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어디로 걸어가고 있는가? 바이오스: 오리진 리뷰(Bios: Origins).

칼을쟁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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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7 오후 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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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스: 오리진스

의식의 진화

<서론>

안녕하세요! 기억하실런지 모르겠지만, 이전에 바이오스: 메가파우나의 리뷰(http://boardlife.co.kr/bbs_detail.php?bbs_num=9884&id=&tb=community_post) 를 적었었던 칼을 쟁기로입니다.

네, 바이오스 3부작의 마지막 바이오스: 오리진을 드디어 해 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인류 진화사와 문명 발전사에 아주 관심이 많고,

인류의 정신과 감정의 기원, 뇌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관련 전공이기도 합니다) 제일 기대하고 있었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전에도 말했다시피, BIOS 시리즈는 3개의 작품으로 구성된 트릴로지입니다.

제네시스에서는 어떻게 원시 바다에 녹아서 돌아다니던 분자들이 조립되고 모여서 생명 현상을 수행하는 생명체가 되었는지를 보여주었고,

메가파우나에선 그러한 자그마한 생명체가 어떻게 다양한 모양과 크기와 특징을 가진 동/식물들로 진화하였는지를 보여주며,

오리진에서는 현생 인류를 비롯한(H. sapiens) 4개의 인간 아종Subspecies 가 어떻게 언어와 사고를 발달시키며 문명을 이루었는지를 다루게 됩니다.

말만 들어도 꿀잼 각 아닙니까? 본격 게임으로 공부하는 생화학/화학진화/생태학/진화학/인류학/고고학…!

자, 아무튼, 그래서 이 게임에서 여러분은 인간 아종의 하나를 대표하게 됩니다.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현재 인류속 중 유일하게 남은 종입니다.

그러나 수십만 년 전에는 우리같이 생겼지만 다른 아종이었던 다른 사람들도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네안데르탈렌시스, 데니소바인, 그리고 호빗족입니다.

여기에 현생 인류, 그러니까 이 글을 적고 있는 저부터 시작해서 보고 있는 분들 모두가 속한 호모 사피엔스를 더해 4종의 인간들이 티격태격하는 것을 대략 10만년 간 보시게 될 겁니다.

게임 세팅이 끝난 모습. 아래 보이는 긴 띠는 자신의 통치 체계(Ruling class) 를 뜻하며, 오른쪽의 네모난 보드는 자신 종족의 정신적 고양 상태를 도식적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감정적인 상태로 시작하나, 두뇌 피질이 커지고, 추상화 능력을 얻게 됨에 따라 자유 의지가 생겨나게 되고, 이 자유 의지를 이용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거나,

정보 수준을 늘리거나, 혹은 문명의 근간을 이루는 사상들을 다질 수 있습니다. 일종의 일꾼이라고 보면 편해요.

<게임의 규칙>

게임의 규칙부터 간략히 살펴봅시다. 역시나 메가파우나 못지 않은 빽빽한 글자들이 40~50페이지정도 차 있는 빡센 룰북이라는 건 동일합니다.

그러나 역시 전작과 마찬가지로, 룰의 큰 흐름만 읽히고 나면 그리 어렵지는 않아요. 잔룰이 많아서 그렇지, 룰 마스터 한 명만 있으면 크게 복잡하진 않습니다.

게임은 총 4개의 시대(Epoch) 로 구성됩니다.

1시대는 기원전 10만년부터 3만년까지,

2시대는 기원전 3만년부터 3천년까지,

3시대는 기원전 3천년부터 기원 후 1500년을 다루며,

4시대는 기원 후 1500년부터 현대까지를 다룹니다.

그러니까 사실상 현생 인류의 태초부터 문명 시대까지를 다루는 셈입니다. 매 시대가 끝날 때마다 스코어링이 일어나며, 4시대가 종료된 후 최종 점수 계산을 하여 승자를 가르게 됩니다.

플레이어들은 턴 순서대로 차례를 가집니다. 자신의 턴은 3개의 단계로 구성되는데요,

신에게 도전하기(선택)
액션 수행하기(필수)
정리 단계

가 전부입니다. 자, 하나씩 봅시다.

오른쪽에 보이는 카드들이 아까 설명드린 자유 의지를 이용해 발명할 수 있는 발명품들입니다. 저 카드를 아까 위에 있던 스트립에 끼워 넣으면 턴당 할 수 있는 액션이 증가하는 거죠.

즉 액션 빌딩의 요소가 있습니다.

