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음표07] 보드게이머는 게임을 "재밌게" 하는 방법도 배워야 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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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8 01:04

얼마전에 친구한테 야부노나카를 선물 받아서 플레이해봤습니다. 오잉크 게임은 말로만 들어봤고 처음 플레이 해보는거라서 기대가 많았죠. 저는 주로 무거운 전략 게임들만 돌려서 가벼운 파티 게임의 느낌이 좀 궁금했거든요.

이 게임은 숫자 추리게임이 아니라 블러핑 게임이다 라는걸 주워들어서 같이 플레이하는 분들에게 그런식으로 설명을 하고 게임을 시작했죠. 그런데 막상 블러핑을 하려고 해보니까, 간단하게 거짓말만하면 되는게 아니라 오히려 계산할게 더 많더라구요. 그냥 범인을 잡는거면 내가 본 두 개 중에 하나를 찍던가, 둘 다 너무 숫자가 낮아 보이면 안 본거 하나를 찍으면 되는데, 거기서 블러핑을 하겠다고 낮은 숫자를 찍게 되면 됐는데, 내 다음 사람이 날 안 따라오면 다다음 사람은 내가 찍은 숫자를 보게 됩니다. 그럼 그 사람은 "얘는 대체 왜 이렇게 낮은 숫자에 건거야?"하면서 무시하고 다른 숫자를 찍겠죠.

전략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하고 플레이를 하다보니까, 야부노나카를 하면서 앞 사람은 무슨 숫자를 봤고, 그 중에 무슨 숫자를 찍었는지 하나씩 다 확인한 후에 범인을 맞추니까 블러핑이 거의 되질 않았습니다. 이 게임에서 블러핑이 가능하려면 앞 사람이 블러핑을 했다는걸 알고 뒷 사람을 엿 먹이겠다는 생각으로 따라가야 하는 것 같은데, 한명이라도 동조를 안해주고 나만 살거야라고 하면 블러핑 건 사람이 바보가 되는 것 같더라구요. 차라리 첫턴인 사람이 정직하게 8 같은걸 찍으면 다른 사람들이 그걸 보지 못해서 오히려 블러핑 같은 효과를 주는 것 같았습니다.

게임 시스템만 봤을 때는 분명히 재밌어 보였고, 재밌게 즐겼다는 평도 많은데, 제가 플레이했을 때는 약간 애매하더라구요. 그래서 이 게임을 "재밌게" 플레이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직접 보고 배우고 싶어졌습니다. 좋은 게임인 것 같은데 제대로 플레이를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좀 아쉽더라구요.

다른 이야기로, 아내랑 아그리콜라를 한동안 엄청나게 했습니다. 아내는 견제를 별로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서로가 최선을 다해서 농장을 짓는데 주력하면서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자원이 빡빡하기 때문에 선점 효과에 따른 간접적인 견제는 가능해서 게임은 잘 즐길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좀 더 견제를 적극적으로 하는 다른사람들하고 플레이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저는 사실 적극적으로 견제하는 스타일은 아닌데 제대로 한 번 당해보면(?) 아그리콜라가 좀 다르게 보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꼭 당하고 싶어하는 것 같네요.

어쨌든 정리하자면, 보드게임은 룰만 안다고 다 재밌게 플레이 할 수 있는건 아닌 것 같아요. 때로는 룰북에 나와 있지 않은 "어떻게 플레이 해야 재밌게 할 수 있다"라는 가이드가 룰 자체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는 것 같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