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PG 입문기 - 던전 앤 드래곤 5판을 시작한 던린이 후기

칼을쟁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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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9 오후 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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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칼을쟁기로입니다!

요즘 이전부터 알던 지인분 덕에 TRPG 를 시작해서 즐기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봐야 고작 2번 한 게 다이긴 합니다만 :)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었던 TRPG인데 갑자기 기회가 와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지인이 얼마 전인가에 나온 듯 한 D&D 5판을 구매했다고 파티를 꾸리고 있다기에 덜컥 하겠다고 했고,

그렇게 6인(마스터 1명과 플레이어 5명) 파티가 꾸려졌습니다. 첫 모임 전 마스터가 룰북을 던져주고 각자 알아서 읽어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첫 플레이 날.

도착해서 테이블에 둘러 앉아서 각자 캐릭터 시트를 하나씩 받고, 이름도 정하고, 자기 캐릭터에 좀 익숙해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정말 제대로 하려면 캐릭터도 직접 설정해 보고, 배경도 짜고, 뭐 그런다고 합니다만 플레이어도 처음 마스터도 처음이니 일단 간단히 주어진 스토리+주어진 캐릭터로 맛보기 진행을 하기로 합의했어요.

캐릭터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한 능력이나 스킬이 다르고, 배경도 다르고, 성격, 가치관 등이 다른데 RPG, 즉 롤 플레잉 게임인 만큼 캐릭터의 이러한 세부적인 부분들을 플레이어가 잘 꿰고 있어야 몰입감있는 연기를 할 수 있겠죠? 예를 들어 선한 성향의 캐릭터인데 무고한 시민을 등쳐먹는다던가, 500년 도서관에서 공부만 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가 덧셈도 못한다던가 하면 안 되잖아요.

그렇게 이름도 정하고, 자신만의 개인적인 목표라던가 가지고 있는 소지품이라던가 배경이라던가 좀 익숙해지고 나서 서로를 소개하며 첫 막이 올랐습니다! 드워프 클레릭 하나, 민첩하고 쪼끄만 하플링 로그 하나, 귀족 자제분 출신 파이터 한 명과 저 먼 농지 출신 파이터 한 분, 그리고 신을 모시는 엘프 위저드 하나. 이렇게 전투라곤 해 본 적도 없지만 각자의 목적을 위해 모험을 떠나는 꼬꼬마 파티가 결성되었습니다!!

이후의 자세한 스토리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동봉된 스토리 북을 이용하기 때문에요) 적지 않겠습니다. 대신 Trpg의 진행이 익숙치 않을 분들을 위해(저도 그랬었으니까요) 간략한 게임의 진행이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드릴까 합니다!

룰북은 몇백 쪽 정도 될 만큼 엄청 두껍고 이런저런 내용이 가득 차 있습니다만, 사실 전반적인 진행은 아주 간단합니다.

흔히 아실 만한 게임으로 비유하자면, 아컴 호러와 같은 스토리형 시나리오 게임을 진행하는데 카드라던가, 보드라던가, 몬스터 피규어 대신 그걸 상상력과 대화로 모두 대신하는 거에요.

그냥 카드를 펴서 읽는 대신, 마스터가 괴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무슨 일이 생겼는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누가 어떤 말을 하는지를 묘사하고 연기합니다.

그럼 플레이어들은 자신이 그 상황에 처한 것처럼 행동하면 되고, 그걸 들은 마스터는 주사위를 이용해 판정을 내리고 그 판정에 따른 결과를 다시 말해줍니다. 이걸 계속 반복하며 이야기는 진행됩니다.

예시를 들자면 이래요.

-마스터: 북쪽 길을 향해 걷던 중, 비가 와서 질퍽해진 바닥에 남은 자그마한 발자국이 어두운 숲 속으로 따라 나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파이터: 일단 우리는 받은 임무가 있으니 그걸 먼저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해. 저건 나중에 조사하자.

-클레릭: 그래도 잠깐 훑어보고 가는 게 낫지 않을까? 마스터, 발자국의 크기나 깊이, 보폭 등을 살펴봐서 어떤 생물의 흔적이고, 그 크기가 어느 정도 되는지 조사해보고 싶은데요.

-마스터: 네, 그러면 지혜에 대한 주사위를 굴려 체크해주세요.

-클레릭: 저는 이전에 군 생활을 하며 갈고 닦은 능력으로 수색하는 데 도가 터 있습니다. 수색 보너스를 적용받을 수 있을까요?

-마스터: 네, 가능할 것 같아요. 시트에 있는 수색 보너스 +3을 적용하셔도 됩니다.

-클레릭: 주사위를 굴리고, 14가 나왔습니다. 이에 보너스 3을 적용받아서 17입니다.

-마스터: 네, 클레릭은 발자국을 주의깊게 분석한 결과 발자국의 크기와 깊이로 미루어 볼 때 90cm 정도 신장을 가진 무언가가 가죽 신을 신고 빠르게 뛰어가고 있었음을 발견합니다. 또한 그 과정에서 피 냄새가 나는 천 조각도 발견했네요.

-로그: 키로 미루어 보아 아마 고블린이 아닐까 싶은데. 피가 묻은 천이라면 상처를 입어서 도망간 것이 아닐까? 멀리 가진 못했을 테니 쫒아가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미심쩍은 냄새가 나는데.

......이런 식으로요.

룰북에는 복잡하게 전투 시 주문은 이렇게 쓴다, 이럴 때 이런 보너스를 적용받는다, 캐릭터가 데미지를 받으면 어떻게 한다, 하루의 숙박 비용은 얼마 정도 한다, 캐릭터가 뛸 때의 규칙은 어떻다... 가 세부적으로 정리되어 있습니다만 결국 규칙은 체계적으로 입문을 돕기 위한 가이드라인일 뿐이지, 게임의 본질은 플레이어가 자신의 캐릭터에 몰입해 상상력을 펼쳐 나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굳이 이건 규칙에 어긋나니 이렇게 해야 해, 라며 빡빡하게 굴 필요 없이 상식껏 적당히 이끌어 가면 되는 거죠. 결국 우리의 목표는 룰을 완벽히 재현하고 익히는 게 아니라 재미있게 놀기 위한 거니까요.

다양한 툴, 토큰, 예쁜 맵과 지도 등등 여러 악세서리가 있지만 다 부차적인 것에 불과해요. 결국 플레이를 제한하는 유일한 요소는 우리의 상상력 하나일 뿐이니까요. 생각해 보면 어릴적엔 종이 한 장에 연필 하나로도 잘 놀았는데, 카드라던가 보드라던가, 컴퓨터로 넘어오며 화려한 이펙트, 수려한 일러스트, 복잡한 계산, 멋진 배경 같은 게 덕지덕지 달라붙으며 RPG의 본질을 잃어가는 게 아닌가 싶어요. 처음엔 뻘쭘하고 어색하고 그랬는데, 고작 두 번의 플레이만에 캐릭터에 애정이 가고 배경도 고민하고 어떻게 이걸 풀어가야 하나 생각하는 게 참 재밌더라구요! 앞으로 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두근두근합니다 xD 앞으로 얼마나 자주 하게 될 진 모르겠지만, 가끔 간단한 후기를 올릴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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