1. 신에게 도전하면, 각 시대를 이루는 도전 카드를 한 장 펼쳐 이벤트를 일으키고 이를 경매에 부칩니다.

이 도전 카드를 가져가면 여러 이득이 있고, 2 페이즈에서 할 수 있는 액션이 늘어나기 때문에 가져가면 기본적으로 좋습니다.

또한, 각 시대는 인원수 만큼의 도전 카드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얼마나 도전 액션을 자주 하는지에 따라 게임의 길이가 결정되게 됩니다.

2. 액션 수행은 다소 루트의 이어리 왕국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3가지의 통치 방법? 클래스? 가 존재하는데, 자신의 현재 통치에 따라 아래쪽부터 위로 올라가며 액션을 하나씩 수행합니다.

물론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러한 액션은 카드를 사 오거나(테마적으로 보자면, 자신의 문명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어 할 수 있는 행동이 증가하는 것입니다),

신에게 도전하여 얻은 도전 카드를 붙임으로써 늘릴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최대 2액션이 전부지만,

나중엔 한 턴에 10개가 넘는 액션을 수행하기 때문에 엔진 빌딩 비스무리한 맛도 있습니다. 이 서순도 중요하기 때문에 잘 계산하여야 합니다.

3. 정리 단계는 뭐, 정리하면 됩니다. 식량이 부족해 굶어 죽을 사람들은 굶어 죽고, 카드 열을 갱신하고. 이런 거. 그래서 게임 시간의 대부분은 2단계에서 쓰이게 됩니다.

이게 기본 규칙의 전부입니다. 챌린지하려면 하고, 안 하면 자신의 카드를 아래부터 위로 순서대로 한 장씩 액션 쓰기. 참 쉽죠?

물론 저 액션의 종류가 대략 30~40개 정도 되고, 액션마다 들어 있는 잔룰이 있고, 기술이 올라가면서 해금되는 능력도 있고, 상대방과 거래는 어떻게 한다, 정략 결혼은 어떻게 보낸다, 이동 규칙이 어떻다 등의 잔룰이 오조오억개 있지만 다 쳐내면 큰 흐름은 저렇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이게 1턴의 플로우차트입니다. 참 쉽죠?

이런 식으로 진행하다가, 어떤 플레이어가 현대 시대의 마지막 도전 카드를 가져가면(엄밀히는 comet 입니다만 암튼) 즉시 시대는 종료되고, 스코어링을 진행합니다.

이 게임은 다소 독특한 스코어링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3부문의 스코어링이 존재하는데요, 문화Culture 점수 계산, 정치Politics 점수 계산, 그리고 산업Industrial 점수 계산입니다.

1시대가 종료될 때에는 문화 점수를 계산하고, 2시대가 종료될 땐 정치 점수를, 3시대가 종료될 때에는 산업 점수를 계산합니다.

4시대가 종료되면 1,2,3 시대에 계산한 점수에 자신의 기술 발전을 더하여 3분야별 최종 점수를 따집니다

(문화 점수는 자신의 성직자 수 + 환경 기술 트랙 / 정치 점수는 자신의 도시 개수 + 복지 기술 트랙 / 산업 점수는 자신의 다양성 + 경제 기술 트랙입니다).

이 중 가장 높은 것이 자신의 최종 점수가 됩니다.

그러면 한 분야만 올리면 되겠네? 하겠지만, 한 요소가 더 있습니다. Philosophy 트랙이 있는데, 이는 쉽게 말하자면 전 지구적으로 퍼진 사상을 뜻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만일 이 철학이 평등 쪽으로 기울어져 있으면 문화 점수를 계산하지 않고, 자유 사상으로 기울어져 있다면 정치 점수를 계산하지 않으며, 전체주의로 기울어져 있다면 산업 점수 계산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암만 점수를 올려 두어도, 남들이 이 철학을 바꾸어 버린다면 자신의 해당 분야는 0점이 됩니다. 그래서 골고루 올려야 합니다.

<느낀 점>

자, 그래서 결국 이런 점수를 얻기 위해서 10만 년간 열심히 고군분투하게 되는데요, 정말 컴퓨터 문명 게임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인류의 문명이 눈 앞에서 멋지게 재현되는 것을 보고 좀 놀랐습니다.

