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를 거듭할수록 느껴지는 소회+ 미플자랑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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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2-11 오후 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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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사실 보드라이프 로그인 안 하고 눈팅은 꽤 많이 했는데, 정회원 되고 글 쓰는건 처음이에요.

어쩌다보니 첫 글은 아그리콜라에 관한 글이 됐어요.

음.. 제가 생각하는 아그리콜라의 게임성에 대해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일단 미플을 업그레이드 해서 기분이 좋으니 미플 자랑부터 보고 가시죠!!!!

제가 초록색, 제 여자친구가 빨간색을 잡고 제가 52점으로 승리한 게임입니다.

미플이 너무너무 예뻐서 받자마자 한 판 돌려봤지요. 생각보다 잡기도 편하고 색도 명료해 직관적이고 게임플레이의 편의를 증가시켜줬어요.

이 자리를 빌어(?) 이것저것 귀찮게 특별하게 요구드렸음에도 묵묵히 다 받아주시고 정성들여 제작해주신 [여니]님께 감사드립니다!(많이파세요!!!)

한땀한땀 정성들여 만들어주신 미플은 너무 예쁘고 아기자기한데, 이제 써내려갈 글은 조금 우중충 하네요..

MTG같은 TCG나 간단한 보드게임들만 즐기던 제 여자친구를 전략 보드게임에 푹 빠져들게끔 인도한 아그리콜라는 이미 명작 반열에 오른 게임이죠.

언제 플레이해도 재밌습니다. 테마 몰입도도 엄청나고 훌륭한 리플레이성, 치밀한 짜임새는 더 말할 필요도 없어요.

그러나 그 "재미"와 별개로 "스트레스"는 악명높기로 유명합니다. 저 역시 익숙해질만도 한데 새삼스레 매 플레이마다 느끼곤 하니까요.

한 판 하고나면 "한판 더!" 보다는 "잠깐만 쉬자.."가 자주 나오는 게임이죠.

저는 문득 아그리콜라의 이러한 피로는 크게 몇 가지 포인트에서 생겨나는게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하게됐어요.

1) 원하는 바를 성취하기보단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피곤함

게임 시작 후 초반 수확때에 다가오는 "구걸"의 공포는 어마어마합니다. 특정 설비/직업을 제외하곤 구걸카드 한 번 받으면 재기가 힘들 정도니까요.

이에 플레이어들은 매 라운드마다 "하고싶은 것"을 참고 "해야하는 것"에 집중하게 됩니다. 나는 예쁜 목장도 차리고 싶고, 밭농사도 제대로 지어보고 싶고, 집도 업그레이드 하고 싶은데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하다는 것이죠. 이에 많은 플레이어들은 "하고싶은 것"을 잠시 미뤄두고 "해야하는 것"에 쫓겨 턴을 보내게 됩니다. 사실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여러 게임에서 개발자의 의도대로 몇가지 행동을 제약받거나 강제당하는 경우는 빈번해요. 문제는 이러한 선택이 14라운드동안 계속된다는 점이 아닐까요? 계속되는 행동의 강제, 그리고 그러한 강압적인 선택의 결과는 새로운 무언가의 성취보단 치명적인 위기 회피인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에 플레이어들이 조금씩, 조금씩 지쳐나가는거구요. "봐, 14라운드 끝나니 네 농장이 가득 찼지? 뿌듯하지 않아?"라고 말하기엔 정신없이 채워온 농장보단 채우지 못한 빈칸과 부족한 가족 수가 그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걸요.. 아그리콜라에서 무언가를 창조해낸 성취감을 느낄 여유는 찾기 힘듭니다. 점수계산 후 남은 나의 보드는 그냥 치명적인 위기를 무던히 피해온 결과의 흔적일 뿐이지요.

2) 인터액션=견제/겐세이

이부분은 사실..많은 일꾼놓기 게임이 태생적으로 지닌 요소라고 생각하고, 장르적 특성임을 인정합니다. 그치만 아그리콜라는 뭐랄까, 보다 더 삭막하고 보다 더 엄격하다는 인상을 받게 돼요. 보드게임에 막 입문하고 카탄의 개척자에 푹 빠져 지낼 때, 저는 카탄의 자유로운 외교가 너무나도 매력적이었습니다. 같이 플레이하는 플레이어의 입담과 센스가 게임의 재미를 좌지우지하게 되는 불안정한 요소이긴 해도, 서로가 윈-윈하며 자신만의 전략과 빌드를 구축해나가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참 매력적이었어요. 이거 2개랑 그거 하나랑 바꿀래? 너도 좋지? 나도 좋아!가 계속되니 웃음이 끊이질 않고 누구 하나 손해보는 사람이 없었죠. 그러나 아그리콜라는 다르다는 것 모두 아실거에요. 내가 원하는 자원을 얻기 위해선 상대방이 아니라 행동칸을 바라봐야만 합니다. 그 행동칸에선 시스템적으로 어떠한 양보나 대안도 없죠. 누군가 선점하면 더이상 차지할 수 없어요.(특정 설비/직업 제외) 몇몇 일꾼놓기 게임들이 일꾼별 계급을 두거나 고유한 시스템으로 지나친 경쟁과 겐세이를 지양하는 경우가 왕왕 있지만 아그리콜라는 역시나 "얄짤"없죠. 다인플에서 그 스트레스는 극이 되어 매 턴 인상을 찌푸리고 상대방의 손 끝만 지켜보는 장고 플레이어들이 늘어나기만 합니다. 각 라운드별 가치가 높은 행동과 목표를 지정해놔(가족 늘리기/방 확장 등..)심각한 병목현상으로 상대와 무한경쟁에 돌입하는 아그리콜라의 인터액션은 게임의 피로도를 올려주는데 크게 기여한다고 생각해요.

3) 꽤나 견고한 "정답"의 존재

어쩌면 1)번의 연장선상에 있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가족 늘리기를 무시하는 플레이어는 이길 수 없습니다. 초반에 누가 방을 먼저 늘리는지, 누가 양과 화로를 선점하는지가 운명을 결정합니다. 가축과 농사 한 가지에만 집중하기엔 플레이가 빈약하고 리스크가 큽니다. 특정 설비와 직업의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감점을 최소화하기 위해 모두 골고루 발전시켜나가야 합니다. 이러한 "정답"으로의 회귀는 결국 개성있는 플레이를 사장시키게 됩니다.

사실, 이렇게 하드코어한 특징이 아그리콜라만의 매력을 명료하게 해주기도 합니다. 제가 짚어낸 요소들은 사실 아그리콜라가 선사하는 진짜(?) 재미에 대한 딴지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을 아그리콜라 플레이에 초대할 때마다, 가장 신경써서 주의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렇쿵 저렇쿵 글을 짧지 않게 썼지만, 그래도 아그리콜라는 재미있습니다. 두고두고 하려고 고급 미플까지 구매했으니까요.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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