가족관계(?)

중요한 건 아니지만, 앞으로 나열할 신들의 관계도 한 번 짚고 넘어가봅니다.

이시스 - 오시리스 라 - 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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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누비스, 호루스 -------- 하토르, 토트 - 마앗, 바스테트

신의 가족관계는 역시 복잡합니다. 라는 자웅동체라서 스스로 4명의 딸을 낳았고, 바스테트는 이시스가 관여했다는 설이 있네요. 별건 아니지만 그냥 그렇구나 하시면 됩니다(...)

1. 호루스

[개요] 파라오(이집트 왕)을 상징. 이집트와 파라오의 수호신.
[게임 기능] 오벨리스크 주변, 신전 단지 등에 석상 건설

사실 이 호루스부터도 게임 기능과의 연관을 짓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호루스는 이시스와 오시리스의 아들인데, 오시리스가 그의 동생 세트에게 살해당하자 오시리스의 부인 이시스가 토트의 도움을 받아 오시리스를 되살려 내었다고 합니다. 이때 부활한 오시리스와 관계를 맺어 탄생한 신이 호루스입니다.

호루스는 아버지 오시리스의 복수를 위해 세트를 처리하고, 현세의 통치자가 됩니다. 그리하여 이집트의 왕 파라오는 호루스의 화신으로 추대받기 시작합니다. 이때문에 호루스는 고대 이집트에서 굉장히 높게 평가되는 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도대체 이 파라오를 상징하는 호루스가 왜! 석상 건설이랑 관계가 있는 것인가? 그건 바로 보드판에 해답이 있었습니다.

오벨리스크 주변, 신전 단지 주변 등에 누워있는 미라 석상인가 싶었더니 잘보니까 으응...이건?

[보드판 이미지]

[람세스 2세 석상]

다름아닌 양 팔을 포갠 자세를 취하고 있는 람세스 2세의 석상이었습니다. 람세스 2세는 고대 이집트의 정복왕이었으며 황금기를 이끌었습니다. 람세스 2세는 영토를 확장하며 건축물과 석상, 피라미드, 신전 등을 지어 자신의 업적을 표현하며 스스로를 신의 위치까지 끌어올렸다고 합니다.

[호루스와 세트의 축복을 받고 있는 람세스 2세]

즉, 호루스의 화신, 람세스 2세의 석상을 이곳 저곳에 세워 영향력을 내세우는 것을 게임에서 호루스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 오시리스

[개요] 풍요와 재생을 상징 / 죽은 자들을 재판
[게임 기능] 작업장, 채석장 건설

앞서 말씀드렸듯이, 오시리스는 세트에게 살해를 당하게 되는데 왜 살해를 당했냐면, 이집트의 왕으로서 군림하며 민중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는데 이게 동생 세트의 시기를 일으킨 것입니다. 시기와 질투에 의해 결국 13 조각으로 나뉘어 죽게되고 그 조각들이 나일강에 뿌려지지만, 아내 이시스가 전 이집트를 돌아다니며 그 조각들을 모아 다시 부활을 시킵니다(드래곤볼도 아니고..).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죽은 상태라 지상으로 나오지는 못하고, 명계의 왕으로 군림해 죽은 자들을 재판하는 역할을 맡게 됩니다.

오시리스 이미지를 잘 보시면, 얼굴과 팔 등이 녹색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것이 미라임을 의미하며, 즉 부활과 재생을 의미합니다.

그럼 여기서 또 궁금증이 생기죠. 도대체 얘는 또 뭐야, 이게 작업장, 채석장 건설이랑 뭐가 상관이 있는거야?!

오시리스는 부활 뒤 이미지가 강해서 여타 다른 매체(비디오 게임, 소설 등)에서 줄곧 재생과 부활의 신이나 혹은 죽음의 신으로 표현되어 왔는데, 사실 죽기 전의 그의 별칭은 '생산의 신'이었습니다. 풍요롭게 하기 위해 생산을 장려했고, 그 행위를 게임 내에서 작업장, 채석장 건설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다만 아이러니 한 것은 민중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던 죽기 전 오시리스지만, 게임 내에서는 작업장, 채석장을 건설할 때마다 민중의 행복지수가 감소합니다. 이건 작가가 모두의 지지 이면에는 누군가의 희생이 있어야 한다는 걸 나타내고자 한걸까요? (개망상입니다.)

3. 라

[개요] 태양신, 파라오를 보호, 왕권 상징.
[게임 기능] 신전 내부 기둥 건설

태양신 라는 보드게이머에게 가장 친숙한 고대 이집트 신이 아닌가 싶습니다(라 재밌쥬). 오벨리스크 자체도 태양을 숭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하니 라가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차지하는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겠죠.

그래요, 한 번 더 질문 해봅니다. 그래서 왜?! 태양 신이 한낫 기둥을 세우냐? 지붕은 안만드냐?

이 해답은 라의 신앙 근원지에서 알 수 있습니다. 라의 신앙 근원지는 헬리오폴리스라는 곳인데요, 이곳은 기둥의 장소, Place of pillars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태양의 도시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헬리오폴리스는 태양신앙의 핵심지였습니다. 그리하여 게임에서 기둥을 세우는 라의 행동은, 신전 단지, 태양의 도시-헬리오폴리스를 건설하는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4. 하토르

[개요] 사랑과 미의 여신
[게임 기능] 신전 주변 건축물 건설

암소 머리를 한 여성의 모습으로 표현되는데, 평소에는 자애롭고 상냥하고 사랑과 미의 여신이지만, 화나면 사자머리를 한 세크메트의 형상으로 변하면서 가장 잔인한 분노의 여신이 되는 가장 현실적인 신(마치 여러분 옆에 계신 반려자와 같은)입니다.

아직까지도 하토르 행동이 왜 신전 주변 건축물을 건설하는지 확신은 없습니다. 다만, 어느정도 정보를 토대로 추측을 해보자면, 하토르의 얼굴을 조각한 석상을 기둥의 장식으로 쓰였다는 점, 람세스 2세가 자신의 정부인인 네페르타리와 하토르를 위한 신전을 이곳저곳에 건설했다는 점, 헬리오폴리스를 나타내는 기둥의 장소의 신앙 대상인 아버지 라와의 상호 관계를 의도했다는 점 등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다만 아버지 라는 세트를 지지하고, 하토르는 호루스를 지지했다는 점에서 둘의 상호작용으로 점수를 획득하는 장면은 좀 아이러니 하죠. 피는 물보다 진하다 인가...?

추가로, 건축물의 대가로 빵을 내야하는데 이게 정말 이상하죠? 화강암도 석회암도 아닌 빵을 왜내? 빵으로 건축물 만드나? 싶지만... 빵은 고대 이집트 시대의 권력의 상징이었습니다. 빵은 파라오가 하루에 1000개씩 진상을 받고, 계급에 따라 그 배급량이 달랐는데요, 피라미드 노동자들도 빵을 급여로 지급받았다고 합니다. 빵은 역시 위대하군요. 신성한 음식입니다. 밀가루 끊으라는 사람 다 나쁜 사람.

글이 길어지니 나머지 4개의 신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알아보도록 하죠. 연휴동안 즐거운 보드게임 라이프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