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떠나다’ 리뷰
라이트 게이머인 무이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보톡스 109회에서 전심님이 소개하셔서 늘 해보고
싶었던 우주시대 테마의 ‘지구를 떠나다(leaving earth, 2015년)’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사실 저에겐 좀 난이도가 있는 게임이라 그동안 플레이를
미뤄왔는데, 퍼즐적인 요소가 강하다는 점에 이끌려 결국에
플레이해보게 됐네요.
모든 사진은 보드게임긱에서 가져왔습니다.
위치스브루에서 3인플로 테플 한 번 포함 3회플, 4인플로
1회플 해봤습니다.
A. 게임 초간단 소개
위와 같이 위치카드들을 깔아 태양계(게임 판)을 만드는데,
지구 근처를 확대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각 플레이어들은 자신의 우주선을 한 위치에서 다른 위치로
계속 이동시키며 주어진 임무를 달성하고, 달성한 임무들의
총점이 가장 높은 플레이어가 승리하게 됩니다.
임무는 어딘가로 우주선을 보내거나, 보냈다가 다시 지구로
돌아오거나, 돌아올 때 뭔가를 가져오는 것들이라 원하는 이동만
지속적으로 할 수 있으면 달성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지구 궤도에서 도킹을 시도하는 소련의 (붉은색) 우주선들.
화성에 우주선을 착륙시키면 7점을 주는 임무 카드.
B. 게임 감상
1. 규칙서가 엄청 긴 논문이다?
이 게임의 규칙서가 논문 같다라는 글을 몇 번 봤습니다. 아마
규칙서에 사진이 아예 없고 거의 텍스트라 그런 말을 듣는 거
같습니다. 게다가, 4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 때문에 많은
분들께 부담을 주는 거 같은데요... 근데 폰트가 크고 34페이지
이후로는 굳이 안 읽어도 되며, 읽어야하는 33페이지 중에
절반 가까이는 읽는 게 매우 쉽고 재밌습니다.
2. 간단한 기본 규칙
기본적인 규칙은 무척 간단합니다. 규칙서 앞부분의
‘로켓 공학의 기초’에서 우주선을 이동시키는 데 필요한 추진력
계산을 익히고, 그 다음으로는 이동할 때 직면하게 되는
(대기권, 태양방사선 등의) 위험요소들을 어떻게 극복하는지만
익히면 되거든요.
3. 세부 규칙들
근데, 세부 규칙들이 좀 많습니다. 테마 게임이다 보니까
그럴 수밖에 없을 거 같기도 한데요... 카드에 텍스트만
잘 써놨어도 기억해야할 세부 규칙들이 많이 줄어든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텍스트가 틀린 카드들도 있고요;
(이런 세부규칙들이 신경 쓰여, 최신 규칙서의 세부규칙들과
긱 포럼에 디자이너가 쓴 글 및 댓글들을 정리한 글을 썼으니
필요하신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지구를 떠나다' FAQ :
http://boardlife.co.kr/bbs_detail.php?bbs_num=6072&id=&tb=info_files&game_category=
4. 테마에 너무 몰입하면 안 되는 게임
처음 규칙서를 읽을 때, 테스트 플레이를 할 때, 그리고 룰마로
플레이할 때 늘 그랬는데, 이 게임을 하다보면 다양한 의문들이
끊임없이 생깁니다. (이런 의문들은 규칙서 이해를 방해하고,
기억해야할 세부규칙들로 둔갑하게 됩니다.) 그런 의문들 중
상당수는 이 게임이 테마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우주선에 관한
규칙들이 보편적인 상식과 맞지 않아 생깁니다.
뭐, 이런 식입니다. 아직 착륙기술도 없을 때 우주선을 띄워
화성궤도로 보냈는데, 화성에 착륙하기 직전에 착륙기술을
연구해도 이 우주선이 화성에 착륙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런 문제들은 (디자이너가 말하길) 게임이 너무 복잡해지는 걸
막기 위해 규칙을 단순화하다 생긴 문제인데,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으나 의도치 않게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테마에 몰입한
플레이어가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 자주 발생하는 것입니다.
5. 튜토리얼이 필요한 게임?