고대, 한 지역에 밀집해 살며 인구를 증가시키기 위해서 농업 기술을 늘려야 하고, 추운 지방을 지나가기 위해 식량 저장 기술을 발달시키고, 항해술을 연구하여 신대륙을 개척하고, 광업 기술을 개발해 철광을 채굴하고, 이렇게 채굴한 철로 새로운 무기를 만들어 상대방을 쫒아내고, 나보다 우월한 종교를 가진 상대방에게는 개종당하거나 노예로 잡힐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정치를 잘 하지 못하여 불만이 쌓이면 불만 있는 일꾼들은 현재 체제를 전복하고 가지고 있던 기반과 문명의 아이디어를 날려 버리기도 합니다.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어떤 문명에는 독재가가 나타나 문명의 다양성을 짓밟기도 하고, 면역학을 충분히 올려 두지 않으면 도시에는 전염병이 돌기도 하며 갑작스런 기근에 사람들이 굶주려 혁명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상대방의 기술을 빼내기 위해서 정략 결혼을 보낼 수도 있고, 우라늄 같은 중요한 전략 물자가 나는 지역을 두고 티격태격 다퉈 하루가 다르게 도시의 주인이 바뀌기도 하며, 잘 나가는 문명을 견제하기 위해 어제의 적과 손을 잡고, 다른 나라의 도시를 폭격하기 전 선전을 통해 국민들의 사상을 조종합니다(여러분, 이것은 반 인륜적인 행동이 아닙니다… 우리의 조국을 위한 위대한 희생입니다…). 워우. 정말 우리 인간의 문명사를 잘 담아둔 것 같지 않나요?

그러면서도 지나치게 번잡하지는 않아요. 얼마 전에 한 태페스트리에서 상당히 좋게 보았던 시스템이 기술 트랙인데, 이 게임에도 비슷한 메커니즘의 기술 트랙이 존재합니다. 일부 카드에 있어서는 요구 조건이 되기도 하며, 어떤 기술을 일정 이상 올라가게 되면 특정한 능력이 해금되기도 하고, 1액션으로 할 수 있는 효율이 이 기술 레벨에 따라 결정되기도 합니다. 복잡한 기술 테크트리의 발전을 이렇게 간략화하여 표현하면서도 그 중요성과 역사에서의 의의를 놓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었습니다.

아래 보이는 것이 기술 트랙입니다. 현재 저(검은색)은 야금술 레벨 2, 면역학 레벨 2, 항해술 레벨 0, 그리고 지식 레벨 2 를 가지고 있습니다.

야금술 레벨은 전투 시 필요하며, 면역학은 이런저런 이벤트를 막기 위해 필요하며, 항해슬은 바다를 건너기 위해, 지식 레벨은 많은 기술을 개발하고 이득을 얻기 위해 중요합니다.

즉 결국 효율적인 액션을 위해선 기술을 올려야 하죠. 또한 끝나면 직접적으로 승점이 되기 때문에, 게임이 종료될 즈음엔 기술 경쟁이 엄청나게 일어납니다. 남이 하나를 얻으면,

바로 스파이처럼 남의 기술을 베껴 싹 따라가게 되죠.

<장단점>

1. 그래서, 이 게임의 가장 큰 장점은 다시 테마입니다. 메가파우나에서 그랬던 것처럼, 인류의 실제 문명사가 위에 설명한 것처럼 게임에서 재현되는 것을 지켜보는 재미는 매우 훌륭하고, 그리고 그렇게 게임이 흘러가도록 설계해 둔 것 또한 감탄스럽습니다. 하다 보면 유럽에서 아 왜 한놈 잘 나가면 바로 다른 나라들이 손 잡고 죽창 꽂았나 알수 있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조금 이따가 다시 할게요. 그리고 메가파우나보다 훨씬 테마의 접근성도 나아졌어요. 다른 사람한테 “안녕하세요! 혹시 중생대의 동물 생태계 속에서 동식물 진화시키는 게임 할래요?” 하면 “?미쳤습니까 휴먼?” 하겠지만 “인류 문명 게임 할래염? 전쟁도 할수 있고 기술 개발하고 짱잼임” 하면 할 사람이 좀 더 많지 않을까 싶어요. 그만큼 좀 더 대중적으로 인기를 끄는 테마란 거죠(~~물론 플탐이 얼마나 길지 당신은 모르겠지~~).

뭘 하자고요? 미쳤읍니까 휴-먼?

