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스트의 자원구조 문제
며칠전 모임에서 갤러리스트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오래간만에 다시 했기 때문에 거의 새로 배우다시피 하고 게임을 하게 되었는데
게임 후에 느낀 바가 있어서 간략히 적어보려고 합니다
1. 자원구조의 문제
먼저 '자원구조'라는 개념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자원구조는 플레이어가 게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고려하는 대략적인 자원의 흐름을 지칭하는 개념입니다
엉성한 개념정의보다 간단한 사례로 설명해보겠습니다
먼저 단순한 자원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 → $
게임 중에 활용되는 수단과 목적이 일치되기 때문에 한 가지 자원에 집중해서 게임할 수 있습니다
부루마불을 생각하시면 쉽습니다
부루마불에서 통용되는 자원은 돈이고, 승리조건도 돈을 가장 많이 버는 것이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돈이라는 자원에만 집중하면 됩니다
단순한 자원구조라고 해서 한가지 자원만 확보하면 된다라기보다는 중요 자원 위주로 플레이하는 것이 적합하다 정도로 넘어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일반적인 자원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 → ☆(점수)
일반적인 유로게임에서 택하고 있는 자원구조는 수단성이 높은 자원과 목적성이 높은 것을 구분해 놓는 편입니다
때문에 플레이어는 초중반에 수단성이 높은 자원을 많이 확보하는데 집중하고, 적절한 타이밍에 그것을 목적 자원으로 바꾸는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이런 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능숙한 보드게이머라면 초반에 바로 점수를 먹기보다는 활용성이 높은 자원을 확보하는 일에 익숙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갤러리스트입니다
갤러리스트는 복잡해 보이지만 돈과 영향력이라는 2가지 주요자원을 운용해서 하는 게임입니다
그리고 갤러리스트를 안해보셨거나, 기억이 잘 안나시는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자면 갤러리스트의 승리 조건은 돈을 가장 많이 버는 것입니다
막 게임을 시작했을 때 어떤 방문객을 데려와서 어떤 자원을 확보할지 고민하는데
옆에 앉은 분께서 투자자(돈)를 데려오라고 조언해주시더군요
조언을 듣고나서 약간의 의문이 생겼습니다
게임의 목적자원이 돈인데 초반부터 돈을 확보하는게 좋은 전략인가?
어쨋든 조언대로 투자자 말을 끌어왔는데 결과적으로는 게임이 잘 풀렸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게임을 마치고 나서도 왠지 찜찜한 느낌이 들었는데
룰을 다시 읽고 나서 왜 이상한 느낌이 들었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갤러리스트는 8개의 주요액션과 2개의 서브액션(경영)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기기 위해서는 당연히 주요액션을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8개의 주요액션 중 4개(작품구입,조수고용,세계시장,경매) 액션을 하는데 돈이 쓰이는 반면
영향력이 쓰이는 액션은 겨우 1개(따봉) 뿐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3개액션(계약서, 작품매각, 신인발굴)은 자원이 소모되지 않고 단순히 턴소모만 되는 액션입니다
액션 분석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갤러리스트에서 수단성이 높은 자원은 돈입니다
돈이라는 자원이 승리에 기여하는 목적성도 높을뿐만 아니라 수단성도 높은 셈입니다(영향력은 절대 열위의 자원입니다)
결국 갤러리스트는 $ → $ 구조의 단순 자원구조 게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영향력은 게임내에서 돈으로도 바뀌고, 명성으로도 바뀌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킥아웃 액션을 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플레이에 유연성을 부여해주면서 나름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자원입니다
