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에 걸친 D&D 후기

너굴너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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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6 오후 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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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 요즘 TRPG 에 푹 빠져 지내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리뷰고 뭐고 다 제껴두고 TRPG에 미친듯이 시간을 보내고 있네요.

"취향 맞는 사람만 찾으면 이것만한 보드게임도 없다"고 자주 말했는데, 그런 말을 내뱉은게 후회가 되지 않을 정도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글룸헤이븐이고 마이스앤미스틱 같은 RPG 게임은 모두 다 팔아치워도 상관없을거란 생각이 들 정도예요.

평소라면 퇴고에 퇴고를 거쳐서 글을 다듬어 올리겠지만, 오늘은 신나는 기분을 담아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를 풀어놓으려 합니다.

이야기가 맥락없이 마구 흘러가도 그러려니~ 하고 봐주십시오!

=====

D&D에 대해선 거의 모르는 두 멤버. 기묘한 이야기에서 D&D를 본게 전부라는 두 멤버.

이 둘을 데리고 D&D 스타터셋을 진행한게 3개월 전.

드디어 이제서야 스타터셋을 끝냈습니다.

처음엔 캐릭터에 대한 정체성을 잡지 못해 캐릭터와 플레이어의 구분을 못하고, 이득이 되는대로만 행동하고, 마구잡이로 NPC를 협박하고, 틈만나면 삥을 뜯으려하며, 제가 선언하기도 전에 주사위를 서둘러 굴리는 등 여기저기에서 초보자 티를 내는가 싶더니...

3개월이 지나자 자신의 캐릭터에 대한 여러가지 고민을 하기 시작하며 팀 내에서의 자신의 역할을 깨닫기 시작하더군요.

주인공들의 과거 이야기, 현재 목적, 추구하는 것 등 세세한 디테일이 잡히기 시작하자 자신의 캐릭터에 몰입하더니 이렇게 게임 속 캐릭터 제작 툴을 이용하여 자신이 상상하는 캐릭터의 모습을 그려본다던가 비슷한 모양의 미니어쳐를 찾아보는 등 애착을 가지더군요.

오랜시간 기다리던 반응이었어요.

자신의 캐릭터에 정성을 쏟는다는건 게임을 즐기고 있단 뜻이거든요.

게임에 제대로 빠져들기 시작했다는걸 확인한 이후. 두 사람에게 퍼스너 컬러의 주사위 세트를 선물로 주어 감사함 & 고마움을 표현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캐릭터가 성장함을 느낄 수 있도록 멋진 액션과 다양한 주문으로 상황을 헤쳐나갈 때면 그 발상에 칭찬을 하며 경험치를 가득 안겨주었습니다 ㅎㅎ

그러나 DM 1명과 드루이드 & 바바리안 2명으론 모험의 스케일에 한계가 있더군요.

더 많은 난관과 위험을 안겨주고 싶은데 각자 커버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되어 있다보니 이야기의 폭이 너무 좁았어요.

우리 모두 3번째 플레이어를 간절히 찾기 시작했지만, 아무래도 마이너한 장르인데다 심지어 해외에서(!)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추가조건이 붙다보니 단 한통의 연락도 오지 않더군요.

결국 우리끼리 게임을 하자며 반쯤 포기한 순간 '무슨 게임인진 잘 모르겠는데 해보고 싶어요' 라며 등장한 세번째 멤버.

판타지라곤 잘 모르고. 컴퓨터 게임도 잘 안하며. 보드게임은 아주 조금만 해본 그런 초보자여서 깜짝 놀랐습니다.

D&D가 뭔지 어~~~~렴풋이 아는 이유도 기묘한 이야기에서 잠깐 본게 전부래요. (이건 세명 모두 공통적인 부분이군요)

D&D를 싫어할 3박자를 다 가진 느낌이어서 분명 D&D를 안좋아할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룰도 잘 모르는 상태로 첫세션에서 적당히 즉흥적으로 만들어낸 로그(도둑)를 잡더니,

아주 조금씩 룰을 알려주며 상황을 이용하는 방법을 알려주자

이야기에 몰입하며 제가 즉흥적으로 생각해낸 함정들을 효율적으로 깨뜨리며 팀에 커다란 공헌을 하기 시작하더군요.

"정말 판타지물을 잘 모른다고?"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상적인 대처를 보여주더라고요.

물론 규칙을 잘 몰라서 "저 해골을 바로 죽여버려요!" / "한방에 죽일게요!" 같은 돌발 선언도 당당하게 외치곤 했습니다.

귀여운 실수죠. 하지만 초보임에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는 발언이라 그 의미는 큽니다.