2. 메가파우나에 비해서 게임의 시스템도 훨씬 진보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제네시스 < 메가파우나 < 오리진 순으로 좀더 짬이 차서 그런지 게임 메커니즘 자체가 더 깔끔한 느낌이에요. 컴포넌트도 훨씬 아기자기하고 화사하게 예뻐지고요. 물론 더 비싸집니다만 암튼. 카드를 구매해 오고 그 카드를 이용해서 끼워 액션을 늘리며 엔진을 꾸려 나가는 시스템이 메가파우나의 액션 포인트 시스템보다 훨씬 맘에 들었어요. 더 생각할 것도 많고, 잘 아이콘화 되어서 직관적이기도 하고요.

파스텔톤 보드판과 형형색색 미플, 도시, 마커들의 질은 꽤나 좋습니다. 그래픽도 수려해요. 솔직히 컴포 질은 진짜 괜찮습니다.

3. 리플레이성과 전략의 깊이가 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이벤트가 터지고 강력한 액션을 부여하는 챌린지 카드는 시대별로 수십 장 중에 단 2~3 장씩만 쓰입니다. 다양한 아이디어 카드가 나오는 순서에 따라 단기적 전략을 수정해야 하는데(마치 쓰루와 같죠) 이 순서 또한 랜덤하게 결정됩니다. 결국 자신의 액션을 결정하는 카드가 랜덤하게 나오기 때문에 그것에 맞추어 매 게임마다 자신이 만들어 나가는 액션 엔진이 달라지게 되죠. 당연히 전략의 깊이 또한 헤아릴 수 없으며, 상대방과 인터랙션하면서 만들어지는 수많은 변수는 게임을 더욱 어렵게 만듭니다. 정말 디자이너가 40개 가량의 액션을 만든 의도가 있을 텐데, 그런 게임 시스템적 요소를 모두 이해하려면 한참 깊이 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리플레이 면에서도맵을 직접 모듈 형식으로 만들 수 있을 뿐 아니라인어 게임 모드솔로 플레이협력 플레이장기 게임 등 다양한 모드가 지원되어서 한 번씩만 플레이해봐도 대여섯번은 돌아갈 법 해요본판의 깊이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모드가 몇 개나 더 있다?!!

그럼 이제 단점입니다!

1. 훌륭한 룰 마스터의 필요성이 매우 절실합니다. 룰북이 복잡해서 일단 시작하기도 어려운데, 40개의 액션/이벤트가 터질 때마다 이게 뭔지 개개인이 하나씩 찾아보고 설명하려면 플레이 타임은 죽죽 늘어나고 게임 템포는 처지게 되겠죠. 각 액션마다 잔룰이 2개씩 있으면 알아야 할 잔룰이 80개입니다. 와우! 이게 가장 큰 단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캐주얼하게 돌리고 전파할 만한 게임은 아니란 거에요.

(그래도 관심이 있다면 룰북을 일독하시길 권해요.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뒤쪽에 보면 게임의 기준을 이용해서 현대 나라들을 분석한 것도 있고, 실제 저희 인류의 역사를 게임의 기술 수준/시간대에 맞추어 분석한 자료도 실려 있습니다. 그 외에도 꽤 재미난 이야기가 많아요. 메가파우나에서 그랬던 것처럼, 왜 이런 액션은 이런 결과를 낳는지를 과학적으로 서술해 두었고, 재미있는 인지과학/인류학 이야기도 주석으로 달려 있어요)

아이콘 참조표입니다. 네 많죠? 후후

참조표 이름이 무려 로제타 스톤입니다 ㅋㅋㅋㅋㅋㅋ

2. 운의 요소가 큽니다. 이는 메가파우나에서도 언급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전 이해해요. 운의 개입이 별로 없어서 계획을 차곡차곡 세워서 기대한 대로 스무스하게 굴러가는 걸 보며 흡족해하는 유로게이머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이해해요. 이벤트 하나 잘못 터지면 내 도시 절반이 싸그리 날아가고 사람들이 전염병 걸려서 좍좍 죽어나가고 합니다만 그래도 이해합니다. 왜냐? 메가파우나에서 말한 것과 동일해요. 인류 문명사를 보면 사실 우리는 그래 왔잖아요. 유럽에서 페스트가 퍼져 1/3의 인구가 죽어버린 끔찍한 참사도, 인류 역사에서 가장 참혹한 사건 중 하나라는 아일랜드 대기근도, 뜬금없이 유럽에서 건너온 전염병에 몰살당한 아메리카 원주민들도 자신들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몰랐으니까요. 오히려 자신에게 주어진 고난과 시련에 악착같이 버텨나가고 저항하면서 운명을 바꾸어 나가는 게 인간이란 생명체의 재미있는 점 아닐까요? 전염병이 터지자 조금이라도 살려 보려고 그 원인을 조사하며 세균을 찾아내고, 그에 대항하기 위한 연구 끝에 항생제를 찾아낸 우리 인류처럼요. 바이오스 시리즈에서 우리는 어떤 일이 터질 지 알고 있는 점성술사도 아니고 피조물을 내려다보는 신도 아닙니다. 우린 게임 판 위에서 돌아다니는 미플들이에요. 어떤 일이 터질 지 알고 대비한다는 게 테마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게 맞다고 봐요. 아마 디자이너도 그걸 의도하고 이렇게 만들었지 싶습니다.