킥아웃 액션은 중요한 요소이지만 뒤에서 논의하겠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제가 문제시하는 점은 갤러리스트가 단순자원구조 게임이라는 점은 아닙니다
단순자원구조를 취하면서도 게임의 깊이나 전략성을 놓치지 않는 작품은 많이 있고, 일반적인 자원구조라고 해서 항상 전략성이 담보되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생각하는 문제는, 갤러리스트를 처음 접한 사람에게 영향력과 돈이 비슷한 가치를 지닌 양대 자원이라는 인상을 주는 점입니다
영향력을 올려주는 VIP 고객과 돈을 증가시켜주는 투자자 고객이 마치 대칭되는 것처럼 보이고
고객을 끌어와서 엔진빌딩하는 과정도 똑같다는 점, 자원을 생산하는 방식도 대칭된다는 점(VIP 2영향력을 주고 투자자는 2원을 줍니다) 등에서
플레이어에게 마치 두 자원의 중요성이 동일하고, 어떤 테크를 탈지 취향의 문제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는 점입니다
(실제 게임 당시에도 영향력 엔진빌딩을 하셨던 분이 게임이 잘 풀리지 않아 고통받으셨던 것 같습니다)
어떤 자원이 중요한가를 알아가는 과정도 게임의 일부라고 하면 할말은 없지만
제가 생각하는 좋은 게임은 단순히 어떤 정보를 알고 모르고에서 실력이 갈리는 것보다는
공평하게 정보가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서 결과가 갈리는 게임이기 때문에
게임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자원의 가치가 혼란을 유발한다면 게임의 한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2. 킥아웃 액션에 대해
킥아웃 액션이 게임을 산만하게 한다는 지적은 다른 리뷰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킥아웃은 갤러리스트를 다른 게임과 차별화해주는 아주 참신한 요소라는 점은 확실합니다
보드게이머라면 누구나 '한턴더'의 중요성은 실감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중요한 기회를 남들이 할 액션을 예측함으로써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요소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킥아웃의 문제점은 킥아웃 비용이 너무 저렴하다는 점입니다
킥아웃 비용은 영향력으로 지불되는데 최대 5에서 운이 좋으면 1의 영향력으로도 할 수 있다는 점은 킥아웃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배려된 것이겠지만
킥아웃이 너무 남용되는 것을 방치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킥아웃은 갤러리스트 말 뿐만 아니라 조수말이 남겨져있을 때에도 가능한데
이렇게 필드에 나간 조수말은 그자리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필요하면 다른 킥아웃을 할 때도 데려다 쓸 수 있고
세계시장, 경매칸에도 꽂을 수 있다는 점에서 어지간하면 남겨두는것이 무조건 이익이 됩니다
킥아웃 액션이 주어졌다고 해서 킥아웃이 강제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영향력을 깎고 킥아웃을 할지말지는 순전히 플레이어 재량이고
영향력을 깎기 싫으면 대신 경영액션을 수행해도 되고, 가장 나쁜 상황이라도 아무것도 안하고 돌아오면 되기 때문에
킥아웃을 안할 이유가 없습니다
낭비되는 비용은 없고 기대되는 이익(한턴더!)은 크기 때문이죠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작가가 킥아웃 액션을 만들고 자기가 만든 참신한 메커니즘에 꽂혀서
킥아웃을 장려하는 방향으로 게임을 만든것이 아닐까 합니다
3. 마무리
글이 생각보다 너무 길어졌지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자원간 비중에 상당한 차이가 있는데도 게임 자체가 착각을 일으킨다
(2) 킥아웃 액션이 너무 남용되면서 게임이 산만해진다
영향력의 가치가 너무 낮고 킥아웃은 저렴하기 때문에
킥아웃시 소모되는 영향력을 5로 고정시킨다든가, 8가지 액션 중에 영향력이 소모되는 액션을 최소 2가지 정도로 올린다거나
하는 수정 방안이 생각나긴 하지만, 이렇게 해서 게임 밸런스가 맞을지는 많은 테스트플레이가 거쳐져야 하기 때문에
단순한 개인 의견일 뿐입니다
비판적으로 글을 쓰긴 했지만 갤러리스트는 테마가 잘 녹아있는 훌륭한 유로게임이고
플레이하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좋은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플레이횟수가 적기 때문에 전략적인 고려가 부족할 수 있는 부분은 감안부탁드립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