바바리안 & 드루이드 멤버는 너무 조심성이 많아 계획을 세우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편인데... 이 판단력 & 행동력을 그 분이 채워주더군요.

물론 그 날은 두 멤버가 그 분이 발언할 수 있도록 많은 배려를 해주었지만, 그럼에도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내비추어서 굉장히 좋게 보였어요.

잘 모르는 게임이라 눈치보기 바빠도 이해할 수 있는데, 매 순간마다 부끄러워하지 않고 생각을 말하는건 쉽지 않거든요.

속으로 귀인을 만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기존의 멤버가 두 분 모두 여성인지라 남성 멤버가 생기면 서로 불편해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하곤 했는데...

기적처럼 세번째분도 여성이라 그런 문제점도 발생하지 않게 되어 아주 완벽했어요.

그래서 곧바로 주사위 세트를 선물로 드렸습니다. 이런 귀인을 놓칠 순 없죠.

1 마스터 vs 2 플레이어 체제로 갔을 때도 재밌었는데, 재능있는 분이 팀에 합류하자 더 재미난 이야기들 만들어 내고 싶어 입이 근질거립니다.

로그가 합류함으로써 플레이어들의 행동 폭이 훨씬 넓어졌거든요.

앞으로의 여정이 기대가 됩니다.

멤버들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이젠 마스터인 제 시각에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고자 해요.

이 테이블은 제가 언젠가 가지고 싶은 테이블입니다. 웬만해선 보드게임 전용 테이블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은 안했는데... 저런식으로 중앙에 스크린을 뛰워놓고 D&D를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더라고요. 저 위를 뚜껑식으로 덮으면 보드게임용으로도 쓸 수 있잖아?? 하는 생각이 든건 덤.

이것은 제 DM(던전마스터) 가방입니다. 이 안에 제가 게임에 사용하는 모든 것이 담겨있죠.

열면 이렇게 캐릭터 시트와 스크린이 있고.

그 밑에는 다양한 몬스터 타일 / 주사위 / 주문 시전 캐릭터들의 주문카드 / 다양한 주사위 세트 / 연필 / 지우개와.

필름지에 그림을 그리는데 쓰는 마커들도 같이 들어있습니다.

제 DM 스크린의 뒷면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스크린 내에 들어있는 정보가 대체로 좋긴 하지만... 제가 안쓰는 것들이 너무 많은데다 공간 낭비가 심하다보니 그냥 커스터마이징 하는게 편하더라고요.

가장 왼편은 캐릭터들의 특성과 스탯. 기본적인 전투 방법이 나와있어서 전투시에 자주 참고합니다.

그 옆의 칸은 경험치 / 전투시 행동법 / 기술 체크 / 다양한 상태 / 페널티 등 전투와 모험에 관련된 내용들이 담겨있습니다. 특히나 자주 보게 되는 것들은 형광펜으로 칠해서 단번에 찾을 수 있게 해놨어요.

가장 우측은 상점 / 여관 / 생활비 / 이동수단 같은 마을에서 주로 쓰이는 정보들을 담아두었습니다. 특히 무기와 방어구에 대한 요약이 나온걸 프린트하여 붙여두었는데요. 매번 책을 넘기며 방어력 / 데미지를 확인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꽤 편하더라고요.

그 옆은 점프 / 잠수 / 빛의 거리와 지속시간 / 식량소비량 등 탐험시 은근히 자주 쓰이게 되는 행동을 붙여놓았고 굴림 난이도 / 지침 / 엄폐 등 스크린 자체적으로 잘 요약한 정보들은 가려지지 않도록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룰북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줄일 수 있을까 많이 고민 했는데... 이렇게 메모지를 테이프로 붙여두니까 자료가 추가될 떄마다 이리저리 재배치 할 수 있어서 참 좋아요.

스크린마다 미묘한 차이는 있지만 원래는 대략 이런식으로 생겼습니다.

뭐 그 밖에도 아이패드로 다양한 배경음이나 효과음을 적용하기도 하는데... 이건 아직 실험단계라 앞으로 꾸준히 쓸지 어떨진 모르겠네요.

참. D&D를 워낙 좋아하다보니 한글판 풀셋 펀딩을 했는데... 번역상태를 보니 스트레스가 생기더라고요. 영어에 익숙한 저는 애매하게 번역된 한글이 더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고민 끝에 후원을 취소하고나니 차라리 마음이 편해지네요. 진작 그럴걸 그랬어요.

에... 기승전결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그런 후기지만... 어쨌든 재미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재밌게 놀다가 정신 좀 차리고 다시 리뷰 작업도 시작해야겠어요!

후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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