3. 게임 시스템 상 지나치게 늘어질 수 있어요. 게임의 종료는 누군가가 선언해야지만 종료되기 때문에, 자신이 승리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게임을 종료시키지 않으려고 하게 됩니다. 결국 이론상으로는 끊임없는 루틴이 돌아갈 수도 있어요. 상대 건물을 부수고, 그럼 상대는 다시 세우고, 또 부수고, 세우고…. 물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저번의 플레이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었습니다. 끊임없는 먹고 다시 먹는 소모전만이 지루하게 반복되고 그걸 타개할 방법이 보이지 않았어요. 결국에는 끝나긴 했습니다만 이 부분이 살짝 아쉽게 느껴진 건 사실입니다. 근데 어쩌면 이것조차 디자이너의 큰 그림이 아닐까? 하며 살짝 소름돋긴 했습니다. 남이 반사이득을 보는 것을 경계해서 어떠한 정치적 스탠스도 취하지 않고 중립을 지키려 하는 사람, 잘 나가는 국가를 경계하기 위해 연합을 맺고 끌어내리려고 하는 상황, 완벽하게 그리고 팽팽하게 정체된 전선의 균형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서 아무 것도 취할 수 없는 딜레마 그리고 치킨 게임. 아니 이거 디스토피아 소설 줄거리 아닙니까? 하면서 그게 생각났어요. 문명 2를 10년간 시뮬레이션했더니, 2000년간 끊임없는 전쟁이 일어나고, 완전한 균형이 이루어져서 전선은 밀리지 않고, 최선의 방법은 모두가 평화롭게 지내는 것이지만 어느 한 쪽의 독주를 막기 위해 절대 그런 평화는 일어나지 않는 결과가 되었다, 이 이야기요(https://bbs.ruliweb.com/pc/board/300007/read/801165). 설마 그게 보드게임에서 시뮬레이션되는 건가 하고 소름이 잠깐 돋았습니다. 플레이 타임은 3인이 룰 설명 시간 1시간, 플레이 타임 4 시간이 걸렸습니다. 근데 중간중간 룰북 체크도 하고 장고도 좀 해서 그렇지 익숙해지면 플레이 시간은 2~3 시간까지 줄어들지 않을까 싶어요. 또한 변형 룰을 이용해서 더 짧은 게임을 즐길 수도 있으니 플레이 타임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 가능한 수준이라고 봅니다.

4시간에 걸친 게임이 끝난 모습입니다. 끊임없이 돌고 돌다가 결국 끝났습니다. 제가 정치 점수가에만 몰빵했더니 그것만 높아서 정치 점수 계산을 못 하게 철학을 그쪽으로 남들이 다 밀었는데,

카드를 가져오면서 전 지구적 선전을 해서 철학을 바꾼 후 겨우 2점 차로 승리했습니다 흑흑.

...이지만, 사실 1을 제외한 단점은 그렇게 크게 다가오지 않았고, 오히려 테마적으로 몰입해 보았을 때 더 즐겁기도 했습니다. 1도 사실 제가 그 룰마였기에 그다지…ㅎㅎ 그래서 정말 재미있게 했습니다. 다음엔 어떤 전략을 사용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여운이 남게 되고요. 이런 게임이 좋은 게임이 아닌가 싶어요. 기존의 바이오스 시리즈는 좋아하지 않았/관심 없었더라도 오리진은 한 번쯤 플레이해보시길 권해요. 아주 잘 만든 수작 문명 게임 느낌입니다. 같이 플레이한 분들의 한줄평으로 마무리합니다!

J: 생각보다 룰은 쉽지만 알아야 할건 많고 같은 멤버로 오래오래 재밌게 할수 있을것 같다.

L: 언어적 요소가 매우 적다. 아이콘 게임. 다만 문명게임인데 기술테크간 차이점이 명확하지 않은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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