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개월 딸과의 ‘오싹오싹 유령의 집’ 후기 (feat. 유럽술집)
라이트 게이머인 무이입니다.
이번 추석연휴에 전주를 방문하게 됐는데요, 마침 보라에
올라온 ‘[뻘글] 유럽술집 방문기 (feat. 우주티비)’를 보고
Tinno님과 루시님이 운영하시는 비스트로 ‘유럽술집’에
아내랑 어린 딸이랑 가보았습니다. 아이와 함께 가도 될지
약간 우려했지만, 다행히(?) 홀은 만석이라 야외에 자리를
잡게 됐습니다.
저희 딸이 원래 낯을 많이 가리는데, 루시님에게는 대뜸
풍선으로 만든 팔찌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당황스러웠지만, 루시님은 친절히 맞아주시며, 아이 의자에
놓을 쿠션과 도화지, 색연필을 담은 트레이를 갖다 주셔서,
아이는 그림을 그리고 저희는 차분히 메뉴를 고를 수
있었습니다. 근데, 예상치 못하게 아이를 위한 보드게임을
하나 갖다 주시는 겁니다. 이름하여 ‘오싹오싹 유령의 집’
인데요, 알고 보니 보드라이브의 ‘7월 첫 주 금주의 신작’에
소개됐던 게임이더군요. 보통 완구형 보드게임이라 불리는
유형이 아닌가 합니다.
문의 오른쪽에 초인종이 보인다.
룰렛의 화살표를 손가락으로 튕기면 화살표가 돌아간다.
게임은 별게 없습니다. 구성물은 위 사진들과 같이 유령의
집과 룰렛이 전부고요... 자신의 차례에 룰렛을 돌려 나온
횟수만큼 문 옆에 있는 초인종을 누르는데, 운이 나쁘면
문이 열리며 유령이 튀어나오는 것입니다. 평범한 폭탄
돌리기 게임이라고나 할까요? (유령을 튀어나오게 한
플레이어가 받는 벌칙 카드도 있지만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문이 열리며 유령이 튀어 나온 모습!
플레이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전~혀 없는 운빨 게임이지만,
아이에게는 그리 호락호락한 게임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유령이 나오기 때문인데요... 최근 맥락 없이 “아빠, 귀신은
무섭지 않아. 귀신은 가짜거든.”이라고 씩씩하게 얘기하곤
했거든요. 아이는 그림을 그리며 (실은 무서웠던지) 저와
아내에게 게임을 하라고 시켰는데, 저희는 초인종을 누를
때마다 아이를 불러 큰일 났다고 호들갑을 떨었고, 그럴
때마다 아이는 몸을 움츠리고 긴장한 눈으로 유령이
튀어나올까 문을 주시하더라구요. 그러다 유령이
튀어나오기라도 하면 깜작 깜짝 놀라구요. 그렇게 시간이
한~참 지나 이제 조금 자신이 생겼던지 자기도 게임을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막상 게임을 하게 되니 무서워하지 않고 게임을 즐기는
모습이 역력히 보였고, 유령이 튀어나오면 웃음이 떠나질
않더군요. 너무 즐거워 보여, 그동안 같이 했던 치킨 차차,
루핑 루이, 코코너츠 등과 비교해 어떤 게 제일 재밌냐고
물어보니 ‘오싹오싹 유령의 집’이 제일 재밌다고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이런 운빨 게임이 갓겜들보다?’라며
놀랐지만, 거기엔 이유가 있다는 걸 다음 날 알게 됐습니다.
다음 날이었습니다. 아이들의 핫플레이스인 전주동물원에서
놀이기구를 타고 있는데, 아이가 웬일로 유령의 집에
들어가겠다고 하더라구요; 아내와 제가 무서울 거라고 주의를
줬건만 한사코 들어가겠다고 하길래 그러자고 했는데, 역시나
들어가자마자 무섭다며 저에게 안아달라고 하고선 찰싹 달라
붙더라구요. 그래서 빠른 걸음으로 유령의 집을 나오니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마, 어제 ‘오싹
오싹 유령의 집’을 하면서 유령에 대한 자신감이 생겨, 만용을
부렸던 게 아닌가 합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아이가 왜 그렇게 ‘오싹오싹 유령의 집’을
재밌어했는지가 보이더라구요. 안 그래도 유령이라는 테마에
몰입해 있었는데, 호기심과 공포의 대상인 유령이
들락날락하니 얼마나 흥미로웠겠어요; 한마디로 테마에
취향저격 당한 것이지요.
게이머로서 아이와 함께 최고의 갓겜들을 즐겼다고
자부했지만, 정작 아이에게 최고의 게임은 이런 운빨
게임이라니;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나름
반성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아이가
좋아하는 테마와 완구형 보드게임도 좀 더 알아봐야겠습니다.
그럼에도, 이 게임을 사지는 않을 겁니다! 어디까지나 그림을
그리고 식사를 하는 자리에 양념으로 낀 게임이었고, 소리를
지를 수 있는 장소였기에 가능한 게임이었으니까요. 아마,
실내에서 다른 활동을 하지 않고 이 게임만 했다면 아무리
취향저격이라도 금방 질려했을 겁니다! 암요.
모든 사진은 인터넷 쇼핑몰의 상품정보에서 가져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