앞서 말씀드린 문제들은 디자이너가 카드 텍스트에 더해
규칙서를 좀 잘 썼으면 상당부분 해결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안타까운데, 뭐 이왕 이렇게 됐으니 어쩌겠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게임을 익히기 위해서는 플레이 쓰루 동영상을 보는 게 도움이
많이 되고 (아직 한국어로 된 플레이 쓰루 동영상이 없습니다.
wildhawk님, 혹시 이 게임에 관심 없으신가요?;),
튜토리얼을 진행해보는 것도 좋을 거 같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위치 카드 중에서
지구, 준궤도 비행, 지구 궤도, 달 궤도, 달 카드
이렇게 다섯 장만 깐 뒤, 달에 관련된 쉬운 임무를 하나
완수해보는 거죠.
6. 재미요소 - 숫자로 하는 퍼즐
보톡스에서 전심님이 이 게임을 ‘숫자로 하는 퍼즐‘이라고
소개하셨는데, 정말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접해본
게임들 중에 숫자로 하는 퍼즐이라고 할 만한 게임들은
정크 오르빗(Junk Orbit, 2018년), 크루세이더(Crusaders: Thy
Will Be Done, 2017년) 정도인데, 이들과 비교했을 때 실제로
연습장에 산수를 해가면서 플레이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신기한 경험이었고, 교육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겠더라구요.
1년 예산이 $25인데, 하나에 $15이나 하는 새턴 로켓.
7. 재미요소 - 거래
할 수 있는 행동들 중에 ‘협력(co-operation)’이라는 게 있는데,
규칙서만 보면 이게 뭔지 감이 잘 안 옵니다. 근데, 이 행동을
활용하면 다른 플레이어들과 뭐든지 거래할 수 있게 되고, 경매도
가능해집니다. 예를 들어,
“제 착륙 기술을 $15에 사실 분~”,
“이번 차례에 새턴 로켓이 쓸모가 없네요. $10에 사실 분~”
과 같은 제안도 가능해지는 거죠. 이런 식의 거래는 그 자체로
재밌기도 하지만, 1등을 제외한 플레이어들끼리 거래를 하면
서로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1등 견제의 역할도 하게 됩니다.
이 게임은 긱에 1인플 베스트로 나와 있는데, 이건 거래를
안 했을 때의 얘기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거래를 하게 되면 이 게임 본연의 게임성에 파티성까지
더해지기 때문에 무척 즐겁게 플레이할 수 있어 3인플 베스트가
아닐까 합니다. 거래를 넣고 게임을 안 해보신 분이라면
꼭 넣어서 해보시길 권합니다.
(3인플로 해본 저로서는 굳이 1인플을 할 필요를 못 느낍니다.)
8. 운요소
이 게임은 산수를 엄청 해야 해서 수학적인 느낌이 강한지라,
운적인 요소가 적을 거 같지만, 실은 운적인 요소가 상당히
강한 게임입니다. 금성에 착륙선을 보낼 생각으로 몇 년 동안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는데 알고 보니 금성의 환경이 너무
안 좋아 착륙선을 보낼 수 없다는 게 밝혀지면 할 게 없어지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거든요. 하지만, 이런 운적인 요소는 언제
사고가 터질지 모르는 우주개발엔 필연적이라 테마적으로는
거부감이 없습니다.
우주선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했는지 알려주는 결과카드.
이 카드들을 뽑을 때도 운이 작용한다.
C. 마무리
‘지구를 떠나다’는 여러 후기에서 접한 그대로 숫자로 하는
(특히, 우주비행사를 달에 보내기라도 하면) 퍼즐의 진수를
보여주고, 우주 테마를 선호하는 게이머에게 멋진 경험을 선사할
것입니다. 하지만, 세부 규칙이 많고, 이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비슷한 플레이어끼리 해야 진정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제약이 많은 게임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이런 제약조건만
극복할 수 있다면 정말 유니크한 경험을 할 수 있으며, 3인플로
거래를 하면서 플레이한다면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게임을 할 수
있어, 우주테마를 좋아하는 게이머에게 강력 추천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게임에 호기심은 가는데 아직 망설여지는 분이라면,
지금 당장 한국어 규칙서 앞쪽의 (다섯 페이지 분량의)
‘로켓 공학의 기초’를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이 부분은 이 게임의 핵심을 담고 있는데다 쉽고 재밌어,
이걸 읽어보고도 피가 뜨거워지지 않는다면 굳이
이 게임을 하실 필요는 없을 거 같습니다;
‘지구를 떠나다’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도움이 됐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